비난을 받기 원하는가 (눅6:37-45)
본문
비판을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이 정치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지방자치선거를 전후로 하여 정치권에서 많은 비판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대부분 몇몇 특정인들을 겨냥한 것입니다. 이유야 무엇이든 그들은 요즘 심기가 불편합니다. 누가 비판받는 것을 좋아하겠습니까 본문은 우리가 비판받지 않을 수 있는 처방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비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37-38절). 31절에 황금률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 말씀은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남에게 대접을 하면 남으로부터 대접을 받습니다. 이것을 어떤 사람은 메아리의 법칙이라고도 부릅니다. 골짜기가 깊은 산 위에 올라가서 소리를 치면 메아리가 골짜기를 따라 울립니다. “야호” 하고 외치면 “야호, 야호, 야호.” 하며 메아리가 이어집니다. “사랑해” 하고 외치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미워” 하고 외치면 “미워, 미워, 미워.” 하며 길게 이어집니다. 이처럼 사랑을 말하고 사랑을 주면 사랑을 받습니다. 자비를 베풀면 나에게 자비가 베풀어집니다. 용서하면 용서를 받습니다. 이 원리는 부정적인 측면에서도 나타납니다. 비판하면 비판을 받게 되고 정죄하면 정죄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비판을 하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것입니다. 앞서 그분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연장선에서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을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30초의 시간을 주면서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내라고 했습니다. 어떤 학생은 30초 동안에 단지 한 사람만을 생각해 낼 수 있었습니다. 또 어떤 학생은 열 네 명이나 적었습니다. 그 조사에서 나타난 재미있는 사실은, 싫어하는 사람의 이름을 가장 많이 적은 학생이 다른 학생들에 의해서 가장 싫어하는 사람으로 지목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것만을 가지고 판단합니다. 어떤 행동이나 사건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판단이 온전히 못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원인이나 동기들까지 아시므로 온전히 판단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전4:5)
둘째로, 타인보다 자신에 대해서 더 엄격해야 합니다(41-42절).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이 절대적으로 그러해야 함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는 것을 주님께서 인정하셨다는 사실에 유의하십시오. 원래 본문에서 “비판”으로 번역된 단어는 단지 “구별, 식별”을 뜻하므로 그 자체에는 나쁜 의미가 없습니다. 상대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비판이라면 좋은 것입니다. 상대의 눈에 있는 티를 빼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비판이라면 권장할 만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잘못은 상대방을 세워주기 위한 목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한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넘어뜨리고 곤경에 처하게 만들고 재기불능의 상태로 만들려고 합니다. 삼풍백화점의 경영진에 대한 비판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 중 누가 그들이 책임 있는 사회의 일원이 되고 재기하는 데 도움을 줄 목적으로 비판하고 있습니까 단지 처벌 일색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예수님은 회복을 위한 건설적인 비판의 경우라도 비판을 하기에 앞서 먼저 자신을 비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찾기에 앞서 먼저 자기의 눈 속에서 들보를 찾아 빼내라고 말씀하십니다. 상대의 결점을 보기에 앞서 자신의 결점과 죄를 엄격하게 살피고 처리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못할 때 위선자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주님은 그런 사람을 “외식하는 자”라고 부르십니다(42절). 이웃에 대한 험담을 잘하는 아주머니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누구에게든지 단점을 먼저 들춰내 헐뜯기 때문에 친구가 별로 없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의 집에 친정어머니가 찾아왔습니다. 역시 그 아주머니는 창가에 앉아 어머니에게 이웃집의 불결함에 대해 험담을 해댔습니다. “저기 봐요. 옆집 빨랫줄에 널린 옷들이 너무 더러워요. 세탁을 엉터리로 했나봐요.” 그러자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더 자세히 보렴. 이웃집 빨래가 아니라 너희집 유리창이 더러운 거다.” 종종 우리가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단 한 가지 이유가 우리는 그가 저지르는 것과 똑같은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을 따져 보면 우리라고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삼풍백화점 사고는 돈 때문에 일어난 것인데, 우리가 인명 사고를 일으키지 않았다는 것뿐이지 돈에 과도히 집착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까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 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롬2:1)
셋째로, 마음에 선을 쌓아야 합니다(43-45절).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45절) 비판은 말로 행해집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말이 그 사람의 됨됨이를 나타낸다고 지적하십니다. 평소에 선을 쌓고 덕을 쌓아야 합니다. 사랑과 용서와 관용과 인내와 온유와 같은 덕을 쌓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비판을 하더라도 선하고 덕스러운 말로 합니다. 당연히 교정을 목적으로 책망의 말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은 가시 돋힌 말을 하며 상대에게 깊은 상처를 안겨 줍니다. 비판을 받는 것은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따라서 남에게 비판을 받기 전에 스스로 자신을 엄격하게 비판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고전11:31). 그리고 상대방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사랑과 용서로 허물을 덮고, 상대방의 유익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경우에만 덕스러운 말로 책망해야 하겠습니다.
첫째로, 비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37-38절). 31절에 황금률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 말씀은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남에게 대접을 하면 남으로부터 대접을 받습니다. 이것을 어떤 사람은 메아리의 법칙이라고도 부릅니다. 골짜기가 깊은 산 위에 올라가서 소리를 치면 메아리가 골짜기를 따라 울립니다. “야호” 하고 외치면 “야호, 야호, 야호.” 하며 메아리가 이어집니다. “사랑해” 하고 외치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미워” 하고 외치면 “미워, 미워, 미워.” 하며 길게 이어집니다. 이처럼 사랑을 말하고 사랑을 주면 사랑을 받습니다. 자비를 베풀면 나에게 자비가 베풀어집니다. 용서하면 용서를 받습니다. 이 원리는 부정적인 측면에서도 나타납니다. 비판하면 비판을 받게 되고 정죄하면 정죄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비판을 하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것입니다. 앞서 그분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연장선에서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을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30초의 시간을 주면서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내라고 했습니다. 어떤 학생은 30초 동안에 단지 한 사람만을 생각해 낼 수 있었습니다. 또 어떤 학생은 열 네 명이나 적었습니다. 그 조사에서 나타난 재미있는 사실은, 싫어하는 사람의 이름을 가장 많이 적은 학생이 다른 학생들에 의해서 가장 싫어하는 사람으로 지목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것만을 가지고 판단합니다. 어떤 행동이나 사건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판단이 온전히 못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원인이나 동기들까지 아시므로 온전히 판단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전4:5)
둘째로, 타인보다 자신에 대해서 더 엄격해야 합니다(41-42절).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이 절대적으로 그러해야 함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는 것을 주님께서 인정하셨다는 사실에 유의하십시오. 원래 본문에서 “비판”으로 번역된 단어는 단지 “구별, 식별”을 뜻하므로 그 자체에는 나쁜 의미가 없습니다. 상대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비판이라면 좋은 것입니다. 상대의 눈에 있는 티를 빼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비판이라면 권장할 만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잘못은 상대방을 세워주기 위한 목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한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넘어뜨리고 곤경에 처하게 만들고 재기불능의 상태로 만들려고 합니다. 삼풍백화점의 경영진에 대한 비판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 중 누가 그들이 책임 있는 사회의 일원이 되고 재기하는 데 도움을 줄 목적으로 비판하고 있습니까 단지 처벌 일색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예수님은 회복을 위한 건설적인 비판의 경우라도 비판을 하기에 앞서 먼저 자신을 비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찾기에 앞서 먼저 자기의 눈 속에서 들보를 찾아 빼내라고 말씀하십니다. 상대의 결점을 보기에 앞서 자신의 결점과 죄를 엄격하게 살피고 처리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못할 때 위선자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주님은 그런 사람을 “외식하는 자”라고 부르십니다(42절). 이웃에 대한 험담을 잘하는 아주머니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누구에게든지 단점을 먼저 들춰내 헐뜯기 때문에 친구가 별로 없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의 집에 친정어머니가 찾아왔습니다. 역시 그 아주머니는 창가에 앉아 어머니에게 이웃집의 불결함에 대해 험담을 해댔습니다. “저기 봐요. 옆집 빨랫줄에 널린 옷들이 너무 더러워요. 세탁을 엉터리로 했나봐요.” 그러자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더 자세히 보렴. 이웃집 빨래가 아니라 너희집 유리창이 더러운 거다.” 종종 우리가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단 한 가지 이유가 우리는 그가 저지르는 것과 똑같은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을 따져 보면 우리라고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삼풍백화점 사고는 돈 때문에 일어난 것인데, 우리가 인명 사고를 일으키지 않았다는 것뿐이지 돈에 과도히 집착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까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 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롬2:1)
셋째로, 마음에 선을 쌓아야 합니다(43-45절).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45절) 비판은 말로 행해집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말이 그 사람의 됨됨이를 나타낸다고 지적하십니다. 평소에 선을 쌓고 덕을 쌓아야 합니다. 사랑과 용서와 관용과 인내와 온유와 같은 덕을 쌓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비판을 하더라도 선하고 덕스러운 말로 합니다. 당연히 교정을 목적으로 책망의 말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은 가시 돋힌 말을 하며 상대에게 깊은 상처를 안겨 줍니다. 비판을 받는 것은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따라서 남에게 비판을 받기 전에 스스로 자신을 엄격하게 비판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고전11:31). 그리고 상대방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사랑과 용서로 허물을 덮고, 상대방의 유익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경우에만 덕스러운 말로 책망해야 하겠습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