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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에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예수 2부 (눅4:1-13)

본문

성령님에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우리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한없는 슬픔을 느낀다 우리주님의 인간적인 삶은 너무도 보잘것없는 삶이다 어린시절부터 헤롯의 위협을 느끼며 이곳저곳 피해다니시던 우리 예수님 그를 보호하시기 위해 애쓰신 마리아와 요셉 저들의 생활은 주님을 모시는 동안 마치 바람잘날이 없이 보인다 넉넉한 생활도 아닌지라 사람들에 눈에 확 띄는 그런 인물들도 아니었다 가장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우리 예수님 그의 자라감에 주님의 축복하심의 역사가 그를 지키신줄 우리는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주님은 너무나 할일이 많으셨던것입니다 그의 이름, 예수는 자기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할자인것입니다
그는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려 이땅에 오신것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로 이땅에 오신것입니다 그의 목적은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건져 내시려 온것입니다 그는 분명한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가 분명한 일을 하고 계시기 때문에 받는 고통 또한 너무도 많은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의 일을 분명히 함으로 말미암아 따르는 고통, 역시 비교가 될줄 우리는 앎니다 이미 우리는 사도 바울의 길을 잘 보았습니다 그는 사도 였습니다 많은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그를 사도라고 인정하지 않으려 한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그가 받는 고난은 더욱더 괴롭게 한것이 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어디 인정받을려고 예수를 믿고 그의 종이 된것입니까 그렇치는 분명 아닐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안에서도 인정을 받지못하고 일꾼으로 살아간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이 겠습니까 나는 여기서 마귀는 어떻케 해서라도 예수님을 부정하고 사도 바울을 사도가 아니라 부정하고, 하나님의 일꾼들을 부정한 사탄의 전략에 우리가 속고 살아간다면 너무도 우리는 불행한 일일것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우리 예수님 마귀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홀로 이리저리 끌려 다니시며 고통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마귀가 무슨권세로 이리저리 끌고 다니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 봅시다 무슨 목적을 이루려고 이리저리로 끌려 다닙니까 왜 우리 예수님을 끌고 다니는가요 무엇 때문에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시며 이런 수모를 겪는것일까요 무엇 때문에 이런 수치 스러운 장면을 계속 우리에게 보여 주셔야만 하는지요 그의 삶은 온통 마귀가 그를 가로막고 있다는것을 보지 않을수 없는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어디하나 예수님 편에서 변호하기는 커녕 그들의 지식과 학문아래 주님의 모습은 저 시골 마을 목수의 아들이 무엇을 할것인가 라고 빈정되지 않았단 말입니까
심지어는 자기가 가장 사랑하시는 제자중에 가룻인 유다에게 마귀가 들어가서 우리 주님을 배반케했던 비참하고 참담한 모습들만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았단 말입니까 주님의 역사의 통쾌한 모습보다, 뒷맛을 잃어버린 모습들이 아니더란 말입니까 홀로 감람산 기슭에서 우시며 앞날에 당하실 고난에 말없이 준비하시던 그 주님이 아니시더란 말입니까 그의 사명을 아시고, 또한 마귀의 강한 능력을 아시고 얼마나 기도하신줄 우리는 알수있습니다 주님을 따르며 기도하는 종들의 가는길 이처럼 험란한길에 서있는 마귀의 역사를 보면서 힘찬 발걸음 위대한 전진이 아니었더란 말입니까 오직 믿음과 말씀과 성령님으로 살아간 것이 아니더란 말인가요 주님이 겪으신 고난 동참하면서 걸어간 그들 마귀의 역사앞에 질질 개처럼 끌려 다니던 우리의 처량한 모습 그래도 주님닮아가는 삶에 기쁨과 행복이 아니더란 말입니까 그래도 그가운데서도 아름다운 동역자들과 기쁨을 나눌수 있지 않았더란 말입니까 많은 고난을 받을수록 더욱 큰자가 된다는 앞서간 자들의 말씀 그곳이 그래도 우리의 희망이 있다는 것 주님과 함께 이길 걸어 간다고 한 그들과 주님은 오늘도 우리의 고난에 함께 하신줄 우리는 앎니다 주님은 마귀의 세력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시지만 우리는 이 제목이 무엇이란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이 모두가 하나님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광경이요 하나님의 역사아래서 이루어지는 사건일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우리를 최후의 승자로 만들고 말것입니다 우리들을 주님의 더욱 아름다운 사람으로 만들어내고 말것을 우리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한가지 인정해야 할 대목은 마귀는 예수님을 이끌고 성전 꼭대기까지 끌고 갔습니다 성전 이곳은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가 있는곳입니다 하나님의 위엄과 권세와 이땅에 모든 역사를 이루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곳까지 마귀는 자기마음대로 왔다갔다 하는모습을 봅니다 우리의 재물을 열납하시고 우리가 가장 신성시하는 곳을 마귀가 넘나 다닌다면 이곳이 어떻케 하나님의 거룩한곳이 될수가 있겠습니까 이토록 우리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역사가 방치된체 율법의 우월성만 강조하고 내세운 예루살렘 성전의 참담한 모습을 우리는 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거룩한 성전 율법사들의 가르침이 끓어지지안고 계속 강론하며 그것에 의한 추종의 세력이 왕성한 이스라엘 성전 꼭대기에 마귀는 자기집처럼 왕래하고 있는것이 었습니다 누구하나 이 성전 꼭대기에 마귀가 왔다갔다 하는지 알수있겠습니까 그들의 믿음에 마귀가 얼마나 깊숙히 차지하고 있었는지 알고나 있겠습니까 그들을 지배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게하는 것들을 알수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이런 성전을 헐라 나는 성전을 사흘만에 세우리라 하신것입니다 이 말씀은 사탄의 권세 사망의 권세를 이길수있는성전을 세우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우리는 그토록 아름답고 견고한 성전에 마귀가 역사하고 있다면 어디 믿을 사람이 누가 있을것이며 만약에 그렇게 말한자가 있다면 엄청난 처벌을 받게될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이 방면을 한번 생각해 봅직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말씀중심의 신앙이면 모든 문제가 성경안에서 다 해결될줄 앎니다 복음서의 저자들은 이 말씀을 인용하면서 우리에게 기록하셨습니다 시편 91편11-2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 고 하신것입니다 이 말씀의 인용과 마귀가 행하는 이 일들을 우리가 살펴볼때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와 내주와 축복하심이 끝이없는줄 믿습니다 다시 이제 우리는 주님의 당하시는 고난에 동참하면서,그의 영광도 함께하기를 우리는 소원했던 것입니다 본문말씀으로 통하여 우리는 우리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이리저리 끌려 다니시는것을 본것보다 우리는 마귀의 역사도 알지 못하고 자기들의 잘믿는것만 자랑하는 유대인의 모습을 우리는 그냥볼수 없게된것입니다 우리주님은 마귀의 실력에 놀아나지 않고 그 권세와 능력앞에도 주 너의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겨라 하신것입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라고 하신것입니다 우리주님은 마귀에게 주 너의 하나님이라 하신것입니다 주님을 배반한 사탄인 마귀에게 주님은 하나님은 너의 하나님이라 말씀하신것입니다 우리는 성도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도와줄수없고 다만 그는 우리의 유혹자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유혹할뿐이지 우리를 도와줄수없습니다, 우리는 성도이니까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그 어떤 능력과 권세보다 우리는 주 하나님을 섬기고 그에게만 경배하는 위대한 교훈을 우리가 얻게된줄 믿습니다 본문말씀으로 통하여 우리는 어떤 물질과 명예와 권력을 다 준다해도 우리는 주님을 섬기고 그만 경배할수있는 위대한 신앙만이 우리에게는 필요할줄 앎니다 주님의 위대한 믿음앞에 마귀가 떠나가듯이, 우리의 생활과 믿음에 악한 마귀의 세력은 한길로 왔다 일곱길로 도망가는 위대한 역사가 나타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율법의 가로막혀 자신의 눈을 어둡게하는 거짖된것에서, 참된 진리이신 우리주 예수님을 믿어 살아 갑시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요8장32절). 끝으로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갈것입니다 우리의 길은 오직한길 입니다 이 길은 오직 주님과 동행하는길입니다 이 길에 주님 우리를 축복하실줄 확신합니다, 감사함니다. 세상에 살아가는 우리는 좀더 남보다 편안해지고 싶어한다 어떻게하면 남들보다 더 편안하게 더 행복하게 살것인가 추구하는것입니다 그것은 나와 우리라는 가까운 사람들 끼리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나를 중심해서 평화를얻고 기쁨을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우리 예수님의 하시는 일을 볼때 나와 관계있는 일을 하시고 계신것입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그의 피로 우리를 사셨습니다, 값을 치루고 사신것입니다 마귀에게 팔린 우리를 주님은 당신의 피로 값을 치루시고 우리를 찾으신것입니다 죄의 사슬에서 놓임받게된것입니다 곧 우리는 죄와 상관이 없게된것입니다 죄와 상관이 없다란 말씀은 마귀와 상관이 없어진것입니다 주님의 흘리신 보배피가 우리의 참된 증거입니다 구원의 표징인것입니다 곧 성령님의 인치심입니다 곧 주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어진것입니다 그의 백성으로 영원토록 살아가게하신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옥으로 가는 죄를 지을수가 없게하신것입니다 그의 구속의 사역은 끝이난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땅에 살면서 마귀에게 끓임없이 도전을 받는것을 우리는 알수있습니다 못먹는 밥에 재를 뿌리는식입니다 우리는 천사가 흠모할만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이것을 알고있는 마귀는 끝없이 우리를 괴롭게 하고자 나타나서 온갖 유혹을 자행하는것입니다 또한 어떤이는 그들의 유혹을 더욱 부추기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계시는데 마귀는 없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그 마귀를 무시하라는 식입니다,무시하면 있는것이 없어지는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마귀라는 말만 끄집어내어도 이상한 사람이라 말하기도 한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믿음이 약해서 그렇게 된것이라 하고 있습니다 잘 모를 일이지만 그렇게 말할수도 있겠다고 하지만 그러면 얼마나 알고 하는 말인가 보면 꼭 그렇치도 못한자들인것입니다 그들의 것을 주장하기위한 주장일 뿐입니다 주장하기위한 주장은 아무 쓸데없을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주님이 당하시고 계시는 장면을 목격하면서도 그런 말을 하고 있다니 정말 자기들의 목적을 이루기위한 수단이라 아니할수없는것입니다 결국 율법적인 믿음을 나타내려는 과정에 불과한것입니다 율법은 자신의 자랑에만 치중되는것이지 은혜와는상관이 없기도 합니다 은혜는 지금 고난당하고 계시는 그분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은 율법을 완성시키시는 분인, 우리 예수님 이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육체로 의롭다할 자가 없다고 하신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성도가 마귀의 역사에 놀아나면서도 그들은 마귀의 정체를 알려하지도 않을 뿐더러 , 그 자체를 무시하는 경향이 너무도 많은것을 우리는 알수있습니다 자 생각해 봅시다 마귀가 있습니까, 애써 무시하는것 보다 인정하는것이 여러분은 더 편할것입니다 나는 마귀를 무시하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이 장면을 더욱 강조하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이 마귀가 없다면 우리는 아무할일도 없어질것입니다 마치 이땅에 병이 없다면 그 많은 의사나 병원은 문을 다 닫아야 할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현대의 의학으로는 지금도 도저히 고치지 못하는 병이 얼마나 많습니까 지금 이 시간도 병을 고치지못해 병원에 드러누워있는 환자가 얼마나 많은지요 그 병원에서 기도하는 많은 사람들을 우리는 보고있습니다 그 병의 원인조차 모르고 죽어가고 있기 때문에 더욱 끝없는 연구와 노력이 필요했던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주위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사건앞에 우리는 굴복하지 않으면 않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요 이 모두가 우리를 죽이고 멸망시키는 마귀와 사탄의 짖거리임을 우리는 알아야 할것입니다 이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도 할수있거든 무슨 말이냐 믿는자는 능치못함이 없느니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상기하며 우리주님의 역사와 함께 악한 사탄을 물리칠수있기를 소원합니다 성령님에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을 다시 봅시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말라 하신것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시험하는자입니다 주님은 명령하실때 마귀는 그 시험을 다한후에 누가복음 저자는 얼마동안 떠났다라고 기록했습니다 이 시간이 얼마인줄 모르지만 우리가 알수있음은 이론과 실제의 시험을 나누어 알수있는것입니다 우리가 학교성적이 좋다고 꼭 사회 우등생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아는것과 믿는것이 하나가 되어야 할것입니다 우리의 사회를 교과서식으로 살아가는 자도 분명 있을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을 꼭 교과서 대로 하지않아야 될 분야가 너무도 많다는것을 인식해서 잘 적응해야 할것입니다 이론의 시험을 끝낸 마귀는 삶의 현장에서 우리에게 어떻게 도전할것인가가 더욱 중요한 분야인것입니다 이론적인 시험을 마치신 우리 주님은 이제 성령님의 권능으로 일을 하시기 시작하신것입니다 그의 소문은 온 사방에 퍼지게 된것입니다 그의 가르침은 바리새인과 서기관 같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의 가르침은 누구에게 해당하는 진리를 증거하신것입니다 그의 증거는 성령님의 권능이 나타나기 때문에 권세있는 가르침인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을 볼때 그의 권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소원해서 세운것이었습니다 사람들에 의해 세운 왕은 하나님의 버림받는 상황이 올때 그 백성은 엄청난 곤경에 빠지게 된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삶은 마귀의 지배를 받아 과거에 누렸던 그 능력을 회복하려고 하다가 더욱 파탄에 이르게 된것입니다 모든권세는 위로부터 즉 하나님으로 부터 나오는 그 권력 곧 성령님의 권능으로 나타나는 역사라야 하나님께서 계속적인 공급의 역사가 있을줄 믿습니다 주님은 이사야 61장1-2절을 읽으시면서 말씀을 강론하셨습니다 주의 성령님이 내게 임하셨다 라고 시작의 글을 읽으셨습니다 성령님에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우리 예수님께서 이제는 성령님의 권능으로 일을 하시고 계십니다 그의 증거하시는 말씀도 자신에 대한 참된 증거를 하시고 계시는것입니다 이토록 확신에 찬 증거는 성령님의 절대적인 도움의 역사만이 이룰수있는 일입니다 우리 주님은 분명한 목적을 기록된 성경으로 통하여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주님은 그의 하시는 일을 말씀하십니다 곧 성령님의 권능으로 하실수있는 일입니다
첫째는 가난한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성령님의 기름을 부으셨다 하셨습니다
둘째는 주님을 보내셔서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시고, 소경의 어두운 눈을 열어 복음을 보게 하시고, 눌린자에게 자유를 주시려 한것이며 , 주님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려 한것이라 말씀하신것을 말씀하신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성령님에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고 고통을 받으셨던 이 모든것이 이 일을 하시기위해 고난도 함께 받으신 것인줄 우리는 앎니다 사도바울은 그래서 현재의 고난은 장차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수없다고 전하신것입니다 그는 고난과 함께받는 영광의 의미를 알아 그의 삶이 오직 주님께 영광을 선언하신것입니다 우리가 이땅에 살면서 고난을 받는다면 쓸데없이 받는 고난이 아니라 성령님에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예수님같이, 사도 바울같이 주님의 은혜가 헛되지 않을줄 확신하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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