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다 (눅4:14-30)

본문

누가복음 4장에는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마귀에게 유혹을 받으신 사건에 이어서 예수님께서 나사렛 회당에 들어가신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에만 의존하면 이 두 사건이 연결된 것으로 생각하게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두 사건은 연결된 것이 아니고 그 사이에 요한복음 1:35-4:44의 초기 갈릴리 사역과 유대 사역(제자들을 택하신 사건, 가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사건, 첫번째 유월절을 맞아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성전을 정결케 한 사건 등)이 삽입되어야 합니다. 회당 안의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께 바라는 것이 “우리의 들은 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23절)는 것이었다는 점에서도 이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지방에 돌아오신 후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셨으며 마침내 고향 나사렛에 이르셨습니다.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이 몇 가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예배 참석이 규례가 되어야 합니다(16절). 구약성경에는 회당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여러 가지 정황에 근거하여 바벨론 포로기에 그 원초적 형태가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들은 더 이상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해진 절기가 되면 외로움과 좌절을 느끼며, 제사를 드리는 대신 자연스럽게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한 곳에 모일 수 있는 장소가 지역적으로 생겼음직합니다. 회당에서 성경 말씀을 규칙적으로 읽게 된 것은 에스라의 공로로 여겨집니다. 그는 본국으로 귀환한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에 모으고 율법의 말씀을 낭독하고 해석하여 그 뜻을 깨닫게 했습니다(느8:1-8). 회당은 최초로 예루살렘에 성전과 별도로 세워진 이래 유대인들이 정착하는 곳이면 어디에나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성전에서 섬기는 제사장은 제사 의식 몇 가지만을 취급하는 반면 회당의 랍비는 지역 유대인들의 사회 생활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도처에 회당이 있었습니다. 탈무드에 의하면 예루살렘에만 480여 군데 있었다고 합니다. 회당에서는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과 안식일에 율법을 읽었습니다. 안식일을 위해서는 모세 모경을 각각 7과로 이루어진 50부분으로 나누어서 매주 순서를 정해서 읽었기 때문에 1년에 율법 전체를 읽을 수 있게 했습니다. 각 과를 읽는 사이 사이에 강론자가 짧은 멧세지를 전했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고향 나사렛 회당에 회당 예배를 위하여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본문은 이것이 그분의 규례(습관)이었다고 밝혀 주고 있습니다. 그분은 다른 유대인들이 그랬듯이 어렸을 때부터 회당에 규칙적으로 참석하셨습니다. 그리고 공생애를 시작하신 후에도 규칙적으로 참석하셨습니다. 그 당시 종교계가 부패했고 타락했지만 그것을 빌미로 회당 예배를 폐하지 않으셨습니다. 사실상 교회 예배의 모체가 된 것도 이 회당 예배이었습니다. 예수님도 회당의 예배 틀 안에서 말씀을 선포하셨고 사도들도 초기에는 유대인 회당에서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오늘날 어떤 이들은 교회의 타락을 지적하며 교회 출석을 거부하며 예배를 드리지 않고 있는데 이는 옳지 않은 행동입니다. 이 세상에 완전 무결한 교회는 없습니다. 설령 있어서 발견한다 할지라도 허물 많은 우리는 그 완전한 교회의 회원이 되기에 부적합할 것입니다.
둘째, 성경 말씀에 대하여 존경을 표시해야 합니다(16절). 예수님은 이미 사람들에게 랍비의 명성을 얻고 계셨기 때문에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실 수 있는 기회를 쉽게 얻으실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성경을 읽으려고 하실 때 일어서셨습니다. 이것은 그 당시 규례였는데, 그 근본 목적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존경심을 표시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성경 말씀을 봉독(奉讀)하는 자가 일어서서 읽고 듣는 자가 일어서서 듣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존경을 표시하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에(느8:5)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할 때에 대통령이 성경 위에 손을 얹고 하며, 혼인 서약을 할 때에도 그렇게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존경을 표시하며 하나님 말씀 대로 행하겠다는 표시입니다. 행여나 성경 말씀이 장식품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셋째, 말씀을 취사선택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아야 합니다 (28절).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이사야 61:1-2절 말씀을 읽으시며 강론하시는 것을 은혜롭게 받았습니다(22절). 그 말씀은 자유, 치유, 은혜라는 단어로만 보더라도 듣기에 좋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태도는 그들의 불신을 책망하는 말씀으로 바뀌자 돌변했습니다. 그들은 분이 가득해서 예수님을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재앙으로 극심한 가뭄이 3년 반 동안 들었을 때,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사르밧) 마을의 한 과부의 필요를 채워주었던 것은 열왕기상서 17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엘리사 선지자가 수리아(아람) 사람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을 고쳐준 것은 열왕기하서 5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말씀들은 그들이 자랑하고 존경을 표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그들을 책망하자 그들의 마음이 완악해지고 자기 합리화를 하며 설교자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주님께서는 그 동네에서 큰 일을 행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책망을 달게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 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보냐”(요일3:20)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고리와 정금 장식이니라”(잠25:12)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903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