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성령님님 (눅24:49)
본문
이 달 말이 되면 현 대통령 임기가 끝나고 새 대통령이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예수님의 지상에서의 임기가 끝나게 됨에 따라 그것을 뒤이은 분이 성령님이시다. 찬송가 중에 “나 어느 날 꿈속을 헤메며 어느 바닷가 거닐 때” 우리가 사복음서를 통하여 예수님의 행적을 읽다 보면 그것이 너무 은혜스러워 그 옛날 성육신 하신 예수님과 함께 땅 위를 거닐며 그분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고 그분께서 행하시는 이적들을 목격한 처음 제자들을 부러워하곤 합니다. 이 생생한 체험의 부족을 조금이라도 메워보려고 우리는 그때를 머리 속으로 상상해 보기도 하고 꿈에서나 찾아나서려고 합니다. 또한 성지순례 여행을 떠나기도 합니다. 2천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그 옛날의 자취를 조금이라도 더듬어 보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처음 제자들을 그렇게까지 부러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멧세지를 듣다보면 그 이유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성령님의 부어주심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구절에 대한 좀더 자세한 설명이 사도행전 1장 3-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4절). 5절은 그것이 “몇 날이 못되어” 제자들이 받게 될 성령님의 침례임을 밝혀 줍니다. 비록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사건에 성령님 침례라는 단어가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그 날에 성령님 침례가 일어났다고 우리는 단언할 수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오순절에 설교하면서 구약성경의 요엘서 2장 28-32절의 예언을 인용했습니다(행2:17-21). 거기에는 말세에 성령님을 부어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외에도 이사야서 32장 15절과 44장 3절에 동일한 약속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필경은 위에서부터 성신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삼림으로 여기게 되리라”(사32:15) “대저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신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리리니”(사44:3) 예수님께서도 성령님의 부어주심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16:7) 그래서 에베소서 1장 13절에는 “약속의 성령님”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님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엡1:13)
둘째, 성령님은 그리스도인 안에 내주하십니다. 오순절에 이루어진 것은 성령님 침례만이 아니었습니다. 성령님의 여러 다른 사역들이 동시에 나타났는데 그 중 하나가 성령님의 내주(內住)하심입니다. 이와 관련된 말씀을 요한복음 14장 16-20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에 대해서 말씀하시며 그분을 “또 다른 보혜사”라고 소개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14:16-20) 20절에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있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분께서 우리 안에 계실 수 있겠습니까 또한 세상은 그분을 다시 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우리가 그분께서 우리 안에 계신 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지금 성령님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 성령님을 “또 다른 보혜사”라고 소개하셨습니다. “또 다른”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같은 종류로서 다른 것”을 뜻합니다. 성령님은 예수님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두 분이 다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보혜사”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라클레토스”는 “도움을 주도록 곁으로 부름받은 자”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영어성경에는 위로하는 자라는 의미의 comforter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요한일서 2장 1절에서는 변호하기 위하여 대신 나서주는 변호사라는 의미에서 “대언자(advocate)”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분께서 내주하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계시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예언대로 부어지셨습니다. 그 결과 그리스도인 안에 그분께서 내주하시게 되었습니다. 성령님의 부어주심은 예수님의 부활 승천 이후에만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님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고로 성령님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요7:38-39) “히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님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주셨느니라”(행2:33)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16:7)
그러므로 이것은 그 사건 이전에는 결코 있지 않았던 일입니다. 이 말은 성령님께서 이때부터 비로소 활동하시게 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구약시대에도 그분께서 활동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때의 사역은 앞으로 나타날 사역과 현저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어떤 과제를 이룰 목적으로 성령님께서 일부 특정한 사람들에게 임하셨다가 떠나셨습니다. 사울 왕에게 성령님이 임하셨다가 떠나신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삼상16:14; 18:12). 또 다윗은 자기의 죄를 회개하면서 하나님께 성령님을 거두시지 말아 달라고 간구했습니다(시51:11).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하나님께서 자기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지니라”(신18:15) 그는 모세보다 훨씬 뛰어난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와 같은 보혜사”라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듯이 성령님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성령님이 오시는 것이 제자들에게 더 유익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한된 3년 반 정도의 기간 동안만 제자들과 함께 계셨지만 성령님은 영원히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육신 하신 예수님은 공간의 제약을 받아 한 순간 한 장소에 국한되셨지만 성령님은 장소에 국한됨 없이 전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셨지만 그들의 한계 때문에 그들이 충분히 깨닫게 하지 못하셨지만 성령님은 그들에게 내주하셔서 그들의 한계를 무너뜨리고 깨닫게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요16:12). 그렇기 때문에 더 좋은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이 회개하고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구원받음과 동시에 성령님께서 내주하시게 됩니다(행19:2; 갈3:2; 엡1:13).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 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님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하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님 부어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님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침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행10:43-47)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님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행11:15,17)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님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님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행19:2)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님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갈3:2)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님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엡1:13) 성령님은 구약시대와 달리 그리스도인과 영원토록 함께 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인 안에 내주하시며 결코 떠나지 않습니다.
셋째, 성령님은 그리스도인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성령님이 임하게 되면 제자들이 능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대체 어떤 능력을 의미하신 것일까요 이 궁금증은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알면 자연스럽게 해소됩니다.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십니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님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요15:26) 따라서 성령님은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직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명하셨습니다(행1:8). 오순절 이후 제자들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이 이 능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님이시니라”(마10:18-20) 성령님이 임하시면 성경 말씀을 깨닫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님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14:26)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님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16:12-13) 성령님이 임하시면 우리 몸은 거룩한 성전이 됩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님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9-20) 죄를 책망하시어 성결한 생활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16:7-8) 성령님이 임하시면 성령님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을 받게 됩니다. “오직 성령님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 이러한 능력은 그리스도인이 성령님 충만했을 때 강력하게 나타납니다. 처음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보다 성령님과 함께 하면서 더 큰 일을 이루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성령님의 부어주심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구절에 대한 좀더 자세한 설명이 사도행전 1장 3-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4절). 5절은 그것이 “몇 날이 못되어” 제자들이 받게 될 성령님의 침례임을 밝혀 줍니다. 비록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사건에 성령님 침례라는 단어가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그 날에 성령님 침례가 일어났다고 우리는 단언할 수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오순절에 설교하면서 구약성경의 요엘서 2장 28-32절의 예언을 인용했습니다(행2:17-21). 거기에는 말세에 성령님을 부어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외에도 이사야서 32장 15절과 44장 3절에 동일한 약속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필경은 위에서부터 성신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삼림으로 여기게 되리라”(사32:15) “대저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신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리리니”(사44:3) 예수님께서도 성령님의 부어주심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16:7) 그래서 에베소서 1장 13절에는 “약속의 성령님”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님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엡1:13)
둘째, 성령님은 그리스도인 안에 내주하십니다. 오순절에 이루어진 것은 성령님 침례만이 아니었습니다. 성령님의 여러 다른 사역들이 동시에 나타났는데 그 중 하나가 성령님의 내주(內住)하심입니다. 이와 관련된 말씀을 요한복음 14장 16-20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에 대해서 말씀하시며 그분을 “또 다른 보혜사”라고 소개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14:16-20) 20절에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있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분께서 우리 안에 계실 수 있겠습니까 또한 세상은 그분을 다시 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우리가 그분께서 우리 안에 계신 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지금 성령님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 성령님을 “또 다른 보혜사”라고 소개하셨습니다. “또 다른”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같은 종류로서 다른 것”을 뜻합니다. 성령님은 예수님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두 분이 다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보혜사”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라클레토스”는 “도움을 주도록 곁으로 부름받은 자”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영어성경에는 위로하는 자라는 의미의 comforter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요한일서 2장 1절에서는 변호하기 위하여 대신 나서주는 변호사라는 의미에서 “대언자(advocate)”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분께서 내주하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계시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예언대로 부어지셨습니다. 그 결과 그리스도인 안에 그분께서 내주하시게 되었습니다. 성령님의 부어주심은 예수님의 부활 승천 이후에만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님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고로 성령님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요7:38-39) “히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님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주셨느니라”(행2:33)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16:7)
그러므로 이것은 그 사건 이전에는 결코 있지 않았던 일입니다. 이 말은 성령님께서 이때부터 비로소 활동하시게 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구약시대에도 그분께서 활동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때의 사역은 앞으로 나타날 사역과 현저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어떤 과제를 이룰 목적으로 성령님께서 일부 특정한 사람들에게 임하셨다가 떠나셨습니다. 사울 왕에게 성령님이 임하셨다가 떠나신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삼상16:14; 18:12). 또 다윗은 자기의 죄를 회개하면서 하나님께 성령님을 거두시지 말아 달라고 간구했습니다(시51:11).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하나님께서 자기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지니라”(신18:15) 그는 모세보다 훨씬 뛰어난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와 같은 보혜사”라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듯이 성령님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성령님이 오시는 것이 제자들에게 더 유익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한된 3년 반 정도의 기간 동안만 제자들과 함께 계셨지만 성령님은 영원히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육신 하신 예수님은 공간의 제약을 받아 한 순간 한 장소에 국한되셨지만 성령님은 장소에 국한됨 없이 전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셨지만 그들의 한계 때문에 그들이 충분히 깨닫게 하지 못하셨지만 성령님은 그들에게 내주하셔서 그들의 한계를 무너뜨리고 깨닫게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요16:12). 그렇기 때문에 더 좋은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이 회개하고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구원받음과 동시에 성령님께서 내주하시게 됩니다(행19:2; 갈3:2; 엡1:13).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 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님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하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님 부어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님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침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행10:43-47)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님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행11:15,17)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님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님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행19:2)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님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갈3:2)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님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엡1:13) 성령님은 구약시대와 달리 그리스도인과 영원토록 함께 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인 안에 내주하시며 결코 떠나지 않습니다.
셋째, 성령님은 그리스도인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성령님이 임하게 되면 제자들이 능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대체 어떤 능력을 의미하신 것일까요 이 궁금증은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알면 자연스럽게 해소됩니다.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십니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님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요15:26) 따라서 성령님은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직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명하셨습니다(행1:8). 오순절 이후 제자들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이 이 능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님이시니라”(마10:18-20) 성령님이 임하시면 성경 말씀을 깨닫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님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14:26)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님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16:12-13) 성령님이 임하시면 우리 몸은 거룩한 성전이 됩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님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9-20) 죄를 책망하시어 성결한 생활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16:7-8) 성령님이 임하시면 성령님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을 받게 됩니다. “오직 성령님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 이러한 능력은 그리스도인이 성령님 충만했을 때 강력하게 나타납니다. 처음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보다 성령님과 함께 하면서 더 큰 일을 이루었습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