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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영광, 사람들 중엔 평화 (눅2:8-14)

본문

오늘 우리는 또다시 성탄의 아침을 맞았습니다. 우리는 이 성탄의 아침을 맞아 예수님의 탄생이 가져온 구원의 기쁜 소식을 듣기를 원합니다. 그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무슨 의미를 담은 기쁜 소식입니까
첫째로 가난한 자들. 죄인들을 위한 구원의 큰 기쁜 소식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시던 밤, 하늘의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눅2: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눅2:11)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천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온 백성에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 그 큰 구원의 기쁜 소식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바로 “너희들을 위하여 구주가 나셨다”는 소식입니다.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구주의 나심은 바로 이들 목동들과도 관계된 탄생이었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다.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그리스도의 탄생이 바로 자기들과 관계있다는 소식은 이들을 매우 흥분시켰습니다.
왜냐하면 이 소식은 목동들에겐 의외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상상 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여러분과도 관계있는 탄생입니까 어떤이는 “관계 있구말구요” 자신있게 대답합니다. “성탄절은 바로 장사하는 나와 관계가 깊습니다. 왜냐고요 대목이니까!” 그러나 성탄절은 장사꾼의 대목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탄절은 죄 많고 가난한 사람과 관계있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죄인 임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자에게 성탄은 의미있고 그런 사람과 관계된 날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천사의 기쁜 소식을 들은 목자들은 죄인 취급을 받은 사람들 중 하나였습니다. 당시의 사회에서 냉대받으며 천한 사람들로 취급 당했던 사람들 이었습니다. 이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 의하면 지옥을 차지할 자들이며 지옥의 땔감으로 쓰여진다고 정죄 받은 사람들 이었습니다. 이렇게 천대와 조롱받던 사람들이 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들이 상상조차 못했던 말이 그들의 귓전을 울렸습니다.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이들에게 구원의 큰 기쁜 소식이 온 것입니다. 이런 소외된자, 가난하고 멸시받는 자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오셨다는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목자들은 메시야는 자기들 같은 천민과는 무관한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 그리고 특별한 의를 행하는 랍비들을 위하여 오실 줄만 알았습니다. 그러니 천사의 소식은 너무나 놀라운 소식이었습니다. 그리스도가 바로 자기들을 위해 오셨다는 소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천대받고 가난한 자요,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인 자기들을 위해 그리스도가 오셨다니 말입니다. 그래서 이 소식은 이들 목자들에겐 더욱 기쁘고 가슴 출렁이는 소식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진실임을 증명하기 위해 천사는 한 표적을 제시했습니다. 그 표적은 바로 말구유에 누운 아기 예수 였습니다. “(눅2: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말들의 먹이통에 누워 계셨습니다. 변변히 눌 자리 하나 없이 이 땅의 가난한 가정에 태어나셨습니다. 그래서 가난하고 소외된 백성, 힘없고 가엾은 백성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아들을 말구유에 눕히심으로써 이 사실을 증거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말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를 볼 때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 죄인들을 생각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구유에 누우신 예수님을 그 표적으로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눅2:11)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눅2: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스스로 뽐내는 자 교만한 자를 위해 오시지 않았습니다. 상업주의 물결 속에 성탄절 대목을 꿈꾸는 자들을 위해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산타 클로스의 큼직한 선물 꾸러미를 기다리는 자들을 위해 오시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소외되고 찾는 이 없는, 가난하고 천대받는 사람들을 위해 오셨습니다. 이 시대의 풍요 속에서 소외되고 냉대 받는 사람들의 구주로 오셨습니다. 자기 죄를 시인하며 겸손히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자들을 위해 오셨습니다. 아기 예수는 말구유에 누워서 이 사실을 힘주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임한 구원의 기쁜 소식입니다.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하나님께 영광된 기쁜 소식”입니다. 천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이렇게 찬양했습니다(눅2:14). (눅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천사들은 그리스도의 탄생을 “하나님께 영광”이라 노래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어째서 예수님의 탄생이 하나님께 영광입니까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하나님게 영광인 것은 “하나님의 신실함을 드러내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 구원의 메시야를 약속해 오셨습니다. 인간의 타락이 더욱 극심해 질 수록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은 더욱 굳건해 졌습니다. 인간의 죄가 더 클 수록 하나님의 언약은 더욱 그 결속은 더 해 간 것입니다 인류의 시조가 하나님께 범죄 했습니다. 인간은 타락하여 하나님의 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도 하나님께 패역했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겼습니다.그래서 바벨론 포로가 되었습니다. 이방의 노예들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타락과 죄는 사람들을 죄의 노예, 사단의 노예가 되게 하였습니다. 미움과 시기가 살인을 불렀습니다. 나라와 나라의 전쟁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인간의 타락은 이 세상을 슬픔과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탁락한 인간들에게 구원의 언약을 주셨습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겔39:25)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이제 내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열심을 내어 야곱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하며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긍휼을 베풀지라 하나님께서는 여인의 후손을 통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죄의 종 사단의 노예가 된 죄인들을 구하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대로 구세주를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처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여인의 후손으로 오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신실히 자기의 약속을 지키심으로써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 자기의 아들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하나님께 영광된 일입니다.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이유는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을 드러낸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시고 계시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바로 자기의 아들을 주신 일입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사랑하심으로써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구약 호세아 선지자의 글은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잘 드러냅니다. 호세아 선지자 당시엔 이스라엘은 경제적 부국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경제력이 풍부해지자 하나님을 등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더욱 패역해 갔습니다. 이들이 경제적으로 부요해 지자 하나님을 멀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들은 자기들을 부요하게 하신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데 익숙해 졌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은 식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호3: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떡을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저희를 사랑하나니 하나님께서는 우상을 섬기며 탕녀와 같이 된 이스라엘을 그래도 사랑하셨습니다. 이들은 영적 간음을 자행하였습니다. 탕녀같이 우상을 섬기며 자기의 풍요만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열정정인 사랑은 그칠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말씀합니다. “(호3:1 하)너는 또 가서 타인에게 연애를 받아 음부된 그 여인을 사랑하라”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을 다시 사랑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일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호3: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떡을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저희를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에게 연애를 받아 음부된 그 여인을 사랑하라 하시기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탕녀가 된 이스라엘을 신실히 사랑하시어 결혼의 언약을 지키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사랑의 하나님께서 “때가 차매” 자기의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세상의 타락이 더해 갔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변경되지 않았습니다. 불변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메시야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증명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났습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만 천하에 명백히 드러내신 것입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이 타락하고 서로 죽이고 전쟁을 일삼는 세상이지만, 하나님은 결코 이 세상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이 구원얻는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그것이 에수 그리스도의 탄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영광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통해 자기의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이 사랑을 통해 영광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하나님께 영광된 기쁜 소식입니다. 세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기쁜 소식인 것은, “이 땅에 평화가 올 것”이란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천사들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눅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오늘날 수 많은 사람들이 평화를 갈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세계 여러 곳에서는 전쟁의 소용돌이가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오신지
2,000년이 되었어도 이 땅엔 진정한 평화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사람들은 진정으로 평화를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계의 무기를 제조 판매하는 사람들은 일부러 긴장을 고조시키려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두려움을 미끼로 수입을 올립니다. 또한 국가와 국가가 평화를 위해 협상을 한다고 해도 모두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 협상 테이블에 나올 뿐입니다. 자기 나라의 이익이 모든 협상의 가장 중요한 관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인간의 노력으로는 결코 평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인간은 본래적으로 죄와 악이 가득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기심과 거짓, 속임으로 가득한 것이 바로 죄인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평화는 초자연적 힘으로 올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개입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평화롭게 하실 때 그때에야 참된 평화가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미 이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그것의 시작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입니다. 그래서 천사들이 노래합니다. (눅2:13)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눅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예수님은 이 세상에 평화의 근원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 평화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이 평화를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가운데” 주셨습니다. 오직 이 평화는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가운데” 있도록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평화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예수님이 주신 평화는 어떤 평화입니까 예수님이 주신 평화는 이 세상이 말하는 전쟁이 없는 평온함을 뜻하고 있지 않습니다. 단지 전쟁이 없는, 전쟁의 반대 말로서의 평화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천사들이 노래한 평화는 이 세상의 자연인들이 말하는 평화가 아닙니다.대포를 쏘고 미사일을 날리는 그런 전쟁이 없고, 싸움이 없는 평화를 말함이 아닙니다. 그것이 진정한 평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평화는 죄가 없는 곳에 임하는 평화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평화는 영적인 평화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진정한 평화를 이루는 유일한 길입니다.
왜냐하면 죄가 모든 불화를 가져오는 원흉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 어디에도 죄 없는 곳이 없습니다. 심지어 가장 거룩해야 할 교회에도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세상엔 죄 없는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된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죄 많은 세상 속에서도 참된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평화는 장소가 아닌 관계의 설정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누가 진정한 화평, 평화를 누립니까 바로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입니다. 이 사람 가운데에 평화가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있는 평화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평화는 장소가 아닌 관계의 문제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이란 과연 누구입니까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롬14:17-18)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님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롬14:18)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엡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섬기는 자가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구원에로 예정된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사람들이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입니다. 이런 사람들 가운덴 화평이 있습니다. 평화가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자동적으로 평화를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세상에 죄와 사망, 미움과 싸움이 있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또한 교회에 다닌다고 다 평화를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당에 나온다고 다 화평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구속으로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때에야 비로서 화평이 임합니다. 이런 사람들 가운데 평화가 임합니다. 죄를 회개치 않고 죄악 가운데 그대로 있어서는 결코 화평을 맛볼 수 없습니다. 화평과 평화는 오직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평화가 임하려면 교회에 죄가 없어야 합니다. 자기들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여야 화평이 있습니다. 진정한 평화는 죄가 없는 곳, 죄가 용서받은 곳에 임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세상에 평화가 없음은 죄의 결과 입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지 못한 사람들이 다수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평화는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관계의 설정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평화는 바로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는 관계 속에 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교만하고 광패합니다. 하나님과의 괸계를 생각지 않고 삽니다. 자기 죄를 회개치 않습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화평이 없습니다. 참된 평화를 누리지 못합니다. 성탄절이라고 흥청거리기는 해도, 하나님과의 관계 설정을 마음에 두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며 자기 죄와 악을 회개하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간음과 추태, 술취한 취객의 비틀거림이 더욱 이 세속 도시를 어둡게 하며 이 땅을 더욱 황폐케 만들어 가고 있을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정한 평화는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가운데” 임합니다. 바로 자기 죄를 인정하고 자백하는 사람들 가운데 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믿는 사람들 가운데 임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천군 천사는 노래합니다.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라고.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이런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가운데 평화를 준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성탄의 기쁜 날을 맞았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의의를 다시금 생각하며 가난한 이웃, 소외된 이웃의 친구가 되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그 크신 사랑을 전달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답게 평화와 화평의 일꾼이 되는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축 도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민6:24-26).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한량없는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크고 영원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교통 위로 충만하신 역사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뻐하며,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그 크신 사랑을 깨달아 이 땅 위에 진정한 평화가 오기를 소원하여, 자기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용서를 믿음으로 받아들여 진정한 평화의 일꾼이 되기를 다짐하는,모든 교회와 사랑하는 모든 성도들의 심령들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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