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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사함에 이르는 회개 (눅24:4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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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문제는 아주 중요합니다. 단순히 깨달아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단순히 믿어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마귀 사단은 이 문제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혼란케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회개와 관련하여 사단의 역사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실제로 회개하지 않았으면서도 회개한 것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사실상 회개했으면서도 회개하지 않은 사람처럼 항상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만일 우는 어린아이를 달래고 있다면 나는 그를 달래어 잠을 재우거나 노래를 불러주어 좀더 기분 좋게 해줄 것이다. 그러나 어린아이가 불구덩이에 빠졌다면 그 부모들은 노래를 불러 주거나 달래거나 하지 않고 다른 조치를 취할 것이다.
첫째, 회개는 복음의 핵심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되어야 할 것을 말씀하시며 그들이 증인으로서 이것을 전파해야 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이 말씀을 충실히 좇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역 초기에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서 61장 1절을 읽으시면서 자신의 사역이 복음을 전하는 것임을 선포하셨습니다(눅4:18-19). 그분께서는 또한 자신이 이 땅에 온 것이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5:31-32) 우리는 이로써 회개가 복음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혹자는 믿음을 지나치게 강조하다가 회개를 등한히하는데 회개가 수반되지 않는 믿음은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행17:30)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9) 바울 사도가 자신의 사역을 사도행전 20장 21절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저희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 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너희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너희도 아는 바니.내가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행20:18,21)
둘째, 회개는 죄 사함을 얻기 위하여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회개가 죄 사함을 위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이 진리는 제한적이나마 이 세상에서 두루 통용되고 있습니다. 자식이 잘못한 것을 뉘우치면 부모는 용서해 줍니다. 죄를 지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경범죄인 경우 뉘우침이 있으면 법은 최대한 관용을 베풀고 사면해 줍니다. 남파 간첩 중에서도 사면받은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그렇지 못하고 오랜 세월 동안 복역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소위 미전향 장기수라고 합니다. 이유는 그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뉘우치지 않고 자신들의 잘못된 사상을 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죄인입니다. 인간 사회에서도 정부의 권력은 막강합니다. 범법자들을 엄하게 다스릴 수 있습니다. 하물며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권세는 어떠하겠습니까 그분께서는 죄인을 심판하시며 죄를 지은 사람을 모두 지옥 불못에 던져 넣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죄를 회개하는 사람은 용서해 주십니다(행2:38; 눅13:5). 모든 사람들은 타고난 죄인이며 죄악된 행동을 하는 죄인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시지만 사람들은 그분을 아무 거리낌 없이 거역합니다. 그분께 복종하기를 거부합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마치 하나님께서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니”(행2:38) “너희도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13:5) 참된 회개를 했다면 그분의 용서는 완전한 것이므로 회개한 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그로 인해 심판받지 않을까 하며 근심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실 때는 문서상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완전히 기억에서 제거하시는 것이다. 없애는 것이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시103:12)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사38:17)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사43:25)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사44:22)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렘31:34)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1:9)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미7:19)
셋째, 회개는 그리스도의 고난의 의미를 깨닫는 중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회개는 단순히 자신의 죄를 슬퍼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가 죄에 대한 슬픔을 포함하는 것은 사실입니다(고후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고후7:10) 그러나 이것과 함께 마음이 하나님께로 완전히 돌아서야 합니다. 자연히 하나님의 뜻을 좇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3장 19절 말씀을 찾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행3:19) 여기에서 “돌이켜”라는 단어가 중요합니다. 회개는 했지만 과거의 죄악된 행위와 습관으로부터 돌이킴이 없다면 진정한 회개라 할 수 없습니다. 침례 요한은 “회개하라”고만 외친 것이 아니라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도 외쳤습니다(마3:8). 열매로 드러나고 열매로 이어지는 회개가 진정한 회개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볼 때 우리는 우리의 죄가 얼마나 중한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 죄값을 치르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셔야 했으며 그 죄값을 그분만이 치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 사랑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죄를 지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의 회개는 진정한 회개가 될 수 없습니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갈2:20) 할머니의 희생 회개가 빠진 믿음은 반쪽 믿음이다. “죄사함 없는 구원”이란 말은 가능치 않다. “죄사함이 수반된 구원”이 성경적이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 그러나 믿음으로 죄사함 받는다는 내용이 성경에 있는가 중풍병자의 경우는 어떠한 것인가 한 그리스도인이 소년 시절, 그가 어떻게 절도죄를 회개했는가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습니다. 할머니는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셨고 저를 몹시 아끼셨습니다. 또 저도 할머니를 매우 가까이 따랐습니다. 그러나 어렸을 때 저는 도둑질하는 못된 습관이 있었습니다.
저의 집은 가난했으므로 남의 것을 더욱 탐하였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제가 도둑질하는 것에 대하여 벌을 주셨지만 제 도벽을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좋은 것을 보면 그것을 훔치는 버릇은 여전했습니다. 어느 날 할머니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얘야, 네가 도둑질하는 것을 혼내 주었지만 너는 도무지 달라지지가 않는구나. 나는 너를 사랑하므로 이런 일을 계속하도록 그냥 내버려둘 수가 없구나. 또 다시 도둑질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이 바늘을 불에 빨갛게 달구어 네 손을 찔러서 다시는 잊지 않도록 표시를 만들어 놓을게야.” 그 이후로 한동안은 도둑질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할머니께서 말씀하시는 뜻이 무엇인가를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는 또 다시 옛날 습관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날 저는 호주머니에 훔친 물건을 넣어가지고 돌아왔습니다. 할머니께서는 그것을 보시고 처음에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지만 그냥 방치해 두지는 않으셨습니다. “호주머니에 들어 있는 걸 다 내놓아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슬 몇 개와 지우개 그리고 동전 몇 개가 나왔습니다. “이것을 어디서 가져왔지” 저는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그래, 이것들을 어디서 가졌왔는지 말해봐.” 그러나 저는 대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밖으로 나가셔서 뜨개질하는 쇠바늘 하나를 가져오시더니, 그것을 빨갛게 달구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손을 이리 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손을 앞으로 내밀며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잘못한 것은 알았습니다. 저는 그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께서는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죄가 얼마나 큰지 네가 이해하도록, 그것을 깨닫고 다시는 하지 않도록, 그리고 그 죄를 고칠 수 있도록 이제 한 본보기를 보여줘야 되겠구나. 자, 봐라.” 할머니께서는 손을 펴서 화로에서 뜨개질 쇠바늘을 얼른 꺼내서 그 얇은 손바닥에 푹 찌르셨습니다. 약간 지글거니는 소리와 함께 타는 냄새를 풍기며 연기가 조금 피어올랐습니다.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손바닥에서 바늘을 다시 뽑으셨습니다. 손바닥을 펴보이면서 “똑똑히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의 도둑질 버릇은 그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그 날로부터 저는 저의 잘못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깨달았으며 저를 그처럼 사랑했던 분이 저의 잘못의 대가를 치르셨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할머니의 손에 쇠바늘을 꽂게 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 소년의 절도죄가 아닙니까! 그러면 무엇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손과 발에 못을 박게 했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죄가 아닙니까 우리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셨던 그리스도의 상처 입은 몸을 보고서야 비로소 우리의 죄를 미워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서 고통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신 구세주를 볼 때에야 비로소 우리의 죄에 대하여 애통하는 심정을 품게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갈2:20) 김신조씨의 과거 기억, 사면되었지만 여전히 주위 사람들이 시선이 있다. 김현희씨의 결혼. 하기 전에 칼 유족을 만나 사죄를 빌었다고 전한다. 벌써 몇 차례나 그렇게 하는가. 법은 그녀를 사면했지만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고 평생 기억할 것이다. 호적에 남아 있는 기록은 여전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도말하리라는 표현을 쓰면서 완전 처리했음을 보인다.
제목:"공비아빠…딸이 울 땐 자살생각"유일한 생존자 김신조씨 "벌써 30년이 흘렀군요. "
1.21사태를 회고하는 김신조 (金新朝.56.사진) 씨의 목소리엔 고뇌가 배어나왔다. 침투조 31명중 유일한 생존자인 金씨에게 지난 세월이 평탄할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리라. "초등학생이던 큰 딸이 '아빠가 정말 공비였느냐' 고 묻다 울음을 터뜨릴 땐 달래줄 말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 70년 최정화 (崔正花.53) 씨와 결혼, 1남1녀를 얻은 金씨는 자신 때문에 어린 자녀들이 손가락질당할 땐 자살까지 생각했었다고 털어놨다. "온갖 시련 속에서도 저를 위해 늘 기도했던 집사람과 꿋꿋하게 자라준 아이들이 고마울 뿐입니다. " 반공강연 등 활동을 벌이던 金씨는 81년부터 신앙생활에 전념, 지난해 서울 성락침례교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목회자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그가 우리 사회에 정착하기 위해 치른 대가는 적지 않았다. "1백여명을 희생시킨 원흉으로 몰릴 때나 제 투항으로 북에서 총살당한 부모님과 형제자매를 생각하면 지금도 잠이 안옵니다. 모두가 분단의 희생양이었던 셈이지요. " 金씨는 귀순자들이 자유민주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적 장치가 완비되길 바란다면서 "앞으로도 1.21사태 희생자들의 넋을 위해 늘 기도하겠다" 며 신앙간증이 예정된 전남무안으로 떠났다. 김정하 기자 발 행 일:98년1월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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