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의 무한한 능력 (눅24:45-49)
본문
요즘 사람들은 명상록이나 시집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비록 그런 책들이 감각적인 감상을 나열하고 있을 뿐이지만, 이런 것에서 위안을 받는 모양 입니다.그렇다고 시집을 읽는 현대인들이 모두 감상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 습니다. 이런 현상은 오히려, 권력 지향적인 세상에서 점차 메말라가는 감 정을 잠시 회복하고자 하는 반대 심리가 반영된 것이 아닌가 짐작해 보게 됩니다. 반면 묵상집의 공통적인 내용은, 인간 내부에 "무한한 힘"이 숨겨 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개발하기만 하면, 놀라운 잠재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장담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잠재 능력을 얼마나 인정하 느냐에 관계없이, 인간에게 어떤 능력이 숨겨져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도 어떤 힘이 있는데, 그것은 자기 명상이나 묵상집에 서 말하는 정체불명의 신비적인 능력이 아니라, 성령님이라고 하는 "인격적 인 힘"을 말합니다. 성령님이 무엇입니까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 께서 하늘에 오르시기 전에, 주님은 제자들에게 앞으로 그들이 땅에서 행 할 전도 사역을 통해,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행할 수 있도록 그들을 도울 어떤 힘을 갖게 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 우리에게 오신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을 보십시오. "오 직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성령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이 하는 일은 무엇 입니까 성령님은,
첫째, 주님을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에게 주님에 대해서 가르치십니다(요 1 4:26/ 15:26/ 16:13-14).
둘째, 사람들에게 죄를 깨닫게 하십니다(요 16:8, 9).
셋째, 그리스도인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요 16:13).
말씀을 깨닫게 도우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은 또,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에게 능력을 공급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능력은, 곧 성령님의 능력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데 필요한 능력이, 성령님으로부터 옵니다. 우리가 만나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심령에 성령님이 임하시면, 그들도 자신의 죄를 깨닫고 구원의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연약할 때에 성령님의 능력에 의지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진정한 힘의 비밀:약할 때에 강한 것 고후 12:1-10 동물 세계를 "정글의 사회"라고 말합니다. 정글의 사회는 힘으로 지배되는 사회를 말합니다. 그리고 이 사회는 약육 강식의 세계입니다. 힘이 약 하면, 자기 보다 힘 센 동물에게 잡혀 먹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사회에도 정글의 사회가 있습니다. 그 사회는 권력을 지향하는 사람들에 의해 지배 됩니다.
그런데 동물 세계의 약육 강식에 비하면, 인간 사회에서 나타나는 약육강식의 법칙은 더 잔인합니다. 힘 센 동물은, 자신의 배를 채우는 것 이상으로 욕심을 부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아무리 배가 불러도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욕심을 부립니다. 흑인 인권 운동가인 말컴 엑스는 " 권력은 결코 뒷걸음질을 하지 않고, 오직 더 큰 권력으로 향할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는, 사회적 약자인 흑인들을 괴롭히던 1960년대 미국 백인 사회의 횡포에 대한 흑인 사회의 분노가 담겨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는, 우리 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약자의 위치에 놓인 사람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가난한 사람들, 여성, 그리고 농촌 사람들이, 강자의 위치에 있는 부자에 대해서, 남성에 대해서, 그리고 도시인에 대해 서 막연한 분노와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움 직이는 진정한 힘이 무엇이고, 그 힘이 어디에서 있는지 아는 사람은, 자신 에게 주어진 힘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무거 운 외투를 입고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 사람의 외투를 벗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매서운 바람이 아니라, 따 뜻한 태양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죄의 외투를 입고 인생길을 걸어가는 사람에게, 그 낡은 외투를 벗어버리게 할 수 있는 가장 능력있는 방법은 강제가 아니고, 억지가 아니라, 사랑과 정성입니다. 그리고 겸손입니다. 진실로,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능력은 자신을 아는 겸손에서 나옵니다. 고린도 후서 12장 9절을 보십시오."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 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은, 인간이 자신 의 연약함을 겸손히 인정할 때, 능력의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 시작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인간인 자신이 작아지고 하나님이 커지는 그곳에 참된 능력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오늘도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하다"고 고백한 사도 바울의 고백을 우리 자신의 고백으로 삼는 복된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고후 12:10). 우리에게 힘 주시는 그리스도 시 3편 주후 4세기 경, 텔레마투스(Telemachus)라는 이름을 가진 젊은 수도사가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에서는 검투 시합이 큰 인기를 모으고 있었습니다. 검투 시합은, 로마의 원형 경기장에서 두 명의 검투사가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계속 싸우거나, 아니면 검투사와 사나운 짐승을 붙여 놓고 어느 한 쪽이 쓰러질 때까지 계속 싸우게 하는 경기였습니다. 어쨋든 로마 시민들 은 피를 봐야 끝나는 잔인한 경기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텔레마투스는 검투 시합을 막으려고 노력했지만, 아무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 습니다. 결국 텔레마투스는 로마 시민이 즐기는 잔인한 "놀이"를 멈추게 하려고, 로마 시민이 모여 있는 콜롯세움(원형 경기장)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검투사와 사자가 사투를 벌이는 시합 중간에, 경기장 가운데로 뛰어들 었습니다. 텔레마투스의 갑작스런 방해에 성난 군중은, 그를 죽이라고 아우 성을 쳤습니다. 결국 그는 그 자리에서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텔레마 투스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들은 로마 황제 호노리우스(Honorius)는, 이후 로 로마 제국에서 검투 시합이 열리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이것은 한 사람 의 그리스도인이 보여준 용기에서 나온 결과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지난 2 천년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불가능해 보이는 수많은 일들을 가능하게 만들 어 왔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습니까 그리스도의 능력을 통해서였습니다. 사도 바울의 삶을 보면서, 우리는 똑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말 못할 고난과 험난한 일을 거치면서도, 사도 바울은 자신이 섬기는 주님의 능력을 신뢰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을 보십시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 앞에, 우리 자신 을 위해서나, 사회를 위해, 또는 교회를 위해, 해야 할 어떤 일이 있습니까
그런데 그 일을 하는 것이 힘들고 어려워 보입니까
그렇다면, 그 일을 하는 것이, 영 불가능하다는 뜻입니까 만일 하나님의 말씀이 거짓이 아 니라면, 그 일이 무엇이든지, 그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그리스도, 그분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능력을 경험 하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인내하는 힘 빌 3:10-14 영국의 수상을 지낸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경이 정치에서 은퇴 하고 노년(老年)에 이르렀을 때, 모교(母敎)인 에튼 국민학교(School of Et on)로부터 학생들을 위해 연설할 것을 부탁받게 되었습니다. 윈스턴 처칠 은 뛰어난 정치가, 연설가일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존경을 한 몸에 받 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학생들에게, 그가 인생에서 얻은 가장 귀한 교훈을 이야기해 주도록 부탁한 것입니다. 이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인 윈 스턴 처칠은, 천천히 단상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목소리를 가다듬었습니다. 어린 학생들은 그들이 존경하는 윈스턴 처칠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 올지 궁금해 하면서, 숨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잠시 동안, 아무 말없이 학 생들을 둘러보던 윈스턴 처칠이, 드디어 입을 열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 여러분! 끝까지.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자기 자리 로 돌아가 앉았습니다. 아마도, 윈스턴 처칠은 인내야말로, 인생에서 배 워야 할, 가장 값진 교훈이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렇습니다. 살아가면 서, 우리는 인생에서 인내가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 기억할 필요 가 있습니다. 잠언 28장 19절을 보십시오.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으려니와 방탕을 좇는 자는 궁핍함이 많으리라." 여기에서 솔 로몬은, 인생을 토지를 경작하는 일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토지를 경작하는 일은, 봄에 씨앗을 뿌려야 하는 수고와, 여름의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의 땀과, 추수 때까지의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인생도 마찬가집니다. 주어진 때에 열심히 수고하고, 인내로 어려움을 견디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 습니다.
그러므로 진실로 인생의 수확기에 풍성한 열매를 거두기 원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인생의 봄에 "수고의 씨앗"을 뿌리고, 인생의 여름을 "인내"로 견디지 않으면 안됩니다. 어려움을 인내로 견디는 방법은, 성경의 가르침에 따르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의지하며, 성도가 서로 격려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내로 어려움을 이기기 위해서는 성경과 성령님과 그리고 성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귀한 말씀과 성령님 충만 함으로, 그리고 믿음의 성도와 교제하면서, 가을의 풍성함을 기대하며 여름 을 견디는 농부의 심정으로 인내하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그런데 성령님이 하는 일은 무엇 입니까 성령님은,
첫째, 주님을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에게 주님에 대해서 가르치십니다(요 1 4:26/ 15:26/ 16:13-14).
둘째, 사람들에게 죄를 깨닫게 하십니다(요 16:8, 9).
셋째, 그리스도인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요 16:13).
말씀을 깨닫게 도우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은 또,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에게 능력을 공급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능력은, 곧 성령님의 능력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데 필요한 능력이, 성령님으로부터 옵니다. 우리가 만나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심령에 성령님이 임하시면, 그들도 자신의 죄를 깨닫고 구원의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연약할 때에 성령님의 능력에 의지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진정한 힘의 비밀:약할 때에 강한 것 고후 12:1-10 동물 세계를 "정글의 사회"라고 말합니다. 정글의 사회는 힘으로 지배되는 사회를 말합니다. 그리고 이 사회는 약육 강식의 세계입니다. 힘이 약 하면, 자기 보다 힘 센 동물에게 잡혀 먹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사회에도 정글의 사회가 있습니다. 그 사회는 권력을 지향하는 사람들에 의해 지배 됩니다.
그런데 동물 세계의 약육 강식에 비하면, 인간 사회에서 나타나는 약육강식의 법칙은 더 잔인합니다. 힘 센 동물은, 자신의 배를 채우는 것 이상으로 욕심을 부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아무리 배가 불러도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욕심을 부립니다. 흑인 인권 운동가인 말컴 엑스는 " 권력은 결코 뒷걸음질을 하지 않고, 오직 더 큰 권력으로 향할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는, 사회적 약자인 흑인들을 괴롭히던 1960년대 미국 백인 사회의 횡포에 대한 흑인 사회의 분노가 담겨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는, 우리 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약자의 위치에 놓인 사람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가난한 사람들, 여성, 그리고 농촌 사람들이, 강자의 위치에 있는 부자에 대해서, 남성에 대해서, 그리고 도시인에 대해 서 막연한 분노와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움 직이는 진정한 힘이 무엇이고, 그 힘이 어디에서 있는지 아는 사람은, 자신 에게 주어진 힘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무거 운 외투를 입고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 사람의 외투를 벗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매서운 바람이 아니라, 따 뜻한 태양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죄의 외투를 입고 인생길을 걸어가는 사람에게, 그 낡은 외투를 벗어버리게 할 수 있는 가장 능력있는 방법은 강제가 아니고, 억지가 아니라, 사랑과 정성입니다. 그리고 겸손입니다. 진실로,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능력은 자신을 아는 겸손에서 나옵니다. 고린도 후서 12장 9절을 보십시오."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 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은, 인간이 자신 의 연약함을 겸손히 인정할 때, 능력의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 시작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인간인 자신이 작아지고 하나님이 커지는 그곳에 참된 능력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오늘도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하다"고 고백한 사도 바울의 고백을 우리 자신의 고백으로 삼는 복된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고후 12:10). 우리에게 힘 주시는 그리스도 시 3편 주후 4세기 경, 텔레마투스(Telemachus)라는 이름을 가진 젊은 수도사가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에서는 검투 시합이 큰 인기를 모으고 있었습니다. 검투 시합은, 로마의 원형 경기장에서 두 명의 검투사가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계속 싸우거나, 아니면 검투사와 사나운 짐승을 붙여 놓고 어느 한 쪽이 쓰러질 때까지 계속 싸우게 하는 경기였습니다. 어쨋든 로마 시민들 은 피를 봐야 끝나는 잔인한 경기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텔레마투스는 검투 시합을 막으려고 노력했지만, 아무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 습니다. 결국 텔레마투스는 로마 시민이 즐기는 잔인한 "놀이"를 멈추게 하려고, 로마 시민이 모여 있는 콜롯세움(원형 경기장)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검투사와 사자가 사투를 벌이는 시합 중간에, 경기장 가운데로 뛰어들 었습니다. 텔레마투스의 갑작스런 방해에 성난 군중은, 그를 죽이라고 아우 성을 쳤습니다. 결국 그는 그 자리에서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텔레마 투스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들은 로마 황제 호노리우스(Honorius)는, 이후 로 로마 제국에서 검투 시합이 열리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이것은 한 사람 의 그리스도인이 보여준 용기에서 나온 결과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지난 2 천년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불가능해 보이는 수많은 일들을 가능하게 만들 어 왔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습니까 그리스도의 능력을 통해서였습니다. 사도 바울의 삶을 보면서, 우리는 똑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말 못할 고난과 험난한 일을 거치면서도, 사도 바울은 자신이 섬기는 주님의 능력을 신뢰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을 보십시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 앞에, 우리 자신 을 위해서나, 사회를 위해, 또는 교회를 위해, 해야 할 어떤 일이 있습니까
그런데 그 일을 하는 것이 힘들고 어려워 보입니까
그렇다면, 그 일을 하는 것이, 영 불가능하다는 뜻입니까 만일 하나님의 말씀이 거짓이 아 니라면, 그 일이 무엇이든지, 그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그리스도, 그분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능력을 경험 하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인내하는 힘 빌 3:10-14 영국의 수상을 지낸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경이 정치에서 은퇴 하고 노년(老年)에 이르렀을 때, 모교(母敎)인 에튼 국민학교(School of Et on)로부터 학생들을 위해 연설할 것을 부탁받게 되었습니다. 윈스턴 처칠 은 뛰어난 정치가, 연설가일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존경을 한 몸에 받 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학생들에게, 그가 인생에서 얻은 가장 귀한 교훈을 이야기해 주도록 부탁한 것입니다. 이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인 윈 스턴 처칠은, 천천히 단상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목소리를 가다듬었습니다. 어린 학생들은 그들이 존경하는 윈스턴 처칠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 올지 궁금해 하면서, 숨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잠시 동안, 아무 말없이 학 생들을 둘러보던 윈스턴 처칠이, 드디어 입을 열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 여러분! 끝까지.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자기 자리 로 돌아가 앉았습니다. 아마도, 윈스턴 처칠은 인내야말로, 인생에서 배 워야 할, 가장 값진 교훈이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렇습니다. 살아가면 서, 우리는 인생에서 인내가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 기억할 필요 가 있습니다. 잠언 28장 19절을 보십시오.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으려니와 방탕을 좇는 자는 궁핍함이 많으리라." 여기에서 솔 로몬은, 인생을 토지를 경작하는 일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토지를 경작하는 일은, 봄에 씨앗을 뿌려야 하는 수고와, 여름의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의 땀과, 추수 때까지의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인생도 마찬가집니다. 주어진 때에 열심히 수고하고, 인내로 어려움을 견디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 습니다.
그러므로 진실로 인생의 수확기에 풍성한 열매를 거두기 원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인생의 봄에 "수고의 씨앗"을 뿌리고, 인생의 여름을 "인내"로 견디지 않으면 안됩니다. 어려움을 인내로 견디는 방법은, 성경의 가르침에 따르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의지하며, 성도가 서로 격려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내로 어려움을 이기기 위해서는 성경과 성령님과 그리고 성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귀한 말씀과 성령님 충만 함으로, 그리고 믿음의 성도와 교제하면서, 가을의 풍성함을 기대하며 여름 을 견디는 농부의 심정으로 인내하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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