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십자가를 지라 (마16:24)

본문

I.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다(요19:17-19)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친히 담당하셨다는 말입니다. 곧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은 우리 죄를 담당하기 위해서 (벧전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원수를 소멸하시고, 평안을 주시기 위해서 (엡 2: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 로 소멸하시고 (엡 2: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 으니 하나님과 화목시키기 위해서 (골 1: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 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기 위하여(엡2:18) (히 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히 10: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예사롭게 바라보지 말자. 그 십자가는 인류의 죄, 나의 죄를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희생당하신 고통과 죽음의 상징이다.
2.십자가를 지신 주님이 우리를 향하여 하시는 말씀은 무엇인가(마16:24) 십자가를 지시고 달리심으로 구속함을 이루신 예수님께서는 그를 따르는 자, 그를 믿는 자들을 향하여 외치신 말씀이 있다. 이것은 오늘 우리를 향하여 외치시는 말씀이시다.
1십자가를 지고 나를 쫒으라(마16:24) 예수님께서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향하여 ‘십자가를 들고’, ‘십자가를 달고’,‘십자가를 끌고’나를 쫒으라 하시지 않고 십자가를 ‘지고’나를 쫓으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십자가를 진다’는 말은 그 십자가가 결코 가벼운 것이나 소홀히 여겨서는 안될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십자가를 장식용으로 달고 다니는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십자가를 마귀를 무찌르는 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 이상이 오늘날 우리들의 삶에 있어야 한다. 과연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십자가를 지고 쫓으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意味)는 무엇인가
1)자기의 죄를 시인(是認)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죄인이 지는 것인데 내가 십자가를 지고 간다는 것은 바로 나자 신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믿음이다. 그렇다. 우리들은 죄인임을 늘 살아가면서 인정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죄인이기에 실수하고, 부족하고, 나혼자 힘으로는 죄를 사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알고 나를 죄에서 건져 주신 주님을 늘 생각하며, 그 주님을 의지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오늘날 분쟁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바로 자신은 의롭고, 다른 사람은 다 죄인이라고 생가하기에 문제가 야기된다.
누가복음 5장에 고기잡이의 명수인 베드로가 밤새도록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하였을 때에 주님께서 오셔서 말씀하신 대로하였더니 그물이 짖어질 만큼 많은 고기를 잡고서 주님의 발 앞에서 고백한 말이 무엇인가 “시면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5:8). 그렇게 잘났다고, 잘한다고, 옳다고 여겼던 그가 주님 앞에서 발견한 것은 그가 죄인인 것을 철저하게 발견한 것이다. 이제 살아가면서 십자가를 지자.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이때에 희망이 있다. 죄인이기에 구세주가 필요하고, 죄인기이에 긍휼을 기대한다. 주님은 내가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시기를 원하신다
2)자기를 죽이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자기를 죽이기 위해서이다. 왜 죽이는가 그것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신을 죽음에 내어놓으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죽음에 내어 놓으셨기에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영광이 주어졌다. 우리가 십자가를 지는 것은 무엇인가 나를 죽이는 것이다. 내가 죽어야 내가 살고, 다른 사람도 살아나게 되어 있다. 내가 죽지 아니하면 나도, 다른 사람도 다시 살아나는 일들은 없다. 내 육신의 정욕을 죽여야 한다. 내 교만을 죽여야 한다. 세상을 향하는 내 마음을 죽여야 한다. 혈기를 죽여야 하고, 자존심을 죽여야 한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나를 죽여보아라. 내가 죽으면 사는데 내가 죽지 못하니까 일이 벌어진다. 날마다 십자가를 지자. 날마다 나를 죽이자. 부부간에도 서로가 자신을 죽이면 싸울일이 없다.
3)내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다. 마26:36-42까지 보면 예수님께서 로마 군병들에게 잡히시긴 전날 밤에 겟세마네동산에서 피끓는 기도를 드린다. 이제 잠시후면 사람들에 의해 잡히고 곧 재판을 받고, 그리고 십자가의 처형을 당할 것을 아신 예수님께서 그는 그 십자가의 형벌이 너무나 큰 것을 아셨기에 아버지 하나님께 피를 토하는 기도를 드린다. “아버지여, 할만 하시건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마26:39,42)십자가의 고통, 형벌을 아셨기에 주님은 절교의 가까운 목소리로 부르짖는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곧이어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셨다. 주님의 원은 십자가를 지지 않는 것이었지만, 아버지 하나님의 뜻은 십자가를 지시는 것이었다. 결국 예수님 자신의 원대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원대로 하셨기에 우리에게 구속의 역사를 이루신 것이다. 그가 자기의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좇았기에 우리가 죄사함을 얻고 구원 얻어 하늘나라를 소망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렇게 자신의 뜻을 포기하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좇은 주님께서 오늘도 주님을 좇는 우리들을 향하여 외치신다.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쫓으라고 말이다. 다시 말해 ‘내뜻은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쫓는 사람’이 되라고 외치시고 있다. 우리 사람들은 각자 다 자신의 뜻이 있다. 어떻게 하든지 자기의 뜻이 관철되어지기를 원한다. 그리고 자기의 뜻이 관철되어지지 않으면 서운해하고, 시험에 든다. 그러나 이제 십자가를 지고 쫓는 우리들은 내뜻은 포기되어지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자. 내뜻대로 하려고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뜻, 하나님의 뜻을 좇아가는 우리들이 되자. 자녀들도 자기의 뜻만 쫓아 행하려 하지 말고 부모의 뜻에 순종할 줄 알아야 좋은 일들이 일어난다. 성도들도 자신의 뜻만 내세우지 말고 교회의 뜻,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아가 역사가 일어난다. 내뜻이 포기되어지지 않으면, 내가 포기되어지지 않으면 좋은 일들은 일어나지 않는다. 물론 내 뜻이 포기되는 것은 희생이 따르고, 손해가 있고, 자존심도 상할 수 있다. 그러나 포기해보아라.
마19:16-30까지에 보면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나아와 영생을 얻는 길을 물었다. 주님은 그 청년에게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예수를 쫓으라고 하는 말을 듣고 결국 자기의 것을 포기하지 못하고 근심하며 떠나갔다. 십자가를 지고 주를 쫓는 생활은 내 뜻은 포기되어지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가는 생활이다. 그럴 때에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다. 사는 역사가 일어날 줄 믿는다.
4)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십자가를 지심은 그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는 중요한 사명이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바로 사람들의 죄를 구속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려고 이 땅에 오신 것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은 그 사명을 이루시기 위한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하신 것은 무슨 말인가 바로 우리에게도 십자가를 져야하는 사명이 있다는 것이다. 이 십자가를 지는 사명을 감당함에는 수고로움이 따른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자기의 어깨에 지워져 있는 십자가를 팽개쳐서는 안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갖가지의 십자가의 사명을 맡겨 주셨다. 예수 믿지 않는 식구들이 있음은 바로 나에게 십자가를 맡겨 주심이며, 나에게 힘든 일, 아픈 것을 주신 것은 바로 나에게 지워주신 십자가의 사명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지워 주신 이 십자가를 끝까지 지고 가는 사명을 감당하는 자 되자.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쫓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 십자가를 날마다 지고 쫓으라고 말씀하신다. 한 두벌 지고 마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이 십자가를 지고 쫓아가야 한다. 무겁다고,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이 험하고 멀다고 해서 팽개치지 말자. 우리들은 갈보리산 골고다 언덕까지 이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한다.
2십자가를 자랑해라(갈6:14) 십자가의 중심은 예수님이시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자랑한다는 것은 곧 예수를 자랑하는 것이다. 즉, 예수를 자랑한다는 것은 예수님 그분이 나와 다른 사람의 죄를 대속하셨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갈6:14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외친 말이다. 바울은 십자가를 알기 전에는 사람들을 십자가에 못을 박는 일들을 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는, 십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를 안 그는 일평생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했다. 자랑할 것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가 배운 지식, 그의 가문, 그의 시민권, 그러나 바울은 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그의 자랑은 그를 구속하신 예수님만 자랑하는 삶을 살았다.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외친 말이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피흘려 돌아가셨다. 누구든지 이 예수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다고 외쳤던 것이다. 이 바울의 자랑을 들은 간수도, 여인들도, 유대인들도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구원받는 일들이 일어났다. 여러분들의 자랑은 무엇인가 우리가 자랑해야 할 것은 무엇이겠는가 많이 배운 것, 가진 것, 행한 것, 업적, 가문, 명예를 자랑하겠는가 우리의 자랑도 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을 자랑하자.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905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