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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유익을 위하여 (요10:10)

본문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 이유가 여럿의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어떤 이는 외로워서, 어떤 이는 두려움 때문에, 어떤 이는 나도 거저 남들처럼 종교를 하나 가져볼까해서, 또 어떤이는 내세에 대한 불안 때문에, 또 어떤이는 마음의 평안을 얻어 보려고, 마음의 수양을 쌓으려고. 여러분들은 어떤 이유로 예수를 믿고 있는가 예수 믿는 이유가 무엇인가 예수 믿고 복 받으려고 예수 믿고 잘 살아보려고 예수 믿고 건강하고, 문제 해결 받으려고 예수 믿고 죄 사함받고, 천국에 갈려고 어떤 이유든 좋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들은 예수 믿는 분명하고, 확고한 이유를 발견해야 하고, 그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 어떤 삶의 모습을 이루어 나가야 할지 말씀을 드리려 한다.
1.예수가 오신 목적 오늘 읽었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말하고 있다. (요 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 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내가 온 것은’이라는 말은-예수님이 오신 것을 말씀 하는 것이며, ‘양으로’-바로 성도된 여러분과 저를 일컫는 말이요, ‘생명을 얻게하고’-여기서 말하는 ‘생명’이라는 말은 단순히 육체적인 생명을 말함이 아닌 영적 생명을 일컫는 말이다. 죄로 말미암아 죽은 우리의 영적 생명에 다시 생기를 불어 넣으시어서 영이신 하나님을 다시 볼수 있고, 그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이루시는 일들을 위하여 영이 죽었던 우리 사람들에게 새 생명을 주는 것을 말함이다.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새 생명을 얻은 우리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질 풍성한 삶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예수님이 오신 것은 우리의 영혼이 잘되는 일을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이며, 우리 영혼이 잘되는 일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신 것이며, 우리 영혼이 잘되는 일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며, 우리 영혼이 잘되는 일을 위하여 다시 부활 하신것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일 중에 그 어느것 하나 우리의 영혼의 유익을 위하지 않는것이 어디에 있는가 주님은 여러분과 저의 영혼이 잘되고, 영혼이 유익되게 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시고, 죽으신 것을 믿기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도 바로 여기에 초점이 맞추어 져야 하고 이것을 위하여 우리도 진력을 해야 할줄 믿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마음에 수양을 쌓기 위해서 믿는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정신을 함양하기 위한 믿음이 되어서도 안됩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윤리, 도덕적으로 덕을 끼치는 것을 위해서 믿는 것이 되어서도 안됩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우리의 육적인 부요를 얻기 위해서 믿는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윤리,도덕,박애사상을 가르치는 선생으로, 또 그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야 되는 것으로 알고 그렇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일컬어서 손가락질하고, 비웃는다. 물론 윤리, 도덕적으로 손가락질 당하지 않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도 참 좋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예수를 믿는 가운데 일어나는 현상이지 그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도 예수를 믿는 것이 남에게 해 안끼치고, 남에게 해가 안되는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져 나가는 그런 종류의 믿음이 되어서는 안된다. 예수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바로 나의 죄 때문에, 내 영혼에 붙어 멸망케 하는 나의 죄 때문에 죽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믿는 것입니다. 지옥 형벌 당할 나를 대신 해서 그가 지옥 형벌을 당하시고 나를 천국 행복으로 이끌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믿는 것입니다. 세상의 썩어 없어질 것을 얻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하는 하늘의 것을 얻게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믿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님은 내 영혼의 생명을 위하여, 내 영혼의 유익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자기의 인생 전부를 아낌없이 써 버린것이고, 기꺼이 던진 것입니다.
2.과연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내 영혼의 손해를 보지 말고 내 영혼의 유익이 있게하자’-내 육은 손해를 볼지라도 영혼의 손해를 보아서는 안됨. ‘영적인 손해를 보지 말자’-육적인 손해를 볼지라도 영적인 손해를 보아서는 안된다. 이유가 무엇인가
1주님이 오신 목적이 바로 나의 영혼의 유익을 위해서 오신것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영적인 생명을 주고, 내 영혼의 유익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투자하지 않았는가
2영혼의 영원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들은 이 세상의 것, 육신의 것은 영원한 것이 아닌 언젠가는 없어질 것임을 믿는가 죽으면 끝이 아니라 심판을 받고, 그 심판에 따라 영혼이 영원히 살 것을 믿는가 이 영원의 삶이 이 땅에서 결정이 난다는 사실을 믿는가 우리가 이 땅에서 얼마나 많이 영적인 유익을 가져 왔느냐가 내 영혼의 영원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진데 우리가 어찌 영적인 손해, 영혼의 손해를 볼수 있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가 (갈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님을 거스리고 성령님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 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육체가 유익을 얻으려 하면 영이 손해를 보고 영이 유익을 얻으려 하면 육체가 손해를 본다는 것이다. 또 다르게 말하면, 육체가 유익을 얻으려 하려하면 영이 거스려 얻지 못하게 하고, 영이 유익을 얻으려 하면 육체가 거스려 얻지 못하게 한다. 다르게 말하면 한 쪽은 손해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영이 손해보던, 육이 손 보던, 영이 유익을 얻던, 육이 유익을 얻던 둘 중에 하나는 포기되어져야 한다.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 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어떤 유익이 있어야 하겠습니까 어떤 유익을 얻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 부디 원하기는 육이 손해를 보더라도 영이 유익을 얻게 되는 일들이 일어나기 바랍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내 영혼이 유익을 얻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영적인 유익을 얻도록 해야 합니다.
3.어떤 유익을 얻어야 하겠습니까 성경에 보면 이런 모습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1육의 유익을 위하여 영의 손해를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창3장) 창세기 3장에 보면 아담과 하와는 육의 유익을 얻기 위해서 영적인 손해를 보는 일을 했습니다. (창 2:16)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 의로 먹되 (창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 시니라 분명히 하나님은 선악과를 따먹으면 정년 죽는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이 말씀을 뒤로 멀리하고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을 따먹고 말았습니다. 육적으로는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러운 것을 먹음으로 인하여 호기심을 채우고, 배는 불렀을지 몰라도 영적인 유익은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영혼은 큰 손해를 가져 왔습니다. 하나님과 단절되었고, 에덴동산에서 쫒겨 났습니다. 육의 유익을 얻어보려고 했던 그들은 영적인 돌이킬수 없는 손해를 가져 왔습니다.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잠간의 만족과 쾌락을 위하여 영원한 손해를 보고 있습니다. 까짓것 술한잔 마시고 담배한데 피운들 육적으로 무슨 대단한 이익을 보겠는가 그러나 믿음의 양심에 일어난 가책으로 인한 영적인 손해는 그 무엇으로도 어떻게 할수 없는 영적인 손해를 가져옴을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런데 이 육의 유익을 얻기 위해서 영적인 손해를 보는일을 너무 과감하게 한다. 부자청년(막10:17-22) 한 부자 청년이 영생을 얻으려고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그는 주님이 말씀 하신대로 다 했다고 자부심을 갖고 있을 때에 주님은 그에게 어려운 결단을 내리도록 하십니다. 그에게 있는 모든 재물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그를 쫒을 것을 말을 할 때에 부자청년은 재물이 많은고로 근심하며 돌아 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영적인 유익, 영생을 얻는 것 보다 육적인 손해보기가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영적인 유익을 포기하고 육적인 유익을 위하여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마치 무엇과도 같습니까 TV한시간 보는것보다 예배 한 시간드리는 것이 더 영적인 유익이 주어질텐데
그런데 예배 드리는 것보다 TV보는 것을 더 좋아 합니다. 주일날 산으로, 들로 놀러 나가는 것보다 주일을 지킴이 영적인 유익을 가져 올텐데
그런데 주일 지킴보다 산으로, 들로 가는 것을, 어디가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육적인 유익을 위하여 영적인 엄청난 손해를 보는 사람들입니다. 왜 영적인 손해를 보면서도 육적인 유익을 쫒아 갑니까 육적인 것은 현실적인것이요, 감각적인 것이어서 볼수도, 만질수 있는 당장의 것으로 유익을 가져다 주는 것 같고ㄴ 나타나지만 영적인 것들, 예를 들어 천국, 지옥, 영원, 죽고난 이후의 이야기는 미래적인 것이요, 비 감각적이고 손에 잡히지도, 그것도 당장의 문제가 아니기에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그런것들은 나중의 문제로, 다음의 문제로, 차차 해결하면 된다는 이런 안일한 생각 때문에 당장의 육적인 유익을 찾고 쫒아가지 영적인 유익을 찾지도, 붙잡지도 않는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과 저는 육적인 유익 때문에 영적인 손해를 보지 맙시다. 육적인 손해를 보아서라도 어떻게 하든지 영적인 유익을 얻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육적인 유익은 잠간가의 것이지만, 영적인 유익은 영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2영적인 유익을 위하여 육적인 손해를 보는 사람들 믿음의 사람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으로 산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영적인 유익을 위하여 육적인 유익을 포기하고, 육적으로 오히려 손해를 본 사람들의 이야기 입니다. 그 중에서고 모세의 경우에는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줍니다. (히 11: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히 11: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히 11: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모세가 육적으로 편하게 지낼수 있었습니다.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면 위치적으로 엄청나게 부요를 누리며, 얼마든지 편하게 지낼수 있는 위치였다.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말한다.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했다. 이유는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을 받을 지라도 하나님의 상주심을 더 귀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는 영적인 유익, 그의 영혼의 부요를 위하여 육체적인 손해를 과감하게 받는다. 이것은 비단 모세뿐 아니다. 사도바울 사도 바울은 어떠한가 빌리보서 3장에 보면 그는 자기의 모든 것을 어떻게 여기는가 (빌 3: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빌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 3: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영적인 유익을 얻고자 함에 육적인 것들이 방해가 되고, 걸림돌이 된다면 과감하게 버리고, 제거하고, 차버리는 것을 볼수 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은 어떻게 하든지 육적인 유익보다 영적인 유익을 얻어야 합니다. 우리들은 어떻게 하든지 육적인 유익보다 영적으로 유익되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이 영적인 유익, 내 영혼의 부요를 위해서라면 육적인 장애들, 육적인 방해거리들을 제거해 버리고 영적인 유익을 얻게 합시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여러분들이 사람들과의 관계로 인하여 내 영혼이 영적인 손해보면 안됩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얼마나 귀하고 중한 영혼인데 왜 다른 사람과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서운한 관계 때문에, 안 좋은 관계 때문에 손해를 보려 하십니까 부부관계가 좋지 않으면 영적인 유익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말다툼, 신경전을 벌인 그것에 사로잡혀 있으면 기도가 됩니까 은혜가 됩니까 안됩니다.
그런데 미련하게도 그런 관계로 인하여 내 영혼의 영적인 손해를 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것을 줄기차게 붙들고 있습니다. 즉 회복을 위하여 서로 화해하고, 용서함이 없이 누가 잘났나, 누가 이기나 보자고 길게 나갑니다. 영적인 이익은 없습니다. 손해만 봅니다. 또 목사와의 관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이 목사에게 서운한 마음과 아니면 내 생각과 기준에 두고 맞지 아니하고 무엇인가 맞지 아니한 것이 있다고 했을때에 그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말씀으로 받아 들여 지는가 절대 그렇지않다. 내 영혼이 얼마나 손해를 보는줄 아는가 그런 것이 있다면 내 영혼의 유익을 위하여 빨리 영적인 유익이 되도록 털고 일어서기 바랍니다. 이것은 비단 사람과의 관계만이 아닙니다. 물질때문에 세상의 물질 때문에 내 영혼의 영적인 유익을 가져다 주지 못하고 손해를 가져오게 한다면 우리도 바울처럼 그것을 과감하게 차 버려서라도, 똥같이 여겨 버려서라도 우리들은 영적인 유익을 얻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적인 유익을 위한 방편과 수단으로 그런 것들을 주셨는데 그런것들을 통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영적인 유익을 얻어려고 해야지, 왜 영적인 손해를 보면서 까지 그런것들에 사로잡혀 끌려 다니고 손해를 보는가 직분때문에 우리들에게 맡겨지는 직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이 어떤 직분을 맡든 그 모든 일들은 우리의 영적인 유익을 생각하고 감당해야 합니다. 직분 그 자체가 상급이 아니고, 직분 그 자체가 프리미엄이 아닐진데 왜 그 직분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내게 물으실 책임을 보지 않고 그 자체만 가지고 있고, 그것을 얻으려 하는가 성도들이 어떤 직분이든 이 직분이 내 영혼의 더 좋은 유익이 되어야 복이 되는 것입니다. 목사가 볼 때 이 사람은 이런 직분을 맡아서 더 영적인 유익, 영혼의 부요를 쌓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것이다 판단이 되어 어떻게 하든지 그 영혼의 영적인 유익이 있게 지도를 하고자 함이요, 그렇게 한다. 여러분! 직분의 유뮤에 따라 영적인 유익이 있고, 없고가 아닙니다. 내게 맡은 위치에서 어떻게 감당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러니 내가 어떤 직분을 맡았으면, 나를 그런 직분으로 세워주지 않나를 생각하지 말고 자기에게 맡겨진 그 위치에서 어떻게 하든지 내 영혼의 영적인 유익을 삼도록 해라. 그렇게 했을 때 또 다른 직분을 맡겨 주었을 때에 더 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이 맡고 있는 이 직분을 통해서 어떻게 하든지 영적인 유익을 얻도록 사용해라. 사용하라고 주신 것을 사용하지 않으면 맡지 않음만 못하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여러분을 영적인 유익이 되지못하게 하고 영적인 손해를 가져오게 한 것이 무엇인가를 점검하십시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영적인 손해가 있게하는 것을 제거해야 하고 극복해야 합니다. 우리의 영적손해는 육적 손해처럼 잠간의 손해가 아니라 영원한 손해를 가져오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제 부터는 내게 영적인 유익, 내 영혼의 부요함을 이루는 일들을 위해서 투자하시고, 진력하시기 바랍니다. 이 영적 유익을 위하여 힘쓰고, 애써 나아갈 때 주님은 육적인 유익들은 덤으로 더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은 육적인 유익보다 영적인 유익이 있게 하시기 원하십니다. 영적인 유익을 얻기를 원하십니다. 비록 육적인 손해를 볼지라도 영적인 유익을 주어지는 것이라면 육적 유익 때문에 영적인 손해를 보지 말고, 영적인 유익 때문에 육적인 손해를 과감하게 봅시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눅 9: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막 10: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 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막 10:30)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 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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