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자가 되게 하소서 (히6:11-12)
본문
특별히 여러분들이 형통하기바란다. 형통(亨通)이란 → 통해야 할것이 잘 통해지는 것을 형통. 하나님과 관계에서 잘 이루어지는 것을 영통이라 하며, 사람과의 관계에서 잘 이루어지는 것이 인통이며, 대소사의 일이 잘 이루어지는 것을 물통. 모든 것은 통하게 되어 있다. 통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된다. 그래서 안통하는 것을 일컬어 불통(不通), 즉 잘 안된다는 것이다. 안되고 있다는 것이다. ‘통한다’는 말을 자주 쓴다
1나와 다른 사람과의 마음이나 생각이 같을 때-서로 통한다고 한다→ 그러면 관계가 좋아진다. 부부간에 통하지 않으니까 싸움, 서로간의 미움이 일어나는 것도 통하지 않아서. 통하지 않으면 정말 답답하다 → 몇주전에 금요기도회때 기도시간에 불을 끄고 하려고 우림에 게 손짓, 발짓을 다하였지만 어뚱한 행동, 안통하니까 그런일, 결국에는 통해서 불을 끈적이 있다.
2전기의 선과 선이 통할때에 전기가 흘러 나와서 큰 힘을 발휘한다. 아무리 좋은 기계, 좋은 전기시설이 되어있다고 해도 전기가 통하지 않으면 소용없다. 일단 통하기만 하면 아루미 큰 기게일지라도 움직이고, 환하게 한다. 이렇듯 통해서 잘되는 것, 무엇이든지 이루어 나가는 것을 ‘형통한다’라고한다. 부부간에 형통하고, 자녀간에 형통하고, 이웃간에 형통하고, 성도간에 형통하기 바란다.
그런데 우리에게 있어서 진짜 통해야 할 것이 있다.
1.신통(神通),혹은 영통(靈通)해야한다. 신통은 곧 영통이다. 본문 3절에 ‘시냇가’,‘시냇가에 심기우진 나무’→ 그랬더니 시절을 쫒아 과실 입사귀가 마르지 아니하는것(풍성) 이것들이 형통의 모습이다.
그런데 시편의 저자는 하나님을 → 마르지 아니하며 늘 물을 공급하는 시냇가로 성도를 → 시냇가에 심긴 나무 성도들의 삶의 풍성한 모습을 → 형통한 모습을 말한다. 나무인 성도가 풍성한 삶을 살 수 있고, 열매를 맺고, 마르지 아니하는 비결은 시냇가에 심기워 졌다는 것이다. 여기서 심기워졌다는 것이 → 통했다는것. 나무 뿌리와 물이 통했으니 늘 물을 공급받으므로 살아 있는 나무됨. 특별히 여러분들이 형통하기바란다. 형통(亨通)이란 → 통해야 할것이 잘 통해지는 것을 형통. 사람과의 관계에서 잘 이루어지는 것이 인통이며, 대소사의 일이 잘 이루어지는 것을 물통. 모든 것은 통하게 되어 있다. 통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된다. 그래서 안통하는 것을 일컬어 불통(不通), 즉 잘 안된다는 것이다. 안되고 있다는 것이다. ‘통한다’는 말을 자주 쓴다
1나와 다른 사람과의 마음이나 생각이 같을 때-서로 통한다고 한다→ 그러면 관계가 좋아진다. 부부간에 통하지 않으니까 싸움, 서로간의 미움이 일어나는 것도 통하지 않아서. 통하지 않으면 정말 답답하다 → 몇주전에 금요기도회때 기도시간에 불을 끄고 하려고 우림에 게 손짓, 발짓을 다하였지만 어뚱한 행동, 안통하니까 그런일, 결국에는 통해서 불을 끈적이 있다.
2전기의 선과 선이 통할때에 전기가 흘러 나와서 큰 힘을 발휘한다. 아무리 좋은 기계, 좋은 전기시설이 되어있다고 해도 전기가 통하지 않으면 소용없다. 일단 통하기만 하면 아루미 큰 기게일지라도 움직이고, 환하게 한다. 이렇듯 통해서 잘되는 것, 무엇이든지 이루어 나가는 것을 ‘형통한다’라고한다. 부부간에 형통하고, 자녀간에 형통하고, 이웃간에 형통하고, 성도간에 형통하기 바란다.
그런데 우리에게 있어서 진짜 통해야 할 것이 있다.
1.신통(神通),혹은 영통(靈通)해야한다. 신통은 곧 영통이다. 본문 3절에 ‘시냇가’,‘시냇가에 심기우진 나무’→ 그랬더니 시절을 쫒아 과실 입사귀가 마르지 아니하는것(풍성) 이것들이 형통의 모습이다.
그런데 시편의 저자는 하나님을 → 마르지 아니하며 늘 물을 공급하는 시냇가로 성도를 → 시냇가에 심긴 나무 성도들의 삶의 풍성한 모습을 → 형통한 모습을 말한다. 나무인 성도가 풍성한 삶을 살 수 있고, 열매를 맺고, 마르지 아니하는 비결은 시냇가에 심기워 졌다는 것이다. 여기서 심기워졌다는 것이 → 통했다는것. 나무 뿌리와 물이 통했으니 늘 물을 공급받으므로 살아 있는 나무됨. 영인 우리 사람들은 영이 통해야 한다. 영중에서도 아무영이나 통해도 안된다. 마치 220을 110에 꽂으면 안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사람들은 하나님과 영통해야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이다.
그런데 하나님과 영통치 않고 다른것과 영통하면 고장이 나버린다. 왜 영통해야 하는가 모든것에는 근원이 있다. 수도물도 저수지, 만들어진 것도 근원이 있다. 이 근원과 연결될때에 부족함이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근원이다.
1생명의 근원이다(요14:6), 그분은 생사의 근원이 된다(삼상2장)→죽고 사는것이 하나님께 달 림. 더군다나 그 안에 영생이 있다. 이 분과 통하면 생명을 공급 받는다.
2복의 근원이시다(시16:2) 약1:17에서는 각양 좋은것들이 우리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온다. 그래서 시73:28에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했다. 하나님과 통해 있는 사람은 몇만 볼트의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소보다 더 큰 에너지원을 갖고 있는것이다. 창2장에서 아담이 하나님과 통했을때에 모습을 보라. 그곳이 곧 천국이다. 오늘 여러분이 하나님과 통하는 자들이 되기 바란다. 아무리 하나님이 능력이고, 생명이고, 힘이라고 해도 통하지 않으면 힘이 없다. 사람으로서는 그 하나님과 통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들에게 통할 수 있는 길이 있다
1예수를 믿는 것은 하나님과 통하는 통로가 된다(요14:6)→통하기만 하면 죄사함, 자녀, 영생, 하늘나라의 기업을 상속받는다.
2말씀은 하나님과 통하는 길이다 → 이 통로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고, 만나고, 보화를 발견 한다.
3기도는 하나님과 통하는 통로이다 → 무한한 에너지를 공급받는다(낙심했다가 기도하면 힘 이 통로를 통하여 통하면 엄청난 것을 공급받지만, 즉 형통케 되지만 그러나 통하지 않으면 답답해 진다. 만약에 통하는 감(感)을 느끼지 못하면 다음을 점검하라.
(1)끊겨있지나 않는지, 끊겨 있으면 안통한다(요15:4-5) 별짓 다해도 헛수고이다. → 선 부터 다시 이어야 한다(믿음을 점검해보라)→정말 내가 예수 를 구세주로 믿고 있는가
(2)중간에 다른것이 끼어 있으면 잘 통하지 않는다(마5:8) 하나님을 볼 수 있는자'마음이 청결한 자→세상의 것은 하나님과 통하는 것을 보이지 않도록, 통하지 않도록 하는 먼지와 같다. 이것이 있으면 잡음이 생기고, 아스가 일어난다.
2.신통하면 형통한다. 본문에서 형통의 모습은 → 시절을 따라 과실, 잎사귀 마르지 아니함 '이것은 심기워져 있을때 가능하다. 요삼1:2 영혼이 잘되면 범사, 강건 마6:33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모든것 영통하면 무엇이 형통하는가
(1)인통(人通)한다. 사람과 사람관계가 원망하고 좋다. 행,불행의 모든것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일어남.
그러므로 사람들이 하나님과 영통해서 충만해지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잘된다. 미움이 가득한 사람일찌라도 하나님으로 부터 은혜 받으면 사랑의 마음으로 창45장의 하나님과 늘 영통했던 요셉(42:18) → 그를 팔았던 형제들이 미울수 있지만 사랑함 하므로 사람의 비유를 맞추기전에 하나님과 통하는 통로가 열리면 인통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라. 삼상18장에도 다윗과 요나단의 마음이 통했다(18:1) (삼상18:1)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니라
(2)물통(物通)한다. 물질과 물질이 들어 있는 환경을 정복, 다스린다. 여기서 ‘물통한다’는 것은 단순히 물질의 소유에 많고 적음이 아니다. 아무리 물질이 많아도 그것을 바르게 다스리지 못하면 그것은 물통한것이 아니다. 소유가 적든, 많던 상관없이 주어지넋에 만족하고 기뻐하는 것이다. 또 그것에 끌려 다니지 않고 다스린다. 행2:43-47에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하나님과 영통, 신통하니 물통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가 또 물통한다는 것은 단순히 물질과의 관계만이 아니다. 환경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않고, 그 상황에서도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는 자세가 형통의 모습이다. 창39장의 요셉은 →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려 갔지만 ‘형통한자’가 되었고(39:3) → 보디발의 아내 유혹을 뿌리치므로 감옥에 갇혔지만 ‘형통’했다(39:23) 왜 그런가 거기에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엿고, 요셉은 하나님을 늘 체험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받았기 때문에 그것이 곧 형통이었다. 장소가 어떠하든, 사건이 어더하든 늘 주님과 함께 살아가니 그것이 천국이고, 그것이 형통이 아닌가 여러분들도 이런 형통의 역사가 있기를 바란다. 영통하면 형통한다. 하나님과 통하면 사람과 통하고, 물질과, 환경을 통한다. 영인 우리 사람들은 영이 통해야 한다. 영중에서도 아무영이나 통해도 안된다. 마치 220을 110에 꽂으면 안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사람들은 하나님과 영통해야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이다.
그런데 하나님과 영통치 않고 다른것과 영통하면 고장이 나버린다. 왜 영통해야 하는가 모든것에는 근원이 있다. 수도물도 저수지, 만들어진 것도 근원이 있다. 이 근원과 연결될때에 부족함이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근원이다.
1생명의 근원이다(요14:6), 그분은 생사의 근원이 된다(삼상2장)→죽고 사는것이 하나님께 달 림. 더군다나 그 안에 영생이 있다. 이 분과 통하면 생명을 공급 받는다.
2복의 근원이시다(시16:2) 약1:17에서는 각양 좋은것들이 우리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온다. 그래서 시73:28에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했다. 하나님과 통해 있는 사람은 몇만 볼트의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소보다 더 큰 에너지원을 갖고 있는것이다. 창2장에서 아담이 하나님과 통했을때에 모습을 보라. 그곳이 곧 천국이다. 오늘 여러분이 하나님과 통하는 자들이 되기 바란다. 아무리 하나님이 능력이고, 생명이고, 힘이라고 해도 통하지 않으면 힘이 없다. 사람으로서는 그 하나님과 통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들에게 통할 수 있는 길이 있다
1예수를 믿는 것은 하나님과 통하는 통로가 된다(요14:6)→통하기만 하면 죄사함, 자녀, 영생, 하늘나라의 기업을 상속받는다.
2말씀은 하나님과 통하는 길이다 → 이 통로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고, 만나고, 보화를 발견 한다.
3기도는 하나님과 통하는 통로이다 → 무한한 에너지를 공급받는다(낙심했다가 기도하면 힘 이 통로를 통하여 통하면 엄청난 것을 공급받지만, 즉 형통케 되지만 그러나 통하지 않으면 답답해 진다. 만약에 통하는 감(感)을 느끼지 못하면 다음을 점검하라.
(1)끊겨있지나 않는지, 끊겨 있으면 안통한다(요15:4-5) 별짓 다해도 헛수고이다. → 선 부터 다시 이어야 한다(믿음을 점검해보라)→정말 내가 예수 를 구세주로 믿고 있는가
(2)중간에 다른것이 끼어 있으면 잘 통하지 않는다(마5:8) 하나님을 볼 수 있는자'마음이 청결한 자→세상의 것은 하나님과 통하는 것을 보이지 않도록, 통하지 않도록 하는 먼지와 같다. 이것이 있으면 잡음이 생기고, 아스가 일어난다.
2.신통하면 형통한다. 본문에서 형통의 모습은 → 시절을 따라 과실, 잎사귀 마르지 아니함 '이것은 심기워져 있을때 가능하다. 요삼1:2 영혼이 잘되면 범사, 강건 마6:33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모든것 영통하면 무엇이 형통하는가
(1)인통(人通)한다. 사람과 사람관계가 원망하고 좋다. 행,불행의 모든것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일어남.
그러므로 사람들이 하나님과 영통해서 충만해지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잘된다. 미움이 가득한 사람일찌라도 하나님으로 부터 은혜 받으면 사랑의 마음으로 창45장의 하나님과 늘 영통했던 요셉(42:18) → 그를 팔았던 형제들이 미울수 있지만 사랑함 하므로 사람의 비유를 맞추기전에 하나님과 통하는 통로가 열리면 인통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라. 삼상18장에도 다윗과 요나단의 마음이 통했다(18:1) (삼상18:1)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니라
(2)물통(物通)한다. 물질과 물질이 들어 있는 환경을 정복, 다스린다. 여기서 ‘물통한다’는 것은 단순히 물질의 소유에 많고 적음이 아니다. 아무리 물질이 많아도 그것을 바르게 다스리지 못하면 그것은 물통한것이 아니다. 소유가 적든, 많던 상관없이 주어지넋에 만족하고 기뻐하는 것이다. 또 그것에 끌려 다니지 않고 다스린다. 행2:43-47에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하나님과 영통, 신통하니 물통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가 또 물통한다는 것은 단순히 물질과의 관계만이 아니다. 환경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않고, 그 상황에서도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는 자세가 형통의 모습이다. 창39장의 요셉은 →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려 갔지만 ‘형통한자’가 되었고(39:3) → 보디발의 아내 유혹을 뿌리치므로 감옥에 갇혔지만 ‘형통’했다(39:23) 왜 그런가 거기에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엿고, 요셉은 하나님을 늘 체험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받았기 때문에 그것이 곧 형통이었다. 장소가 어떠하든, 사건이 어더하든 늘 주님과 함께 살아가니 그것이 천국이고, 그것이 형통이 아닌가 여러분들도 이런 형통의 역사가 있기를 바란다. 영통하면 형통한다. 하나님과 통하면 사람과 통하고, 물질과, 환경을 통한다.
1나와 다른 사람과의 마음이나 생각이 같을 때-서로 통한다고 한다→ 그러면 관계가 좋아진다. 부부간에 통하지 않으니까 싸움, 서로간의 미움이 일어나는 것도 통하지 않아서. 통하지 않으면 정말 답답하다 → 몇주전에 금요기도회때 기도시간에 불을 끄고 하려고 우림에 게 손짓, 발짓을 다하였지만 어뚱한 행동, 안통하니까 그런일, 결국에는 통해서 불을 끈적이 있다.
2전기의 선과 선이 통할때에 전기가 흘러 나와서 큰 힘을 발휘한다. 아무리 좋은 기계, 좋은 전기시설이 되어있다고 해도 전기가 통하지 않으면 소용없다. 일단 통하기만 하면 아루미 큰 기게일지라도 움직이고, 환하게 한다. 이렇듯 통해서 잘되는 것, 무엇이든지 이루어 나가는 것을 ‘형통한다’라고한다. 부부간에 형통하고, 자녀간에 형통하고, 이웃간에 형통하고, 성도간에 형통하기 바란다.
그런데 우리에게 있어서 진짜 통해야 할 것이 있다.
1.신통(神通),혹은 영통(靈通)해야한다. 신통은 곧 영통이다. 본문 3절에 ‘시냇가’,‘시냇가에 심기우진 나무’→ 그랬더니 시절을 쫒아 과실 입사귀가 마르지 아니하는것(풍성) 이것들이 형통의 모습이다.
그런데 시편의 저자는 하나님을 → 마르지 아니하며 늘 물을 공급하는 시냇가로 성도를 → 시냇가에 심긴 나무 성도들의 삶의 풍성한 모습을 → 형통한 모습을 말한다. 나무인 성도가 풍성한 삶을 살 수 있고, 열매를 맺고, 마르지 아니하는 비결은 시냇가에 심기워 졌다는 것이다. 여기서 심기워졌다는 것이 → 통했다는것. 나무 뿌리와 물이 통했으니 늘 물을 공급받으므로 살아 있는 나무됨. 특별히 여러분들이 형통하기바란다. 형통(亨通)이란 → 통해야 할것이 잘 통해지는 것을 형통. 사람과의 관계에서 잘 이루어지는 것이 인통이며, 대소사의 일이 잘 이루어지는 것을 물통. 모든 것은 통하게 되어 있다. 통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된다. 그래서 안통하는 것을 일컬어 불통(不通), 즉 잘 안된다는 것이다. 안되고 있다는 것이다. ‘통한다’는 말을 자주 쓴다
1나와 다른 사람과의 마음이나 생각이 같을 때-서로 통한다고 한다→ 그러면 관계가 좋아진다. 부부간에 통하지 않으니까 싸움, 서로간의 미움이 일어나는 것도 통하지 않아서. 통하지 않으면 정말 답답하다 → 몇주전에 금요기도회때 기도시간에 불을 끄고 하려고 우림에 게 손짓, 발짓을 다하였지만 어뚱한 행동, 안통하니까 그런일, 결국에는 통해서 불을 끈적이 있다.
2전기의 선과 선이 통할때에 전기가 흘러 나와서 큰 힘을 발휘한다. 아무리 좋은 기계, 좋은 전기시설이 되어있다고 해도 전기가 통하지 않으면 소용없다. 일단 통하기만 하면 아루미 큰 기게일지라도 움직이고, 환하게 한다. 이렇듯 통해서 잘되는 것, 무엇이든지 이루어 나가는 것을 ‘형통한다’라고한다. 부부간에 형통하고, 자녀간에 형통하고, 이웃간에 형통하고, 성도간에 형통하기 바란다.
그런데 우리에게 있어서 진짜 통해야 할 것이 있다.
1.신통(神通),혹은 영통(靈通)해야한다. 신통은 곧 영통이다. 본문 3절에 ‘시냇가’,‘시냇가에 심기우진 나무’→ 그랬더니 시절을 쫒아 과실 입사귀가 마르지 아니하는것(풍성) 이것들이 형통의 모습이다.
그런데 시편의 저자는 하나님을 → 마르지 아니하며 늘 물을 공급하는 시냇가로 성도를 → 시냇가에 심긴 나무 성도들의 삶의 풍성한 모습을 → 형통한 모습을 말한다. 나무인 성도가 풍성한 삶을 살 수 있고, 열매를 맺고, 마르지 아니하는 비결은 시냇가에 심기워 졌다는 것이다. 여기서 심기워졌다는 것이 → 통했다는것. 나무 뿌리와 물이 통했으니 늘 물을 공급받으므로 살아 있는 나무됨. 영인 우리 사람들은 영이 통해야 한다. 영중에서도 아무영이나 통해도 안된다. 마치 220을 110에 꽂으면 안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사람들은 하나님과 영통해야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이다.
그런데 하나님과 영통치 않고 다른것과 영통하면 고장이 나버린다. 왜 영통해야 하는가 모든것에는 근원이 있다. 수도물도 저수지, 만들어진 것도 근원이 있다. 이 근원과 연결될때에 부족함이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근원이다.
1생명의 근원이다(요14:6), 그분은 생사의 근원이 된다(삼상2장)→죽고 사는것이 하나님께 달 림. 더군다나 그 안에 영생이 있다. 이 분과 통하면 생명을 공급 받는다.
2복의 근원이시다(시16:2) 약1:17에서는 각양 좋은것들이 우리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온다. 그래서 시73:28에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했다. 하나님과 통해 있는 사람은 몇만 볼트의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소보다 더 큰 에너지원을 갖고 있는것이다. 창2장에서 아담이 하나님과 통했을때에 모습을 보라. 그곳이 곧 천국이다. 오늘 여러분이 하나님과 통하는 자들이 되기 바란다. 아무리 하나님이 능력이고, 생명이고, 힘이라고 해도 통하지 않으면 힘이 없다. 사람으로서는 그 하나님과 통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들에게 통할 수 있는 길이 있다
1예수를 믿는 것은 하나님과 통하는 통로가 된다(요14:6)→통하기만 하면 죄사함, 자녀, 영생, 하늘나라의 기업을 상속받는다.
2말씀은 하나님과 통하는 길이다 → 이 통로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고, 만나고, 보화를 발견 한다.
3기도는 하나님과 통하는 통로이다 → 무한한 에너지를 공급받는다(낙심했다가 기도하면 힘 이 통로를 통하여 통하면 엄청난 것을 공급받지만, 즉 형통케 되지만 그러나 통하지 않으면 답답해 진다. 만약에 통하는 감(感)을 느끼지 못하면 다음을 점검하라.
(1)끊겨있지나 않는지, 끊겨 있으면 안통한다(요15:4-5) 별짓 다해도 헛수고이다. → 선 부터 다시 이어야 한다(믿음을 점검해보라)→정말 내가 예수 를 구세주로 믿고 있는가
(2)중간에 다른것이 끼어 있으면 잘 통하지 않는다(마5:8) 하나님을 볼 수 있는자'마음이 청결한 자→세상의 것은 하나님과 통하는 것을 보이지 않도록, 통하지 않도록 하는 먼지와 같다. 이것이 있으면 잡음이 생기고, 아스가 일어난다.
2.신통하면 형통한다. 본문에서 형통의 모습은 → 시절을 따라 과실, 잎사귀 마르지 아니함 '이것은 심기워져 있을때 가능하다. 요삼1:2 영혼이 잘되면 범사, 강건 마6:33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모든것 영통하면 무엇이 형통하는가
(1)인통(人通)한다. 사람과 사람관계가 원망하고 좋다. 행,불행의 모든것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일어남.
그러므로 사람들이 하나님과 영통해서 충만해지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잘된다. 미움이 가득한 사람일찌라도 하나님으로 부터 은혜 받으면 사랑의 마음으로 창45장의 하나님과 늘 영통했던 요셉(42:18) → 그를 팔았던 형제들이 미울수 있지만 사랑함 하므로 사람의 비유를 맞추기전에 하나님과 통하는 통로가 열리면 인통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라. 삼상18장에도 다윗과 요나단의 마음이 통했다(18:1) (삼상18:1)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니라
(2)물통(物通)한다. 물질과 물질이 들어 있는 환경을 정복, 다스린다. 여기서 ‘물통한다’는 것은 단순히 물질의 소유에 많고 적음이 아니다. 아무리 물질이 많아도 그것을 바르게 다스리지 못하면 그것은 물통한것이 아니다. 소유가 적든, 많던 상관없이 주어지넋에 만족하고 기뻐하는 것이다. 또 그것에 끌려 다니지 않고 다스린다. 행2:43-47에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하나님과 영통, 신통하니 물통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가 또 물통한다는 것은 단순히 물질과의 관계만이 아니다. 환경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않고, 그 상황에서도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는 자세가 형통의 모습이다. 창39장의 요셉은 →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려 갔지만 ‘형통한자’가 되었고(39:3) → 보디발의 아내 유혹을 뿌리치므로 감옥에 갇혔지만 ‘형통’했다(39:23) 왜 그런가 거기에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엿고, 요셉은 하나님을 늘 체험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받았기 때문에 그것이 곧 형통이었다. 장소가 어떠하든, 사건이 어더하든 늘 주님과 함께 살아가니 그것이 천국이고, 그것이 형통이 아닌가 여러분들도 이런 형통의 역사가 있기를 바란다. 영통하면 형통한다. 하나님과 통하면 사람과 통하고, 물질과, 환경을 통한다. 영인 우리 사람들은 영이 통해야 한다. 영중에서도 아무영이나 통해도 안된다. 마치 220을 110에 꽂으면 안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사람들은 하나님과 영통해야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이다.
그런데 하나님과 영통치 않고 다른것과 영통하면 고장이 나버린다. 왜 영통해야 하는가 모든것에는 근원이 있다. 수도물도 저수지, 만들어진 것도 근원이 있다. 이 근원과 연결될때에 부족함이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근원이다.
1생명의 근원이다(요14:6), 그분은 생사의 근원이 된다(삼상2장)→죽고 사는것이 하나님께 달 림. 더군다나 그 안에 영생이 있다. 이 분과 통하면 생명을 공급 받는다.
2복의 근원이시다(시16:2) 약1:17에서는 각양 좋은것들이 우리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온다. 그래서 시73:28에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했다. 하나님과 통해 있는 사람은 몇만 볼트의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소보다 더 큰 에너지원을 갖고 있는것이다. 창2장에서 아담이 하나님과 통했을때에 모습을 보라. 그곳이 곧 천국이다. 오늘 여러분이 하나님과 통하는 자들이 되기 바란다. 아무리 하나님이 능력이고, 생명이고, 힘이라고 해도 통하지 않으면 힘이 없다. 사람으로서는 그 하나님과 통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들에게 통할 수 있는 길이 있다
1예수를 믿는 것은 하나님과 통하는 통로가 된다(요14:6)→통하기만 하면 죄사함, 자녀, 영생, 하늘나라의 기업을 상속받는다.
2말씀은 하나님과 통하는 길이다 → 이 통로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고, 만나고, 보화를 발견 한다.
3기도는 하나님과 통하는 통로이다 → 무한한 에너지를 공급받는다(낙심했다가 기도하면 힘 이 통로를 통하여 통하면 엄청난 것을 공급받지만, 즉 형통케 되지만 그러나 통하지 않으면 답답해 진다. 만약에 통하는 감(感)을 느끼지 못하면 다음을 점검하라.
(1)끊겨있지나 않는지, 끊겨 있으면 안통한다(요15:4-5) 별짓 다해도 헛수고이다. → 선 부터 다시 이어야 한다(믿음을 점검해보라)→정말 내가 예수 를 구세주로 믿고 있는가
(2)중간에 다른것이 끼어 있으면 잘 통하지 않는다(마5:8) 하나님을 볼 수 있는자'마음이 청결한 자→세상의 것은 하나님과 통하는 것을 보이지 않도록, 통하지 않도록 하는 먼지와 같다. 이것이 있으면 잡음이 생기고, 아스가 일어난다.
2.신통하면 형통한다. 본문에서 형통의 모습은 → 시절을 따라 과실, 잎사귀 마르지 아니함 '이것은 심기워져 있을때 가능하다. 요삼1:2 영혼이 잘되면 범사, 강건 마6:33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모든것 영통하면 무엇이 형통하는가
(1)인통(人通)한다. 사람과 사람관계가 원망하고 좋다. 행,불행의 모든것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일어남.
그러므로 사람들이 하나님과 영통해서 충만해지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잘된다. 미움이 가득한 사람일찌라도 하나님으로 부터 은혜 받으면 사랑의 마음으로 창45장의 하나님과 늘 영통했던 요셉(42:18) → 그를 팔았던 형제들이 미울수 있지만 사랑함 하므로 사람의 비유를 맞추기전에 하나님과 통하는 통로가 열리면 인통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라. 삼상18장에도 다윗과 요나단의 마음이 통했다(18:1) (삼상18:1)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니라
(2)물통(物通)한다. 물질과 물질이 들어 있는 환경을 정복, 다스린다. 여기서 ‘물통한다’는 것은 단순히 물질의 소유에 많고 적음이 아니다. 아무리 물질이 많아도 그것을 바르게 다스리지 못하면 그것은 물통한것이 아니다. 소유가 적든, 많던 상관없이 주어지넋에 만족하고 기뻐하는 것이다. 또 그것에 끌려 다니지 않고 다스린다. 행2:43-47에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하나님과 영통, 신통하니 물통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가 또 물통한다는 것은 단순히 물질과의 관계만이 아니다. 환경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않고, 그 상황에서도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는 자세가 형통의 모습이다. 창39장의 요셉은 →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려 갔지만 ‘형통한자’가 되었고(39:3) → 보디발의 아내 유혹을 뿌리치므로 감옥에 갇혔지만 ‘형통’했다(39:23) 왜 그런가 거기에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엿고, 요셉은 하나님을 늘 체험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받았기 때문에 그것이 곧 형통이었다. 장소가 어떠하든, 사건이 어더하든 늘 주님과 함께 살아가니 그것이 천국이고, 그것이 형통이 아닌가 여러분들도 이런 형통의 역사가 있기를 바란다. 영통하면 형통한다. 하나님과 통하면 사람과 통하고, 물질과, 환경을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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