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한 사람 (엡4:13-16)
본문
우리는 흔히 예수 믿는 것을 일컬어서 ‘영적인 탄생’,‘새 생명을 얻은자’,‘새롭게 태어난자’‘거듭난자’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비록 육신적인 나이는 많이 되었지만 느지막히 예수믿은 사람들을 영적인 갓난아기라고 말합니다. 이 태어남은 곧 죄 사함을 받음을 말함이요, 하나님의 자녀가 됨을 말함이요, 천국의 백성이 된 것을 말함이요, 영생을 얻은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들은 거듭나셨습니까 축하할 일입니다.
그런데 태어났다고 다 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 읽었던 성경은 무엇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15절‘자랄지라’ (벧후 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태어났으면 그 다음에 자라야 합니다.
1.자라야 합니다. 사람이 사람 구실을 하려면 성장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으로서 누릴 것을 누리고 살게 됩니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그 사람의 정신이, 인격이 자라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그 사람이 누려야 할 것을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맨날 갓난아이가 되어서 먹여주고, 입혀주고, 닦아 주어야 합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믿은지 오래되고, 여러 직분을 가지고 있고,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아는 것이 많아도 자라지 않으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하나님이 주시는 천국을 누리지 못하고 맨날 어린 아이와 같이 지내야 합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어린아이와 장성한 사람의 차이점을 밝히면서 장성한 사람이 될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어리다는 것, 장성하게 된다는 것은 키나 나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영적인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예수 믿은 우리 성도들은 자라야 합니다. 나이는 50살인데 생각하는 것이 3살짜리 정도밖에 안되면 참 답답한 일입니다. 교회 다닌지는 오래 되었는데 아직 성도구실을 하지 못하고, 제직이 제직 구실을 하지 못한다면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자랄지라’라고 말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라야 합니다.
2.왜 성장해야 하는가 (성장의 필요성)
1믿음은 생명이기 때문이다. 생명체의 특징은 성장이다. 동물, 식물, 모든 생물체는 자란다. 자라지 않으면 죽었거나 병든 것이다. 우리의 믿음도 생명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새 생명이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이 안 자라면 죽은 믿음이든지 병든 믿음이 된다. 십년을믿어도 똑같든지 아니 퇴보하고 있다면 크게 병든 것이다.
2믿음의 사람 노릇하기 위해서다. 어린이도 사람임에도 틀림없다. 그러나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한다. 어린 나무도 나무다. 그러나 열매를 맺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처음 믿는 사람도 구원받는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답게 살지 못한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것도 바로 믿음이 성장치 못한 사람들 때문이다. 믿음이 성장지못하면 믿음의사람 노릇을 하지 못한다. 믿음의 사람 노릇만 못할 뿐 아니라 축복된 삶을 살지 못합니다. 자라면 열매를 따먹습니다.
3세상풍조와 유혹에 빠지지 않는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이다. 어린 아이의 특징은 유혹에 잘 넘어가는 것이다.(14절) 우리가 믿음이 어린아이로계속 있게 되면 사람의 궤술과 세상풍조와 유혹에 밀려 믿음이 흔들리게 된다. 맨날 손해봅니다. 영원을 손해보게 됩니다.
3.어느정도까지 자라야 하는가 (성장의 표준) 사람은 어느정도까지만 자라도 어른 취급을 받고 또 사람노릇도 한다. 그럼 믿음은 어느정도까지 자라야 하는가 15절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그리스도시라" (마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우리의 성장 표준은 예수님이시다. 모든 일에 곧 말이나 행동이나 범사에 예수님만큼 자라야 한다. 우리는 평생을 성장해도 주님만큼 자랄 수 없다.
그러므로 이 말은 곧 우리가 평생 성장해야 한다는 뜻이다. 믿음은 계속 자라야 한다. 몇 년 성장했다고 자만치 말고 중단치 말고 계속 죽는날까지 성장해야 한다.
4.어떻게 해야 바르게 성장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성장의 방법)
1어린아이의 일을 버려야 합니다. (고전 13: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 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어린아이의 일을 버려야 합니다. 어린아이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고전 3: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고전 3:3)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 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고전 3:4)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어린아이는, 시기와 분쟁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말씀에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니파,내파,양파,대파하고 싸웁니다. 우리 애들을 보니까 맨날 싸웁니다. 조그만한 것-별 것 아닌 것 가지고 싸웁니다. 얼마나 시기가 많은지 모릅니다. 심지어 헤림이가 교통사고나서 조금 신경을 써니까 그것마저 시기를 합니다. 우리가 믿음생활을 하면서 시기가 있다는 것은 아직 어린아이라는 것입니다. 싸운다는 것은 아직 어린아입니다. 사람을 따라 행합니다. 애들 보세요. 애들은 어른들이 가르칩니다. 애들은 어른을 따라 합니다.
그런데 좋은 것을 잘 안따라하고 안좋은 것은 어떻게 잘따라 하는지 모릅니다. 어린성도는 좋은 것은 안따라하고 좋지 않는 것을 잘 따라합니다. 이기적입니다. 남을 생각하거나 배려할줄 모릅니다. 오직 자기입니다. 남 조금 생각해주는 것을 꼴을 못봅니다. 오직 나만, 나를 위해달라고 합니다. 오늘 읽었던 분에보면 어린아이의 모습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합니까(14절)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애들이 어른들이 꼬시면 쉽게 넘어갑니다. 그래서 유괴를 하고, 당합니다. 지난번 결혼예식이 있어서 토요일 가야 하는데 일찍가야 하는데 이 녀석들이 학교를 안가고 결혼식을 가겠다고 전날부터 떼를 씁니다. 당일날 아침에도 고집을 피우길래 살살 꼬셨습니다. 결혼식 가봐야 무슨 재지있냐, 돈줄테니 수영장가라고 했더니 그렇게 떼를 쓰다가 결국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아직 성숙지 않는 어린아이의 신앙의 사람들은 누가 하는 말에 잘 넘어갑니다. 좋은데 넘어가면 좋은데 좋지 않는 말에 얼마나 잘 넘어가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교회안에 말이 많이 생기는 이유, 시험에 많이 드는 이유, 더군다나 목사에게 시험을 많이 드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내가 보고, 느낀 것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니까 그 사람도 그렇게 여깁니다. 초지 일관할줄도 모릅니다. 어느 집에 가서 4살난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아빠가 좋으니, 엄마가 좋으니’ 약아 빠진 어른 같으면 ‘둘다 좋아’라고 하겠지만, 그 아이는 ‘아빠가 좋아’라고 했다가 엄마얼굴을 보고 ‘엄마가 좋아’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아빠의 눈치를 살피더니 잽싸게 ‘아빠가 좋아’라고 합니다. 그러기를 몇차레 하다가 ‘둘다 좋아’라고 합니다. 어린아이의 신앙은 초지일관을 할줄 모릅니다. 이리 흔들려거렸다, 저리 흔들거렸다합니다. 이랬다, 저랬다 합니다. 좀 지긋히 기다릴줄 알아야 하고, 한번했으면 끝장을 보아야 하는데 하다가 조금 안된다고 포기해버리고, 간둬버립니다. 그러니 무슨 성장이 있겠습니까 나무를 보세요. 심었으면 좀 기다릴줄 알아야 하는데 안큰다고 뽑아서 다른데 심고, 또 그렇게 한다면 성장할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장성한 분량에 까지 자랄려면 ‘어린아의 일을 버려야 한다’라고 합니다. 어른과 어린아이는 사용하는 말도 다르고 말투도 다릅니다(왕따-최고로 따돌림을 받는 것, 중딩,고딩) 지각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도 같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키도, 몸무게도, 목소리도, 피부도 같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아이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면 이것은 정상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30살 먹은 청년이 우유병에 우유를 넣어 침대에 드러누운채로 젖꼭지를 빨면서 점심식사를 한다든지, 장가가 아들낳아 사는 남자가 엄마를 부르며 치맛자락을 붙들고 맴돈다든지, 50살난 사람이 날이면 날마다 여의도 광장에 나가 팽이나 치고, 딱지치기나 한다면 비정상적인 것입니다. 이제 다 큰 사람이 맨날 밥이나 떠먹여 달라고 하고, 똥구멍이나 닦에 달라고 하면 얼마나 꼴볼견입니까 바울은 자성한 후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다고 했습니다. 버려야 하고, 버려야 당연합니다.
그런데도 참 안타까운 것은 아직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나이는 많이 먹었는데 아직도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지 못하고, 본문 말씀처럼 ‘어린 아이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아직도 그 모양으로 있습니까 자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어린아이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장성한 분량에 이러러야 합니다.
2생명이 있어야 자랍니다. 왜 성장하지 못합니까 우리 안에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무엇입니까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일 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예수는 우리의 생명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생명인 예수가 있다면우리의 신앙은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우리 안에 생명되시는 예수가 없다면 성장할 수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생명이 없는데 어떻게 성장할 수있다는 말입니까 교회를 오래 다녔다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흔히들 당신은 얼마동안 신앙생활을 했습니까 하고 물으면예, 저는 10년동안열심히 믿었습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10년동안 열심히 믿었다고 말하는 것은교회의 예배에 열심히 출석하였고 교회에서 여러가지 활동을 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배에 열심히 출석하고 교회활동을 했다는 것과 영원한 생명이 그 영혼 속에 있다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여러분이 부모님을 따라 교회생활을 했든지, 아니면 그동안 아내를 따라, 혹은 친구를 따라 교회생활을 했든지여러분의 가슴 속에 영원한 생명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다시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거듭난자라는 확신이 없다면 성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경은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습니까 (골 2: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3병들어 있으면 자라지 못합니다. 또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장하지 못하는 것은 어딘가 병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속에 질병을 가진 아이는 육체적으로 잘 성장하지 못합니다. 저는 신학대학다닐 때 일산에 있는 홀트아동복지에서 약2년간 자원봉사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정상적인 아이들은 별로 없습니다. 거의다 정상치 못한 아이인데 나이는 17,8살이 되는데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이 4,5살정도의 아이들을 보았습니다. 병들었기 때문에 제대로 성장을 하지 못한것입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우리 속에영적인 지병이 있다면, 그것을 해결하기 전에는 성장할 수없습니다. 그 영적인 지병은 우리의 가슴을어둡게하는 어떤 심각한 고민이나 문제일 수도 있고,술이나 담배 처럼 먹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적인 쾌락이나 좋지못한습관, 취미생활 일수도 있고, 원만하지 못한 인간관계 일수도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제가 말하는 것은 신앙성장의 차원이지 구원의차원이 아닙니다. 무슨말입니까 그런것들 때문에 구원받지 못한다는 이야기가아니라 그러한 요인들 때문에 신앙이 성장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4제대로 먹지 않으면 성장하지 못합니다. 요즘 애들 커는 것을 보면 무섭습니다. 옛날 같지 않아가지고 잘먹으니까 부모의 영향도 있지만 잘먹으니 쑥쑥 큽니다. 저도 우리 애들이 걱정입니다. 부모가 커서 대강먹어도 크면 좋으려면만, 별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잘 먹어야 하는데 먹지 않습니다. 먹는데도 맛있게 먹지를 않습니다. 숫가락, 젖가락을 들고 이리뒤적, 저리뒤적 거립니다. 그러니 맨날 밥상앞에서 전쟁을 합니다. 맛있게 많이 먹어도 클까 말까한데 먹지도 않죠 맛있게도 안먹죠 영적인 성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영혼의 양식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영혼의 양식이 말씀이라는 것은 우리가 말씀을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먹지 않아요. 먹기는 먹지만 일주일에 한두번 정도 먹어서는 안됩니다. 육의 양식도 하루에 세끼를 꼬박 찾아 먹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루도 그러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그것도 아주 맛있게 먹어야 합니다. 먹으면서 맛있게 먹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멘, 아멘 하고 받아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앉아서 반찬이 이러니, 저러니, 밥이 왜 이 모양이야 하고 투덜되면서 억지로, 마지못해서 먹으면 그것이 살이 될리 없고, 피가 될리 없습니다. 여러분! 영적으로 장성한 분량에 자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말씀을 먹읍시다. 그것도 맛있게 먹읍시다. 5적당한 운동을 해야 균형있게 성장을 합니다. 여러분 성장을 하더라도 아무렇게나 성장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늘 본문 13절 말씀을 다시한번 같이 보겠습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성장의 모습은 그리스도의 장성한분량이 충만한데까지입니다. 우리는 성장해야 하되아무렇게나 그저 되는대로 성장해서는 안됩니다. 요즈음 어린이나 청소년들 가운데 과다한영향 섭취로 인하여 신체적으로 비만한 어린이들이 많습니다. 몸집은 키도 크고 어른만한데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머리는 큰데 몸은 적다든지, 몸은 큰데 머리는 작다든지, 체격이 비정상적으로 크다든지 하면서 키는 크고, 나이는 있지만 그 모습이 아름답지 못합니다. 얼마나 우수꽝스러운 모습입니까 신앙적으로도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모든 면에 골고루 성장해야합니다. 성도들 가운데는 지적인면만을 강조한 나머지 정적인면에서는 제대로 계발되지 않아서 차거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뜨겁게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면서저 집사님은 뭘 그렇게 열정적으로 신앙생활하는가 꼭 그렇게 믿어야 천국에가는가 라고 말합니다. 사실성경을 지식적으로 많이 알고 있다고해서 성숙한 것은 아닙니다. 또 어떤 사람은 가슴만뜨거운 사람이 있습니다. 팔팔 끓어서 뒹구는데 말씀에 대한지식을 겸비하지 못하여 종종 엉뚱한 모습이나타납니다. 이것도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또 어떤 사람은 봉사만 열심히 합니다. 그저 열심히 뛰기만 하는 겁니다. 뭐든지 손발 가고 몸 가는 데는 다 앞장섭니다.
그런데도 말씀 배우고 기도하는 데는 별다른 관심이 없습니다. 이것도 기형적인 신앙의모 습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머리만 커도 안되고 가슴만 뜨거워도 안됩니다. 모든 면에서골고루 성장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골고루, 온전한 성장이 되어지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운동을 해야 합니다. 신앙적인 운동이 무엇입니까 바로 기도하는 일이요, 봉사하는 일이요, 전도하는 일입니다. 이 운동을 하면, 건강도 좋아지고, 밥맛도 좋아집니다. 말씀이 꿀송이 같습니다. 영혼이 그렇게 불쌍히 여겨집니다.
그런데 운동을 하지 않으니 먹은 것이 아직도 내 속에 있으니 밥맛도 없고, 몸도 건강치 못합니다. 6가정과 부모의 돌봄이 있어야 합니다. 생명체는 좋은 환경에서 건강하게 자란다. 사람은 가정이 필요하다. 가정을 떠나올바른 성장을 할 수 없다. 영적인 가정은 바로 교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생활은 철저하게 교회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내 가정에 영향을 먹어야 합니다. 또 부모의 간섭을 받아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부모는 지도자를 말합니다. 목사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지도자에게 도움을 구하고, 묻고, 지도함을 받아야 제대로 자라게 됩니다. 애들 보십시오. 내가 다 아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뭐라고 해도 부모를 능가할 수 없습니다. 성도들도 내가 아는 것이 다인 것 같고, 내가 생각하고 결정한 것이 바른 것 같지만 영적인 지도자에게 물어보고, 도움을 구하고, 그 부모의 간섭함을 받아야 합니다. 7믿는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13절) 여기서 말하는 ‘믿는것’은 믿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말씀을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아는것’은 단순한 지식적인 앎이 아니라 ‘체험적인 앎,경험적인 앎’을 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믿는 믿음을 순종하지 않으면 자라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믿음만 가지고 있으면 자라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 믿음을 행할 때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약 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우리가 믿는바를 행할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보십시오. 모든 역사는 믿고 행할 때에 일어났습니다. 성도여러분! 날마다 순간 순간마다 성장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제 보다는 오늘이, 지난달 보다는 이번 달이, 작년 보다는금년이, 이렇게 해가 가면 갈수록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게 성장하는 여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태어났다고 다 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 읽었던 성경은 무엇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15절‘자랄지라’ (벧후 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태어났으면 그 다음에 자라야 합니다.
1.자라야 합니다. 사람이 사람 구실을 하려면 성장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으로서 누릴 것을 누리고 살게 됩니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그 사람의 정신이, 인격이 자라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그 사람이 누려야 할 것을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맨날 갓난아이가 되어서 먹여주고, 입혀주고, 닦아 주어야 합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믿은지 오래되고, 여러 직분을 가지고 있고,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아는 것이 많아도 자라지 않으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하나님이 주시는 천국을 누리지 못하고 맨날 어린 아이와 같이 지내야 합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어린아이와 장성한 사람의 차이점을 밝히면서 장성한 사람이 될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어리다는 것, 장성하게 된다는 것은 키나 나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영적인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예수 믿은 우리 성도들은 자라야 합니다. 나이는 50살인데 생각하는 것이 3살짜리 정도밖에 안되면 참 답답한 일입니다. 교회 다닌지는 오래 되었는데 아직 성도구실을 하지 못하고, 제직이 제직 구실을 하지 못한다면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자랄지라’라고 말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라야 합니다.
2.왜 성장해야 하는가 (성장의 필요성)
1믿음은 생명이기 때문이다. 생명체의 특징은 성장이다. 동물, 식물, 모든 생물체는 자란다. 자라지 않으면 죽었거나 병든 것이다. 우리의 믿음도 생명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새 생명이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이 안 자라면 죽은 믿음이든지 병든 믿음이 된다. 십년을믿어도 똑같든지 아니 퇴보하고 있다면 크게 병든 것이다.
2믿음의 사람 노릇하기 위해서다. 어린이도 사람임에도 틀림없다. 그러나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한다. 어린 나무도 나무다. 그러나 열매를 맺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처음 믿는 사람도 구원받는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답게 살지 못한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것도 바로 믿음이 성장치 못한 사람들 때문이다. 믿음이 성장지못하면 믿음의사람 노릇을 하지 못한다. 믿음의 사람 노릇만 못할 뿐 아니라 축복된 삶을 살지 못합니다. 자라면 열매를 따먹습니다.
3세상풍조와 유혹에 빠지지 않는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이다. 어린 아이의 특징은 유혹에 잘 넘어가는 것이다.(14절) 우리가 믿음이 어린아이로계속 있게 되면 사람의 궤술과 세상풍조와 유혹에 밀려 믿음이 흔들리게 된다. 맨날 손해봅니다. 영원을 손해보게 됩니다.
3.어느정도까지 자라야 하는가 (성장의 표준) 사람은 어느정도까지만 자라도 어른 취급을 받고 또 사람노릇도 한다. 그럼 믿음은 어느정도까지 자라야 하는가 15절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그리스도시라" (마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우리의 성장 표준은 예수님이시다. 모든 일에 곧 말이나 행동이나 범사에 예수님만큼 자라야 한다. 우리는 평생을 성장해도 주님만큼 자랄 수 없다.
그러므로 이 말은 곧 우리가 평생 성장해야 한다는 뜻이다. 믿음은 계속 자라야 한다. 몇 년 성장했다고 자만치 말고 중단치 말고 계속 죽는날까지 성장해야 한다.
4.어떻게 해야 바르게 성장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성장의 방법)
1어린아이의 일을 버려야 합니다. (고전 13: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 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어린아이의 일을 버려야 합니다. 어린아이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고전 3: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고전 3:3)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 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고전 3:4)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어린아이는, 시기와 분쟁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말씀에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니파,내파,양파,대파하고 싸웁니다. 우리 애들을 보니까 맨날 싸웁니다. 조그만한 것-별 것 아닌 것 가지고 싸웁니다. 얼마나 시기가 많은지 모릅니다. 심지어 헤림이가 교통사고나서 조금 신경을 써니까 그것마저 시기를 합니다. 우리가 믿음생활을 하면서 시기가 있다는 것은 아직 어린아이라는 것입니다. 싸운다는 것은 아직 어린아입니다. 사람을 따라 행합니다. 애들 보세요. 애들은 어른들이 가르칩니다. 애들은 어른을 따라 합니다.
그런데 좋은 것을 잘 안따라하고 안좋은 것은 어떻게 잘따라 하는지 모릅니다. 어린성도는 좋은 것은 안따라하고 좋지 않는 것을 잘 따라합니다. 이기적입니다. 남을 생각하거나 배려할줄 모릅니다. 오직 자기입니다. 남 조금 생각해주는 것을 꼴을 못봅니다. 오직 나만, 나를 위해달라고 합니다. 오늘 읽었던 분에보면 어린아이의 모습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합니까(14절)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애들이 어른들이 꼬시면 쉽게 넘어갑니다. 그래서 유괴를 하고, 당합니다. 지난번 결혼예식이 있어서 토요일 가야 하는데 일찍가야 하는데 이 녀석들이 학교를 안가고 결혼식을 가겠다고 전날부터 떼를 씁니다. 당일날 아침에도 고집을 피우길래 살살 꼬셨습니다. 결혼식 가봐야 무슨 재지있냐, 돈줄테니 수영장가라고 했더니 그렇게 떼를 쓰다가 결국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아직 성숙지 않는 어린아이의 신앙의 사람들은 누가 하는 말에 잘 넘어갑니다. 좋은데 넘어가면 좋은데 좋지 않는 말에 얼마나 잘 넘어가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교회안에 말이 많이 생기는 이유, 시험에 많이 드는 이유, 더군다나 목사에게 시험을 많이 드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내가 보고, 느낀 것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니까 그 사람도 그렇게 여깁니다. 초지 일관할줄도 모릅니다. 어느 집에 가서 4살난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아빠가 좋으니, 엄마가 좋으니’ 약아 빠진 어른 같으면 ‘둘다 좋아’라고 하겠지만, 그 아이는 ‘아빠가 좋아’라고 했다가 엄마얼굴을 보고 ‘엄마가 좋아’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아빠의 눈치를 살피더니 잽싸게 ‘아빠가 좋아’라고 합니다. 그러기를 몇차레 하다가 ‘둘다 좋아’라고 합니다. 어린아이의 신앙은 초지일관을 할줄 모릅니다. 이리 흔들려거렸다, 저리 흔들거렸다합니다. 이랬다, 저랬다 합니다. 좀 지긋히 기다릴줄 알아야 하고, 한번했으면 끝장을 보아야 하는데 하다가 조금 안된다고 포기해버리고, 간둬버립니다. 그러니 무슨 성장이 있겠습니까 나무를 보세요. 심었으면 좀 기다릴줄 알아야 하는데 안큰다고 뽑아서 다른데 심고, 또 그렇게 한다면 성장할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장성한 분량에 까지 자랄려면 ‘어린아의 일을 버려야 한다’라고 합니다. 어른과 어린아이는 사용하는 말도 다르고 말투도 다릅니다(왕따-최고로 따돌림을 받는 것, 중딩,고딩) 지각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도 같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키도, 몸무게도, 목소리도, 피부도 같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아이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면 이것은 정상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30살 먹은 청년이 우유병에 우유를 넣어 침대에 드러누운채로 젖꼭지를 빨면서 점심식사를 한다든지, 장가가 아들낳아 사는 남자가 엄마를 부르며 치맛자락을 붙들고 맴돈다든지, 50살난 사람이 날이면 날마다 여의도 광장에 나가 팽이나 치고, 딱지치기나 한다면 비정상적인 것입니다. 이제 다 큰 사람이 맨날 밥이나 떠먹여 달라고 하고, 똥구멍이나 닦에 달라고 하면 얼마나 꼴볼견입니까 바울은 자성한 후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다고 했습니다. 버려야 하고, 버려야 당연합니다.
그런데도 참 안타까운 것은 아직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나이는 많이 먹었는데 아직도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지 못하고, 본문 말씀처럼 ‘어린 아이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아직도 그 모양으로 있습니까 자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어린아이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장성한 분량에 이러러야 합니다.
2생명이 있어야 자랍니다. 왜 성장하지 못합니까 우리 안에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무엇입니까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일 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예수는 우리의 생명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생명인 예수가 있다면우리의 신앙은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우리 안에 생명되시는 예수가 없다면 성장할 수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생명이 없는데 어떻게 성장할 수있다는 말입니까 교회를 오래 다녔다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흔히들 당신은 얼마동안 신앙생활을 했습니까 하고 물으면예, 저는 10년동안열심히 믿었습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10년동안 열심히 믿었다고 말하는 것은교회의 예배에 열심히 출석하였고 교회에서 여러가지 활동을 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배에 열심히 출석하고 교회활동을 했다는 것과 영원한 생명이 그 영혼 속에 있다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여러분이 부모님을 따라 교회생활을 했든지, 아니면 그동안 아내를 따라, 혹은 친구를 따라 교회생활을 했든지여러분의 가슴 속에 영원한 생명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다시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거듭난자라는 확신이 없다면 성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경은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습니까 (골 2: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3병들어 있으면 자라지 못합니다. 또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장하지 못하는 것은 어딘가 병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속에 질병을 가진 아이는 육체적으로 잘 성장하지 못합니다. 저는 신학대학다닐 때 일산에 있는 홀트아동복지에서 약2년간 자원봉사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정상적인 아이들은 별로 없습니다. 거의다 정상치 못한 아이인데 나이는 17,8살이 되는데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이 4,5살정도의 아이들을 보았습니다. 병들었기 때문에 제대로 성장을 하지 못한것입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우리 속에영적인 지병이 있다면, 그것을 해결하기 전에는 성장할 수없습니다. 그 영적인 지병은 우리의 가슴을어둡게하는 어떤 심각한 고민이나 문제일 수도 있고,술이나 담배 처럼 먹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적인 쾌락이나 좋지못한습관, 취미생활 일수도 있고, 원만하지 못한 인간관계 일수도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제가 말하는 것은 신앙성장의 차원이지 구원의차원이 아닙니다. 무슨말입니까 그런것들 때문에 구원받지 못한다는 이야기가아니라 그러한 요인들 때문에 신앙이 성장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4제대로 먹지 않으면 성장하지 못합니다. 요즘 애들 커는 것을 보면 무섭습니다. 옛날 같지 않아가지고 잘먹으니까 부모의 영향도 있지만 잘먹으니 쑥쑥 큽니다. 저도 우리 애들이 걱정입니다. 부모가 커서 대강먹어도 크면 좋으려면만, 별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잘 먹어야 하는데 먹지 않습니다. 먹는데도 맛있게 먹지를 않습니다. 숫가락, 젖가락을 들고 이리뒤적, 저리뒤적 거립니다. 그러니 맨날 밥상앞에서 전쟁을 합니다. 맛있게 많이 먹어도 클까 말까한데 먹지도 않죠 맛있게도 안먹죠 영적인 성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영혼의 양식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영혼의 양식이 말씀이라는 것은 우리가 말씀을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먹지 않아요. 먹기는 먹지만 일주일에 한두번 정도 먹어서는 안됩니다. 육의 양식도 하루에 세끼를 꼬박 찾아 먹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루도 그러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그것도 아주 맛있게 먹어야 합니다. 먹으면서 맛있게 먹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멘, 아멘 하고 받아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앉아서 반찬이 이러니, 저러니, 밥이 왜 이 모양이야 하고 투덜되면서 억지로, 마지못해서 먹으면 그것이 살이 될리 없고, 피가 될리 없습니다. 여러분! 영적으로 장성한 분량에 자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말씀을 먹읍시다. 그것도 맛있게 먹읍시다. 5적당한 운동을 해야 균형있게 성장을 합니다. 여러분 성장을 하더라도 아무렇게나 성장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늘 본문 13절 말씀을 다시한번 같이 보겠습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성장의 모습은 그리스도의 장성한분량이 충만한데까지입니다. 우리는 성장해야 하되아무렇게나 그저 되는대로 성장해서는 안됩니다. 요즈음 어린이나 청소년들 가운데 과다한영향 섭취로 인하여 신체적으로 비만한 어린이들이 많습니다. 몸집은 키도 크고 어른만한데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머리는 큰데 몸은 적다든지, 몸은 큰데 머리는 작다든지, 체격이 비정상적으로 크다든지 하면서 키는 크고, 나이는 있지만 그 모습이 아름답지 못합니다. 얼마나 우수꽝스러운 모습입니까 신앙적으로도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모든 면에 골고루 성장해야합니다. 성도들 가운데는 지적인면만을 강조한 나머지 정적인면에서는 제대로 계발되지 않아서 차거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뜨겁게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면서저 집사님은 뭘 그렇게 열정적으로 신앙생활하는가 꼭 그렇게 믿어야 천국에가는가 라고 말합니다. 사실성경을 지식적으로 많이 알고 있다고해서 성숙한 것은 아닙니다. 또 어떤 사람은 가슴만뜨거운 사람이 있습니다. 팔팔 끓어서 뒹구는데 말씀에 대한지식을 겸비하지 못하여 종종 엉뚱한 모습이나타납니다. 이것도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또 어떤 사람은 봉사만 열심히 합니다. 그저 열심히 뛰기만 하는 겁니다. 뭐든지 손발 가고 몸 가는 데는 다 앞장섭니다.
그런데도 말씀 배우고 기도하는 데는 별다른 관심이 없습니다. 이것도 기형적인 신앙의모 습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머리만 커도 안되고 가슴만 뜨거워도 안됩니다. 모든 면에서골고루 성장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골고루, 온전한 성장이 되어지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운동을 해야 합니다. 신앙적인 운동이 무엇입니까 바로 기도하는 일이요, 봉사하는 일이요, 전도하는 일입니다. 이 운동을 하면, 건강도 좋아지고, 밥맛도 좋아집니다. 말씀이 꿀송이 같습니다. 영혼이 그렇게 불쌍히 여겨집니다.
그런데 운동을 하지 않으니 먹은 것이 아직도 내 속에 있으니 밥맛도 없고, 몸도 건강치 못합니다. 6가정과 부모의 돌봄이 있어야 합니다. 생명체는 좋은 환경에서 건강하게 자란다. 사람은 가정이 필요하다. 가정을 떠나올바른 성장을 할 수 없다. 영적인 가정은 바로 교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생활은 철저하게 교회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내 가정에 영향을 먹어야 합니다. 또 부모의 간섭을 받아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부모는 지도자를 말합니다. 목사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지도자에게 도움을 구하고, 묻고, 지도함을 받아야 제대로 자라게 됩니다. 애들 보십시오. 내가 다 아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뭐라고 해도 부모를 능가할 수 없습니다. 성도들도 내가 아는 것이 다인 것 같고, 내가 생각하고 결정한 것이 바른 것 같지만 영적인 지도자에게 물어보고, 도움을 구하고, 그 부모의 간섭함을 받아야 합니다. 7믿는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13절) 여기서 말하는 ‘믿는것’은 믿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말씀을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아는것’은 단순한 지식적인 앎이 아니라 ‘체험적인 앎,경험적인 앎’을 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믿는 믿음을 순종하지 않으면 자라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믿음만 가지고 있으면 자라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 믿음을 행할 때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약 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우리가 믿는바를 행할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보십시오. 모든 역사는 믿고 행할 때에 일어났습니다. 성도여러분! 날마다 순간 순간마다 성장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제 보다는 오늘이, 지난달 보다는 이번 달이, 작년 보다는금년이, 이렇게 해가 가면 갈수록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게 성장하는 여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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