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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 (히11:33-40)

본문

본문 38절은 ‘이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정말 기뻐하시는 믿음의 사람이요, 우리 사람의 관점에서보면, 대단한 믿음의 사람들요, 멋있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요, 마귀 사탄의 관점에서 보면, 어떻게 해볼수 없는 무서운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어떻게 했기에 이들은 ‘감당치 못할 사람’들이 되었을까요
1.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감당치 못할 사람들입니다. 히11장을 믿음장이라고 합니다. 믿음으로 산 사람들의 모습이 쭉 열거 되고 있습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주님이나,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신뢰하고, 맡기는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이 일은 내 일이 아니고, 주님의 일이며, 주님께서 맡기신 것이며, 이 이 일을 통하여 주님을 기쁘시게하며, 내 영혼의 때를 부요하게 만드는 축복의 사건이라고 믿는 것을 믿음이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주님께서 어떤 사람들에게 역사를 일으키느냐 하면 이런 믿음의 사람들에게 역사를 일으킵니다. 백부장의 믿음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 소경 바디매오의 믿음 이렇게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을 주님께서는 기뻐하시고, 주님은 역사하시고, 우리 사람들도 참 부럽고, 은혜를 받으며, 마귀 사탄은 감히 어떻게 해보지 못합니다.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이 됩시다. 그럴려면 모든 것을 믿음으로 보고, 믿음으로 듣고, 믿음으로 행하여야 합니다. 믿음으로 보면 문제 될것이 없습니다. 다 그 속에서 은혜를 받습니다. 믿음으로 들어보세요. 다 내게 주시는 주님의 축복의 음성이 되어집니다. 믿음으로 일을 하면 그 자체가 감사요, 기쁨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2.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하여 덜 좋은 것을 희생하는 사람들을 감당치 못합니다. 오늘 본문 35절의 말씀에 의하면 더 좋은 부활을 얻기 위하여 그들이 당하는 육체적인 죽음을 무서워하거나, 그 죽음앞에 비굴해지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더 좋은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바로 하늘나라 영광, 주님이 주시는 신령한 축복입니다. 우리들은 어떠합니까 더 좋은 것은 고사하고, 지금 당장 좋다면 더 좋은 것은 그때 볼일이고 덜좋은 것을 먼저 붙드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남들 다 하는데로 하면서 언제 더 좋은 것을 얻겠으며, 남들 다 가는데 가서 언제 더 좋은 것을 얻겠으며, 남들 다 가지는데로 가져서 언제 더 좋은 것을 얻겠습니까 이들은 자기들의 것을 기꺼이 희생해서라도 더 좋은 부활의 영광,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을 누리겠다는 것입니다. 먹는 것 아껴서라도 조금덜 먹고 그것으로 더 좋은 것을 얻는데 사용하겠다는 것입니다. 어디 가고 싶은 것 가지 않고서라도 더 좋은 것을 위하여 기꺼이 투자하겠다는 것입니다. 무엇엔가 쓰야 하지만 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하여 쓰지 않고 주를 위하여 기꺼이 쓰임을 받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들입니다. 우리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어떤 이는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 교회를 세워 나감에 있어서 이런 축복의 역사하심을 이루어 나가기 위하여 기꺼이 손해보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많이 세워졌으면 좋겠습니다. 어떤이는 집도 판다는데, 어떤이는 전셋집도 맡긴다는데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설사 그렇게 하든 주님께서 우리에게 은혜 베푼 것을 생각한다면 사실 까짓것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도 이런 믿음의 삶을 살 때 어찌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겠으며, 많은 사람들의 부럼의 믿음이 안되겠으며, 어찌 마귀 사탄이 함부로 건드리겠는가 우리도 그런 믿음의 모습으로 세워졌으면 좋겠습니다(전화 가입비-145000원 반납해준다고 하니 그것 반납받아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워나감에 같이 힘을 좀 모아보자.
3.주의 나라 건설을 위하여 목숨까지 내 놓은 사람 정말 감당치 못할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노라면 이 사람들 참 무섭습니다. 어떤 악형을 받고, 회롱, 채찍, 결박, 옥에 갇힘, 돌레 맞음, 톱으로 켬을 당함, 양과 염소의 가죽을 뒤집어 쓰고 죽임을 당하면서도 이들은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런 죽음을 당하면서까지 믿음을 지켜 나가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세상이 어떤 사람들이 무섭습니까 죽기밖에 더 하겠는가 각오하고 덤벼드는 사람들이 제일 무섭다. 주님앞에 어떤 사람이 무섭습니까 바로 자기의 목숨을 주를 위해 살고자 바치는 사람들이 무서운 사람들입니다. 혹시나 손해볼까 혹시나 이러다가 내게 불리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염려하고, 근심하는 사람들은 주님앞에 크게 쓰임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주를 위해, 주님을 위해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을 가지고 믿음을 가지고 나아갈 때 감히 어느 누가 덤벼들겠으며, 그들이 무슨 일을 감당치 못하겠습니까 다니엘 보세요. 죽음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기도하다 잡혀 사자굴속에 들어가서 먹혀 죽는다면 그렇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세친구 보세요. 신상앞에 절하지 않아서 풀무불속에 들어간다고 해도 절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에스더 보십시오. 왕앞에 나아가 이스라엘을 건지는 일들을 말하려고 나아갈 때 죽으면 죽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덤벼드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역사가 엄청나게 일어났습니다. 마귀 사탄이 어찌 감히 덤벼 들겠습니까 우리 교회도 이런 사람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목사의 말이라면 생명까지도 내 놓겠다는 사람,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라면 내 집까지라도 내 놓겠다는 사람 주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 죽으면 죽으리라는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은, 하나님의 몸된 교회의 부흥은 이런 사람들이 있어야 되어집니다. 그렇게 함이 진짜 손해냐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도 그렇고, 역사상 그렇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더 큰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하심을 얻고 누리고 삽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렇지 않고 아까워서서 벌벌 떨고, 무서워하고, 혹시나 내것 잃어버리거나, 내가 불리해지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람들은 맨날 그모습입니다. 우리 주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내 놓고 한번 덤벼 들어봅시다. 주님의 교회를 세워 나감에 있어서 죽으면 죽으리라 생각하고 덤벼 들어 봅시다. 분명 하나님은 놀랍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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