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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자를 들어서 강하게 (고전1: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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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즘 저의 모습들과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비추어 보며 나 자신의 연약하고 부족한 모습으로 인하여 참 많이 실망했습니다. 실망 뿐 아니라 나보다 나은 사람, 잘 하는 사람, 잘 된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솔직히 기(氣)가 많이 죽었습니다. 남들은 잘 하는데 똑같은 밥을 먹고, 잠자고, 일하는데 그들은 되고, 그들은 하는데 나는 왜 안되고, 못하는지, 남들은 있는데, 가졌는데, 강한데 나는 왜 못 가지고, 못하고, 연약한지 말이다. 그러다 보니 힘도 생기지 않습니다. 용기도 없습니다. 걱정이 됩니다. 두렵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연약한 모습이 다른 사람으로 인하여 일어난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 안에 있는 모습 때문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을 바라보고, 나를 바라보고, 환경을 바라보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내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사람이 나를 보고, 내가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과연 나를 어떻게 보시며, 어떻게 여기시며, 어떻게 다루시는가를 알게 될 때에 내 부족함, 내 연약함, 내 무능함이 문제가 아님을 알수 있습니다. 오늘 저녁에 지금까지 저와 같은 마음으로 늘 짓눌려 왔던 분이 계시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큰 힘을 얻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고자 하는 음성이 무엇입니까
1.하나님의 방법과 인간의 방법이 어떠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1하나님의 방법과 계산은 인간의 방법과 계산과는 다릅니다. 성경을 읽어보노라면 (요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눅 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등 수많은 말씀들이 우리들의 생각과는 정 반대의 모습들을 이야기한다. 오늘 본문을 중심해서 보자.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에 사람을 써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떤 사람을 쓰는가 사람들은 지혜 있는 자를 씁니다. 능력이 많은 사람을 씁니다. 문벌이 좋은 사람을 씁니다. 한마디로 잘하는 자, 유능한 자, 실력 있는 자를 씁니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 보면 이런 조건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음을 발견합니다. 우리들은 이런 사람들의 틈에 끼어 믿음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비단 사람들이 어떤 일들을 하고자 할 때 실력있는자 뿐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 믿음 좋은 사람, 신앙의 뼈대가 있는 사람, 신앙의 연륜을 가진 사람, 말씀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 기도의 능한 사람 우리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이런 사람 옆에 서기가 두렵습니다. 기가 죽습니다. 또 이런 사람들이 대접을 받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늘 사람 앞에서나 하나님 앞에서 서럽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이 가까이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시 34: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 도다 주님은 죄인을 가까이 하십니다. 멸시당한자, 버림 받은 자들을 가까이 하십니다. 뿐 아니라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을 쓰십니까(27절) 하나님은 미련한자를 쓰신다는 것입니다. 미련한자란 어떤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까 둔한, 또는 어리석은(마치 꽉 막힌), 다르게 말하면 ‘부주의한’, (도덕적으로)얼간이, 불합리한(인것 같다), 바보(스러운, 스러움)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들을 쓰신다는 것이다. 저의 모습을 볼 때에 참 둔하다. 빨리 깨닫지 못하고 둔한 면이 있다. 약한 자를 쓰신다는 것입니다. ‘연하고 무른 사람’을 약한 사람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결단력이 없고, 지조가 없어 보이는 사람을 말한다. 약한 자란 말 그대로 힘이 없는 사람을 말한다. 무엇인가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할 수 없는 사람, 부족한 사람들이 바로 약한 사람입니다. 천한 사람, 멸시받는 사람, 없는 사람을 쓰십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나오는 네명의 여인중 3명의 여인들은 천한 사람, 멸시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말씀들을 보면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아 볼 때에 사실 그런 것 같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 어떤 이는 정말 배우고, 갖고, 능한 사람도 있지만 그러나 대부분이 미련하고, 약하고, 천하고, 멸시받고, 없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그의 제자로 살아간 사람들 중에 어리번쩍 한 사람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성경을 기록한 누가와 가말리엘 문하에서 학문을 연구한 바울 외에는 한결같이 미련하고, 약하고, 천하고, 멸시받고,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있고, 유능하고, 대단한 사람들을 무시하고 그들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인 이 무리를 보시는 주님의 관점은 우리 사람들이 보는 관점과 다르며, 우리 주님께서 그들을 향한 뜨거운 사랑의 마음을 우리가 읽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미련하십니까 약하십니까 천하십니까 멸시를 받는 자 이십니까 없습니까 무능합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과 저를 하나님은 자녀 삼으셨고, 그의 나라의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나를 세워 주셨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감사하십시오. 저는 이런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나보다도 유능하고, 잘 생기고, 실력 있고, 가지고 있고, 대단한 사람들이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같은 사람을 세워서 그의 나라의 일을 할 수 있도록 세워 주심이 이 것이 기적이요, 이것이 은혜가 아닙니까 이것은 비단 저만이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사람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나를 이런 자리에 세워 주신 주님을 생각하면서 우리들은 나의 나 된 것은 다 주님의 은혜요, 그러기에 감사하며, 그런 은혜를 알기에 할 수 없는 나를 할 수 있도록 세우신 주님 앞에 충성할 것밖에 우리가 할 일이 없는 줄 믿습니다. 더 나아가서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들을 우리 사람의 생각으로, 방법으로, 계산으로 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하나님은 사람의 계산을 뛰어 넘는 일을 하십니다. 사람의 방법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하십니다. 하므로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들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2하나님의 방법들은 인간에게 미련하게 보입니다(18절) 십자가의 도가 멸망 받을 사람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멸망을 받을 사람이란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도, 도(道)라는 것은 십자가로 인하여 죄 사함을 밭고 영생을 얻게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미련하게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미련하게 보인다는 말은 어찌 십자가가 사람들의 죄 문제를 해결하고, 영생을 얻게 하고, 천국을 얻게되며,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당연히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십자가는 미련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무엇이라 말합니까 21절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 보기에 미련한 방법들로 구원의 일들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과연 그것이 어떻게 될 수 있을까 그런 일이 일어 날 수 있을까 하는 것들로 인하여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십니다. 기도라는 것이 믿지 않는 사람, 체험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미련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기도를 통하여 그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십니다. 말씀 전하는 것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미련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하는 사람들의 입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역사를 하십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은 한결 같이 미련하게 보이는 것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것들을 통하여 구원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앞으로 하나님이 나에게, 우리 교회에 일을 이루어 나가시기를 원하실 때에 미련하게 보이는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 나는 일임을 믿고 순종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어찌 보면 신앙생활은 미련하게 해야 은혜를 받습니다. 이것제고, 저것제고, 이것 따지고, 저것 따져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차라리 미련 합시다. 그것이 우리가 구원받게되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2.왜 그럼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들어서 쓰실 까요 하나님이 미련해서, 하나님이 알지 못해서, 하나님이 바보라서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앞설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하늘과 땅과 땅 아래 하나님보다 능한 이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미련하고, 우둔하고, 약하고, 없고, 천하고, 멸시받는 사람들을 들어서 쓰실 까요 그렇지 않는 사람들을 쓰시면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1그것이 힘이라고 믿고 나가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려고 하십니다(27). 그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보다 더 강한 이가, 크 신이가, 능하신 이가 있음을 알게 하시기 위하여 그렇습니다.
2오직 하나님을 나의 힘을 삼고 나가기를 원하셔서 입니다(29절) 우리가 살길은 하나님밖에 없다. 우리가 잘 되는 길은 바로 하나님을 붙드는 길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소망을 두고 살 것은 이세상과 세상의 있는 것들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에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고, 믿고, 의지하는 자가 진정한 승리자가 되심을,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나타내시기 원하셔서 그렇습니다.
3.하므로 앞으로 우리들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고후12:7-10) 그 말씀은 바울에게 있는 육체의 가시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가시라는 것은 약한 것입니다. 없는 것입니다. 미련한 것들입니다. 멸시받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이 있을 때에,
1세번 간구합시다. 즉 그런 연약함을 놓고 하나님께 치료하시기를 구하십시오. 구하여야 합니다.
2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그대로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육체의 가시로 주셨구나 여기십 시오. 다시 말해 그 육체의 가시를 통하여 하나님은 나를 ㉮온전케 하시기를 원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통하여 내 안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게 하려 하심임을 아십시오. ㉰하나님은 그것을 통하여 나를 더 강하게 하시기 원하신다는 것을 아십시오. 실제로 그렇습니다. 히브리서 12장의 사건을 보십시오. 징계를 주심을 우리를 바로 세우기 원하셔서 그렇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연달한 자에게는 큰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집니다. 이것을 알 때에 실망하지 않습니다. 낙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도하게 되고, 소망을 갖게되고, 하나님 앞에 소망을 갖게 되어 집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문제 있으니까 기도하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 은혜 받고, 하나님을 만나는 일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내게 주어지는 모든 연약한 모습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 신앙을 키울 수 있는 기회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을 수 있는 찬스입니다. 하므로 축복의 기회로 삼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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