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붙이는 사람이되자 (말1:1-5)
본문
오늘은 말라기 1장1절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불을 붙이는 사람들이 되자는 말씀을 증거하고자 합니다. 이 1절 한절 안에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큰 뜻이 들어 있습니다. 1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1.‘여호와께서 말라기로’ 1하나님의 측면에서 하나님은 그의 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복된 삶을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들이 잘못된 길에서 돌이켜 바른 길, 생명으 길, 축복의 길에 서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이런 하나님의 바람과는 상관 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하고, 아름다운 자리에 서 있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이 생명의 길로, 복된 길로 서도록, 살아 가도록 그의 뜻을 나타내는 데에 말라기선지자를 통해서 그의 일들을 이루어 나가셨습니다. 말라기의 입장에서 보자면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그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자신을 택하사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뜻을 나타낼수 있는 사람으로 써 주심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얼마나 영광 스러운 일입니까 여기서 우리는 두가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의 일들을 이루어 나가실 때 사람을 들어서 일들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하나님이 하기가 싫어서도 아닙니다. 못해서도 아닙니다. 자신이 하기가 귀찮아서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천지창조이후에 그의 대부분을 있는 사람을 통해서, 있는 그것을 통해서 역사를 해 왔습니다. 왜 일까요 그렇게 하므로 하나님과 사람은 가까워 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하므로 사람들이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고, 의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인가적인 한계를 느끼게 되고, 오직 우리가 붙들고 의지 해야 할 분은 하나님 한분 밖에 없음을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해야 응답을 주심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와 관계를 좀 맺자는 것입니다. 참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할 존재임을 기도 함으로 통해서 알게 하시기 원하십니다. 전도를 하게 하심이 바로 여기에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능력으로 하면 더 잘 할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과 저를 통해서 이 일을 하게 하심의 하나님의 본심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가 어려움 당하는 것을 구경삼아 쳐다보기를 원해서 그런 어려움들을 동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 가운데 허덕이는 여러분과 저를 바라 보실때에 하나님의 마음응 오죽 아프시겠습니까 독생자가 십자가에 달려돌아 가실 때 하늘이 캄캄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과 저에게 이런 일들이 있음은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들이 그를 가까이 하는 길이 살길임을 알고, 우리가 그를 가까이 하기를 원하심의 모습인줄을 믿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을 하게 되든지, 해야 하든지 그 일들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방편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 일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의 일들이 일어나도록 합시다. 성경은 말합니다. (시 73: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 사를 전파하리이다 또 하나님께서 일들을 이루어 나갈때에 사람들을 통해서 이루어 나가신다는 말은 다르게 보면 있는 것을 통해서, 즉 하나님이 두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일을 이루어 나가신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하나님은 그 있는 것을 들어서 역사하십니다. 오병이어의 기적도,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게 한 것도, 있는 그대로 들어서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역시 하나님은 사람들을 받으실때에 있는 그대로 받으십니다. 쓰실때도 마찬가지로 있는 그대로 쓰십니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연약하면 연약한대로, 미련하면 미련한대로, 하나님은 그대로 쓰십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 무엇이, 얼마나 있느냐보다는 어떻게 있는 것을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합니다. 여러분에게 있는 것이 적으면 적은 것에서 최선을 다하십시오. 여러분이 못하면 못하는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시면 하나님은 그것을 받으십니다. 그러니 못한다, 안한다 보다는 내 위치에서 믿음을 가지고 최선을 다합시다. 이것이 충성입니다. 하나님께서 말라기를 통해서 그의 일들을 이루어 나가심을 보면서, ㉯그 많고 많은 사람중에 바로 내가 하나님이 택한, 쓰시는 주인공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 역사의 주인공은 바로 당신입니다. 오늘 이 하루의 주인공은 바로 당신입니다. 바로 당신이 하나님의 축복된 사건의 주인공이십니다. 말라기만 하나님의 그 일에 쓰임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쓰심에,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주인공입니다. 나를 오늘 이 자리에 세우신 것은 나를 주인공되어지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내가 있는 그곳은 하나님께서 그의 뜻을 나타내도록 하시기 위하여 쓰시는 곳입니다. 거기에 있는 내가 하나님의 일에 쓰임을 받는 주인공입니다. 그곳이 어디입니까 직장입니까 그 직장의 주인공은 아무개 아무개 사장이 아니라 바로 당신을 위한 장소입니다. 그곳이 교회입니까 바로 이 교회의 주인공은 당신입니다.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주인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있는 그 어떤 곳이던 그곳에 주인공인 나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주인공으로서, 주인공 답게 살아 갑시다.
2말라기의 측면에서 말라기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증거했습니다. 그는 그의 뜻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고 증거한 것입니다. 이것이 선지자의 사명입니다. 그렇기 위해서 그는 위로 부터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귀울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는 그 음성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아갔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도 하루의 시간안으로 나아갑니다. 어떤 일들을 이루어 나가기 위하여 행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내 계획이고, 내 계산이고, 내 방법일때는 실패할 수 밖에 없고, 불행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로 인하여 내게 일어나는 것은 이득보다는 실(失)이 더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오늘 우리에게 무슨 일을 만날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내 인생에 어떤 불행이 닥칠지, 어떤 문제 가운데 처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귀울이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나아갈 때는 실패 같지만 성공이요, 불행 같으나 행복이며, 손해 같으나 이득이 일어나게 됩니다. 하므로 여러분과 저도 말라기 처럼 귀를 기울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읍시다. 그리고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신 음성을 가지고 행합시다. 우리의 삶은 분명 행복해 질것입니다.
2.말라기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 하나님의 뜻을 아는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자는 하나님의 심정을 가질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음성을 들은 말라기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경고를 합니다. 여기서 “경고”의 원 뜻은 “짐”입니다. 짐이라는 말은 ‘부담’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향한 그 마음을 듣고, 알고보니 말라기는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그는 마음에 거룩한 부담을 안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를 드리기는 드리나 형식적으로 드리며, 하나님과의 만남없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말라기는 하나님께로 듣고 그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진노를 바라보고 그냥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런 하나님의 진노와 그들에게 새롭게 주실 언약의 말씀을 가지고 나아갑니다. 이것을 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거룩한 부담감을 가지고 그들에게 나아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의 동족이기 때문입니다. 그 동족은 곧 그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들에게 전합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아는자,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자, 하나님의 뜻을 아는자들이 갖는 거룩한 부담감입니다. 그리스도안에 있지 않으므로 그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진노를 생각할 때 그들을 그대로 내버려 둘수 없는, 내버려 두어서는 안되겠다는 부담감을 안습니다. 오늘 이 부담감을 내가 가져야 합니다. 저 멸망할 영혼들, 죄악 가운데 헤메이고 있는 그 불쌍한 영혼들을 향해 내가 먼저 믿은자로,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자로 이 거룩한 부담감을 가져야 합니다. 그럴때에 그들에게 나아가게 됩니다. 예수님은 예루 살렘 성에 올라가면서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하시며 예루살렘이 멸망을 바라보고 우셨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그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진노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부담감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향하여 기도를 하셨고, 마지막 그 죄인들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온전히 드리셨습니다. 바울도 아덴에 가서 우상숭배에 빠져 있는 그들을 보고 부담감을 가졌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지 않고 우상앞에 절하는 그들을 향한 부담감’이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그들에게 생명바쳐 전도한것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저에게 이런 거룩한 부담감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먼저 예수 믿은자로 아직도 예수 안에 있지 못하는 그들을 향한 부담감을 가져야 합니다. 먼저 믿은자로 믿는자로 살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과 나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는 그런 부담감이 있어야 합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하나님의 심정을 알고, 하나님의 진노와 언약의 말씀을 알고 그는 두다리 뻗고 편히잠을 잘수 없었습니다. 내가 증거하지 않으면, 내가 말씀을 외치지 않으면 한 영혼이라도 더 하나님을 떠나게 된다는 거룩한 부담감, 자신이 외치지 않으면 이 민족과 사회가 넘어질 것이라는 부담감을 안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오늘 이 거룩한 부담감이 내게 있어지도록 기도합시다. 내가 전하지 않으면 저 멸망할 영혼을 끓어않고 주님앞에 몸부림을 칩시다. 아직도 세상떼에 묻어 있는, 거기에 끌려 다니는 내 영혼의 모습에 대한 부담감을 가집시다. 그리고 주님앞에 내 영혼이 충만히 세워지도록 기도합시다. 믿음으로 온전히 행하지 못하는 여러분의 식구들에 대한 거룩한 부담감을 가집시다. 그리하여 어떻게 하면 내가 그로 믿음위에 설수 있게 할것인가를 찾으며 가슴을 칩시다. 하나님은 이런 거룩한 부담감을 가진 사람을 통하여 그의 일들을 이루어 나가셨습니다. 말라기는 이런 부담감을 안고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이 이렇습니다. 열 사람이 있으면 열사람 다에게 성령님을 부어 변화시키는 방법이 있지만 그러나 대부분 하나님은 한 사람에게 이런 거룩한 부담감을 주어서 그로 일을 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먼저 한 사람을 택하셔서 그 한 사람의 가슴에 불을 질러 놓습니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이 밖에 나가 또 불을 지릅니다. 불을 짚이고 다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전체를 불이 붙도록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냉냉한 가슴에 말라기 선지자를 통하여 불을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라기 선지자의 마음에 불이 붙어서 마음에 부담감을 가지고, 나가지 않으면 안되게 하셨습니다. 그가 나아가 불을 놓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이 우리 교회에 불을 짚이는 한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하여 온 교회가 불바다가 되기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의 가정에 성령님의 불을 짚이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하여 가정에 불이 나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 여러분이 성령님의 불을 짚이는 사람이 되십시오. 불이나야 뜨겁습니다. 힘이 있습니다. 먼저 나 자신에 가슴에 성령님의 불이 뜨겁게 역사하기를 기도 하십시오. 내가 뜨거워 식어진 가슴에, 냉냉한 가슴에, 차가운 가슴에 불을 짚이는 사람들이 됩시다.
1.‘여호와께서 말라기로’ 1하나님의 측면에서 하나님은 그의 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복된 삶을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들이 잘못된 길에서 돌이켜 바른 길, 생명으 길, 축복의 길에 서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이런 하나님의 바람과는 상관 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하고, 아름다운 자리에 서 있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이 생명의 길로, 복된 길로 서도록, 살아 가도록 그의 뜻을 나타내는 데에 말라기선지자를 통해서 그의 일들을 이루어 나가셨습니다. 말라기의 입장에서 보자면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그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자신을 택하사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뜻을 나타낼수 있는 사람으로 써 주심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얼마나 영광 스러운 일입니까 여기서 우리는 두가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의 일들을 이루어 나가실 때 사람을 들어서 일들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하나님이 하기가 싫어서도 아닙니다. 못해서도 아닙니다. 자신이 하기가 귀찮아서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천지창조이후에 그의 대부분을 있는 사람을 통해서, 있는 그것을 통해서 역사를 해 왔습니다. 왜 일까요 그렇게 하므로 하나님과 사람은 가까워 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하므로 사람들이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고, 의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인가적인 한계를 느끼게 되고, 오직 우리가 붙들고 의지 해야 할 분은 하나님 한분 밖에 없음을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해야 응답을 주심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와 관계를 좀 맺자는 것입니다. 참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할 존재임을 기도 함으로 통해서 알게 하시기 원하십니다. 전도를 하게 하심이 바로 여기에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능력으로 하면 더 잘 할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과 저를 통해서 이 일을 하게 하심의 하나님의 본심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가 어려움 당하는 것을 구경삼아 쳐다보기를 원해서 그런 어려움들을 동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 가운데 허덕이는 여러분과 저를 바라 보실때에 하나님의 마음응 오죽 아프시겠습니까 독생자가 십자가에 달려돌아 가실 때 하늘이 캄캄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과 저에게 이런 일들이 있음은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들이 그를 가까이 하는 길이 살길임을 알고, 우리가 그를 가까이 하기를 원하심의 모습인줄을 믿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을 하게 되든지, 해야 하든지 그 일들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방편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 일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의 일들이 일어나도록 합시다. 성경은 말합니다. (시 73: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 사를 전파하리이다 또 하나님께서 일들을 이루어 나갈때에 사람들을 통해서 이루어 나가신다는 말은 다르게 보면 있는 것을 통해서, 즉 하나님이 두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일을 이루어 나가신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하나님은 그 있는 것을 들어서 역사하십니다. 오병이어의 기적도,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게 한 것도, 있는 그대로 들어서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역시 하나님은 사람들을 받으실때에 있는 그대로 받으십니다. 쓰실때도 마찬가지로 있는 그대로 쓰십니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연약하면 연약한대로, 미련하면 미련한대로, 하나님은 그대로 쓰십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 무엇이, 얼마나 있느냐보다는 어떻게 있는 것을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합니다. 여러분에게 있는 것이 적으면 적은 것에서 최선을 다하십시오. 여러분이 못하면 못하는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시면 하나님은 그것을 받으십니다. 그러니 못한다, 안한다 보다는 내 위치에서 믿음을 가지고 최선을 다합시다. 이것이 충성입니다. 하나님께서 말라기를 통해서 그의 일들을 이루어 나가심을 보면서, ㉯그 많고 많은 사람중에 바로 내가 하나님이 택한, 쓰시는 주인공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 역사의 주인공은 바로 당신입니다. 오늘 이 하루의 주인공은 바로 당신입니다. 바로 당신이 하나님의 축복된 사건의 주인공이십니다. 말라기만 하나님의 그 일에 쓰임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쓰심에,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주인공입니다. 나를 오늘 이 자리에 세우신 것은 나를 주인공되어지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내가 있는 그곳은 하나님께서 그의 뜻을 나타내도록 하시기 위하여 쓰시는 곳입니다. 거기에 있는 내가 하나님의 일에 쓰임을 받는 주인공입니다. 그곳이 어디입니까 직장입니까 그 직장의 주인공은 아무개 아무개 사장이 아니라 바로 당신을 위한 장소입니다. 그곳이 교회입니까 바로 이 교회의 주인공은 당신입니다.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주인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있는 그 어떤 곳이던 그곳에 주인공인 나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주인공으로서, 주인공 답게 살아 갑시다.
2말라기의 측면에서 말라기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증거했습니다. 그는 그의 뜻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고 증거한 것입니다. 이것이 선지자의 사명입니다. 그렇기 위해서 그는 위로 부터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귀울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는 그 음성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아갔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도 하루의 시간안으로 나아갑니다. 어떤 일들을 이루어 나가기 위하여 행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내 계획이고, 내 계산이고, 내 방법일때는 실패할 수 밖에 없고, 불행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로 인하여 내게 일어나는 것은 이득보다는 실(失)이 더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오늘 우리에게 무슨 일을 만날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내 인생에 어떤 불행이 닥칠지, 어떤 문제 가운데 처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귀울이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나아갈 때는 실패 같지만 성공이요, 불행 같으나 행복이며, 손해 같으나 이득이 일어나게 됩니다. 하므로 여러분과 저도 말라기 처럼 귀를 기울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읍시다. 그리고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신 음성을 가지고 행합시다. 우리의 삶은 분명 행복해 질것입니다.
2.말라기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 하나님의 뜻을 아는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자는 하나님의 심정을 가질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음성을 들은 말라기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경고를 합니다. 여기서 “경고”의 원 뜻은 “짐”입니다. 짐이라는 말은 ‘부담’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향한 그 마음을 듣고, 알고보니 말라기는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그는 마음에 거룩한 부담을 안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를 드리기는 드리나 형식적으로 드리며, 하나님과의 만남없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말라기는 하나님께로 듣고 그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진노를 바라보고 그냥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런 하나님의 진노와 그들에게 새롭게 주실 언약의 말씀을 가지고 나아갑니다. 이것을 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거룩한 부담감을 가지고 그들에게 나아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의 동족이기 때문입니다. 그 동족은 곧 그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들에게 전합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아는자,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자, 하나님의 뜻을 아는자들이 갖는 거룩한 부담감입니다. 그리스도안에 있지 않으므로 그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진노를 생각할 때 그들을 그대로 내버려 둘수 없는, 내버려 두어서는 안되겠다는 부담감을 안습니다. 오늘 이 부담감을 내가 가져야 합니다. 저 멸망할 영혼들, 죄악 가운데 헤메이고 있는 그 불쌍한 영혼들을 향해 내가 먼저 믿은자로,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자로 이 거룩한 부담감을 가져야 합니다. 그럴때에 그들에게 나아가게 됩니다. 예수님은 예루 살렘 성에 올라가면서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하시며 예루살렘이 멸망을 바라보고 우셨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그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진노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부담감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향하여 기도를 하셨고, 마지막 그 죄인들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온전히 드리셨습니다. 바울도 아덴에 가서 우상숭배에 빠져 있는 그들을 보고 부담감을 가졌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지 않고 우상앞에 절하는 그들을 향한 부담감’이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그들에게 생명바쳐 전도한것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저에게 이런 거룩한 부담감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먼저 예수 믿은자로 아직도 예수 안에 있지 못하는 그들을 향한 부담감을 가져야 합니다. 먼저 믿은자로 믿는자로 살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과 나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는 그런 부담감이 있어야 합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하나님의 심정을 알고, 하나님의 진노와 언약의 말씀을 알고 그는 두다리 뻗고 편히잠을 잘수 없었습니다. 내가 증거하지 않으면, 내가 말씀을 외치지 않으면 한 영혼이라도 더 하나님을 떠나게 된다는 거룩한 부담감, 자신이 외치지 않으면 이 민족과 사회가 넘어질 것이라는 부담감을 안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오늘 이 거룩한 부담감이 내게 있어지도록 기도합시다. 내가 전하지 않으면 저 멸망할 영혼을 끓어않고 주님앞에 몸부림을 칩시다. 아직도 세상떼에 묻어 있는, 거기에 끌려 다니는 내 영혼의 모습에 대한 부담감을 가집시다. 그리고 주님앞에 내 영혼이 충만히 세워지도록 기도합시다. 믿음으로 온전히 행하지 못하는 여러분의 식구들에 대한 거룩한 부담감을 가집시다. 그리하여 어떻게 하면 내가 그로 믿음위에 설수 있게 할것인가를 찾으며 가슴을 칩시다. 하나님은 이런 거룩한 부담감을 가진 사람을 통하여 그의 일들을 이루어 나가셨습니다. 말라기는 이런 부담감을 안고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이 이렇습니다. 열 사람이 있으면 열사람 다에게 성령님을 부어 변화시키는 방법이 있지만 그러나 대부분 하나님은 한 사람에게 이런 거룩한 부담감을 주어서 그로 일을 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먼저 한 사람을 택하셔서 그 한 사람의 가슴에 불을 질러 놓습니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이 밖에 나가 또 불을 지릅니다. 불을 짚이고 다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전체를 불이 붙도록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냉냉한 가슴에 말라기 선지자를 통하여 불을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라기 선지자의 마음에 불이 붙어서 마음에 부담감을 가지고, 나가지 않으면 안되게 하셨습니다. 그가 나아가 불을 놓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이 우리 교회에 불을 짚이는 한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하여 온 교회가 불바다가 되기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의 가정에 성령님의 불을 짚이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하여 가정에 불이 나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 여러분이 성령님의 불을 짚이는 사람이 되십시오. 불이나야 뜨겁습니다. 힘이 있습니다. 먼저 나 자신에 가슴에 성령님의 불이 뜨겁게 역사하기를 기도 하십시오. 내가 뜨거워 식어진 가슴에, 냉냉한 가슴에, 차가운 가슴에 불을 짚이는 사람들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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