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을 이루라 (빌2:5-12)
본문
교회 절기상 오늘은 종려주일이라고 합니다. 종려 주일이라는 것은 예수닙께서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날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 이날을 시작으로 한 주간을 고난주간이라고 합니다. 고난주간이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신 한 주간을 말합니다. 오늘 우리 모두는 종려주일을 맞이했고, 내일부터 고난의 한주간을 맞이할 것입니다. 우리모두도 이번 고난주간을 맞이하여 주님께서 나의 구원을 위해 당하신 고난의 참뜻을 발견하고, 고난에 동참하므로 주시는 큰 은혜를 누리는 시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고난주간을 맞이하면서 우리들이 무엇을 생각해야 하겠습니까
1.왜 예수님께서 오셨습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6절-‘그는 근본 여호와 하나님의 본체’시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7절-‘사람들과 같이 되었고’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가 오셔서 하신 일은 8절-‘십자가에 죽었다’라고 합니다. 즉 그는 하나님이신데,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었다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사람의 모양으로 오셨고, 오셔서 십자가에 죽었다고 합니까 (요 12:47)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세상을 구원하시는데는 대속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막 10: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 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님께서 오셔서 대속물이 된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대속물이 된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의 목적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구원’이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건진다는 말입니다. 끌어낸다는 말입니다. 살린다는 말입니다. 다시 일으킨다는 말입니다. 새롭게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가정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나라와 민족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가 되십니다. 그는 죄때문에 지옥형벌을 향해 끌려가는 우리들을 끌어 내어 천국으로 옮겨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는 다쓰려진 우리의 가정을 다시 일으켜 세워 복된 가정으로 세워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는 아직도 젊은데, 아직도 할 일이 많은데 병들어 죽어가는 우리들을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는 우리의 심령을 날마다 새롭게해서 소망가운데 있게 하시기 위하여 오신분이십니다. 여러분! 쓰러져갑니까 구원주이신 예수님을 붙들기를 바랍니다. 실패했습니까 성공케하시는 주님을 붙들기를 바랍니다.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습니까 다시 일으켜 세워주시는 주님을 붙들기를 바랍니다. 희망이 없고, 소망이 없습니까 구원하시는 주님을 붙들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구원할 이는 오직 예수밖에 없습니다. (행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 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오늘 이 시대에 우리의 살길은 예수 붙드는 길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을 믿고, 예수를 붙들었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나면서 앉은뱅이된자도, 38년동안 병을 앓았던 사람도, 앞을 보지 못하던 소경도, 귀신들린 사람들도, 문둥병자도, 어느 누구한 사람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던 거지도 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함을 받았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도 여러분과 저가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을 믿고 그 예수님을 붙드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습니다. (요 11: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 6: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뜻이요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 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오늘 나를 구원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오늘 우리 가정을 구원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오늘 우리들의 쓰러지고 넘어진 것들을 구원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롬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 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롬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마음에 믿고 입으로 시인을 하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어떤 가운데 우리들이 있던 우리들은 구원하시는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입으로 고백하십시오. “주님이 구원하셨다.” “주님이 구원하실 것이다.”
2.구원의 역사는 그냥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끝절에 이런 말씀을 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이 말은 우리가 예수로 인하여 구원함을 받았지만 이 구원받음으로 끝이 난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우리들은 구원을 받는 일이 일어나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구원받아야 할 많은 모습들이 있습니다. 아직도 다듬어지지 않는 나의 모난 성격이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아직도 변화되지 않는 나의 심령이 구원을 받아 날마다 새로워져야 합니다. 아직도 온전하지 않는 우리의 가정의 여러 일들이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아직도 우리들에게는 구원의 역사가 많이 일어나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기에 이런 축복된 모습으로 세워진줄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우리들은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아야 복된 삶을 살 수 있는줄 믿습니다. 구원받는 심령이 되기를 바랍니다. 구원받는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구원받는 여러분들의 심령과 일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정말 그렇게 되기를 바라십니까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들이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 한가지가 있습니다. 구원은 그냥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죄에서 구원함을 받은 이 사건은 그냥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또 예수님께서 높아진 사건(구원)도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십시오. 9절에 ‘이러므로’라고 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위에 뛰어나게 하신것입니다. 즉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의 역사가 있었기에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음은 이러므로의 역사가 있었기에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또 오늘 우리가 구원함을 받는 이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이러므로’의 역사가 일어나야 구원함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어떤 ‘이러므로’의 역사가 있었습니까
1자기의 권리를 포기했습니다(6-8상)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그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 하나님됨의 권리를 포기하셨다는 것입니다. 왜 권리를 포기하셨습니까 그렇게 되지 않으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인간의 몸으로 입고 오시지 않고, ‘나는 하나님이네’만 하고 있었다면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은 짐승을 잡아 제사를 지내야 합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이셨지만 하나님됨의 권리를 포기하고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기에 우리들 가운데 구원의 일들이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심령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까 즉 은혜받고, 능력받고, 믿음충만, 성령님충만의 구원의 역사, 그래서 살맛나는, 신바람 나는 이런 구원의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에게 있는 권리를 포기해야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는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즉 할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를 기계나, 로봇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인격적인 존재로 만들었기에 우리에게는 어떻게 하든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다고 내 맘대로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을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기 위한 곳으로 자유의지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주일날 편히 쉬면서 무엇을 하든, 어디로 가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기 위해서는 육신을 좇는 권리를 포기하고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야 할 그것을 위하여 나를 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여러분의 사랑하는 부모,형제,자식,친척을 전도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하기 위해서는 하지않을수도 있는 권리를 포기하고 전도하는 이런 일들이 있어야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구원의 역사에는 이렇게 철저하게 내 권리를 포기할때에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히려 자기를 비는 역사가 있었기에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도 남보다 뛰어나고, 다 훌륭합니다. 그러나 남보다 뛰어나고 훌륭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나를 비어 나아가게 되면 반드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2고난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서 당하신 고난을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3년 내내 고난이 끓일날이 없습니다. 육적인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영적인 고난도 당하셨습니다. 정신적인 고난도 당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무시했습니다(고향 나사렛에서 당한 일). 사람들은 육체적인 고난을 가하셨습니다(그 절정이 바로 십자가를 지시기 까지의 모습입니다) 그가 당하신 고난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 5: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 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마 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 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요 19:28) 이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 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런 수많은 고통을 피하시지 않았습니다. 거부하시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하여 당하는 고난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고난을 참으심이 없었다면 우리들의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을 길이 참고 참았기에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런 고난을 참을 수 있었던 비결이 있었습니다.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이 그가 당하신 고난을 잘 참고 견디어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서 당하는 고난이 아픔이 있고, 괴로움이 있지만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그것을 개의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구원함과 그의 높아짐의 모습입니다. 그랬더니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모든 이름이 그 이름앞에 꿇어 엎드리게 되었고, 그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들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나감에는 이런 고난이 반드시 따라 오게 되어있습니다. 고난없는 영광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쉽게 얻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은혜충만의 역사가 일어나기 위해서 고난이 따라 오게 마련입니다. 우리의 속 사람이 강건해지는 일들이 일어나기 위해서 고난이 따라 오게 되어있습니다. 우리들 속에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고난은 반드시 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난 없이는 영광이 없습니다. 좀 힘들어도 해야 합니다. 힘들다고 하지 않으면 열매가 없습니다. 귀찮아도 해야 합니다. 귀찮다고 하지 않으면 구원의 역사가 없습니다. 기도하는 것 힘듭니다. 힘들다고 하지 않으면 주님이 주시는 힘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예배드리는 것 힘듭니다. 그러나 힘들다고, 바쁘다고 하지 않으면 은혜의 역사를 이룰 수 없습니다. 전도하는 것 힘듭니다. 그렇다고 전도하지 않으면 내 사랑하는 형제자매가 지옥불에 떨어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은 잠간입니다. 그러나 영광은 영원한 것입니다. 하므로 고난만 생각하지말고 영광을 생각하여 행하십다. 반드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지금 어떤 고난이 있습니까 (히 12: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 를 생각하라 주님을 생각합시다. 주님처럼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고난을 개의치 않는 이런 모습들로 세워지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믿으십시오. (욥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3십자가에 죽으심이 있었습니다(8절) 우리의 구원이 완성된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못 박혀 피흘리시고, 살찢기심과 죽으심이 있었기에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왜요 (히 9:22)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십자가는 죄 있는 죄인이 지고 달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죄 없으신 분이 죄 있는 우리들을 위하여 친히 십자가를 지시고, 못박혀 달려 죽으셨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십자가에 죽는 죽음이 없이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기에 우리의 구원이 완성이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라십니까 십자가에 대신 죽는 일이 일어나야 구원의 일들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은 그가 죄가 있어서 죄인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죄 없는 그분이 죄 있는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으신 사건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제 죄 있는 우리 형제의 죄를 대신 짊어지는 일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죄 지은 다른 사람의 죄를 내가 대신 짊어 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죄 있는, 죄 지은 그사람의 모습을 보고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끌어안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형제를 위하여 눈물흘리며 울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 형제를 도울수 있을까를 찾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죄 있는 우리들을 보시고, 너희들은 죄인이다. 왜 그런 죄를 지었니하지 않고 그가 대신 그 죄를 짊어지신 것입니다. 그랬기에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십자가에 못박아야, 죽여야 다시 사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우리의 혈기가 죽어야 새사람으로 다시 살아 납니다. 우리의 교만이 죽어야 겸손이 다시 살아 납니다. 여러분! 우리들이 어떤 존재인줄 알아야 합니다. (갈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 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마치는 말 우리의 구원이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자기의 권리를 포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셨지만 고난을 참으셨기에 구원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나의 죄를 위하여 죽어주셨기에 우리가 다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구원받은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계속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지기 위해서 내 권리를 포기하고 구원의 역사에 뛰어 들어야 합니다. 또 당하는 고난이 힘들고 아프지만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개이치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죽어야 구원의 역사가 일어남을 믿고, 포기해서라도, 참아서라도, 죽는한이 있더라도 어떻게 하든지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왜 예수님께서 오셨습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6절-‘그는 근본 여호와 하나님의 본체’시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7절-‘사람들과 같이 되었고’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가 오셔서 하신 일은 8절-‘십자가에 죽었다’라고 합니다. 즉 그는 하나님이신데,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었다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사람의 모양으로 오셨고, 오셔서 십자가에 죽었다고 합니까 (요 12:47)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세상을 구원하시는데는 대속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막 10: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 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님께서 오셔서 대속물이 된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대속물이 된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의 목적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구원’이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건진다는 말입니다. 끌어낸다는 말입니다. 살린다는 말입니다. 다시 일으킨다는 말입니다. 새롭게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가정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나라와 민족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가 되십니다. 그는 죄때문에 지옥형벌을 향해 끌려가는 우리들을 끌어 내어 천국으로 옮겨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는 다쓰려진 우리의 가정을 다시 일으켜 세워 복된 가정으로 세워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는 아직도 젊은데, 아직도 할 일이 많은데 병들어 죽어가는 우리들을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는 우리의 심령을 날마다 새롭게해서 소망가운데 있게 하시기 위하여 오신분이십니다. 여러분! 쓰러져갑니까 구원주이신 예수님을 붙들기를 바랍니다. 실패했습니까 성공케하시는 주님을 붙들기를 바랍니다.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습니까 다시 일으켜 세워주시는 주님을 붙들기를 바랍니다. 희망이 없고, 소망이 없습니까 구원하시는 주님을 붙들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구원할 이는 오직 예수밖에 없습니다. (행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 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오늘 이 시대에 우리의 살길은 예수 붙드는 길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을 믿고, 예수를 붙들었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나면서 앉은뱅이된자도, 38년동안 병을 앓았던 사람도, 앞을 보지 못하던 소경도, 귀신들린 사람들도, 문둥병자도, 어느 누구한 사람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던 거지도 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함을 받았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도 여러분과 저가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을 믿고 그 예수님을 붙드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습니다. (요 11: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 6: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뜻이요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 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오늘 나를 구원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오늘 우리 가정을 구원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오늘 우리들의 쓰러지고 넘어진 것들을 구원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롬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 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롬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마음에 믿고 입으로 시인을 하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어떤 가운데 우리들이 있던 우리들은 구원하시는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입으로 고백하십시오. “주님이 구원하셨다.” “주님이 구원하실 것이다.”
2.구원의 역사는 그냥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끝절에 이런 말씀을 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이 말은 우리가 예수로 인하여 구원함을 받았지만 이 구원받음으로 끝이 난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우리들은 구원을 받는 일이 일어나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구원받아야 할 많은 모습들이 있습니다. 아직도 다듬어지지 않는 나의 모난 성격이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아직도 변화되지 않는 나의 심령이 구원을 받아 날마다 새로워져야 합니다. 아직도 온전하지 않는 우리의 가정의 여러 일들이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아직도 우리들에게는 구원의 역사가 많이 일어나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기에 이런 축복된 모습으로 세워진줄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우리들은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아야 복된 삶을 살 수 있는줄 믿습니다. 구원받는 심령이 되기를 바랍니다. 구원받는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구원받는 여러분들의 심령과 일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정말 그렇게 되기를 바라십니까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들이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 한가지가 있습니다. 구원은 그냥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죄에서 구원함을 받은 이 사건은 그냥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또 예수님께서 높아진 사건(구원)도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십시오. 9절에 ‘이러므로’라고 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위에 뛰어나게 하신것입니다. 즉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의 역사가 있었기에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음은 이러므로의 역사가 있었기에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또 오늘 우리가 구원함을 받는 이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이러므로’의 역사가 일어나야 구원함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어떤 ‘이러므로’의 역사가 있었습니까
1자기의 권리를 포기했습니다(6-8상)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그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 하나님됨의 권리를 포기하셨다는 것입니다. 왜 권리를 포기하셨습니까 그렇게 되지 않으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인간의 몸으로 입고 오시지 않고, ‘나는 하나님이네’만 하고 있었다면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은 짐승을 잡아 제사를 지내야 합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이셨지만 하나님됨의 권리를 포기하고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기에 우리들 가운데 구원의 일들이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심령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까 즉 은혜받고, 능력받고, 믿음충만, 성령님충만의 구원의 역사, 그래서 살맛나는, 신바람 나는 이런 구원의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에게 있는 권리를 포기해야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는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즉 할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를 기계나, 로봇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인격적인 존재로 만들었기에 우리에게는 어떻게 하든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다고 내 맘대로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을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기 위한 곳으로 자유의지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주일날 편히 쉬면서 무엇을 하든, 어디로 가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기 위해서는 육신을 좇는 권리를 포기하고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야 할 그것을 위하여 나를 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여러분의 사랑하는 부모,형제,자식,친척을 전도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하기 위해서는 하지않을수도 있는 권리를 포기하고 전도하는 이런 일들이 있어야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구원의 역사에는 이렇게 철저하게 내 권리를 포기할때에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히려 자기를 비는 역사가 있었기에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도 남보다 뛰어나고, 다 훌륭합니다. 그러나 남보다 뛰어나고 훌륭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나를 비어 나아가게 되면 반드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2고난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서 당하신 고난을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3년 내내 고난이 끓일날이 없습니다. 육적인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영적인 고난도 당하셨습니다. 정신적인 고난도 당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무시했습니다(고향 나사렛에서 당한 일). 사람들은 육체적인 고난을 가하셨습니다(그 절정이 바로 십자가를 지시기 까지의 모습입니다) 그가 당하신 고난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 5: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 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마 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 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요 19:28) 이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 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런 수많은 고통을 피하시지 않았습니다. 거부하시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하여 당하는 고난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고난을 참으심이 없었다면 우리들의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을 길이 참고 참았기에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런 고난을 참을 수 있었던 비결이 있었습니다.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이 그가 당하신 고난을 잘 참고 견디어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서 당하는 고난이 아픔이 있고, 괴로움이 있지만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그것을 개의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구원함과 그의 높아짐의 모습입니다. 그랬더니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모든 이름이 그 이름앞에 꿇어 엎드리게 되었고, 그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들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나감에는 이런 고난이 반드시 따라 오게 되어있습니다. 고난없는 영광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쉽게 얻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은혜충만의 역사가 일어나기 위해서 고난이 따라 오게 마련입니다. 우리의 속 사람이 강건해지는 일들이 일어나기 위해서 고난이 따라 오게 되어있습니다. 우리들 속에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고난은 반드시 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난 없이는 영광이 없습니다. 좀 힘들어도 해야 합니다. 힘들다고 하지 않으면 열매가 없습니다. 귀찮아도 해야 합니다. 귀찮다고 하지 않으면 구원의 역사가 없습니다. 기도하는 것 힘듭니다. 힘들다고 하지 않으면 주님이 주시는 힘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예배드리는 것 힘듭니다. 그러나 힘들다고, 바쁘다고 하지 않으면 은혜의 역사를 이룰 수 없습니다. 전도하는 것 힘듭니다. 그렇다고 전도하지 않으면 내 사랑하는 형제자매가 지옥불에 떨어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은 잠간입니다. 그러나 영광은 영원한 것입니다. 하므로 고난만 생각하지말고 영광을 생각하여 행하십다. 반드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지금 어떤 고난이 있습니까 (히 12: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 를 생각하라 주님을 생각합시다. 주님처럼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고난을 개의치 않는 이런 모습들로 세워지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믿으십시오. (욥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3십자가에 죽으심이 있었습니다(8절) 우리의 구원이 완성된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못 박혀 피흘리시고, 살찢기심과 죽으심이 있었기에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왜요 (히 9:22)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십자가는 죄 있는 죄인이 지고 달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죄 없으신 분이 죄 있는 우리들을 위하여 친히 십자가를 지시고, 못박혀 달려 죽으셨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십자가에 죽는 죽음이 없이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기에 우리의 구원이 완성이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라십니까 십자가에 대신 죽는 일이 일어나야 구원의 일들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은 그가 죄가 있어서 죄인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죄 없는 그분이 죄 있는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으신 사건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제 죄 있는 우리 형제의 죄를 대신 짊어지는 일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죄 지은 다른 사람의 죄를 내가 대신 짊어 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죄 있는, 죄 지은 그사람의 모습을 보고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끌어안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형제를 위하여 눈물흘리며 울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 형제를 도울수 있을까를 찾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죄 있는 우리들을 보시고, 너희들은 죄인이다. 왜 그런 죄를 지었니하지 않고 그가 대신 그 죄를 짊어지신 것입니다. 그랬기에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십자가에 못박아야, 죽여야 다시 사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우리의 혈기가 죽어야 새사람으로 다시 살아 납니다. 우리의 교만이 죽어야 겸손이 다시 살아 납니다. 여러분! 우리들이 어떤 존재인줄 알아야 합니다. (갈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 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마치는 말 우리의 구원이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자기의 권리를 포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셨지만 고난을 참으셨기에 구원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나의 죄를 위하여 죽어주셨기에 우리가 다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구원받은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계속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지기 위해서 내 권리를 포기하고 구원의 역사에 뛰어 들어야 합니다. 또 당하는 고난이 힘들고 아프지만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개이치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죽어야 구원의 역사가 일어남을 믿고, 포기해서라도, 참아서라도, 죽는한이 있더라도 어떻게 하든지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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