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부활하셨네 (마28:1-10)
본문
인간들은 두 가지 큰 소망이 있습니다.
첫째-죽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중국의 진시황 = 중원을 평정한 후 모든 소망이 이뤄졌습니다. 남은 한가지는 죽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로초(不老草)를 구하기 위하여 500여명을 동방의 심산에 보내었습니다. 그러나 그도 죽었습니다. 누구나 죽는 것입니다. 100년후 오늘 여기 모인 사람 중에 한 사람도 땅에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둘째-죽더라도 언젠가는 다시 살아났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이집트인들은 왕을 미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언젠가는 다시 살아 날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엘로프 칼슨 박사는 동물학자인데 말라버린 미라를 다시 세포를 살려낼 수 있다고 연구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헛된 꿈이었습니다. 불가능한 일입니다. 혹 가능하다 할지라도 미라로 남아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니다. 인간의 어떠한 노력도 죽음을 면케 할 수 없고, 인간의 죽음을 다시 살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이 두 가지를 해결했습니다.
1.예수는 부활하셨다(1-6)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된지 사흘째 아침에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으로 달려왔을 때에 이것을 지키보고 있던 천사가 그 사람들을 향하여 외친 첫 번째의 말씀은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신 던 대로 살아 나셨느니라”라고 외쳤다. 그렇다. 예수님께서는 천사들의 외침처럼 무덤에 머물지 않고 다시 살아 나셨다. 그는 죄를 이기시고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종교의 교주들은 다 죽었다. 마호멧은 63세에 죽었고, 공자는 73세에 죽었고, 맹자는 83세에 죽었고, 석가는 80세에 죽었다. 그러나 살아난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죽었지만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예수는 부활하셨습니다.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는 성경대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 나셨다(고전15:3,4) 여러분들은 이런 예수의 부활을 여러분들은 믿습니까 그러나 역사를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고 부정하는 사람들이 몇 가지의 이야기를 들어 거부하고 있다. 도거설-제자들이 시체를 훔쳐 암매장하고 말을 퍼뜨렸다고 함 가사설-일시적으로 기절을 했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함 환상설-제자들이 예수님을 간절히 사모한 나머지 환상을 보고하는 말이라고 함 날조설-예수가 부활하지도 않았는데 날조했다고 함 지진설-무덤 속에 묻어 두었는데 지진이 나서 예수의 시체를 뭍고 말았다고 함 이렇게 어떤 이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해 부정을 하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역사의 정확한 기반을 두고 있는 성경은 예수가 부활하셨다고 수없이 말씀하고 있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11번이나 나타나 자기를 보였고,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했던 제자 도마도 부활하신 주님의 손을 만지고 나서야 믿었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보이면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는 하늘로 승천하셨다(고전15장). 우리들은 주님의 부활을 우리의 눈으로 목격을 한 것은 아니지만 말씀에 기록된 대로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말씀을 믿으면 예수의 부활이 내 부활이 될줄을 믿습니다.’
2.
그렇다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요 11: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 11: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지금으로부터 예수님께서 2천년 전에 내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다시 살아 나셨다고 하자. 과연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야 할 필요성과, 예수의 부활이 오늘을 살고 있는 나와는 무슨 상관이 있는가
1예수님의 부활은 ‘사망권세를 이겼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망은 죄로 인한 결과이다. 예수님은 나의 죄, 우리의 죄를 지시고 죽음의 자리에 계셨다. 그는 죽음의 자리에서 바로 나의 죄값의 형벌을 치루어 주셨다. 그러나 그는 사망 권세의 주관자인 사탄을 이기고 사망의 자리에서 나오셨다. 주님의 부활은 단순히 죽음 자체보다는 우리를 사망으로 끌고 가는 마귀, 사탄에게 죄값을 치르시고, 그리고 그를 이기심의 대한 승리의 선포이다.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우리에게 ‘주님은 마귀를 이기고, 다스리는 능력의 주님’이심을 보여주신 놀라운 사건이다. 오늘날도 마귀는 사망권세를 잡은 자로서 사람들을 죄짓게 하고 그리하여 사람들을 멸망으로 이끌어가기 위하여 역사 한다. 그는 우리에게 갖가지의 방법으로 넘어지게 하고 자빠지게 한다. 그러나 사망권세 잡은 마귀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자는 예수 부활이 바로 내 부활이 된다. 즉, 그 능력의 주님을 믿는 자는 역시 마귀 사탄을 이기도록 주님이 도우시고, 역사 하신다는 것이다. 지난 주간에 저는 마귀권세에 눌려 나름대로 영적인 씨름이 있었다. 마귀가 나에게 찾아와서 나를 넘어뜨리려고 별수를 다 썼다. “너가 그래가지고 무슨 목사냐, 성도들에게 말씀도 똑바로 먹이지 못하는 너는 목회할 자격도 없다. 너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 그 말씀을 듣는 성도들이 변화를 받고 뒤집어져서 새로운 삶, 능력의 삶을 살지 않겠는가
그런데 돌아 보라. 너는 열심히 말씀을 준비해서 전한다고 하면서 너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변화되는 사람이 누구냐 어느 교회의 목사를 보아라. 그는 말씀을 전할 때에 사람들이 넘어지고, 병자를 고치고 기적을 일으키는데 너는 뭐하니, 그러니 너 앞으로 말씀을 전하지 말라.” 이런 말로 마귀는 나를 넘어뜨리려고 발버둥을 쳤다. 사실 마귀의 속삭임을 듣고 보니 실재 그렇다. 말씀을 듣고 변화되어 능력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과연 몇이며, 기도하여 응답 받은 것이 과연 몇인가 이것을 생각하니 미치고 환장하겠다. 의욕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고 싶은 마음도 없어진다.
그런데 말씀을 준비하는 가운데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나에게 찾아오셨고, 그리고 나를 무기력하게 하고, 망하게 하는 마귀를 이길 수 있는 힘과 권세를 주셨다. 그리고는 다음의 말씀을 나에게 주셨다. 로마서 8:31-39절의 말씀이다. 하나님이 나를 위하시는데 누가 나를 넘어뜨리겠는가 누가 하나님의 자녀요, 일꾼이 나를 송사 하겠는가 누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나를 끊으리요. 아무도 나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하나님의 일에서 끊을 수 없다. 그렇다.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주님은 마귀, 사탄을 이길 수 있는 힘과 권세를 주셨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날 마귀는 여러분들을 넘어지게 하려고 별의별 모양으로 역사를 할것입니다. 더군다나 여러분들이 열심히 하려고 하지 않고, 열심히 하지 않으면 그래도 좀 괜찮은데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데 되어지지 않는 것을 물고 늘어지면서 여러분들을 공격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너 믿음으로 산다고 살았는데 그 결과가 뭐냐’ ‘너 기도한다고 새벽으로, 저녁으로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는데 응답된게, 나아진게 뭐가 있냐’ ‘너 성경을 그렇게도 줄기차게 읽고, 말씀을 많이 들으면서 변화되고, 나아진게 무엇이있냐’ 그렇게 마귀는 여러분들의 믿음을 약화시킬 것입니다. 마귀는 어떻게 하든지 여러분들의 믿음이, 기도생활이 힘을 잃도록 역사 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를 넘어지게 하려는 마귀의 권세를 대단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부활하신 이 예수님을 굳게 붙잡읍시다. 부활하신 주님은 내가 마귀 권세를 이길 수 있도록 역사 하시기 위하여 부활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살아가다 나를 망하게 하는 마귀가 넘어뜨리려고 할 때에 마귀에게 끌려 다니지 말고 사망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믿음으로 사망권세를 이기는자 되시기 바랍니다.
2예수님께서 부활하심은 ‘우리도 다시 산다’는 것을 보여 주심입니다. (고전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 도다 라고 말씀하고 있다. 즉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은 장차 우리들도 다시 부활하실 것에 대한 모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우리는 이미 부활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것입니까 ㉮우리는 죽었다가 다시 산자들입니다. (엡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엡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죄로 말미암아 죽은 우리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다시 산 존재, 부활한 존재인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영의 부활이라고 한다. 죽은 우리의 영혼이 영원히 산 존재가 되었다. 죽었던 내가 다시 살아났다.
그러므로 오늘 이 부활을 늘 느끼며 살아가기 바란다. 나는 부활한 존재이다. 나는 죽었다가 다시 산 존재이다. ㉯우리는 장차 또 부활 할 것이다. 무엇이 부활할 것입니까 우리가 죽으면 이 육신도 부활할 것입니다. (고전 15: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 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고전 15: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 리라 (고전 15:53)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때는 우리의 육신이 신령체로 변화되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거하게되는 부활이 있을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영이 다시 산 것 뿐아니라 우리의 육신도 부활하여 영과 육이 온전히 한 몸을 이루어 하나님의 나라에 거하게 될 것이다. 이 말은 우리가 이 땅에 살다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는 새로운 삶의 터전, 새로운 나라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 나에게 주어질 것에 대한 소망을 안겨 줄 것이다.
여러분! 이 땅에서 고생하며 사는 것, 힘들게 사는 것, 마음아파하며 사는 것 가운데 있게 될지라도 주님의 부활을 기억하라. 곧 나에게도 지금 이 땅과는 비교가 되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가 나를 위하여 기다리고 있음을 말이다. 주님께서 부활하시므로 우리도 다시 살아 이 땅의 것보다 더 좋은 하나님의 것이 주어진다는 것을 믿고 이 땅에서 믿음으로 사시기 바란다. 초대교회당시의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운동장에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산채로 짐승의 밥이 되어 비참하게 죽어 감에도 믿음을 잃지 안고 끝까지 인내할 수 있었던 것은 비록 육신이 죽지만 다시 부활한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더좋은 몸으로 부활할 것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믿음을 끝까지 지킬 수 있었다. 화형장에서 화형을 당해 가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도 다시 사신 주님처럼 그들도 다시 살 것에 대한 소망이 있었기에 감당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연약한 부분들이 부활할 것입니다. ‘부활’이란 죽었다가 다시 산다는 말도 되지만, “쇠하였다가 다시 일어남”다는 의미도 된다. 우리 주님께는 능력이 부족함이 없다. 그는 모든 것을 능하게 하는 하나님이시다. 그분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병자가 치료함을 받고, 연약한 자가 강건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났으며, 가난하고, 외로운 자들이 부한 자가 되며, 연약한 부분에서 강건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난다. 이러한 능력의 하나님을 믿는 자는 지금 우리에게, 육적이든, 영적이든, 가정적이든, 사업적이든 그는 연약한 부분들을 강하게 하실 수 잇는 능력을 맛보게 된다. 지금 내게 연약한 부분이 무엇인가 믿음인가 물질인가 육신의 질병인가 사업의 어려운 인가 강건하게 하시는 부활의 주님을 마음속에 모시고, 그분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라. 반드시 부활의 역사가 있을 것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면 나도 부활 한 것이며, 또 부활할 것이다.
3예수님께서 부활하심은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말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은 우리 인간과 함께 영원히 계시기 위해서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몸을 입으셨든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으셨기에 제약을 받았고,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특정인들에게는 함께 할 수 있었지만 모든 인류에게, 모든 사람에게는 함께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신령한 몸을 가지고 계신 주님은 시,공의 제약을 받지 아니하시고 어디서든지, 누구에게든지, 언제든지 함께 게실 수 있는 분이 되셨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은 지금 이 자리에 우리와 함께 계시며, 내가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님은 나와 함께 하신다. 내가 연약할 때나, 내가 강건할 때나, 내가 실수할 때나, 내가 잘할 때에도 언제든지 주님은 나와 함께 계신다. 즉, 주님의 부활은 곧 나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왜 부활하셔서 나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시고, 또 주님이 나와 함께 해야 하는가 요한복음 14장이 바로 그런 말씀이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떠날 것을 말씀 하셨을 때에 제자들은 근심을 했다. 주님 없이 어떻게 험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해서 말이다. 실제 주님이 잡히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제자들은 그들의 일터로 가서 소망없은 삶을 살아갔다(요21:2-3). 그러나 예수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하겠는가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지만 잡지 못하고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삶의 의욕을 잃어 버렸으며, 목적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 살아갈 뿐이었다. 그들은 두려워 떨었다(요20:19).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두려워떨고, 낙심하고, 힘을 잃고, 삶의 의욕을 상실한 그들을 찾아오셔서 함께 하시면서 그들을 도와주었다.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힘있게, 능력 있게 살아갔다. 막16:10-11에서 슬퍼하며 울며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내려가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찾아 오셔서 함께 하시면서 그들에게 힘을 주시고 용기를 주셨다. 부활하신 주님이 함께 하는 삶을 살았던 사람들은 그들이 마땅히 해야할 일을 했으며, 담대함으로 승리를 가져 왔으며,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갔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과거의 역사 속에서 힘잃고 낙심한 사람들만 찾아 함께 하면 승리케 한 것이 아니라 그분은 오늘도 믿는 자 속에서 동일하게 함께 하시며 역사 하시는 주님이 되심을 믿기 바란다. 그분은 살아서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며, 우리의 가정에 함께 하며, 우리의 교회의 함께 하며, 우리의 일에 함께 하며, 우리의 문제에 함께 하시는 분이시다. 그럼에도 주님이 함께 하심을 못 보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요20:17에서 그는 ‘영으로 계시기 때문’이며, ㉯눅24:15-16에서 동행하고 계시나 우리의 눈이 가리워서 보이지 아니하다. 엠마오로 내려가는 제자들에게 부활의 주님이 함께 하였지만 그들은 주님과 동행을 하면서도 눈이 가리워서 주님이심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하지만 주님께서 하신 말씀과 주시는 것을 먹고 그들은 눈이 밝아 그분이 주님이심을 알게 되었다. 여러분들의 영안이 열려져서 부활하셔서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시며, 내 삶을 주장하시는 주님이 보여지시기 바란다. 주님은 살아서 지금도 우리 가운데 역사하신다.
3.예수부활이 내 부활이 되기를 바라는가
1부활이 있기까지는 죽어야 한다. (고전15:36) 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그렇다. 예수님께서도 (요12:24)한 알의 밀이 땅의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이처럼 주님께서 영광된 부활의 몸을 입으시고, 그래서 모든 이름들이 주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된 것은 주님이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영광을 얻기를 바라는가 우리가 죽어야 산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죽어보라. 육이 죽어야 영이 살고, 자존심이 죽어야 은혜를 받는다. 주님의 일을 할 때에도 죽어야 영광된 일들이 일어난다. 그리고 죽는 것을 겁내지 말라. 우리들은 영광된 몸으로 부활할 것이며, 또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이 될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15:31에서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했다.
2믿어야 한다(요11:40) (요 11:4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 느냐 하신대 요11:25-26에서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셨다.
3부활의 주님을 증거하여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십시오.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예수님이 누우셨던 곳이 비어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즉 예수님이 말씀하시던 대로 부활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6-7절에서 천사들로부터 ‘예수님이 다시 살아 나셨다’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리고는 어떻게 합니까 8절 말씀에 보면 이들은 예수부활을 전하려 달음질 하였습니다. 예수 부활을 증거하는 이런 일들을 하고자 할 때에 부활의 주님은 그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 하셨다. 또 보시렵니까 사도들이 무엇을 증거합니까 (행 4: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마치는 말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부활하신 부활절 아침에 우리들이 두가지 명확한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1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것과
2모든 죽은 자들은 다시 부활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요5:28)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요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이 있습니다. 생명의 부활은-선한 일을 행한자, 즉 믿는자의 부활이며, 심판의 부활은-악한 일을 행한자, 즉 불신자의 부활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했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생명의 부활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를 영접하고 열심히 믿음으로 살았습니까
그렇다면 부활하여 심판을 받을 때에 주께로 부터 칭찬과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지 아니한자들도 부활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부활은 심판을 받기 위하여 부활을 하게 됩니다. 영원한 지옥 불못에 던져 넣기 위하여 부활시킵니다. 살아서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심판을 위하여 부활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사랑하는 부모가, 자식이, 형제가, 친척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웃이 불못에 이르게 되는 심판을 받기전에 부활의 주님을 증거합시다. 오늘 우리들은 부활의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 생명이라도 지옥가기전에 빨리 전도하여 구원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모두가 생명의 부활에 이르게 되는 축복이 있어지기 바랍니다.
첫째-죽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중국의 진시황 = 중원을 평정한 후 모든 소망이 이뤄졌습니다. 남은 한가지는 죽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로초(不老草)를 구하기 위하여 500여명을 동방의 심산에 보내었습니다. 그러나 그도 죽었습니다. 누구나 죽는 것입니다. 100년후 오늘 여기 모인 사람 중에 한 사람도 땅에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둘째-죽더라도 언젠가는 다시 살아났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이집트인들은 왕을 미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언젠가는 다시 살아 날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엘로프 칼슨 박사는 동물학자인데 말라버린 미라를 다시 세포를 살려낼 수 있다고 연구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헛된 꿈이었습니다. 불가능한 일입니다. 혹 가능하다 할지라도 미라로 남아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니다. 인간의 어떠한 노력도 죽음을 면케 할 수 없고, 인간의 죽음을 다시 살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이 두 가지를 해결했습니다.
1.예수는 부활하셨다(1-6)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된지 사흘째 아침에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으로 달려왔을 때에 이것을 지키보고 있던 천사가 그 사람들을 향하여 외친 첫 번째의 말씀은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신 던 대로 살아 나셨느니라”라고 외쳤다. 그렇다. 예수님께서는 천사들의 외침처럼 무덤에 머물지 않고 다시 살아 나셨다. 그는 죄를 이기시고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종교의 교주들은 다 죽었다. 마호멧은 63세에 죽었고, 공자는 73세에 죽었고, 맹자는 83세에 죽었고, 석가는 80세에 죽었다. 그러나 살아난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죽었지만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예수는 부활하셨습니다.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는 성경대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 나셨다(고전15:3,4) 여러분들은 이런 예수의 부활을 여러분들은 믿습니까 그러나 역사를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고 부정하는 사람들이 몇 가지의 이야기를 들어 거부하고 있다. 도거설-제자들이 시체를 훔쳐 암매장하고 말을 퍼뜨렸다고 함 가사설-일시적으로 기절을 했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함 환상설-제자들이 예수님을 간절히 사모한 나머지 환상을 보고하는 말이라고 함 날조설-예수가 부활하지도 않았는데 날조했다고 함 지진설-무덤 속에 묻어 두었는데 지진이 나서 예수의 시체를 뭍고 말았다고 함 이렇게 어떤 이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해 부정을 하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역사의 정확한 기반을 두고 있는 성경은 예수가 부활하셨다고 수없이 말씀하고 있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11번이나 나타나 자기를 보였고,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했던 제자 도마도 부활하신 주님의 손을 만지고 나서야 믿었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보이면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는 하늘로 승천하셨다(고전15장). 우리들은 주님의 부활을 우리의 눈으로 목격을 한 것은 아니지만 말씀에 기록된 대로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말씀을 믿으면 예수의 부활이 내 부활이 될줄을 믿습니다.’
2.
그렇다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요 11: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 11: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지금으로부터 예수님께서 2천년 전에 내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다시 살아 나셨다고 하자. 과연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야 할 필요성과, 예수의 부활이 오늘을 살고 있는 나와는 무슨 상관이 있는가
1예수님의 부활은 ‘사망권세를 이겼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망은 죄로 인한 결과이다. 예수님은 나의 죄, 우리의 죄를 지시고 죽음의 자리에 계셨다. 그는 죽음의 자리에서 바로 나의 죄값의 형벌을 치루어 주셨다. 그러나 그는 사망 권세의 주관자인 사탄을 이기고 사망의 자리에서 나오셨다. 주님의 부활은 단순히 죽음 자체보다는 우리를 사망으로 끌고 가는 마귀, 사탄에게 죄값을 치르시고, 그리고 그를 이기심의 대한 승리의 선포이다.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우리에게 ‘주님은 마귀를 이기고, 다스리는 능력의 주님’이심을 보여주신 놀라운 사건이다. 오늘날도 마귀는 사망권세를 잡은 자로서 사람들을 죄짓게 하고 그리하여 사람들을 멸망으로 이끌어가기 위하여 역사 한다. 그는 우리에게 갖가지의 방법으로 넘어지게 하고 자빠지게 한다. 그러나 사망권세 잡은 마귀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자는 예수 부활이 바로 내 부활이 된다. 즉, 그 능력의 주님을 믿는 자는 역시 마귀 사탄을 이기도록 주님이 도우시고, 역사 하신다는 것이다. 지난 주간에 저는 마귀권세에 눌려 나름대로 영적인 씨름이 있었다. 마귀가 나에게 찾아와서 나를 넘어뜨리려고 별수를 다 썼다. “너가 그래가지고 무슨 목사냐, 성도들에게 말씀도 똑바로 먹이지 못하는 너는 목회할 자격도 없다. 너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 그 말씀을 듣는 성도들이 변화를 받고 뒤집어져서 새로운 삶, 능력의 삶을 살지 않겠는가
그런데 돌아 보라. 너는 열심히 말씀을 준비해서 전한다고 하면서 너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변화되는 사람이 누구냐 어느 교회의 목사를 보아라. 그는 말씀을 전할 때에 사람들이 넘어지고, 병자를 고치고 기적을 일으키는데 너는 뭐하니, 그러니 너 앞으로 말씀을 전하지 말라.” 이런 말로 마귀는 나를 넘어뜨리려고 발버둥을 쳤다. 사실 마귀의 속삭임을 듣고 보니 실재 그렇다. 말씀을 듣고 변화되어 능력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과연 몇이며, 기도하여 응답 받은 것이 과연 몇인가 이것을 생각하니 미치고 환장하겠다. 의욕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고 싶은 마음도 없어진다.
그런데 말씀을 준비하는 가운데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나에게 찾아오셨고, 그리고 나를 무기력하게 하고, 망하게 하는 마귀를 이길 수 있는 힘과 권세를 주셨다. 그리고는 다음의 말씀을 나에게 주셨다. 로마서 8:31-39절의 말씀이다. 하나님이 나를 위하시는데 누가 나를 넘어뜨리겠는가 누가 하나님의 자녀요, 일꾼이 나를 송사 하겠는가 누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나를 끊으리요. 아무도 나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하나님의 일에서 끊을 수 없다. 그렇다.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주님은 마귀, 사탄을 이길 수 있는 힘과 권세를 주셨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날 마귀는 여러분들을 넘어지게 하려고 별의별 모양으로 역사를 할것입니다. 더군다나 여러분들이 열심히 하려고 하지 않고, 열심히 하지 않으면 그래도 좀 괜찮은데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데 되어지지 않는 것을 물고 늘어지면서 여러분들을 공격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너 믿음으로 산다고 살았는데 그 결과가 뭐냐’ ‘너 기도한다고 새벽으로, 저녁으로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는데 응답된게, 나아진게 뭐가 있냐’ ‘너 성경을 그렇게도 줄기차게 읽고, 말씀을 많이 들으면서 변화되고, 나아진게 무엇이있냐’ 그렇게 마귀는 여러분들의 믿음을 약화시킬 것입니다. 마귀는 어떻게 하든지 여러분들의 믿음이, 기도생활이 힘을 잃도록 역사 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를 넘어지게 하려는 마귀의 권세를 대단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부활하신 이 예수님을 굳게 붙잡읍시다. 부활하신 주님은 내가 마귀 권세를 이길 수 있도록 역사 하시기 위하여 부활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살아가다 나를 망하게 하는 마귀가 넘어뜨리려고 할 때에 마귀에게 끌려 다니지 말고 사망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믿음으로 사망권세를 이기는자 되시기 바랍니다.
2예수님께서 부활하심은 ‘우리도 다시 산다’는 것을 보여 주심입니다. (고전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 도다 라고 말씀하고 있다. 즉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은 장차 우리들도 다시 부활하실 것에 대한 모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우리는 이미 부활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것입니까 ㉮우리는 죽었다가 다시 산자들입니다. (엡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엡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죄로 말미암아 죽은 우리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다시 산 존재, 부활한 존재인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영의 부활이라고 한다. 죽은 우리의 영혼이 영원히 산 존재가 되었다. 죽었던 내가 다시 살아났다.
그러므로 오늘 이 부활을 늘 느끼며 살아가기 바란다. 나는 부활한 존재이다. 나는 죽었다가 다시 산 존재이다. ㉯우리는 장차 또 부활 할 것이다. 무엇이 부활할 것입니까 우리가 죽으면 이 육신도 부활할 것입니다. (고전 15: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 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고전 15: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 리라 (고전 15:53)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때는 우리의 육신이 신령체로 변화되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거하게되는 부활이 있을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영이 다시 산 것 뿐아니라 우리의 육신도 부활하여 영과 육이 온전히 한 몸을 이루어 하나님의 나라에 거하게 될 것이다. 이 말은 우리가 이 땅에 살다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는 새로운 삶의 터전, 새로운 나라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 나에게 주어질 것에 대한 소망을 안겨 줄 것이다.
여러분! 이 땅에서 고생하며 사는 것, 힘들게 사는 것, 마음아파하며 사는 것 가운데 있게 될지라도 주님의 부활을 기억하라. 곧 나에게도 지금 이 땅과는 비교가 되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가 나를 위하여 기다리고 있음을 말이다. 주님께서 부활하시므로 우리도 다시 살아 이 땅의 것보다 더 좋은 하나님의 것이 주어진다는 것을 믿고 이 땅에서 믿음으로 사시기 바란다. 초대교회당시의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운동장에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산채로 짐승의 밥이 되어 비참하게 죽어 감에도 믿음을 잃지 안고 끝까지 인내할 수 있었던 것은 비록 육신이 죽지만 다시 부활한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더좋은 몸으로 부활할 것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믿음을 끝까지 지킬 수 있었다. 화형장에서 화형을 당해 가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도 다시 사신 주님처럼 그들도 다시 살 것에 대한 소망이 있었기에 감당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연약한 부분들이 부활할 것입니다. ‘부활’이란 죽었다가 다시 산다는 말도 되지만, “쇠하였다가 다시 일어남”다는 의미도 된다. 우리 주님께는 능력이 부족함이 없다. 그는 모든 것을 능하게 하는 하나님이시다. 그분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병자가 치료함을 받고, 연약한 자가 강건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났으며, 가난하고, 외로운 자들이 부한 자가 되며, 연약한 부분에서 강건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난다. 이러한 능력의 하나님을 믿는 자는 지금 우리에게, 육적이든, 영적이든, 가정적이든, 사업적이든 그는 연약한 부분들을 강하게 하실 수 잇는 능력을 맛보게 된다. 지금 내게 연약한 부분이 무엇인가 믿음인가 물질인가 육신의 질병인가 사업의 어려운 인가 강건하게 하시는 부활의 주님을 마음속에 모시고, 그분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라. 반드시 부활의 역사가 있을 것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면 나도 부활 한 것이며, 또 부활할 것이다.
3예수님께서 부활하심은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말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은 우리 인간과 함께 영원히 계시기 위해서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몸을 입으셨든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으셨기에 제약을 받았고,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특정인들에게는 함께 할 수 있었지만 모든 인류에게, 모든 사람에게는 함께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신령한 몸을 가지고 계신 주님은 시,공의 제약을 받지 아니하시고 어디서든지, 누구에게든지, 언제든지 함께 게실 수 있는 분이 되셨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은 지금 이 자리에 우리와 함께 계시며, 내가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님은 나와 함께 하신다. 내가 연약할 때나, 내가 강건할 때나, 내가 실수할 때나, 내가 잘할 때에도 언제든지 주님은 나와 함께 계신다. 즉, 주님의 부활은 곧 나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왜 부활하셔서 나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시고, 또 주님이 나와 함께 해야 하는가 요한복음 14장이 바로 그런 말씀이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떠날 것을 말씀 하셨을 때에 제자들은 근심을 했다. 주님 없이 어떻게 험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해서 말이다. 실제 주님이 잡히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제자들은 그들의 일터로 가서 소망없은 삶을 살아갔다(요21:2-3). 그러나 예수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하겠는가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지만 잡지 못하고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삶의 의욕을 잃어 버렸으며, 목적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 살아갈 뿐이었다. 그들은 두려워 떨었다(요20:19).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두려워떨고, 낙심하고, 힘을 잃고, 삶의 의욕을 상실한 그들을 찾아오셔서 함께 하시면서 그들을 도와주었다.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힘있게, 능력 있게 살아갔다. 막16:10-11에서 슬퍼하며 울며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내려가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찾아 오셔서 함께 하시면서 그들에게 힘을 주시고 용기를 주셨다. 부활하신 주님이 함께 하는 삶을 살았던 사람들은 그들이 마땅히 해야할 일을 했으며, 담대함으로 승리를 가져 왔으며,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갔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과거의 역사 속에서 힘잃고 낙심한 사람들만 찾아 함께 하면 승리케 한 것이 아니라 그분은 오늘도 믿는 자 속에서 동일하게 함께 하시며 역사 하시는 주님이 되심을 믿기 바란다. 그분은 살아서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며, 우리의 가정에 함께 하며, 우리의 교회의 함께 하며, 우리의 일에 함께 하며, 우리의 문제에 함께 하시는 분이시다. 그럼에도 주님이 함께 하심을 못 보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요20:17에서 그는 ‘영으로 계시기 때문’이며, ㉯눅24:15-16에서 동행하고 계시나 우리의 눈이 가리워서 보이지 아니하다. 엠마오로 내려가는 제자들에게 부활의 주님이 함께 하였지만 그들은 주님과 동행을 하면서도 눈이 가리워서 주님이심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하지만 주님께서 하신 말씀과 주시는 것을 먹고 그들은 눈이 밝아 그분이 주님이심을 알게 되었다. 여러분들의 영안이 열려져서 부활하셔서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시며, 내 삶을 주장하시는 주님이 보여지시기 바란다. 주님은 살아서 지금도 우리 가운데 역사하신다.
3.예수부활이 내 부활이 되기를 바라는가
1부활이 있기까지는 죽어야 한다. (고전15:36) 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그렇다. 예수님께서도 (요12:24)한 알의 밀이 땅의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이처럼 주님께서 영광된 부활의 몸을 입으시고, 그래서 모든 이름들이 주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된 것은 주님이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영광을 얻기를 바라는가 우리가 죽어야 산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죽어보라. 육이 죽어야 영이 살고, 자존심이 죽어야 은혜를 받는다. 주님의 일을 할 때에도 죽어야 영광된 일들이 일어난다. 그리고 죽는 것을 겁내지 말라. 우리들은 영광된 몸으로 부활할 것이며, 또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이 될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15:31에서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했다.
2믿어야 한다(요11:40) (요 11:4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 느냐 하신대 요11:25-26에서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셨다.
3부활의 주님을 증거하여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십시오.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예수님이 누우셨던 곳이 비어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즉 예수님이 말씀하시던 대로 부활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6-7절에서 천사들로부터 ‘예수님이 다시 살아 나셨다’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리고는 어떻게 합니까 8절 말씀에 보면 이들은 예수부활을 전하려 달음질 하였습니다. 예수 부활을 증거하는 이런 일들을 하고자 할 때에 부활의 주님은 그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 하셨다. 또 보시렵니까 사도들이 무엇을 증거합니까 (행 4: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마치는 말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부활하신 부활절 아침에 우리들이 두가지 명확한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1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것과
2모든 죽은 자들은 다시 부활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요5:28)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요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이 있습니다. 생명의 부활은-선한 일을 행한자, 즉 믿는자의 부활이며, 심판의 부활은-악한 일을 행한자, 즉 불신자의 부활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했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생명의 부활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를 영접하고 열심히 믿음으로 살았습니까
그렇다면 부활하여 심판을 받을 때에 주께로 부터 칭찬과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지 아니한자들도 부활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부활은 심판을 받기 위하여 부활을 하게 됩니다. 영원한 지옥 불못에 던져 넣기 위하여 부활시킵니다. 살아서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심판을 위하여 부활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사랑하는 부모가, 자식이, 형제가, 친척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웃이 불못에 이르게 되는 심판을 받기전에 부활의 주님을 증거합시다. 오늘 우리들은 부활의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 생명이라도 지옥가기전에 빨리 전도하여 구원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모두가 생명의 부활에 이르게 되는 축복이 있어지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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