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배설한 잔치 (눅14:16-24)
본문
본문의 말씀은 비유로서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시며, 그 분이 우리를 어떻게 여기시는가를 말해주고 있고, 그에 대한 우리들의 모습이 어떠해야 할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1.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16-17절)
1하나님께서는 잔치를 배설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잔칫집에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잔치집에는 먹을것이 많습니다. 잔치집에는 여러 종류의 음식이 있습니다. 한 두가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즉 하나님에게는 사람들에게 잔치를 베풀만큼 모든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 잔치집에 참여한 우리들에게 잔치를 배설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음식이 어떤 것이 있습니까 사람들은 부귀영화를 갖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부귀영화(富貴榮華)를 가지려고 얼마나 애들 쓰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만큼 좋은것이기 부귀영화를 가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렇게 갖기를 원하는 부귀영화는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대상 29:12)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 니 모든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하나님은 잔치를 배설하시고 잔치 집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부귀영화라는 음식을 주어 먹게 하시기 원하십니다. 사람들은 건강하기를 원합니다. 건강해야 무슨 일이든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건강하기 위하여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지 모릅니다. 좋다는 것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먹으려 합니다. 병이들면 어떻게 하든지 건강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건강하기를 원하고, 치료받기를 원하지만 그 건강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출 15:26)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만병의 의사되신 하나님은 잔치를 배설하시고 그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을 치료하여 건강케 하시기 원하십니다. 사람들은 잘되고, 잘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잘되고, 잘하고 싶어서 얼마나 열심히 행합니까
그런데 그런 원함과 힘씀이 있음에도 잘되지 않고, 잘하지 못합니다. 잘되고, 안되고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삼상2:6)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삼상2:7)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생사화복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은 잔치를 배설하시고 그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되게하시고, 하게하시는 것을 주어 먹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사람들은 평안하기를 원합니다.
그도 그럴것이 아무리 세상의 부귀영화를 가지든 마음에 평안이 없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에 평안을 얻으려고, 마음에 기쁨과 즐거움이 있게해 보려고 음악도 듣고, 영화도 보고, 술도 마시고, 게임도 해봅니다만은 잠시잠간은 평안하지만 이내 또 불안,초조, 염려,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왜냐하면 평안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만들어 낼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평안을 주시는 하나님은 잔치를 배설하시고 평안이라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평안을 주어 먹게하여 평안을 가진자로 살기를 원합니다. 사람들은 구원받기를 원합니다. 즉 죄에서 자유함을 얻기를 원하고, 육신의 목숨이 끝날 때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구원을 받고자 선을 행해봅니다. 종교를 가져봅니다. 도덕적인 삶을 살아 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구원은 사람의 노력이나, 힘씀이나, 열심으로 주어 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집니다. (행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 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구원하실 수 있는 하나님은 잔치를 배설하시고 구원이라는 음식을 만들어 놓고 그 잔치에 참여한 사람에게 주어 먹게하여 구원받은자 되어지기를 원합니다.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들이 먹어야 할 많은 음식을 만들어 놓고 잔치를 배설해 놓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2그 배설한 것을 먹도록 우리들을 초청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잔치를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배설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도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습니까 16절-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17절-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잔치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준비해 놓으시고 잔치집에 오도록 초청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부귀영화를 준비해놓고 우리를 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치료의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해 놓고 우리를 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생사화복을 준비해놓고 우리를 오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평안을 준비해 놓고 우리를 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준비해 놓고 우리를 오라 하십니다. 성경에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습니까 (사 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 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사 55:7)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 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렘 40:4) 보라 내가 오늘 네 손의 사슬을 풀어 너를 해방하노니 만일 네가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선히 여기거든 오라 내가 너를 선대하리라 (호 6: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오되 어떻게 오라고 하십니까 (사 55:1)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사 55: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 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 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잔치를 배설하시고 우리에게 그 잔치에 와서 그 잔치에 있는 모든 것을 먹고, 배불리며, 즐거움과 기쁨을 누리는자 되어지기를 원하십니다. 오라 하시는 말씀을 듣고 주께가면 쉼을 얻습니다. 평안을 얻습니다. 치료함을 받습니다. 복을 받습니다. 구원의 역사가 있을 줄 믿습니다. 참여하여 배설한 것을 먹고, 마시고는 복된 역사가 있기를 원합니다. 잔치집에 있는 각양 맛있는 것을 다 먹을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2.잔치에 대한 사람들의 두 가지 반응이 나옵니다(18-24절)
1잔치를 배설해 놓았음에도 참여치 않아 잔치를 누리지 못하는 자가 있습니다(18-20) 이 모습은 오늘 우리들 앞에 있는 하나님께서 배설해 놓으신 잔치상을 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는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잔치를 왜 누리지 못하는가 ㉮나는 밭을 샀으니 불가불 나가 보아야 하겠기에(18절)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참 현명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이사람은 남의 잔치에 참석하는것 보다도 내 밭에 나가보는 것이 더 중하고 바쁜 사람이었습니다. 논이나, 밭과 같은 부동산을 산다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수십번을 생각하고 몇번을 별러야 살수 있는 것입니다. 막상 밭을 샀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또 그 밭에 무엇을 심어 어떻게 가꿀 것인가하는 ,이런 저런 생각으로 부득이 밭에 가보아야 했을 것입니다. 내 일을 제쳐두고 한가로이 남의 잔치상에 앉아서 먹고 마실 겨를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잔치집에 관심이 있을 수 없습니다. 먹고, 살기 바쁜데, 돈 벌기 바쁜데 한가로이 교회를 다니면서 여유부릴 수 없다고 여기는 자들과 똑같은 것입니다. 왜 잔치집에 참여하여 배설한 것을 먹을 수 없습니까 영적인 가치보다 물질적인 가치에 더 큰 관심을 두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사람은 영적인 가치보다 물질적인 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물론 아무리 구원을 받은 성도라 해도 아직은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기에 물질이 필요합니다. 돈이 있어야 보다 하나님께 받은 우리의 사명을 보다 효과적으로 감당할 수가 있습니다. 돈을 버는 자체를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것때문에 사람들이 저 영원을 잃어버려서는 안된다고 하는 말입니다. 돈을 인생의 수단으로 삼아야지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천년 만년을 살 것처럼 욕심을 부리고 삽니다. 내 것이라고 이름 석자를 내걸어 문패를 달고, 땅 문서와 적금통장을 챙깁니다.
그런데 성경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이르셨습니다. 한번 태어난 이상 사람은 분명히 죽는 날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 보다 더 귀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잔치에 참여치 못하고 배설한 것을 먹지 못합니다. 눈에 보이는것도 중요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더 중요하고 귀합니다.
이 세상도 중요하지만 이 세상이 끝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잠간 있다가 없어지는 것 보다 영원한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여기에 참여한 여러분 모두는 하나님께서 배설한 잔치집에 참여하여 배설한 것을 먹을 수 있는자 되기 원합니다. ㉯나는 소 다섯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19절) 소를 사서 시험한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소를 시험하는 것 때문에 잔치집에 참여치 못하는 이것이 문제인것입니다. 사놓은 소가 어디로가겠습니까 잔치에 다녀온 후에 시험해도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소를 시험는 것 때문에 잔치의 초청에 거절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 해주고 있습니까 조급하여 더 큰 일을 그르쳐버린 사람인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왜 잔치집에 배설한 것을 먹지 못합니까 너무 조급하기 때문에 그런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과 믿음의 즉각적인 효과를 기대하다가 스스로 시험에 빠져서 교회를 떠나고 영원한 구원의 영광을 잃어버린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기도한번 해 놓고 금방 응답이 없다고 기도를 멈추기 때문에 응답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한 두 번, 아니면 주일 낮에 한 번 나와서 세상에 찌든 우리의 심령에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함을 입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잠 14:29)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신앙생활은 평생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어 가는 구원의 과정입니다. 농부가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동안 내내 수고의 땀을 지불하고 나서야 가을에 그 열매를 거두는 것처럼 말입니다.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20절) 이것은 무엇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까 이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기쁨보다 세상이 주는 일시적인 쾌락을 더 즐거워하는 사람입니다. 결혼이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제도입니다만 하나님보다 우선될 수는 없습니다. 땅의 것보다 더 좋은 잔치를 하나님은 배설해 놓고 있습니다. 세상 즐거움에 빠지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즐거움에 참여치 못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에 참여치 못합니까 세상의 즐거움과 쾌락에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런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배설한 잔치잡에 참여치 못했습니다.
2배설한 잔치를 누리는 자들이 있습니다(21-24)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잔치집에 참여하여 배설한 잔치를 먹고, 마시며 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21-22절의 말씀을 보면 주인의 종들이 나가 사람들을 데려다가 잔치집에 참여케 했습니다. 비록 많이 차지는 않았지만 그 잔치집에 참여하여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도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준비해 놓고 배설하기를 원하시는 잔칩에 참여하여 은혜를 누리는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을 덧입는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과 평안을 누리는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치료 하심과 복을 누리는자 되시기를 바랍니다. 정말 여러분들은 잔치집에 배설해 놓은 것을 먹고, 마쉬며 누리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잔치를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가난한자들이 되어야 합니다(21절) 본문에 보면 밭을 산 사람, 소 다섯겨리를 산 사람, 장가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바쁘다, 필요없다. 갈 시간이 없다고들 핑계들을 되었습니다. 즉 잔치에 응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21절에 보면 네 종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가난한자들, 병신들, 소경들, 저는자들입니다. 이들은 돈이 없어 말이나 소를 사지 못하고, 몸이 온전치 않아 장가도 가지 못하고, 행색이 궁색해서 먼저번 잔치에 초청을 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잔치에 초청을 하였을 때에 다 참여하였습니다. 이런 모습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습니까 잔치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어리석고, 무식하고, 못난 사람들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 연약한 사람, 나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 내 힘으로는 도저히 할수도 없고, 될 수도 없다고 여기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잔치집에 참여하여 배설해 놓은 것을 먹고, 마시고,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앞서 거절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나도 있다는 것입니다. 나도 안다는 것입니다. 나도 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잔치에 참여코자 하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았지만 아직도 나는 멀었다고 여기는 사람은 잔치집에 기꺼이 참여 합니다. 기도도 많이하고, 말씀도 많이 알지만 이제 막 시작했다는 심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잔치집에 기꺼이 참여합니다. 성경이 무엇이라 말하고 있습니까 (마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는 가난한자들이 됩시다. 그럴 때에 잔치집에 참여케 될 수 있습니다. ㉯잔치집으로 가야 합니다. 왜 잔치를 누리지 못합니까 배설된 잔치 집에 가지 못하기에 잔치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21절에 ‘오라’하는 말을 듣고 그들은 갔습니다. 그랬더니 큰 잔치에 참여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려분과 저를 위하여 잔치를 배설해 놓고 오라고 했습니다. 오면 쉼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잔치를 누리는자 되어지려면 잔치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배설해 놓은 잔치집인 교회에 와야 합니다. 말씀속으로 가야 합니다. 기도의 자리로 가야 합니다. 전도하려 가야 합니다. 그럴때에 잔치를 누릴수 있습니다. ㉰강권해야 합니다(23절) 주인은 종들에게 길과 산울로 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고 말했습니다. 그냥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강권하여 데려다가’ 채우라고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강권하여’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이 강권이라는 말은 ‘아낭카손’이라고 하는데, 이는 ‘하기 싫다는데도 물리적으로, 강제적으로 그를 데려 오라’는 말이 아닙니다. 힘써서 하라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고 합니다.
그런데 무엇이든지 채운다는 것은 그렇게 말같이 쉽지 않습니다. 채우기까지는 힘쓰고 애씀이 있어야 채워집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것은 그냥 선물로 주시지만 그것을 받는 것은 그냥 되지 않습니다. 은혜가 그냥 받아지든가요 은혜받는 일을 위하여 힘써야 은혜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이 그냥 생기지 않습니다. 믿음이 생기기 위하여 믿음이 있게하는 일을 위하여 힘쓸 때 믿음이 생기는줄 믿습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이 그냥 되어지든가요 그 말씀을 따라 살기 위하여 힘쓸때에 말씀따라 사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잔치집에 배설해 놓은 것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배설해 놓은 것입니다. 우리들은 배설해 놓은 것을 먹고, 마시고,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잔치집에 참여할 수 있도록 초청을 받은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들이 이 잔치를 누리는 자 되어지려면 힘씁십다. 열심히 합시다.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잔치집에 배설한 것을 먹을 수 있습니다.
(롬 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벧전 4:8)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계 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끝까지 하라는 말입니다. 본문에 보면 주인이 종들을 내어 보냅니다. 청함을 받은자들을 데려고 오도록 말입니다.
그런데 청함을 받은 자들이 바쁘다고, 시간이 없다고, 할 일이 많다고 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잔치집에 가자고 할 때에 거절할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우선 당장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한다고 오려고 하지 않는다고 할 때에 포기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갈때까지 끝까지 설득하여 데려오라는 말이 ‘강권’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야 그 사람이 잔치집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잔치 집에 참여하는 자 되어서 배설한 것을 먹고, 마시고, 누리는 자 되어지기 위해서는 이런 강권이 있어야 합니다. 즉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해야 되어집니다. 우리들은 하다가 너무 빨리, 쉽게 포기하고, 멈추거나 돌이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첫 숟가락에 배부르지 않습니다. 끝까지 먹다가 보면 배가 부르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이런 모습들이 있어야 잔치집에 배설한 것을 먹을수 있는자 됩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여리고성을 도는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돌아라고 해서 돌기는 돕니다. 몇일이라도 돌았으면 무슨 기별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기별도 없습니다.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돌아라고 하는 그 때까지 끝까지 돌았더니 그 큰 여리고성이 무너졌습니다. 문둥병을 고침받으려는 나아만이 엘리야갸 지시하는대로 요단강에 가서 몸을 씻을 때에 몇번해도 여전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포기하지 않고 7곱번 씻으라는데 까지 나갔더니 그는 고침받아 살이 어린아이같이 희어졌습니다. 원한에 사무친 한 과부가 자기에게 당한 억울한 원한을 풀어달라고 매일 재판장에게 나아갔습니다. 재판장은 들어도 해결해 주지 않았지만 이 여인이 재판장이 들어줄 때까지 나아갔더니 재판장이 그의 억울한 원한을 풀어 주었습니다. 여러분! 기도하는 제목들이 다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제목을 놓고 매일 부르짖어 기도할 때에 당장 들어 주지 않는다고 기도하던 제목을 포기하거나, 기도생활을 멈추지 마십시오. 분명히 말씀대로 했더니 결과가 이루어진 것처럼 우리도 ‘부르짖으면’,‘구하면’응답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이 주어질 것을 믿습니다. 응답이 있을 때까지 끝까지 행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십니까 (요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고전 1:8)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 시리라 주님께서도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기에 우리의 구원이 보장됨이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안에 머물게 되는줄 믿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우리보고 무엇하라고 하십니까 (마 24: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히 3: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 리라 (계 2: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강권해야 배설한 잔치집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마치는 말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큰 잔치를 배설해 놓고 우리들을 오라고 초청하셨습니다. 와서 먹되 돈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먹기를 원하십니다. 다 바쁩니다. 다 할 일이 있습니다. 다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잔치를 배설하고 우리로 와서 사먹게 하는 것들은 그 무엇으로도 살수 없는 귀한 것들입니다. 그것들은 이 땅에서와 저 나라에서 우리를 영원히 복되게 할 것들입니다.
그런데 밭을 샀으니, 소를 샀으니, 장가를 들었으니 나는 잔치에 참여할 수 없다 이 잔치를 거절하시겠습니까 직장에, 사업장에, 가정에, 친구와 동료, 그리고 여러 일들 때문에 나는 아직 내게 닥치지 않는 그런 일들에 별로 게의치 않는다 하시겠습니까 21절에 보면, 잔치를 거절했던 사람들을 향해 잔치를 배설하셨던 하나님의 진노가 있음을 말합니다.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엄중한 진노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은 잔치집에 참여하여 즐거워하고 있을 때에 잔치에서 제외된 자들은 바깥 어두운데 좇겨나서 슬피울며 이를 갈수 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배설하신 이 잔치는 바로 여러분 자신을 위한 잔치입니다. 이 잔치에 참여하여 먹고, 마시고, 누리며 살기를 축복합니다. 뿐만 아니라 내 사랑하는 부모, 형제, 자식들, 이들이 잔치집에 있지 못하면 그들은 바깥 어두움데서 슬피울며 이를 갈수 밖에 없습니다. 강권하여 데려다가 이 잔치에 참여 시킵시다. 배부름이 있을 것입니다. 즐거움이 있을 것입니다.
1.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16-17절)
1하나님께서는 잔치를 배설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잔칫집에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잔치집에는 먹을것이 많습니다. 잔치집에는 여러 종류의 음식이 있습니다. 한 두가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즉 하나님에게는 사람들에게 잔치를 베풀만큼 모든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 잔치집에 참여한 우리들에게 잔치를 배설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음식이 어떤 것이 있습니까 사람들은 부귀영화를 갖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부귀영화(富貴榮華)를 가지려고 얼마나 애들 쓰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만큼 좋은것이기 부귀영화를 가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렇게 갖기를 원하는 부귀영화는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대상 29:12)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 니 모든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하나님은 잔치를 배설하시고 잔치 집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부귀영화라는 음식을 주어 먹게 하시기 원하십니다. 사람들은 건강하기를 원합니다. 건강해야 무슨 일이든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건강하기 위하여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지 모릅니다. 좋다는 것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먹으려 합니다. 병이들면 어떻게 하든지 건강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건강하기를 원하고, 치료받기를 원하지만 그 건강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출 15:26)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만병의 의사되신 하나님은 잔치를 배설하시고 그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을 치료하여 건강케 하시기 원하십니다. 사람들은 잘되고, 잘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잘되고, 잘하고 싶어서 얼마나 열심히 행합니까
그런데 그런 원함과 힘씀이 있음에도 잘되지 않고, 잘하지 못합니다. 잘되고, 안되고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삼상2:6)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삼상2:7)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생사화복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은 잔치를 배설하시고 그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되게하시고, 하게하시는 것을 주어 먹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사람들은 평안하기를 원합니다.
그도 그럴것이 아무리 세상의 부귀영화를 가지든 마음에 평안이 없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에 평안을 얻으려고, 마음에 기쁨과 즐거움이 있게해 보려고 음악도 듣고, 영화도 보고, 술도 마시고, 게임도 해봅니다만은 잠시잠간은 평안하지만 이내 또 불안,초조, 염려,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왜냐하면 평안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만들어 낼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평안을 주시는 하나님은 잔치를 배설하시고 평안이라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평안을 주어 먹게하여 평안을 가진자로 살기를 원합니다. 사람들은 구원받기를 원합니다. 즉 죄에서 자유함을 얻기를 원하고, 육신의 목숨이 끝날 때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구원을 받고자 선을 행해봅니다. 종교를 가져봅니다. 도덕적인 삶을 살아 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구원은 사람의 노력이나, 힘씀이나, 열심으로 주어 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집니다. (행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 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구원하실 수 있는 하나님은 잔치를 배설하시고 구원이라는 음식을 만들어 놓고 그 잔치에 참여한 사람에게 주어 먹게하여 구원받은자 되어지기를 원합니다.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들이 먹어야 할 많은 음식을 만들어 놓고 잔치를 배설해 놓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2그 배설한 것을 먹도록 우리들을 초청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잔치를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배설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도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습니까 16절-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17절-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잔치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준비해 놓으시고 잔치집에 오도록 초청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부귀영화를 준비해놓고 우리를 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치료의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해 놓고 우리를 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생사화복을 준비해놓고 우리를 오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평안을 준비해 놓고 우리를 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준비해 놓고 우리를 오라 하십니다. 성경에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습니까 (사 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 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사 55:7)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 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렘 40:4) 보라 내가 오늘 네 손의 사슬을 풀어 너를 해방하노니 만일 네가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선히 여기거든 오라 내가 너를 선대하리라 (호 6: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오되 어떻게 오라고 하십니까 (사 55:1)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사 55: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 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 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잔치를 배설하시고 우리에게 그 잔치에 와서 그 잔치에 있는 모든 것을 먹고, 배불리며, 즐거움과 기쁨을 누리는자 되어지기를 원하십니다. 오라 하시는 말씀을 듣고 주께가면 쉼을 얻습니다. 평안을 얻습니다. 치료함을 받습니다. 복을 받습니다. 구원의 역사가 있을 줄 믿습니다. 참여하여 배설한 것을 먹고, 마시고는 복된 역사가 있기를 원합니다. 잔치집에 있는 각양 맛있는 것을 다 먹을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2.잔치에 대한 사람들의 두 가지 반응이 나옵니다(18-24절)
1잔치를 배설해 놓았음에도 참여치 않아 잔치를 누리지 못하는 자가 있습니다(18-20) 이 모습은 오늘 우리들 앞에 있는 하나님께서 배설해 놓으신 잔치상을 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는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잔치를 왜 누리지 못하는가 ㉮나는 밭을 샀으니 불가불 나가 보아야 하겠기에(18절)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참 현명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이사람은 남의 잔치에 참석하는것 보다도 내 밭에 나가보는 것이 더 중하고 바쁜 사람이었습니다. 논이나, 밭과 같은 부동산을 산다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수십번을 생각하고 몇번을 별러야 살수 있는 것입니다. 막상 밭을 샀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또 그 밭에 무엇을 심어 어떻게 가꿀 것인가하는 ,이런 저런 생각으로 부득이 밭에 가보아야 했을 것입니다. 내 일을 제쳐두고 한가로이 남의 잔치상에 앉아서 먹고 마실 겨를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잔치집에 관심이 있을 수 없습니다. 먹고, 살기 바쁜데, 돈 벌기 바쁜데 한가로이 교회를 다니면서 여유부릴 수 없다고 여기는 자들과 똑같은 것입니다. 왜 잔치집에 참여하여 배설한 것을 먹을 수 없습니까 영적인 가치보다 물질적인 가치에 더 큰 관심을 두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사람은 영적인 가치보다 물질적인 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물론 아무리 구원을 받은 성도라 해도 아직은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기에 물질이 필요합니다. 돈이 있어야 보다 하나님께 받은 우리의 사명을 보다 효과적으로 감당할 수가 있습니다. 돈을 버는 자체를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것때문에 사람들이 저 영원을 잃어버려서는 안된다고 하는 말입니다. 돈을 인생의 수단으로 삼아야지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천년 만년을 살 것처럼 욕심을 부리고 삽니다. 내 것이라고 이름 석자를 내걸어 문패를 달고, 땅 문서와 적금통장을 챙깁니다.
그런데 성경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이르셨습니다. 한번 태어난 이상 사람은 분명히 죽는 날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 보다 더 귀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잔치에 참여치 못하고 배설한 것을 먹지 못합니다. 눈에 보이는것도 중요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더 중요하고 귀합니다.
이 세상도 중요하지만 이 세상이 끝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잠간 있다가 없어지는 것 보다 영원한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여기에 참여한 여러분 모두는 하나님께서 배설한 잔치집에 참여하여 배설한 것을 먹을 수 있는자 되기 원합니다. ㉯나는 소 다섯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19절) 소를 사서 시험한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소를 시험하는 것 때문에 잔치집에 참여치 못하는 이것이 문제인것입니다. 사놓은 소가 어디로가겠습니까 잔치에 다녀온 후에 시험해도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소를 시험는 것 때문에 잔치의 초청에 거절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 해주고 있습니까 조급하여 더 큰 일을 그르쳐버린 사람인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왜 잔치집에 배설한 것을 먹지 못합니까 너무 조급하기 때문에 그런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과 믿음의 즉각적인 효과를 기대하다가 스스로 시험에 빠져서 교회를 떠나고 영원한 구원의 영광을 잃어버린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기도한번 해 놓고 금방 응답이 없다고 기도를 멈추기 때문에 응답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한 두 번, 아니면 주일 낮에 한 번 나와서 세상에 찌든 우리의 심령에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함을 입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잠 14:29)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신앙생활은 평생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어 가는 구원의 과정입니다. 농부가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동안 내내 수고의 땀을 지불하고 나서야 가을에 그 열매를 거두는 것처럼 말입니다.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20절) 이것은 무엇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까 이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기쁨보다 세상이 주는 일시적인 쾌락을 더 즐거워하는 사람입니다. 결혼이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제도입니다만 하나님보다 우선될 수는 없습니다. 땅의 것보다 더 좋은 잔치를 하나님은 배설해 놓고 있습니다. 세상 즐거움에 빠지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즐거움에 참여치 못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에 참여치 못합니까 세상의 즐거움과 쾌락에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런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배설한 잔치잡에 참여치 못했습니다.
2배설한 잔치를 누리는 자들이 있습니다(21-24)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잔치집에 참여하여 배설한 잔치를 먹고, 마시며 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21-22절의 말씀을 보면 주인의 종들이 나가 사람들을 데려다가 잔치집에 참여케 했습니다. 비록 많이 차지는 않았지만 그 잔치집에 참여하여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도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준비해 놓고 배설하기를 원하시는 잔칩에 참여하여 은혜를 누리는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을 덧입는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과 평안을 누리는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치료 하심과 복을 누리는자 되시기를 바랍니다. 정말 여러분들은 잔치집에 배설해 놓은 것을 먹고, 마쉬며 누리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잔치를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가난한자들이 되어야 합니다(21절) 본문에 보면 밭을 산 사람, 소 다섯겨리를 산 사람, 장가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바쁘다, 필요없다. 갈 시간이 없다고들 핑계들을 되었습니다. 즉 잔치에 응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21절에 보면 네 종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가난한자들, 병신들, 소경들, 저는자들입니다. 이들은 돈이 없어 말이나 소를 사지 못하고, 몸이 온전치 않아 장가도 가지 못하고, 행색이 궁색해서 먼저번 잔치에 초청을 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잔치에 초청을 하였을 때에 다 참여하였습니다. 이런 모습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습니까 잔치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어리석고, 무식하고, 못난 사람들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 연약한 사람, 나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 내 힘으로는 도저히 할수도 없고, 될 수도 없다고 여기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잔치집에 참여하여 배설해 놓은 것을 먹고, 마시고,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앞서 거절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나도 있다는 것입니다. 나도 안다는 것입니다. 나도 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잔치에 참여코자 하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았지만 아직도 나는 멀었다고 여기는 사람은 잔치집에 기꺼이 참여 합니다. 기도도 많이하고, 말씀도 많이 알지만 이제 막 시작했다는 심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잔치집에 기꺼이 참여합니다. 성경이 무엇이라 말하고 있습니까 (마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는 가난한자들이 됩시다. 그럴 때에 잔치집에 참여케 될 수 있습니다. ㉯잔치집으로 가야 합니다. 왜 잔치를 누리지 못합니까 배설된 잔치 집에 가지 못하기에 잔치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21절에 ‘오라’하는 말을 듣고 그들은 갔습니다. 그랬더니 큰 잔치에 참여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려분과 저를 위하여 잔치를 배설해 놓고 오라고 했습니다. 오면 쉼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잔치를 누리는자 되어지려면 잔치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배설해 놓은 잔치집인 교회에 와야 합니다. 말씀속으로 가야 합니다. 기도의 자리로 가야 합니다. 전도하려 가야 합니다. 그럴때에 잔치를 누릴수 있습니다. ㉰강권해야 합니다(23절) 주인은 종들에게 길과 산울로 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고 말했습니다. 그냥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강권하여 데려다가’ 채우라고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강권하여’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이 강권이라는 말은 ‘아낭카손’이라고 하는데, 이는 ‘하기 싫다는데도 물리적으로, 강제적으로 그를 데려 오라’는 말이 아닙니다. 힘써서 하라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고 합니다.
그런데 무엇이든지 채운다는 것은 그렇게 말같이 쉽지 않습니다. 채우기까지는 힘쓰고 애씀이 있어야 채워집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것은 그냥 선물로 주시지만 그것을 받는 것은 그냥 되지 않습니다. 은혜가 그냥 받아지든가요 은혜받는 일을 위하여 힘써야 은혜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이 그냥 생기지 않습니다. 믿음이 생기기 위하여 믿음이 있게하는 일을 위하여 힘쓸 때 믿음이 생기는줄 믿습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이 그냥 되어지든가요 그 말씀을 따라 살기 위하여 힘쓸때에 말씀따라 사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잔치집에 배설해 놓은 것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배설해 놓은 것입니다. 우리들은 배설해 놓은 것을 먹고, 마시고,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잔치집에 참여할 수 있도록 초청을 받은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들이 이 잔치를 누리는 자 되어지려면 힘씁십다. 열심히 합시다.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잔치집에 배설한 것을 먹을 수 있습니다.
(롬 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벧전 4:8)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계 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끝까지 하라는 말입니다. 본문에 보면 주인이 종들을 내어 보냅니다. 청함을 받은자들을 데려고 오도록 말입니다.
그런데 청함을 받은 자들이 바쁘다고, 시간이 없다고, 할 일이 많다고 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잔치집에 가자고 할 때에 거절할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우선 당장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한다고 오려고 하지 않는다고 할 때에 포기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갈때까지 끝까지 설득하여 데려오라는 말이 ‘강권’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야 그 사람이 잔치집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잔치 집에 참여하는 자 되어서 배설한 것을 먹고, 마시고, 누리는 자 되어지기 위해서는 이런 강권이 있어야 합니다. 즉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해야 되어집니다. 우리들은 하다가 너무 빨리, 쉽게 포기하고, 멈추거나 돌이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첫 숟가락에 배부르지 않습니다. 끝까지 먹다가 보면 배가 부르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이런 모습들이 있어야 잔치집에 배설한 것을 먹을수 있는자 됩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여리고성을 도는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돌아라고 해서 돌기는 돕니다. 몇일이라도 돌았으면 무슨 기별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기별도 없습니다.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돌아라고 하는 그 때까지 끝까지 돌았더니 그 큰 여리고성이 무너졌습니다. 문둥병을 고침받으려는 나아만이 엘리야갸 지시하는대로 요단강에 가서 몸을 씻을 때에 몇번해도 여전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포기하지 않고 7곱번 씻으라는데 까지 나갔더니 그는 고침받아 살이 어린아이같이 희어졌습니다. 원한에 사무친 한 과부가 자기에게 당한 억울한 원한을 풀어달라고 매일 재판장에게 나아갔습니다. 재판장은 들어도 해결해 주지 않았지만 이 여인이 재판장이 들어줄 때까지 나아갔더니 재판장이 그의 억울한 원한을 풀어 주었습니다. 여러분! 기도하는 제목들이 다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제목을 놓고 매일 부르짖어 기도할 때에 당장 들어 주지 않는다고 기도하던 제목을 포기하거나, 기도생활을 멈추지 마십시오. 분명히 말씀대로 했더니 결과가 이루어진 것처럼 우리도 ‘부르짖으면’,‘구하면’응답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이 주어질 것을 믿습니다. 응답이 있을 때까지 끝까지 행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십니까 (요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고전 1:8)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 시리라 주님께서도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기에 우리의 구원이 보장됨이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안에 머물게 되는줄 믿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우리보고 무엇하라고 하십니까 (마 24: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히 3: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 리라 (계 2: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강권해야 배설한 잔치집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마치는 말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큰 잔치를 배설해 놓고 우리들을 오라고 초청하셨습니다. 와서 먹되 돈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먹기를 원하십니다. 다 바쁩니다. 다 할 일이 있습니다. 다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잔치를 배설하고 우리로 와서 사먹게 하는 것들은 그 무엇으로도 살수 없는 귀한 것들입니다. 그것들은 이 땅에서와 저 나라에서 우리를 영원히 복되게 할 것들입니다.
그런데 밭을 샀으니, 소를 샀으니, 장가를 들었으니 나는 잔치에 참여할 수 없다 이 잔치를 거절하시겠습니까 직장에, 사업장에, 가정에, 친구와 동료, 그리고 여러 일들 때문에 나는 아직 내게 닥치지 않는 그런 일들에 별로 게의치 않는다 하시겠습니까 21절에 보면, 잔치를 거절했던 사람들을 향해 잔치를 배설하셨던 하나님의 진노가 있음을 말합니다.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엄중한 진노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은 잔치집에 참여하여 즐거워하고 있을 때에 잔치에서 제외된 자들은 바깥 어두운데 좇겨나서 슬피울며 이를 갈수 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배설하신 이 잔치는 바로 여러분 자신을 위한 잔치입니다. 이 잔치에 참여하여 먹고, 마시고, 누리며 살기를 축복합니다. 뿐만 아니라 내 사랑하는 부모, 형제, 자식들, 이들이 잔치집에 있지 못하면 그들은 바깥 어두움데서 슬피울며 이를 갈수 밖에 없습니다. 강권하여 데려다가 이 잔치에 참여 시킵시다. 배부름이 있을 것입니다. 즐거움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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