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사라 (렘32:6-15)
본문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의 한 대사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한 감동으로 살아 있습니다. 프랑스 영화였는데, 나치 독일의 지배아래 있을 때 독립 운동을 하던 젊은이들의 모임에서 중요한 거사 계획을 했다가 그 계획이 탄로나게 됩니다. 이 때 한 젊은이가 이렇게 말합니다. “동지들, 모든 것은 끝장났소. 자폭해버립시다.” 이 때 한 젊은이가 나와서 이렇게 말하는 장면을 잊을수가 없습니다. “아니요, 동지들. 아직은 끝이 아니요. 우리가 꿈을 잃어버릴 때 그때 비로소 끝이 올것이요.” 아직 탄로는 나지 않았지만 사실 앞서 말한대로 이들의 계획은 끝장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니요, 아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소망있는 말입니까 이 사람의 말을 생각하고 있으니까 스피노자라는 사람이 한 말이 생각이 납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본문의 상황 오늘 읽었던 본문의 상황이 이랬습니다. 본문은 유대민족사의 희망의 끝, 그 희망이 마지막 벼랑에 몰려 있던 역사의 무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때는 주전 587년, 그러니까 586년에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당하기 7,8개월 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미 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은 바벨론 군대에 의해서 포위되어 있었습니다. 그때 당년 57세였던 선지자 예레미야는 조국에 다가오고 있는 불길한 미래에 대한 심판의 예언을 하다가 시드기야왕에게 체포되어 감옥에 감금되었습니다.
그런데 감옥에 갇혀 있던 예레미야에게 그의 친척 한 사람이 찾아 옵니다. 예레미야의 숙부 아들 하나멜(7절)입니다. 숙부의 아들이니까 사촌 사이인 그가 찾아와서 ‘당신도 형편이 어렵겠지만 내가 지금 너무나 어려우니 내 밭을 사달라’(7절)고 합니다. 감옥에 있는 사람을 동정은 못할 망정 자기 경제 형편이 어렵다고 예리미야에게 자기 밭을 사 달라는 것입니다. 그럴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그 당시에는 친척사이에만 땅의 매매가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이 때가 지금 어느 상황입니까 전시의 상황입니다. 나라가 망하기 일보 직전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때에 무슨 밭이 필요하겠으며, 부동산이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이런 때는 오직 현금만 필요합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9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그가 이런 상황에서 이 밭을 삽니다.
그런데 그가 이 밭을 사게 된 것은 그가 정신이 이상해서, 뭔가 모자라서 산 것이 아니였습니다. 예레미야는, 물론 나라가 어려워지고, 심지어 나라를 잃어버릴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우리 민족은 반드시 회복된다, 설사 잃어버려지는 경우가 있을지라도 다시 정상화 될 것이고, 그 때 이 밭은 대단히 쓸모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밭을 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레미야가 단순히 밭을 산다는 것만이 아닙니다. 예레미야가 밭을 산 것은 믿음의 결정이었습니다. 그가 밭을 사는 행위는 미래를 사는, 희망을 사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가 지금 그의 조국의 앞날에 먹구름이 짙게 드려워져 있었지만 그는 조국의 미래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여러분 자신의 상황이나 앞날을 볼 때에 어떻습니까 ‘이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 어려운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하나’할 이런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있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기대했던 것이 기대했던 대로 다 이루어지리라 바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뭔가 좀 될줄 알았는데 되기는커녕 더 힘들어가고 어려워져 가지 않습니까 저도 저 나름대로 목회를 하면서 앞을 생각하면 참 캄캄함이 먹구름같이 밀려올때가 있습니다. 뭔가 좀 하는 일에 발전이 있고, 나아지면 좋겠는데 그렇기는커녕 성장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침체되어갑니다. 내일을 바라보아도 별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을 때는 참으로 답답합니다. 나와의 긴 씨름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상황을 보면, 우리 민족도 희망의 끝에 와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우리나라가 구제 금융을 신청한 날을 가르켜서 국치일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가 경제 신탁 통치를 받기로 결정한 날, 나라가 부도가 나서 외국에 의해서 법정 관리를 받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참 슬픈 이야기이고 답답한 애기입니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들을 보면 기대할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시대 속에서 교회마저도 심한 정체의 위기를 격고 있습니다. 교회가 성장하지 못합니다. 계속 줄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과거 부흥이 일어났던 시절에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기 일생을 내어 놓고 복음을 위해 살기로 작정하며 그의 인생을 주 앞에 드리던 헌신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찾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여려분! 앞을 보고, 뒤를 보고, 옆을 보아도 별로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고 캄캄한 절벽과 같은 이런 때야 말로 역설적인 희망을 가져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으면, 희망을 창조라도 해야 할 때라고 믿습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포기하고, 주저 앉을수 없지 않습니까 되지 않는다고 하던 일을 멈출수 없지 않습니까 열매가 없다고 그만둘수 없지 않습니까 이런 일에 관해서 예레미야는 우리에게 모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희망을 창조해서라도 유다의 민족,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밭을 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려분과 저도 예레미야처럼 희망이 보이지 않지만 희망을 창조해서라도 내가 희망을 갖게 되고, 희망을 창조해서 절망가운데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자로 살기를 원합니다. 오늘은 그 비결 한가지를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드리고자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이 절망적인 암울한 시대에 희망을 창조하는 자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1.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삶이 어려워지고, 힘들어지고, 곤란해지면 질수록 사람의 말의 귀를 귀울입니다. ‘이렇게 하면 돈을 번데, 이렇게 하면 잘 된데.’ 이런 많은 말들이 사람들의 귀를 현혹합니다. 얼마전 우리들은 메스컴을 통해 참 안타까운 소식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명예퇴직을 한 사람들, 그 중에 특히 공직에 머물다가 명퇴바람에 휩쓸려서 퇴직금과 위로금을 받은 것을 한 순간에 몇 억, 몇천을 다 날려 버리는 이런 소식을 들었습니다. 돈을 투자하면, 이사를 시켜준다든지, 임원을 시켜 준다든지, 그래서 배당금을 많이 탈수 있다는 이런 말을 듣고 좇아가서 결국 한푼도 건지지 못하고 하루아침에 거지신세가 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어느 누구나 힘들고 어려운 시대 일수록 사람의 말에 귀를 잘 귀울입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어렵고 힘든 때일수록 사람의 말에 귀를 귀울일 것이 아니라 정작 우리가 귀를 귀울여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귀울여야 합니다. 저는 오늘 본문의 예레미야가 한치 앞을 내다 볼수도 없는 이런 상황에 밭을 사는 모습을 보고, 이 예레미야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이 어떠했으리라 짐작을 해 보았습니다. 아마 주변의 사람들은, ‘저 사람 돈 사람이 아니야, 정신이 나간 사람이 아니야, 미쳤는가 봐’ ‘그 밭을 사봐야 무슨 이득이 있다고, 그것이 자기를 얼마나 이롭게 한다고, 차라리 그 돈으로 사람들을 매수해서 감옥에서 나올 생각이나 해야지. 참 어리석은 사람이구먼’라고 비난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어떻게 합니까 사람들이 자기를 향해 손가락질을 함에도 불구하고, 밭을 사는 것이 당장에 이득이 없고 손해가 됨에도 불구하고 밭을 사기로 결정합니다. 예레미야가 비난, 조롱을 받을만 함에도 불구하고 밭을 산 이유가 어디에 있었을까요 그것은 예레미야가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기 때문입니다. 6절에 무엇이라고 시작을 합니까 예레미야에게 무엇이 임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그는 말씀을 사모했고, 그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나 뉴스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앞에 더 귀를 기울이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예레미야가 7절의 말씀처럼, 그의 숙부 살룸의 아들 하나멜이 와서 밭을 사라고 한 것은 사람의 말을 듣고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사게 된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말씀 하셨습니까 > 8절 예레미야는 사람의 말을 통해서 분명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에 밭을 산 것이였습니다. 분명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상식을 깨는 행동을 합니다. 사드락,메삭,아벳느고 지금 당장 느부갓네살 신상을 향해 절하지 않으면, 평소보다 7배나 더 뜨거운 풀무불속에 집어 넣어짐을 당한다 해도 풀무불을 겁내지 않았습니다. (단 3:17)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다니엘 다리오왕 외에 그 어느 누구에게라도 기도하면 사자굴속에 집어 넣어짐을 당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사자굴을 무서워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멈출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단 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초대교회의 성도들 기독교 초대교회 당시의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는 다는 이유만으로 잡혀 들어가 수많은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산채로 인간등불이 되었으며, 짐승의 가죽을 뒤집어 씌여 맹수들의 밥이 되었으며, 산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그런 비참한 죽음을 당하면서도 그들은 그들이 믿는 예수님을 부인하거나 거절하지 않았었습니다. 왜일까요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은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말씀을 들었을까요 (요 11: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 11: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사랑하는 여러분! 정말 힘들고 어려운 시대입니다. 캄캄한 절벽이고, 앞뒤가 꽉 막힌 그런 상황가운데 처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마냥 손을 놓고 주저 앉을수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원망하고 불평하다가 이 귀한 세월들을 보낼수 없지 않습니까 이런 시대일수록 우리는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좇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사람의 잡다한 소리들은 우리가 들으면 들을수록 우리를 좌절케 합니다. 실망케 합니다. 낙심케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런 때일수록 살아계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입시다. 오늘 이 시간 예레미야에게 임하였던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를 주께서 열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의해서 믿음의 행동을 하는 여려분과 저가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이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을 향해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습니까 (사 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 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 리라 (사 41:11)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사 41:12)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같이, 허무한 것같이 되리니 (사 41:13)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 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사 41:14)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 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 이 어렵고 힘든 시대에 주님이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면서 우리를 돕는자 중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고, 함께계시면서도와주시는 하나님이 하시면 그 어떤것들도 감당치 못한 이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또 주님이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사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 나니 너는 내 것이라 (사 43: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사 43: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사 43:4)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 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사 43:5)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방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방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사 43:6) 내가 북방에게 이르기를 놓으라 남방에게 이르기를 구류하지 말라 내 아들들을 원방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라 이 어렵고 힘든 시대에 주님이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습니까 주님이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말은 크시고 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조성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구속(사셨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우리가 물 가운데 지나고, 불가운데 지날때에 함께 계시면서 물이 침몰치 못하도록, 불이 사르지도 못하도록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또 주님이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렘 33:2)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 이 이르노라 (렘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이 어렵고 힘든 시대에 주님이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습니까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고 하십니다. 그리하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출 23:21) 너희는 삼가 그 목소리를 청종하고 그를 노엽게 하지 말라 그가 너희 허물을 사하지 아 니할 것은 내 이름이 그에게 있음이니라 (출 23:22) 네가 그 목소리를 잘 청종하고 나의 모든 말대로 행하면 내가 네 원수에게 원수가 되고 네 대적에게 대적이 될지라 우리가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지 않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을 따라 움직일 때에 주님께서 내 원수에게 원수가 되어 주겠다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내 대적에게 대적자가 되어주셔서 싸워 이기게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마치는 말
사랑하는 여러분! 참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위기의식을 느끼게 됩니다. 내일에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는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문제, 저문제 생각하면 머리만 아프고 방법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하나 한숨만 나올 뿐입니다. 남편을 쳐다봐도, 아내를 쳐다봐도, 자식을 쳐다봐도, 직장을 쳐다봐도, 이 사회를 쳐다봐도 별 희망도 없고, 소망도 없고, 기대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밭을 사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까지도 안되었는데 내게 무슨 수가 나겠는가’ 하지 마시고, 주님의 말씀대로 ‘밭을 삽시다’ 희망을 가집시다. 소망을 품읍시다. 지금까지 안되었기에 주님은 지금 되게 하시기 원하십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누가 비웃고 조롱을 할지라도, 누가 멸시하고 천대할 지라도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움직일 때, 여러분 앞을 가로막고 있는 홍해가 갈라지는 역사를 체험하게 될것입니다. 주님은 지금 여러분과 저를 가로막고 있는 여리고성 저 너머에 있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얻게 하시기 원하십니다. 축복의 역사를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믿음의 역사를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가로 막고 있는 여리고성만 바라보지 마시고, 가로막고 있는 여리고성을 무너지게 하시고자하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 음성을 듣고 움직이는 사람에게 가나안은 주어질 것입니다.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에서 상점을 운영하던 사람이있었습니다. 주인은 꿈을 가지고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이 상점에 화재가 발생,값비싼 물건들이 전소되고 말았습니다.주변 사람들은 이 주인의 인생이 [끝장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화재가난 다음 날 상점 앞에 붙은 [알림]판에는 이런글귀가 씌여져 있었답니다. [이 상점의 모든 것이 다 타버렸습니다. 그러나 우리 가족들의 희망은 결코 타지 않았습니다.내일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이 하나님을 붙들고 그분의 음성을 듣고 움직이는 한,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감옥에 갇혀 있던 예레미야에게 그의 친척 한 사람이 찾아 옵니다. 예레미야의 숙부 아들 하나멜(7절)입니다. 숙부의 아들이니까 사촌 사이인 그가 찾아와서 ‘당신도 형편이 어렵겠지만 내가 지금 너무나 어려우니 내 밭을 사달라’(7절)고 합니다. 감옥에 있는 사람을 동정은 못할 망정 자기 경제 형편이 어렵다고 예리미야에게 자기 밭을 사 달라는 것입니다. 그럴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그 당시에는 친척사이에만 땅의 매매가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이 때가 지금 어느 상황입니까 전시의 상황입니다. 나라가 망하기 일보 직전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때에 무슨 밭이 필요하겠으며, 부동산이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이런 때는 오직 현금만 필요합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9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그가 이런 상황에서 이 밭을 삽니다.
그런데 그가 이 밭을 사게 된 것은 그가 정신이 이상해서, 뭔가 모자라서 산 것이 아니였습니다. 예레미야는, 물론 나라가 어려워지고, 심지어 나라를 잃어버릴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우리 민족은 반드시 회복된다, 설사 잃어버려지는 경우가 있을지라도 다시 정상화 될 것이고, 그 때 이 밭은 대단히 쓸모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밭을 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레미야가 단순히 밭을 산다는 것만이 아닙니다. 예레미야가 밭을 산 것은 믿음의 결정이었습니다. 그가 밭을 사는 행위는 미래를 사는, 희망을 사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가 지금 그의 조국의 앞날에 먹구름이 짙게 드려워져 있었지만 그는 조국의 미래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여러분 자신의 상황이나 앞날을 볼 때에 어떻습니까 ‘이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 어려운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하나’할 이런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있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기대했던 것이 기대했던 대로 다 이루어지리라 바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뭔가 좀 될줄 알았는데 되기는커녕 더 힘들어가고 어려워져 가지 않습니까 저도 저 나름대로 목회를 하면서 앞을 생각하면 참 캄캄함이 먹구름같이 밀려올때가 있습니다. 뭔가 좀 하는 일에 발전이 있고, 나아지면 좋겠는데 그렇기는커녕 성장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침체되어갑니다. 내일을 바라보아도 별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을 때는 참으로 답답합니다. 나와의 긴 씨름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상황을 보면, 우리 민족도 희망의 끝에 와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우리나라가 구제 금융을 신청한 날을 가르켜서 국치일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가 경제 신탁 통치를 받기로 결정한 날, 나라가 부도가 나서 외국에 의해서 법정 관리를 받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참 슬픈 이야기이고 답답한 애기입니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들을 보면 기대할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시대 속에서 교회마저도 심한 정체의 위기를 격고 있습니다. 교회가 성장하지 못합니다. 계속 줄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과거 부흥이 일어났던 시절에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기 일생을 내어 놓고 복음을 위해 살기로 작정하며 그의 인생을 주 앞에 드리던 헌신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찾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여려분! 앞을 보고, 뒤를 보고, 옆을 보아도 별로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고 캄캄한 절벽과 같은 이런 때야 말로 역설적인 희망을 가져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으면, 희망을 창조라도 해야 할 때라고 믿습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포기하고, 주저 앉을수 없지 않습니까 되지 않는다고 하던 일을 멈출수 없지 않습니까 열매가 없다고 그만둘수 없지 않습니까 이런 일에 관해서 예레미야는 우리에게 모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희망을 창조해서라도 유다의 민족,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밭을 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려분과 저도 예레미야처럼 희망이 보이지 않지만 희망을 창조해서라도 내가 희망을 갖게 되고, 희망을 창조해서 절망가운데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자로 살기를 원합니다. 오늘은 그 비결 한가지를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드리고자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이 절망적인 암울한 시대에 희망을 창조하는 자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1.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삶이 어려워지고, 힘들어지고, 곤란해지면 질수록 사람의 말의 귀를 귀울입니다. ‘이렇게 하면 돈을 번데, 이렇게 하면 잘 된데.’ 이런 많은 말들이 사람들의 귀를 현혹합니다. 얼마전 우리들은 메스컴을 통해 참 안타까운 소식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명예퇴직을 한 사람들, 그 중에 특히 공직에 머물다가 명퇴바람에 휩쓸려서 퇴직금과 위로금을 받은 것을 한 순간에 몇 억, 몇천을 다 날려 버리는 이런 소식을 들었습니다. 돈을 투자하면, 이사를 시켜준다든지, 임원을 시켜 준다든지, 그래서 배당금을 많이 탈수 있다는 이런 말을 듣고 좇아가서 결국 한푼도 건지지 못하고 하루아침에 거지신세가 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어느 누구나 힘들고 어려운 시대 일수록 사람의 말에 귀를 잘 귀울입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어렵고 힘든 때일수록 사람의 말에 귀를 귀울일 것이 아니라 정작 우리가 귀를 귀울여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귀울여야 합니다. 저는 오늘 본문의 예레미야가 한치 앞을 내다 볼수도 없는 이런 상황에 밭을 사는 모습을 보고, 이 예레미야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이 어떠했으리라 짐작을 해 보았습니다. 아마 주변의 사람들은, ‘저 사람 돈 사람이 아니야, 정신이 나간 사람이 아니야, 미쳤는가 봐’ ‘그 밭을 사봐야 무슨 이득이 있다고, 그것이 자기를 얼마나 이롭게 한다고, 차라리 그 돈으로 사람들을 매수해서 감옥에서 나올 생각이나 해야지. 참 어리석은 사람이구먼’라고 비난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어떻게 합니까 사람들이 자기를 향해 손가락질을 함에도 불구하고, 밭을 사는 것이 당장에 이득이 없고 손해가 됨에도 불구하고 밭을 사기로 결정합니다. 예레미야가 비난, 조롱을 받을만 함에도 불구하고 밭을 산 이유가 어디에 있었을까요 그것은 예레미야가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기 때문입니다. 6절에 무엇이라고 시작을 합니까 예레미야에게 무엇이 임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그는 말씀을 사모했고, 그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나 뉴스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앞에 더 귀를 기울이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예레미야가 7절의 말씀처럼, 그의 숙부 살룸의 아들 하나멜이 와서 밭을 사라고 한 것은 사람의 말을 듣고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사게 된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말씀 하셨습니까 > 8절 예레미야는 사람의 말을 통해서 분명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에 밭을 산 것이였습니다. 분명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상식을 깨는 행동을 합니다. 사드락,메삭,아벳느고 지금 당장 느부갓네살 신상을 향해 절하지 않으면, 평소보다 7배나 더 뜨거운 풀무불속에 집어 넣어짐을 당한다 해도 풀무불을 겁내지 않았습니다. (단 3:17)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다니엘 다리오왕 외에 그 어느 누구에게라도 기도하면 사자굴속에 집어 넣어짐을 당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사자굴을 무서워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멈출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단 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초대교회의 성도들 기독교 초대교회 당시의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는 다는 이유만으로 잡혀 들어가 수많은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산채로 인간등불이 되었으며, 짐승의 가죽을 뒤집어 씌여 맹수들의 밥이 되었으며, 산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그런 비참한 죽음을 당하면서도 그들은 그들이 믿는 예수님을 부인하거나 거절하지 않았었습니다. 왜일까요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은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말씀을 들었을까요 (요 11: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 11: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사랑하는 여러분! 정말 힘들고 어려운 시대입니다. 캄캄한 절벽이고, 앞뒤가 꽉 막힌 그런 상황가운데 처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마냥 손을 놓고 주저 앉을수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원망하고 불평하다가 이 귀한 세월들을 보낼수 없지 않습니까 이런 시대일수록 우리는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좇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사람의 잡다한 소리들은 우리가 들으면 들을수록 우리를 좌절케 합니다. 실망케 합니다. 낙심케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런 때일수록 살아계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입시다. 오늘 이 시간 예레미야에게 임하였던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를 주께서 열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의해서 믿음의 행동을 하는 여려분과 저가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이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을 향해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습니까 (사 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 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 리라 (사 41:11)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사 41:12)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같이, 허무한 것같이 되리니 (사 41:13)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 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사 41:14)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 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 이 어렵고 힘든 시대에 주님이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면서 우리를 돕는자 중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고, 함께계시면서도와주시는 하나님이 하시면 그 어떤것들도 감당치 못한 이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또 주님이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사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 나니 너는 내 것이라 (사 43: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사 43: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사 43:4)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 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사 43:5)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방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방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사 43:6) 내가 북방에게 이르기를 놓으라 남방에게 이르기를 구류하지 말라 내 아들들을 원방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라 이 어렵고 힘든 시대에 주님이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습니까 주님이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말은 크시고 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조성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구속(사셨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우리가 물 가운데 지나고, 불가운데 지날때에 함께 계시면서 물이 침몰치 못하도록, 불이 사르지도 못하도록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또 주님이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렘 33:2)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 이 이르노라 (렘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이 어렵고 힘든 시대에 주님이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습니까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고 하십니다. 그리하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출 23:21) 너희는 삼가 그 목소리를 청종하고 그를 노엽게 하지 말라 그가 너희 허물을 사하지 아 니할 것은 내 이름이 그에게 있음이니라 (출 23:22) 네가 그 목소리를 잘 청종하고 나의 모든 말대로 행하면 내가 네 원수에게 원수가 되고 네 대적에게 대적이 될지라 우리가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지 않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을 따라 움직일 때에 주님께서 내 원수에게 원수가 되어 주겠다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내 대적에게 대적자가 되어주셔서 싸워 이기게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마치는 말
사랑하는 여러분! 참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위기의식을 느끼게 됩니다. 내일에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는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문제, 저문제 생각하면 머리만 아프고 방법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하나 한숨만 나올 뿐입니다. 남편을 쳐다봐도, 아내를 쳐다봐도, 자식을 쳐다봐도, 직장을 쳐다봐도, 이 사회를 쳐다봐도 별 희망도 없고, 소망도 없고, 기대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밭을 사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까지도 안되었는데 내게 무슨 수가 나겠는가’ 하지 마시고, 주님의 말씀대로 ‘밭을 삽시다’ 희망을 가집시다. 소망을 품읍시다. 지금까지 안되었기에 주님은 지금 되게 하시기 원하십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누가 비웃고 조롱을 할지라도, 누가 멸시하고 천대할 지라도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움직일 때, 여러분 앞을 가로막고 있는 홍해가 갈라지는 역사를 체험하게 될것입니다. 주님은 지금 여러분과 저를 가로막고 있는 여리고성 저 너머에 있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얻게 하시기 원하십니다. 축복의 역사를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믿음의 역사를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가로 막고 있는 여리고성만 바라보지 마시고, 가로막고 있는 여리고성을 무너지게 하시고자하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 음성을 듣고 움직이는 사람에게 가나안은 주어질 것입니다.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에서 상점을 운영하던 사람이있었습니다. 주인은 꿈을 가지고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이 상점에 화재가 발생,값비싼 물건들이 전소되고 말았습니다.주변 사람들은 이 주인의 인생이 [끝장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화재가난 다음 날 상점 앞에 붙은 [알림]판에는 이런글귀가 씌여져 있었답니다. [이 상점의 모든 것이 다 타버렸습니다. 그러나 우리 가족들의 희망은 결코 타지 않았습니다.내일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이 하나님을 붙들고 그분의 음성을 듣고 움직이는 한,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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