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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역사하는 사람 (살전5: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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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에 고신대학 생명공학 연구팀들이 모 방송의 부탁을 받고 어떤 사람들이 모기에 잘 물리고, 물리지 않는지를 실험을 했었습니다. 똑같은 환경에서 젊은 남녀 4명을 놓고 1시간 정도 실험을 했었는데 어떤 사람은 모기에 많이 물리는가하면, 어떤 사람은 모기에 물리지 않는, 물어도 지극히 적은수의 모기에 물렸습니다. 모기에 많이 물린 사람, 적게 물린 사람을 조사해 보니까 모기가 좋아하는 냄새-피 냄새가 나는 사람에게 많이 물렸고, 당분이 아닌 염분의 냄새가 나는 사람-운동을 한 후 땀을 많이 흘린-에게는 적게 무는 것으로 조사결과 나타났습니다. 그 사람의 상태가, 조건이, 환경이 어떠하냐에 따라 모기가 몰려드는 것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물리느냐, 아니 물리느냐는 것은 내 상태가 어떠하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럼 과연 나는 어떤 영이 덤벼들기에 좋은 조건인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마귀가 덤벼들기에 좋은 상태가 있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역사 하기에 좋은 상태가 있습니다.
마귀가 덤벼들어 물어 뜯으면 우리의 인생이 불행해지지만, 하나님이 덤벼들어서 역사하시면 우리의 인생은 행복한 인생이 되어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요 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 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성경에 보면 마귀가 역사하기 좋게 판을 벌려 놓았다가 마귀에게 물려 인생을 불행하게 마친 사람들이 여럿이 나옵니다. 구약의 대표적인 사람을 말하라면 사울이요, 신약의 대표적인 사람을 이야기 하자면 가롯유다입니다. 이들은 마귀가 역사할 수 있는 판을 벌려 놓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는 순종하지 않고 자기의 유익과 자기의 욕심에 눈이 멀고, 남이 잘되는 꼴을 못 보았기에 이런 것을 좋아하는 마귀가 그들을 들어서 얼마나 기가 막히게 사용을 했습니까 그랬더니 그들의 인생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둘다 비참하게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런가하면 하나님이 역사하기에 좋도록 꺼리를 만들어 놓아 하나님께 붙들려 귀하게 쓰임을 받았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구약에는 다윗이요, 신약에는 바울이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일들을 행하였기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얼마나 크게 들어 사용하셨습니까 (행 13: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어떠하냐에 따라 하나님이 역사하므로 축복된 인생을 사는가하면, 마귀가 역사해서 불행한 삶을 살게되는 일들이 일어 날수 있습니다. 부디 원하기는 악한 마귀가 역사할 꺼리를 만들어 마귀가 역사하므로 불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꺼리를 만들어 하나님께서 축복된 인생으로 만들어 나가시는 사람, 하나님께서 풍성케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사람, 하나님께서 승리케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사람이기를 소원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마귀가 역사하지 않고, 하나님이 역사하는 꺼리를 만들 수 있습니까
1.나 자신에 대해서는 감사와 기쁨의 생각과 말과 삶일 때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16-18) 사람에게는 만족함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방 한칸으로 출발한 사람들은 방이 두칸만 되었으면, 월세로 사는 사람들은 전세로 살았으면, 전세로 사는 사람들은 내 집을 가졌으면 하는 이런 생각과 원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어떤 위치에, 어떤 자리에, 어떤 환경에 이르게 되면 만족할 것 같은데 거기에 이른후 얼마 있지않아서 또 다른 욕심이 생깁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이냐하면, 사람이 만족함을 누리지 못할 때 속에서 무엇이 일어나느냐하면, 원망이, 불평이, 짜증이 나옵니다. 그러니 우리의 삶은 감사와 기쁨보다는 원망과 불평의 삶이 더 많습니다. 사람은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조건이 좋으면, 무엇을 성취하면, 환경이 나으면 감사하고 기뻐할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말합니다. 그래서 지금 그렇지 못한 환경하에서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을 당연시 여기고,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좋으면, 잘 되면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겠지만 비단 그런것만이 아닌 것을 오늘 읽었던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에게 ‘항상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는데 이 말씀은 곧, ‘이런 모습이 축복된 삶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역사한다고 하느냐 하면, 항상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들에게 역사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사도가 살아오면서 그의 인생의 경험에서 나온 삶의 고백입니다. 그는 감옥에 갇혔어도 감사하였습니다. 매를 맞아도 감사하였습니다. 범사에 감사하였습니다. 이유는 그는 주 안에 있었기에, 즉 주님이 주신 것을 생각하니 감옥도, 매도, 그에게 닥친 위험의 환경도 감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었습니까 바로 주께서 주신 ‘구원의 은총’,과‘부족하고 연약한 자신을 써 주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과 저에게도 바울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구원의 은혜가 있고, 미련하고 부족한 나를 들어 사용하여 주시는 주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이런 주님이 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기뻐하므로 하나님이 더하여 주시는 사람들이 됩시다. 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어렵게 마련한 돈으로 아들을 위해 아파트를 마련해주었습니다. 당신은 집이 없음에도 아들내외를 위해 기쁜 마음으로 집을 마련한 것입니다. 어머니는 이 결정을 하고 아들내외가 기뻐할 것을 생각했습니다. 연탄 가스를 맡으며 고생하던 아들 내외가 아파트로 이사를 가면 얼마나 기뻐할까. 생각만 하는데도 살 맛이 납니다. 중도금을 치르는 날이되었습니다. 이번에는 계약할 때 빠졌던 며느리도 함께 갔습니다. 어머니는 신이 났습니다. 아들 내외가 아파트를 보며 얼마나 기뻐할까. 집으로 들어서며 어머니는 아들 내외 얼굴만 봅니다. 아들내외의 행복해 하는 그 모습을 보기 위함일 것입니다.
그런데 어쩝니까. 아들 얼굴이 그냥 얼굴입니다. “어휴, 나는 이렇게 작은지 몰랐네. 계약할 때는 꽤 커보이더니 이거 장롱도 제대로 못 놓겠는데. 우리 짐을 어디다 다 갔다가 놓지. 화장실도 이렇게 작아 가지고서야.” 곁에 있던 며느리가 거듭니다. “이 아파트 지은지가 꽤 오래되었나봐요 스물 몇평이라면서 이렇게 적을 수가 있어요. 뭐 잘못된 거 아녜요, 아저씨.” 부동산 중개소 아저씨가 뭐라 열심히 설명을 합니다. 어머니의 얼굴에서 힘이 빠져내립니다. 어머니는 주름진 얼굴로 표정 관리를 하려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입니다 어둠에 덮힌 아파트를 나서며 그 어머니는 허공에다 말했습니다. “하나님 마음을 조금 알것 같다” 아들 내외가 그 이야기를 들었는지는 모릅니다. 그들은 짐 걱정을 하기에 여념이 없었으니까요. 저는 이 이야기를 통해 그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듯 하였습니다. 아들이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흥분도 해봅니다.
그런데 사실 이 아들 내외는 '나'일 수 있습니다. '우리'일 수도 있구요. 하나님 앞에서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는 우리를 무척 사랑하십니다. 그 분은 우리를 위해 아낌없이 주셨습니다. 하늘, 땅, 바다, 공기,양식, 물, 사계절, 친구, 가정, 가족, 생명.다 그 분이 주신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지옥에 빠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의 독생자를 대신 십자가에 달았습니다. 저주의 죽음입니다. 우리를 위함입니다. 우리가 받아야할 저주를 대신한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를 지옥에서 건지시기 위함입니다. 사랑하기에 값없이 주십니다. 하나님은 이 구원의 선물을 준비하신 후, 우리가 얼마나 기뻐하고 즐거워 할까를 생각하십니다. 뜨거운 불이 영원히 타오르는 지옥에서 건져 천국으로 보내 주시니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막상 그 구원의 선물을 받은 우리는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무덤덤해 합니다. 감격도 안합니다. 감사도 안합니다. 그리곤 '아들 내외'와 같이 ‘이게 적다, 이게없다’고 불평을 해 댑니다. 하나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당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은 지금 어떠하십니까. 짐 걱정에 정신 없어 어머니의 심정을 못 헤아리는 '아들 내외'는 아니시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내게 주신 것이 그 어떤 것이던 주님앞에 감사합시다. 감사하고 기뻐함이 하나님이 역사하실수 있는 꺼리를 만드는 사람이 됩니다.
2.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칭찬하고 격려할 때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12-15)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다 장단점이 있습니다. 좋은 점이 있는가하면, 나쁜점도 있고, 잘하는 면이 있는가 하면 못하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누구나 다 자기에게 있는 단점과 잘못하는 것들로 인하여 늘 힘들어 하고, 안타까워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참 이상하지요. 상대방에 대해서 말을 할 때에 그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장점에 대해서, 잘 한점에 대해서는 별 말도 없고, 별 관심도 없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있는 단점, 잘못하는 것, 허물, 부족함은 잘 보고, 또 말도 잘합니다. 그러다 보니 말하는 자신도 그 사람에 대해서 별로로 여겨지고, 또 그렇게 말함을 들은 당사자는 얼마나 큰 상처를 입습니까 우리들은 이런 모습에 너무 익숙해 있습니다. 남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것 보다는 남을 비판하고, 흉을 보는 일에 너무나 익숙해 있습니다. 아마 죄성을 가진 죄인들이서 그런가봅니다. 그러니 거기에 성령님이 역사할리 없고, 마귀의 역사가 일어나 분란이 일어나고 아픔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3절에 ‘사랑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14절에 ‘규묘없는자를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자들을 붙들어주며 모든 사람에 대해서 오래 참으라’ 15절에 ‘모든 사람을 대할때에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대하라’ 즉 이 말씀을 한마디로 하면 ‘칭찬하고 격려하라’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역사하는 일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어느 대학의 물리학 교수가 강의 첫 시간에 학생들에게 “물리학은 매우 어려운 학문이므로 아마도 여러분 중의 50%는 낙방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 학기말 시험을 친 결과 그 교수의 말대로 학급 학생의 50%가 시험에 낙방하였습니다. 이 물리학 교수는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다음 학기의 첫 시간에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록 물리학이 어렵다고 할지라도 여러분은 모두 시험에 합격할 것입니다. 용기를 내어 공부하십시요. 여러분은 아주 지혜롭고 총명합니다.” 그랬더니 그 학기에는 한 사람의 낙방생도 없었다고 합니다. 칭찬과 격려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 지를 보여주는 좋은 실레입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하면 아마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20세기가 낳은 최고 천재중의 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의 학창시절을 보면 그는 결코 천재가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고등학교 생활기록부에는 담임 선생님의 날카로운 지적이 생생히 적혀있었답니다. “이 학생은 무슨 공부를 해도 성공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이러한 내용이 적힌 성적표를 받아든 아인슈타인의 어머니는 낙담해하는 아들을 오히려 달래며 “아들아, 너는 다른 아이와 다르단다. 네가 다른 아이와 같다면 너는 결코 천재가 될 수 없어”라고 격려하였답니다. 아인슈타인의 천재성을 못 알아본 그의 담임 선생님의 가혹한 평가는 오히려 아인슈타인의 어머니에 의해서 격려로 변하였고, 이러한 격려에 힘입은 아인슈타인은 낙담치 않고, 자기에게 주어진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기다리며 묵묵히 학문에 매진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 부터인지 모르게 남을 비판하고, 흉을 보며, 욕을 하고, 흘뜯는데 길들여져 있습니다. 나의 실수와 허물에 대해서는 관대한 반면 다른사람의 조그만한 실수도 받아 들이지 못하고 손가락질하고 비웃고 조롱을 합니다. 결국 그러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곳에 행복이 있을리 만무합니다. 이제 칭찬하고 격려합시다. 부족하고 연약한 모습을 볼때에 비판하고, 욕하고, 흉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런 부족함을 능히 이겨낼수 있는 힘과 용기를 줄 칭찬과 격려의 말을 합시다. 뿐 아니라 그 영혼을 위하여 기도해 줍시다. 그럴 때 낙담하고 좌절했던 그 사람은 다시 분연히 일어설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했던 것은 ‘십자가를 자랑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대해서도 좋은 점을 보고, 좋은 점을 자랑해야 좋은 소문이 납니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험악하고 삭막한 분위기일수록 칭찬과 격려는 더더욱 필요합니다.
3.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를 가질 때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래서 흔히 우리들은 ‘인생사는 마음먹기에 달렸다’라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어떤 마음을 먹고,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여기 물이 있습니다. 이 물이 든 컵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반이나 남아 있네’라고 하고, 어떤 이는 ‘이제 반밖에 안남았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직도 반이나 남아 있네’라고 하는 사람들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람들입니다. 인생을 사는데 매사에 의욕을 가지고, 자신감을 가지고 행합니다. 행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며, 인생을 참 멋있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제 반밖에 안 남았어’라고 하는 사람들은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사람들입니다. 살아가는데 참 피곤합니다. 힘이 듭니다. 여러분! 여러분 앞에 펼쳐지는 일들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 일이 축복이 되느냐 저주가 되느냐가 되어집니다. 광야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정적으로, 소극적으로 살기로 소문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40년동안 그들의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을 다 주셨음에도 늘 그들은 불평합니다. 불만을 가지고 불순종을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들을 이 힘들고 어려운 광야 생활을 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나안땅에 있게 했을 때는, 즉 환경이 좋을 때는 그렇지 않았느냐 하면 환경이 좋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가나안땅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매사를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만족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할리 없습니다. 반면에 하박국 선지자를 보십시오. 그는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습니까 (합 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합 3: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합 3: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 시리로다 이 노래는 영장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없고, 없고, 없고, 없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에게는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좋은 쪽으로 보세요. 긍정적으로 보세요. 비록 지금은 연약하지만 머지않아 하나님의 축복하심을 입어 강건하게 되리라고 믿고 기도하며 나갑시다. 지금은 잘못하지만 앞으로 열심히 행하면 하나님께서 잘하게 하실것이라 믿고 나갑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행할때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마치는 말 반찬거리를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만들어지는 요리가 달라지게 되어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어떤 꺼리를 만드느냐에 따라 인생의 삶의 질이 달라집니다. 악한 영이 역사할 수 있는 꺼리를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어떻게 하지 말라고 말합니까 (엡 4:27)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원망불평은 마귀가 역사할 틈입니다. 비판,흉을 보는 것은 마귀가 역사할 틈입니다.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것은 마귀가 역사할 틈입니다. 마귀가 역사할 틈, 판, 꺼리를 만들지 맙시다. 이제 우리는 성령님이 역사할 꺼리를 만듭시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나 자신에 대해서는 감사하고 기뻐하는 삶이요,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칭찬하고 격려하는 일이요, 모든 것들을 바라볼 때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역사하는 사람, 하나님이 들어 쓰는 사람들이 다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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