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괴롭게 말라 (말2:17)
본문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너희가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한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모습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괴롭게 하는 사람, 삶이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살전 2:4) 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 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과 저는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쁘시게 하는 자들이 되어지기 바랍니다.
1.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를 괴롭게 하는 사람들이 되었는가 말라기 선지자가 활동하던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 상태는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70년 포로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이냐 하면 그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무너졌던 성전을 재건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그 어려운 여건과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성전을 건축을 했으니 얼마나 자부심이 강했겠습니까 거기다가 그들이 주를 위하여 아끼며, 헌신하며, 희생한 것에 대한 주님의 기대도 또한 컸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이렇게 충성을 했으니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한량없는 은혜와 복을 주실 것이야”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이제 받을 축복을 계산 하고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왕상8장에 보면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봉헌식을 거행 할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 임하였습니다. 그래서 모든 선지자, 제사장, 백성들이 엎드리고 고개를 들지 못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임재앞에 희열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은 과연 살아 계시는 구나, 우리가 성전을 건축하여 드렸더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축복 하시는구나” 이들의 감격은 엄청 났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성전을 짖고(포로로 돌아와 그들이 지은 성전), 봉헌식을 드렸는데 그런 감격, 영광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이 임하기는커녕 안개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그들이 기대하고 있던 기대가 이루어 지지 않고, 하나님의 축복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럴 때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 2:17 하반절의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냐”라는 그들의 심정을 하나님께 말하였습니다. 이런 말을 들은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말로 나를 괴롭게 하는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은 두가지의 교훈을 얻습니다.
1우리 행함의 공로나 자격 의식에 사로 잡혀 있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고난 다음에 공로 의식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이만큼 충성했으니 하나님도 우리를 인정하실 거야, 우리를 축복 하실것이야. 우리들을 괴롭히던 페르시아는 망하고, 우리 나라는 부강해 질거이야. 이런 기대와 소망을 가졌는데
그런데 그들의 그런 기대와 소망은 이루어 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생명바쳐, 물질바쳐, 희생을 하였는데 하나님이 이럴수 있느냐, 해도 너무 하신다. 그래서 그들의 공로가 인정되어지지 않음에 대해 원망을 하며 말로 하나님을 괴롭게 하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분명 그를 사랑하며, 그를 가까이 하며, 그를 위하여 희생하고 헌신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성경도 분명히 우리에게 말씀으로 약속하고 계십니다. (잠 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출 20: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이 말씀은 분명 이루어 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앞에서 개인적으로 믿음의 삶을 아름답게 이루어져 나가려면 내 공로나, 나 자격 의식에 사로잡히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저를 너무나 잘 아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너무나 잘 되기기를 바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나는 원하지만 주님은 원치 않을 수 있고, 나는 원치 않지만 주님은 원하실 수 있습니다. 내 뜻대로 이루어져서 복이 임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형편과 사정을 살피고 주시는 복이 더 완전하고 큰 축복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 공로를 따라 어떤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하나님께 우리가 항변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즉 나는 열심히 했는데, 드렸는데도 하나님이 침묵하시고 계신 것 같고, 관심이 없는 것 같은 모습을이 우리에게 보여 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새벽을 잠 안자고 나와 기도하였는데 기도의 응답이 없어질 수 있습니다. 먹을 것, 갖고 싶은 것 자제하고 십일조 드리고 헌금을 하였는데 물질의 복을 안주실수 있습니다. 주일날 장사안하고, 일 안나가고 주일을 지켰음에도 우리의 눈에 보이는 이득이 안 주어질 수 있습니다. 문제는 내 공로나 자격 의식에 사로 잡히면 우리의 신앙은 이내 시들어 지고 말아 버립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하나님을 괴롭게 하는 말,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므로 우리들의 믿음 생활이 충만한 생활이 이루어 지려면 다음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단 3:17)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 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 소서 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건져 주셔도 감사하고, 건져 주시지 않아도 감사하다는 그런 자세입니다. 조건이 아닙니다. 조건이 되어지면 실망합니다. 왜 내가 원하는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어떤 공로 의식에 사로 잡혀 일이 이루어 지지 않으므로 실망하지 말고, 이미 주신 은혜들을 생각하며 믿음으로 바라보고 나갑시다.
2당장 눈 앞에 이루어 지지 않는 일들을 바라 볼때에 하나님을 괴롭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 이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큰 실망감의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영광이 당장에 이루어 지지 않음에 대해 그들은 실망하며 원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하나님의 더 큰 뜻이 들어 있었습니다. 즉 성전을 재건하여 봉헌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으로 임하지 않고 그들에게 역사하지 않았던 것은 왜 일까요 학개선지자는 이렇게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학 2:9)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 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기서 말하는 이 전(殿)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 번째 재건한 성전입니다. 그리고 이전(以前)은 솔로몬 성전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 두 번째 성전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성전은 진정한 성전 되시는 예수님을 일컫는 말입니다. 진정한 성전인 예수님이 오실진대 왜 그림자를 원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구름이 뭐 대단한거냐. 이제는 구름이 임하는 것이 아니라 장차 하나님이 진짜 성전되시는 예수님을 보내실 것을 그들에게 말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당장 내 눈 앞에 보이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말씀을 하시려고 학개 선지자를 보내어 증거했는데 이들이 학개 선지자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괜히 구름이 안 나타나니까 저런 소리 한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열심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 내 눈에 보이는 축복이 보이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맙시다. 당장 내 눈에 보이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하나님의 축복이 주어질것입니다. 내가 기도를 했음에도 당장 내게 기도의 응답이 없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을 괴롭게 하지 맙시다. 주님의 약속은 분명하고, 확실합니다. 성경은 무엇이라 말하고 있습니까 (롬 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그렇습니다. 비교도 안될만큼 우리를 위한 축복이 주어질 것입니다. 주님은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 (계22:12)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그러니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것에 열매가 없고, 결실이 없다고 해서 우리가 실망하고, 낙심할 일이 아닙니다. 주님은 무엇을 바라 보셨습니까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그렇습니다. 앞에 있는 즐거움을 생각하며 참읍시다.
2.하나님을 괴롭게 하는자 되지 말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괴롭게 하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괴롭게 한다’는 말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과 저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괴롭움, 마음 아프게 하는 것을 당할 때 얼마나 힘듭니다. 좋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을 괴롭게 하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무엇이라 말하고 있습니까 (고후 5:9)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엡 5:10)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1말로 하나님을 괴롭게 하였습니다. 그들의 생각대로 안된다고, 그들의 마음대로 안된다고, 그들의 뜻대로 안된다고 하나님앞에 그들은 부정적인 말을 합니다.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여러분가 저가 함부로 내어 밷는 말이 하나님을 괴롭게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즉 어렵고 힘들어 내 밷는 말 중 “차라리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죽어 버려라”등과 같은 부정적인 말을 할 때 그 말을 들으시는 하나님은 괴로우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마음이 아프시다는 것입니다. 말로 괴롭게 맙시다. 욥은 그에게 정말 곤란한 일을 당하였어도 입술로 범죄치 않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욥 1:21)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욥 2:10)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 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
2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여호와를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괴롭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하나님의 섭리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학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을 하셨음에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 믿지 않았다는 표현이 입술로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얼마전에 제자들을 모아 놓고 성만찬을 행하시고 비로서 자기가 잡히고, 십자가의 고난을 당할 것을 말씀으로 가르쳤습니다. 그럴 때 제자들의 얼굴은 수심이 가득찼습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때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이 말씀의 뉘앙스가 무엇입니까 “왜 근심 하느냐, 근심하지 말라. 너희가 3년동안 나를 따라 다녔으면 그것도 모르느냐, 내가 보혜사 성령님을 보낼 것이다. 제발 나를 좀 믿어 달라” 하나님께서 제일 원하시는 것은 ‘믿어달라’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믿지 않습니다. 이럴 때 하나님은 괴롭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수 있습니까 (히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 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그렇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상황이 아무리 암울한 상황, 불가능한 상황이라 할 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주를 믿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고, 우리를 지켜 주실줄 믿습니다”할 때에 주님이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어 주는 사람들을 통하여 그의 일들을 이루어 나갑니다. 그러니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을 믿는자 되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사람들이 될 수 있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7장에 보면 백부장의 믿음에 대해서 나옵니다. 제자들을 보아도 믿음이 없고, 여러 이적들을 베풀어도 믿음이 없는데 엉뚱한데서 큰 믿음을 가진 사람을 발견하고 주님은 감격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감격 시키고 싶습니까 믿음을 갖기를 바랍니다. 매사에 믿음으로 반응을 하면 예수님께서 그것 때문에 기뻐하고, 그것 때문에 감격하십니다.
그런데 많은 주님의 자녀들이 날마다 좌절하고, 원망하므로 주님을 괴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 한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도와 주시지 않으면 실패할 일만 하라. 이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원합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돕지 않으면 망할 일만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마 11: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무슨 말씀 입니까 오직 믿음만을 붙들고 공격하듯이 들어가는 그 사람을 통하여 천국이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오직 믿음 외에는 아무것도 의지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이 천국의 소유자라는 것입니다.
1.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를 괴롭게 하는 사람들이 되었는가 말라기 선지자가 활동하던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 상태는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70년 포로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이냐 하면 그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무너졌던 성전을 재건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그 어려운 여건과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성전을 건축을 했으니 얼마나 자부심이 강했겠습니까 거기다가 그들이 주를 위하여 아끼며, 헌신하며, 희생한 것에 대한 주님의 기대도 또한 컸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이렇게 충성을 했으니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한량없는 은혜와 복을 주실 것이야”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이제 받을 축복을 계산 하고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왕상8장에 보면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봉헌식을 거행 할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 임하였습니다. 그래서 모든 선지자, 제사장, 백성들이 엎드리고 고개를 들지 못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임재앞에 희열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은 과연 살아 계시는 구나, 우리가 성전을 건축하여 드렸더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축복 하시는구나” 이들의 감격은 엄청 났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성전을 짖고(포로로 돌아와 그들이 지은 성전), 봉헌식을 드렸는데 그런 감격, 영광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이 임하기는커녕 안개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그들이 기대하고 있던 기대가 이루어 지지 않고, 하나님의 축복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럴 때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 2:17 하반절의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냐”라는 그들의 심정을 하나님께 말하였습니다. 이런 말을 들은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말로 나를 괴롭게 하는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은 두가지의 교훈을 얻습니다.
1우리 행함의 공로나 자격 의식에 사로 잡혀 있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고난 다음에 공로 의식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이만큼 충성했으니 하나님도 우리를 인정하실 거야, 우리를 축복 하실것이야. 우리들을 괴롭히던 페르시아는 망하고, 우리 나라는 부강해 질거이야. 이런 기대와 소망을 가졌는데
그런데 그들의 그런 기대와 소망은 이루어 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생명바쳐, 물질바쳐, 희생을 하였는데 하나님이 이럴수 있느냐, 해도 너무 하신다. 그래서 그들의 공로가 인정되어지지 않음에 대해 원망을 하며 말로 하나님을 괴롭게 하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분명 그를 사랑하며, 그를 가까이 하며, 그를 위하여 희생하고 헌신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성경도 분명히 우리에게 말씀으로 약속하고 계십니다. (잠 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출 20: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이 말씀은 분명 이루어 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앞에서 개인적으로 믿음의 삶을 아름답게 이루어져 나가려면 내 공로나, 나 자격 의식에 사로잡히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저를 너무나 잘 아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너무나 잘 되기기를 바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나는 원하지만 주님은 원치 않을 수 있고, 나는 원치 않지만 주님은 원하실 수 있습니다. 내 뜻대로 이루어져서 복이 임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형편과 사정을 살피고 주시는 복이 더 완전하고 큰 축복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 공로를 따라 어떤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하나님께 우리가 항변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즉 나는 열심히 했는데, 드렸는데도 하나님이 침묵하시고 계신 것 같고, 관심이 없는 것 같은 모습을이 우리에게 보여 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새벽을 잠 안자고 나와 기도하였는데 기도의 응답이 없어질 수 있습니다. 먹을 것, 갖고 싶은 것 자제하고 십일조 드리고 헌금을 하였는데 물질의 복을 안주실수 있습니다. 주일날 장사안하고, 일 안나가고 주일을 지켰음에도 우리의 눈에 보이는 이득이 안 주어질 수 있습니다. 문제는 내 공로나 자격 의식에 사로 잡히면 우리의 신앙은 이내 시들어 지고 말아 버립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하나님을 괴롭게 하는 말,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므로 우리들의 믿음 생활이 충만한 생활이 이루어 지려면 다음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단 3:17)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 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 소서 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건져 주셔도 감사하고, 건져 주시지 않아도 감사하다는 그런 자세입니다. 조건이 아닙니다. 조건이 되어지면 실망합니다. 왜 내가 원하는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어떤 공로 의식에 사로 잡혀 일이 이루어 지지 않으므로 실망하지 말고, 이미 주신 은혜들을 생각하며 믿음으로 바라보고 나갑시다.
2당장 눈 앞에 이루어 지지 않는 일들을 바라 볼때에 하나님을 괴롭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 이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큰 실망감의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영광이 당장에 이루어 지지 않음에 대해 그들은 실망하며 원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하나님의 더 큰 뜻이 들어 있었습니다. 즉 성전을 재건하여 봉헌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으로 임하지 않고 그들에게 역사하지 않았던 것은 왜 일까요 학개선지자는 이렇게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학 2:9)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 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기서 말하는 이 전(殿)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 번째 재건한 성전입니다. 그리고 이전(以前)은 솔로몬 성전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 두 번째 성전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성전은 진정한 성전 되시는 예수님을 일컫는 말입니다. 진정한 성전인 예수님이 오실진대 왜 그림자를 원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구름이 뭐 대단한거냐. 이제는 구름이 임하는 것이 아니라 장차 하나님이 진짜 성전되시는 예수님을 보내실 것을 그들에게 말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당장 내 눈 앞에 보이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말씀을 하시려고 학개 선지자를 보내어 증거했는데 이들이 학개 선지자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괜히 구름이 안 나타나니까 저런 소리 한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열심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 내 눈에 보이는 축복이 보이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맙시다. 당장 내 눈에 보이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하나님의 축복이 주어질것입니다. 내가 기도를 했음에도 당장 내게 기도의 응답이 없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을 괴롭게 하지 맙시다. 주님의 약속은 분명하고, 확실합니다. 성경은 무엇이라 말하고 있습니까 (롬 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그렇습니다. 비교도 안될만큼 우리를 위한 축복이 주어질 것입니다. 주님은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 (계22:12)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그러니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것에 열매가 없고, 결실이 없다고 해서 우리가 실망하고, 낙심할 일이 아닙니다. 주님은 무엇을 바라 보셨습니까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그렇습니다. 앞에 있는 즐거움을 생각하며 참읍시다.
2.하나님을 괴롭게 하는자 되지 말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괴롭게 하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괴롭게 한다’는 말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과 저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괴롭움, 마음 아프게 하는 것을 당할 때 얼마나 힘듭니다. 좋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을 괴롭게 하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무엇이라 말하고 있습니까 (고후 5:9)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엡 5:10)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1말로 하나님을 괴롭게 하였습니다. 그들의 생각대로 안된다고, 그들의 마음대로 안된다고, 그들의 뜻대로 안된다고 하나님앞에 그들은 부정적인 말을 합니다.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여러분가 저가 함부로 내어 밷는 말이 하나님을 괴롭게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즉 어렵고 힘들어 내 밷는 말 중 “차라리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죽어 버려라”등과 같은 부정적인 말을 할 때 그 말을 들으시는 하나님은 괴로우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마음이 아프시다는 것입니다. 말로 괴롭게 맙시다. 욥은 그에게 정말 곤란한 일을 당하였어도 입술로 범죄치 않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욥 1:21)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욥 2:10)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 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
2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여호와를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괴롭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하나님의 섭리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학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을 하셨음에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 믿지 않았다는 표현이 입술로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얼마전에 제자들을 모아 놓고 성만찬을 행하시고 비로서 자기가 잡히고, 십자가의 고난을 당할 것을 말씀으로 가르쳤습니다. 그럴 때 제자들의 얼굴은 수심이 가득찼습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때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이 말씀의 뉘앙스가 무엇입니까 “왜 근심 하느냐, 근심하지 말라. 너희가 3년동안 나를 따라 다녔으면 그것도 모르느냐, 내가 보혜사 성령님을 보낼 것이다. 제발 나를 좀 믿어 달라” 하나님께서 제일 원하시는 것은 ‘믿어달라’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믿지 않습니다. 이럴 때 하나님은 괴롭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수 있습니까 (히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 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그렇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상황이 아무리 암울한 상황, 불가능한 상황이라 할 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주를 믿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고, 우리를 지켜 주실줄 믿습니다”할 때에 주님이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어 주는 사람들을 통하여 그의 일들을 이루어 나갑니다. 그러니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을 믿는자 되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사람들이 될 수 있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7장에 보면 백부장의 믿음에 대해서 나옵니다. 제자들을 보아도 믿음이 없고, 여러 이적들을 베풀어도 믿음이 없는데 엉뚱한데서 큰 믿음을 가진 사람을 발견하고 주님은 감격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감격 시키고 싶습니까 믿음을 갖기를 바랍니다. 매사에 믿음으로 반응을 하면 예수님께서 그것 때문에 기뻐하고, 그것 때문에 감격하십니다.
그런데 많은 주님의 자녀들이 날마다 좌절하고, 원망하므로 주님을 괴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 한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도와 주시지 않으면 실패할 일만 하라. 이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원합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돕지 않으면 망할 일만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마 11: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무슨 말씀 입니까 오직 믿음만을 붙들고 공격하듯이 들어가는 그 사람을 통하여 천국이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오직 믿음 외에는 아무것도 의지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이 천국의 소유자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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