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함이 없는 삶 (시23:1)
본문
다윗이 압살롬의 추적을 피해다니면서 의식에 사용(희생제물드리면서.) 병의 회복 후에.
예) 톨스토이 우화집 자기에게 맞는 것을 찾는 것 그것이 행복입니다. 항상 우리는 상대적인 행복관에 매여 있어서 행복이라고 하면, 누구보다, 전보다, 내가 투자한 것보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장 큰 행복은 무엇이 남고 풍족해서가 아닙니다. 바로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바로 적절함입니다. . 나는 양인데 여호와는 목장주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내용
1) 먹는 것(쉬는 것)
2) 인도(길 인도)
3) 보호하심(어두운 곳에서도) 다윗은 이것을 감사해 합니다. 시편의 백미라고 하는 이 한 편의 시는 고요하면서도 확신에 찬 그리스도인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갈 때에 “환경을 바꾸지 않고”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를 바꿈으로” 누리는 기쁨의 삶을 보여줍니다.
1) 1절의 말씀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제대로 아는 것이 우리의 부족을 채우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쉽지 않은 고백으로부터 시인은 유명한 시편 23편을 시작합니다. 성숙한 신앙, 응답 받는 신앙이란 이 순서가 바로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을 귀중히 여기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제일 중요한 분으로 자리하도록 하십시오. 아주 실제적인 위치에 있도록.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호와:언제나 계시는 신실한 하나님 하나님의 신실함이란 바로 계셔야 할 곳에 정확히 계시는 것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I have everything I need. 부족함이 없는 삶의 처음은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이 목자이시니 나는 양입니다. 양이라서 기분이 나뿝니까 아닙니다. 내 존재가 하나님과 얽혀 있기만 한다면, 그것으로 감사합니다. 다윗은 현재 부족함이 있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보니 언제나 같이 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우리의 세상의 어려움이 이렇게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징검다리가 됩니다. 누구나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 어려움을 당한다고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 마치 자기 병을 고치지 않으시겠다는 하나님의 응답에 감사하는 바울처럼
2) 2절과 4절 사이에 나타난 시인의 모습은 삶에 지친 모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섰을 때의 나약함은 결코 수치가 아니라는 것을 시편 기자는 잊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허물로 쉽게 지쳐 있으며, 가지 말아야 할 길도 가는 실수도 했다는 것도 받아들였으며, 아무리 인간적인 확신이 있는 길일지라도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하리 만치 자신감을 잃었다는 것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나약하지만 솔직한 신앙의 고백이 은혜의 시작임도 잊지 마십시오. . 어떤 인간적인 불행도 하나님을 만나게 한 결과가 주어진다면, 감사해 합니다. 다윗은 말입니다. 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주님이 알아서 나를 쉬게 해 주십니다. 아이들은 놀 때는 피곤한지도 모르다가 더 아프곤 합니다. (나는 피곤한지도 모르고, 돈버는 재미에, 남이 박수쳐주는 재미에 매여서 쉬게 하십니다. 대게는 이런 것을 받을 때에 좋게 못보고 왜 나를 “양”취급하나요 하지만, 멀지 않아서 알게 됩니다. 그 때에 강권해서 나를 뭠추지 않으셨으면, 나는 갈 때까지 가서 지금 이 자리에 있지도 못할 것임을 하나님은 목자시니 나는 양입니다. 짐승입니다. 어린아이보다 더 합니다. 왜 쉬어야 하는 지를 설명하자면 말부터 가르쳐야 하는 그런 상태입니다. 그런 나를 돌보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푸른 초장이란 단어보다 누이시며에 관심을 갖으시고. 마찬가지로 쉴만한 내게는 그런 것이 절대로 불필요해 보였으나, 정작 당하고 보니 이젠 쉬어야겠다고 여겨지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외형적으로는 멋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대게의 경우 말입니다. 그러니까 않감사하고 불평하고 거부합니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벌써 마음을 슬슬 달래셔서 새 힘을 주시고, 그러나 항상 나를 교만하지 않을 정도의 명분을 주시지 않는가 이미 잃어버려서 영원히 다시돌아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 내 영혼의 문제를 건지십니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불가피한 경우에 겪어야 할 위험에 있는 경우 누구도 같이 할 수 없는 곳에서 같이 가실 때는 (눈에 않채이게 지팡이와 막대기로 인도하시고.) 남들이 볼 때는 않보이지만
3) 마지막의 두 구절은 하나님의 응답의 확실성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저 피해 다니기만 했고, 만나지 않으면 하루가 복받은 것으로 여겼던 그런 원수들 목전에서 갚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담대해지고 우리가 실력을 키워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최고로 여기는 사이에 저절로 내 자신이 하나님의 집에 거하게 되었고, 그런 내 자신이 어느 샌가 하나님의 인정을 받게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이 것은 아니다 싶은 대상을 상대할 때에 하나님의 넉넉함입니다. 간단하게 상을 차리시고 칭찬하시고 나를 기쁘게 하신다. 6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그리고 보니. 내가 주님을 좇아 다닌 것이 아니라, 주님의 성품이 그리하셨습니다. 나는 그저 하나님의 집에 거하는 것밖에 없는데. 성전건축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 평생에, 영원히
예) 톨스토이 우화집 자기에게 맞는 것을 찾는 것 그것이 행복입니다. 항상 우리는 상대적인 행복관에 매여 있어서 행복이라고 하면, 누구보다, 전보다, 내가 투자한 것보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장 큰 행복은 무엇이 남고 풍족해서가 아닙니다. 바로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바로 적절함입니다. . 나는 양인데 여호와는 목장주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내용
1) 먹는 것(쉬는 것)
2) 인도(길 인도)
3) 보호하심(어두운 곳에서도) 다윗은 이것을 감사해 합니다. 시편의 백미라고 하는 이 한 편의 시는 고요하면서도 확신에 찬 그리스도인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갈 때에 “환경을 바꾸지 않고”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를 바꿈으로” 누리는 기쁨의 삶을 보여줍니다.
1) 1절의 말씀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제대로 아는 것이 우리의 부족을 채우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쉽지 않은 고백으로부터 시인은 유명한 시편 23편을 시작합니다. 성숙한 신앙, 응답 받는 신앙이란 이 순서가 바로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을 귀중히 여기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제일 중요한 분으로 자리하도록 하십시오. 아주 실제적인 위치에 있도록.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호와:언제나 계시는 신실한 하나님 하나님의 신실함이란 바로 계셔야 할 곳에 정확히 계시는 것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I have everything I need. 부족함이 없는 삶의 처음은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이 목자이시니 나는 양입니다. 양이라서 기분이 나뿝니까 아닙니다. 내 존재가 하나님과 얽혀 있기만 한다면, 그것으로 감사합니다. 다윗은 현재 부족함이 있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보니 언제나 같이 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우리의 세상의 어려움이 이렇게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징검다리가 됩니다. 누구나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 어려움을 당한다고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 마치 자기 병을 고치지 않으시겠다는 하나님의 응답에 감사하는 바울처럼
2) 2절과 4절 사이에 나타난 시인의 모습은 삶에 지친 모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섰을 때의 나약함은 결코 수치가 아니라는 것을 시편 기자는 잊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허물로 쉽게 지쳐 있으며, 가지 말아야 할 길도 가는 실수도 했다는 것도 받아들였으며, 아무리 인간적인 확신이 있는 길일지라도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하리 만치 자신감을 잃었다는 것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나약하지만 솔직한 신앙의 고백이 은혜의 시작임도 잊지 마십시오. . 어떤 인간적인 불행도 하나님을 만나게 한 결과가 주어진다면, 감사해 합니다. 다윗은 말입니다. 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주님이 알아서 나를 쉬게 해 주십니다. 아이들은 놀 때는 피곤한지도 모르다가 더 아프곤 합니다. (나는 피곤한지도 모르고, 돈버는 재미에, 남이 박수쳐주는 재미에 매여서 쉬게 하십니다. 대게는 이런 것을 받을 때에 좋게 못보고 왜 나를 “양”취급하나요 하지만, 멀지 않아서 알게 됩니다. 그 때에 강권해서 나를 뭠추지 않으셨으면, 나는 갈 때까지 가서 지금 이 자리에 있지도 못할 것임을 하나님은 목자시니 나는 양입니다. 짐승입니다. 어린아이보다 더 합니다. 왜 쉬어야 하는 지를 설명하자면 말부터 가르쳐야 하는 그런 상태입니다. 그런 나를 돌보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푸른 초장이란 단어보다 누이시며에 관심을 갖으시고. 마찬가지로 쉴만한 내게는 그런 것이 절대로 불필요해 보였으나, 정작 당하고 보니 이젠 쉬어야겠다고 여겨지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외형적으로는 멋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대게의 경우 말입니다. 그러니까 않감사하고 불평하고 거부합니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벌써 마음을 슬슬 달래셔서 새 힘을 주시고, 그러나 항상 나를 교만하지 않을 정도의 명분을 주시지 않는가 이미 잃어버려서 영원히 다시돌아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 내 영혼의 문제를 건지십니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불가피한 경우에 겪어야 할 위험에 있는 경우 누구도 같이 할 수 없는 곳에서 같이 가실 때는 (눈에 않채이게 지팡이와 막대기로 인도하시고.) 남들이 볼 때는 않보이지만
3) 마지막의 두 구절은 하나님의 응답의 확실성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저 피해 다니기만 했고, 만나지 않으면 하루가 복받은 것으로 여겼던 그런 원수들 목전에서 갚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담대해지고 우리가 실력을 키워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최고로 여기는 사이에 저절로 내 자신이 하나님의 집에 거하게 되었고, 그런 내 자신이 어느 샌가 하나님의 인정을 받게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이 것은 아니다 싶은 대상을 상대할 때에 하나님의 넉넉함입니다. 간단하게 상을 차리시고 칭찬하시고 나를 기쁘게 하신다. 6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그리고 보니. 내가 주님을 좇아 다닌 것이 아니라, 주님의 성품이 그리하셨습니다. 나는 그저 하나님의 집에 거하는 것밖에 없는데. 성전건축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 평생에,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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