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탐꾼 (민13:17-14:3)
본문
민수기를 유대 사람들은 “광야에서”라고 부릅니다. 오늘은 두 사람의 정탐꾼 사건을 통해서 우리의 광야에서 무엇을 얻어야 하는가를 살펴 보겠습니다. 광야의 시험을 잘 이긴 이스라엘인들입니다. 여러가지 온갖 시험을 다 이겼습니다만. 이제 하나님께서는 추수리는 의미에서 몇 가지 통과 절차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정복할 땅에 가까이 다가 왔습니다. 그래서 온갖 시험을 이긴 것과 같은 방식으로 정복하기만 하면 되는데. 마지막에 이스라엘인들은 최악의 선택을 합니다. 즉, 정탐꾼을 보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알아보고 나서 다시 생각하자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시작한 일들을 세상의 방법으로 미무리 짖자는 것입니다. . 여러분들도 그런 일들이 있지요 내가 이렇게 헌신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한.번 알아보자. 그러면 시험만이 기다릴 뿐입니다.
예) 삼상 8:5-22:그들의 말을 들어 왕을 세우라. 그런 것들은 절대 응답이 아닙니다. 점검사항 전제:첫 지혜는 12지파에서 12명을 보내는 것입니다. 좋습니다. 잘한 것입니다. 이게 잘 않됩니다. 귀찬아요. 가는 쪽이나, 보내는 쪽이나. 알아서 하지, 않왔으면.
1) 12지파의 장이 정탐꾼은 아닙니다. (상경 상의 명단을 보면, 족장의 이름과 정탐꾼의 이름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관점과 사람의 관점은 다릅니다. .영적인 지도자가 반드시 순서대로일 필요는 없습니다. .따라서 영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은 중요합니다. . 열 처녀의 비유입니다.:하나도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걸립니다. 여러분께서 신앙의 결단을 내리는 대 얼마나한 시간이 걸립니까 참 안타깝습니다. 보면 모릅니까 그것이 가져올 영적 유익을. . 이런 것들응 준비하셔서 진정 쓰임받는 여러분이 되십시오.
2) 이 사건의 주요 장소는 헤브론입니다. .신앙의 어려움은 오히려 무엇을 이룬 장소, 내용에서 입니다. . 무엇을 이뤘다고, 기도를 쉬십니까 아닙니다. (왜 무슨 일이 마친 후에 감사해야 하나요.) . 베드로의 교만은 진정한 고백 직후에. . 탁월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자기 스스로 불신앙에 빠집니다. . 이세벨의 위협에 떠는 것은 일레야의 신앙의 승리 직후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의 내용에는 두 가지의 뜻이 있습니다.(13:17-20)
1) 먼저 주변의 사람과 환경을 균형 있게 살필 것을 명하고 계십니다. 가야하는 장소 뿐만이 아니라, 가는 길조차 지시하시는 것으로 보아(17절) 하나님이 모르셔서 라던가 미심쩍어서 이 일을 시키신 것이 아닙니다. 그 길로 가야 그 곳 사람과 그 지형을 모두 잘 살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종종 어느 한 부분의 환경에 쏠려서 낙심하거나 방심하지나 않습니까 . 남방 네겜에서부터 북방 경계의 르흠까지 전 지역을 자세히 살피라고 합니다. . 무엇을 결정하기 전에 어느 한 부분의 상황을 보고 결정하지 말라는 것 신앙인들이 이것을 실패하기 쉽습니다. . 물건을 사는데. 집을 구하는데도. 사람을 택하는데도. 자연의 흐름, 하나님의 섭리 (좋아하실까, 좋아하실 줄 막연히 믿는 것:.작은 강아지가 달려들면, 좋지만 마굿간의 말이 달려들면. 어떤 일을 하느냐 보다, 누가 하느냐, 내가 이런 일을 할 준비가 되었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가라는 길로만 가야 이 깊은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이 허락하신 길로만 가기로 다짐을 하시기 바랍니다.
2) 그 다음은 서두르지 않는 마음입니다. 즉, 그 땅의 실과를 가져 오고 나서 다같이 판단할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종종 우리는 같은 환경을 보고도 다른 신앙의 결론을 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탐 가서 따올 수 있을 정도의 포도가 그랬다면, 그들이 살아서 거둘 과실은 얼마나 더 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그 좋은 과실 때문에 오히려 낙심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본문 20절에는 “담대하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창1:28) . 어떤 환경을 있는 그대로 잘 파악하는 것은 대단한 축복입니다. 수치 계산도 정확하고, 관계된 사람들의 의중도 정확히 압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 즉, 신앙의 담대함은 없습니다. 단언합니다. 아무 소용 없습니다.
예) 오병이어의 현장에서의 빌립의 보고는 무엇입니까 아주 정확합니다. 300데나리온 이상이 듭니다. 대단한 계산 능력입니다. 그리고 굉장한 불신앙입니다.
예)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며, 소금은 맛으로 승부해야지. 전혀 신앙적이지 않습니다. 결과는 잘 아시는 대로 10명의 정탐꾼은 낙심했고,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승리를 다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10명은 환경을 보고 하나님을 판단했고, 나머지 두 사람은 하나님을 보고 환경을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 보이는 것 이외는 아무 것도 믿지 않는 이들이 있습니다. (밤낮 그럴 때가 되었으니, 되었고,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 그 것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 세상에 당신과 같이 살지 않는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다지지 않고도, 그렇게 돈돈 하지 않고도. 그렇게 자기가 모르는 일이면 다 불의한 일인양하지 않고도. 그렇게 보여지는 것은 언젠가 장부 들춰 보면 아는 것을 조금 먼저 안다고 뭐 대단합니까 그러나 신앙의 세게에는 정작 세상의 눈으로는 보여지지 않는 신령한 만남이 있다구요 .히브리서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 그렇게 보이는 것에 매이면, 여러분은 기분이 좋은줄 몰라도 하나님은 않 기뻐하십니다.
예) 삼상 8:5-22:그들의 말을 들어 왕을 세우라. 그런 것들은 절대 응답이 아닙니다. 점검사항 전제:첫 지혜는 12지파에서 12명을 보내는 것입니다. 좋습니다. 잘한 것입니다. 이게 잘 않됩니다. 귀찬아요. 가는 쪽이나, 보내는 쪽이나. 알아서 하지, 않왔으면.
1) 12지파의 장이 정탐꾼은 아닙니다. (상경 상의 명단을 보면, 족장의 이름과 정탐꾼의 이름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관점과 사람의 관점은 다릅니다. .영적인 지도자가 반드시 순서대로일 필요는 없습니다. .따라서 영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은 중요합니다. . 열 처녀의 비유입니다.:하나도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걸립니다. 여러분께서 신앙의 결단을 내리는 대 얼마나한 시간이 걸립니까 참 안타깝습니다. 보면 모릅니까 그것이 가져올 영적 유익을. . 이런 것들응 준비하셔서 진정 쓰임받는 여러분이 되십시오.
2) 이 사건의 주요 장소는 헤브론입니다. .신앙의 어려움은 오히려 무엇을 이룬 장소, 내용에서 입니다. . 무엇을 이뤘다고, 기도를 쉬십니까 아닙니다. (왜 무슨 일이 마친 후에 감사해야 하나요.) . 베드로의 교만은 진정한 고백 직후에. . 탁월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자기 스스로 불신앙에 빠집니다. . 이세벨의 위협에 떠는 것은 일레야의 신앙의 승리 직후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의 내용에는 두 가지의 뜻이 있습니다.(13:17-20)
1) 먼저 주변의 사람과 환경을 균형 있게 살필 것을 명하고 계십니다. 가야하는 장소 뿐만이 아니라, 가는 길조차 지시하시는 것으로 보아(17절) 하나님이 모르셔서 라던가 미심쩍어서 이 일을 시키신 것이 아닙니다. 그 길로 가야 그 곳 사람과 그 지형을 모두 잘 살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종종 어느 한 부분의 환경에 쏠려서 낙심하거나 방심하지나 않습니까 . 남방 네겜에서부터 북방 경계의 르흠까지 전 지역을 자세히 살피라고 합니다. . 무엇을 결정하기 전에 어느 한 부분의 상황을 보고 결정하지 말라는 것 신앙인들이 이것을 실패하기 쉽습니다. . 물건을 사는데. 집을 구하는데도. 사람을 택하는데도. 자연의 흐름, 하나님의 섭리 (좋아하실까, 좋아하실 줄 막연히 믿는 것:.작은 강아지가 달려들면, 좋지만 마굿간의 말이 달려들면. 어떤 일을 하느냐 보다, 누가 하느냐, 내가 이런 일을 할 준비가 되었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가라는 길로만 가야 이 깊은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이 허락하신 길로만 가기로 다짐을 하시기 바랍니다.
2) 그 다음은 서두르지 않는 마음입니다. 즉, 그 땅의 실과를 가져 오고 나서 다같이 판단할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종종 우리는 같은 환경을 보고도 다른 신앙의 결론을 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탐 가서 따올 수 있을 정도의 포도가 그랬다면, 그들이 살아서 거둘 과실은 얼마나 더 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그 좋은 과실 때문에 오히려 낙심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본문 20절에는 “담대하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창1:28) . 어떤 환경을 있는 그대로 잘 파악하는 것은 대단한 축복입니다. 수치 계산도 정확하고, 관계된 사람들의 의중도 정확히 압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 즉, 신앙의 담대함은 없습니다. 단언합니다. 아무 소용 없습니다.
예) 오병이어의 현장에서의 빌립의 보고는 무엇입니까 아주 정확합니다. 300데나리온 이상이 듭니다. 대단한 계산 능력입니다. 그리고 굉장한 불신앙입니다.
예)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며, 소금은 맛으로 승부해야지. 전혀 신앙적이지 않습니다. 결과는 잘 아시는 대로 10명의 정탐꾼은 낙심했고,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승리를 다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10명은 환경을 보고 하나님을 판단했고, 나머지 두 사람은 하나님을 보고 환경을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 보이는 것 이외는 아무 것도 믿지 않는 이들이 있습니다. (밤낮 그럴 때가 되었으니, 되었고,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 그 것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 세상에 당신과 같이 살지 않는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다지지 않고도, 그렇게 돈돈 하지 않고도. 그렇게 자기가 모르는 일이면 다 불의한 일인양하지 않고도. 그렇게 보여지는 것은 언젠가 장부 들춰 보면 아는 것을 조금 먼저 안다고 뭐 대단합니까 그러나 신앙의 세게에는 정작 세상의 눈으로는 보여지지 않는 신령한 만남이 있다구요 .히브리서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 그렇게 보이는 것에 매이면, 여러분은 기분이 좋은줄 몰라도 하나님은 않 기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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