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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제자 삼아라 (마28: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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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총회가 정한 우리 교단의 선교 주일이다. 성도는 선교적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났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 지교회가 감당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다. 그래서 총회 선교부에서 선교사를 파송하는 일 등 우리 교단의 선교 사업을 주관하고 있다. 오늘 같은 선교 주일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선교적 사명을 다시 한번 다짐하고 세계 각국에 파송되어 있는 총회 산하 50여명의 선교사를 위해 더욱 기도할 수 있는 마음 가짐을 가져야 하겠다. 선교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하면 죄인을 구원하여 성도로 삼고, 그 성도가 모여 교회를 설립하고, 교회를 중심으로 예배 드리며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룩해 나가는 일이다. 행13:의 안디옥 교회에서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한데서 선교사 파송이 시작되었고, 외국으로 나가는 것을 선교로 국내에서는 전도로 구분하기도 한다. 오늘 본문 말씀, 예수님은 지상 최후의 명령을 통해 제자들에게 선교적 사명을 주셨다. 우리 성도가 받은 선교적 사명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자
1.땅끝까지 가라 본문 19절에 “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라 했다. 행1:8절에 “오직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했다. 예수님의 명령은 가라 세상을 향하여이다. 우리 성도는 예수님의 “보냄을 받은 자” 곧 선교적 사명을 받은 자이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선교 사역은 유다를 거쳐 북쪽 사마리아로 나아가 땅끝까지 더 멀리, 더 넓게 전파되어져 가고 있다. 마치 연못에 돌을 던지면 파장이 잔물결을 이루며 못 주위에 퍼져 나가듯 그렇게 선교 사역은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해 지는 것이다.(욥8:7) 가라 세상을 향하여 땅끝까지그냥 가는 것이 아니다. 성령님의 능력을 받아서 가야 한다. 성령님의 능력은 주님이 필요한 자에게 주시는 성령님의 은사 곧 선물이다. 선물은 달라고 해서 주는 것이 아니다. 대가를 지불하고 받는 것도 아니다. 그럼으로 주는 이의 뜻에 달려 있고 받는 이의 입장에서 보면 전적으로 은혜이다. 그래서 성령님이 “임한다”고 했고, 성령님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는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받는 자의 편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2.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 본문 19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라 했다. 제자 삼는 일에 인종차별이 있을 수 없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야만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녀노소 빈부귀천의 차별이 있을 수 없다. 우리 나라처럼 단일민족으로 이루어진 나라도 있지만 중국처럼 여러 민족으로 이루어진 나라도 많다. 이렇게 여러 민족이 있는 나라의 소수 민족들은 복음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 복음을 접해 보지 못한 소수 민족이 엄청나게 많다고 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소수 민족의 파악도 다 된 상태가 아니라고 한다. 아직도 우리 먼저 믿는 성도가 해야 할 선교적 사명이 그만큼 크다는 말이다. 글을 사용하지 않는 소수 민족도 많아 그들의 글을 만들어 가르치며 성경을 번역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어려움을 감당하며 우리의 선교사들이 사명을 다하고 있다. 직접 가지 못하는 우리들은 기도하며 아낌없는 후원을 다하자.
3.성부와 성자와 성령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본문 19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라 했다. 세례는 자신의 신앙을 하나님과 사람 앞에 공포하는 공고백이다. 세례 받은 성도들이 모이면 교회가 된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 얻어 세상 사람과 구별된 성도들의 모임이다. “세례를 주라”는 말은 선교적 차원에서 보면 교회를 설립하라는 말이다. 교회를 세워 예배하는 삶을 살게 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며 영광 돌리는 삶 이것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요 인간의 근본된 본분이다. 타락한 인간에서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시키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자녀의 형상를 회복하라는 것이다.
4.내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치라 본문 20절에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했다. 주님이 분부하신 말씀을 가르치라. 곧 기독교 교육을 의미한다. 기독교 교육은 신앙인으로서의 전인 교육이요 평생 교육이다. 곧 삶의 전체라고 할 수 있다. 요약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는 것이라고 하겠다(딤후3:17) 하나님 앞에서도 온전하고 사람 앞에서도 흠이 없는 온전한 사람으로 가르치고 길러내는 것이 기독교 교육이다. 어려서부터 가르치고(잠22:6, 딤후3:15) 말과 행동으로 본을 보여 가르쳐야 한다.
5.내가 분부한 모든 것을 지키게 하라 본문 20절에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했다. “지키게 하라”는 말씀은 그렇게 살도록 하라는 말씀이다. 삶을 통해서 주님이 분부하신 말씀이 나타나도록 보여지도록 하라는 말씀이다. 마태 5:16절에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했다. 우리 성도들이 주님의 말씀을 지켜 행함으로 빛된 삶을 살아갈 때 믿지 않는 사람들이(저희)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된다는 말이다. 바로 기독교 문화가 뿌리 내리게 하라는 말씀이다. 우리 나라 국민의 1/4 이상이 기독교인이라 한다. 천주교까지 포함하면 엄청난 숫자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기독교 문화는 미미하다.
차라리 복음이 전파된 초창기에는 교육, 의료, 개몽운동 등 기독교 문화가 선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지금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정치, 경제, 사회의 선도적 역할 보다는 인간성 회복, 도덕성 회복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기독교인들의 바른 삶의 모습을 보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어야 한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거룩히 구별되어진 의식을 갖고 살지 못하기 때문에 기독교 문화가 없는 것이다. 우리 성도는 주일에 교회에 가는 것으로, 성경 찬송을 손에 쥐고 있는 것으로, 예수 믿는 사람이다는 말로서 자신이 신자임을 남들에 의해 구별되어지는 정도로는 아니된다. 우리 성도는 그 얼굴 모습에서도, 말과 행동 속에서, 그의 삶 속에서 구별되어지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바로 그리스도의 향기이다(고후2:14-15) 내 육신의 욕심으로 썩은 악취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어야 한다. 그 향기에 취하여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 앞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야 한다. 불신자의 입에서 “예수쟁이”는 정말 다르구나 하는 구별된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윤리와 도덕성이 무너지고 공의가 사라져 가고 부정과 비리가 고개를 쳐드는 오늘의 현실을 바라보며 우리 성도는 남을 탓하기에 앞서 선교적 사명을 의식하고 기독교 문화를 이룩해 나가야 한다. 성도의 가슴 속에는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의식이 살아 있어야 한다. 무엇을 하던지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말하고 행동하기에 앞서 “예수 이름”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가지도 보내지도못 하는 우리 교회와 같은 위치에서 우리 성도들은 선교적 사명의식을 갖고 이땅에 기독교 문화가 뿌리 내리도록 빛된 삶을 살아가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자. 먼 곳에 나가서 전하지 못해도 내 집 주위에, 내 학교 주위에, 내 직장 주위에 구해야 할 영혼이 많지 않는가. 남들처럼 거창하지 못해도 내 삶의 현장에서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사도 바울과 같은 선교적 사명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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