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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타락의 결과 (창3:1-24)

본문

오늘 본문 말씀은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여 타락하는 모습과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로 죄에 대한 무서운 형벌이 주어지고 여인의 후손을 통한 구원의 기쁜 소식도 주어지는 말씀이다. “인간의 타락”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타락 이라는 말은 “곁에서 떨어진다”는 의미이다. 곧 어디 혹은 무엇에서 분리된다는 말이다. 그것도 떨어져 분리되어 나쁜 쪽으로 나가는 것을 말한다. 가족과 이웃과 친구들을 버리고 떨어져 나가 술을 좋아하고 또는 마약을 좋아하는 이들과 한 패거리가 되어 지금까지의 삶을 버리고 쾌락을 일삼고 때로는 범죄에도 가담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을 가리켜 “타락했다”고 말한다. 그 반대로 술과 마약을 즐기며 범죄를 저지르다가 그런 조직에서 떨어져 나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때 우리는 그가 타락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새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타락 이란 좋은 곳에서 나쁜 곳으로, 옳은데서 죄악으로 떨어져 나가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타락이란 하나님 곁에서 떨어져 나가 사탄의 지배 아래 놓이는 것이다. 우리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의 타락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사탄의 유혹에 빠져 버린데 있다. 사탄의 거짓말에 속은 하와가 지금까지의 여호와 경외하는 마음을 버리고 날마다 보아 오던 그 선악과 나무를 잘못된 욕심을 가지고 바라보니 욕심을 채워줄만한 요소들이 보였다. 그것이 문제이다. 욕심은 잉태하여 죄를 낳기 때문이다(약1:15) 본문 6절에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고 했다. 하나님 곁에서 떨어져 나와 사탄에 속하게 되면 사탄의 일을 하게 된다. 하와를 보세요. 곧바로 남편 아담으로 하여금 하나님 곁을 떠나게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타락한 인간의 삶의 모습이다. 이러한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은 어떻게 보실까 그들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행하실까 곧인류의 타락의 결과에 대해서 살펴 보고져한다.
1.핑계를 일삼는다. 본문 12절에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고 했다. 본문 13절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고 했다.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시는 하나님의 질문 앞에 아담도 하와도 먹기는 먹었는데 그것은 내 탓이 아니라 남의 탓이라고 죄를 전가하는 핑계의 무덤을 파고 있다. 더욱이 아담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여자 때문이라며 그 책임을 하나님께 전가하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도전장을 하나님께 내고 있다. 핑계는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시인하지 않으려는데서 출발한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몰라서 묻고 있는 것 아니다.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는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고백하지 못했다. 눈이 밝아져 수치를 알게 되었고 지혜로워져 핑계할 구실을 찾을 수 있게 되었나 보다.
그래서 핑계 없는 무덤이 없고 처녀가 아이를 낳아도 할말이 있는 세상이 되었나 보다. 제사장 외에는 드릴 수 없는 번제를 드리므로 하나님 앞에 망령된 죄를 범하고도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라고 핑계하는 사울 왕, 바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인간의 모습이다. 주님 오시는 날에 이루어질 “어린양의 혼인 잔치”를 비유하신 말씀에서 잔치에 초청 받은 많은 사람들이 “밭을 사고 논을 사고 장가 가고” 갖가지의 핑계로 초청을 거부했다. 그들은 하나도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고 했다(눅14:18-20) 그러나 성경은 밝히 말씀하시기를 핑계할 수 없다고 했다. 주님이 오셔서 말씀을 주셨기에, 만물을 통해 능력과 신성이 분명히 나타남으로 핑계할 수 없다고 했다(요15:22, 롬1:20) 무엇보다도 남을 판단하는 그 판단으로 자신이 심판을 받을 것임으로 핑계할 수 없다고 했다(롬2:1) 핑계로는 결코 자기 합리화를 시킬 수 없다. 자신의 잘못과 부족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고 회개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길이요 하나님 곁으로 나아가는 길임을 알아야 한다.
2.하나님의 진노와 저주 본문 11절에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고 했다. 본문 13절에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고 했다.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7)는 엄명을 어긴 사실 앞에 아담과 하와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는 대단한 것이었다. 단 한번의 대답에 곧바로 저주의 형벌을 내리시는 것을 보라.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을 섬길 때(신6:15, 민25:3), 하나님을 불신하고 원망할 때(민32:10), 안식일을 범하여 거룩히 하지 않을 때(느13:18),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에게 내리신다(나1:2) 진노의 결과는 무서운 저주의 형벌이다. 끝없이 계속되는 영영한 형벌이다. 인류의 타락의 결과로 주어진 무서운 저주의 형벌은 어떤 것인가
1.뱀에게 본문 14절에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고 했다. 인류의 타락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은 뱀이다. 물론 사탄의 화신이다. 하나님의 저주의 형벌을 받기 전의 뱀은 대단했다. 짐승들 중에 가장 지혜로웠고 말도 할 수 있었고 아마도 머리를 높이 쳐들고 다니므로(뱀의 싸움은 물고 뜯는 것이 아니라 누구 키가 더 크냐로 한다) 적어도 여인들이 귀여워할 정도였다. 그러나 뱀에게 내린 형벌은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 토록 흙을 먹을지니라고 했다. 곧 저주의 표본이요 저주의 대명사로 배로 다니는 머리를 들 수 없는 삶이 주어졌다. 본문 15절에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했다. 함께 짝짜꿍이 되어 하나님을 떠나 불순종의 길로 달리던 둘의 사이는 원수가 되었고 후손들도 원수가 되어 싸우나 뱀의 머리가 깨어지는 승패가 이미 결정되어져 있는 싸움이다.
2.여인에게 본문 16절에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고 했다. 하와 곧 여인에게 내린 형벌은 잉태와 해산의 고통이 주어졌다. 남편을 사모해야 하고 남편의 다스림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남편의 다스림을 받는다는 것은 예속되거나 복종한다는 말은 아니다. “보호한다. 보살핀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여인은 남편의 보호나 보살핌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연약한 존재가 되었다는 말이다. 남편을 의지하고 남편을 사모하는 가운데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 사실에 근거하여 여자가 남자를 주관하는 일을 허용하지 않았다(딤전2:14) 오늘날의 여권신장 운동도 남편의 다스림을 벗어나려거나 오히려 남자를 주관하려는 뜻이라면 잘못된 일이다.
3.아담에게 본문 17절에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고 했다. 본문 19절에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고 했다. 아담에게는 형벌을 주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 명을 어겼음으로 벌 준다는 것이다. ㉠.땅에 저주 아담이 범죄했느데 왜 땅이 저주를 받아야 하는가 그 땅은 바로 아담의 근원이다. 아담은 흙 속에서 취함을 입었고, “너는 흙이라”고 했다. 땅에 저주를 내림은 아담의 근원을 저주하는 것이다. 나무로 말하자면 뿌리를 썩게 하는 것이다. 땅은 이제 저주 곧 사망의 독을 품게 된 것이다. 그래서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고 했다. ㉡.종신토록 수고 아담에게 내려진 직접적인 형벌은 식물을 위해서 얼굴에 땀을 흘리며 종신토록 수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식물도 사망의 독을 품고 있는 땅의 소산물이다. 그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흙으로 돌아가라. 아담의 죽음을 선포하는 말이다. 이미 땅을 저주하심으로 아담의 근원인 뿌리를 잘라 버리시고, 뿌리 없는 나무둥치의 삶도 사망의 독을 품은 땅의 소산물을 먹음으로 죽음의 길을 달리게 되고 흙으로 돌아가라는 죽음의 선고로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죽지 않으리라”는 뱀의 유혹과는 달리 결코 거짓이 아님을 보게 된다.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고 하는 하와의 불확실한 말씀이 아니라 너무도 확실한 말씀임을 보게 된다. 이토록 거짓 없고 확실한 말씀이 저주의 형벌에서, 사망의 독소에서, 죽음의 선고에서 건져 주시는 놀라운 약속을 들려주신다. “가죽옷”을 통하여, “여인의 후손”을 통하여 구원해 주시리라는 참으로 복된 소식이다. 그 여인의 후손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 호령하신다(고전15:55) 우리도 이 주님으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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