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고후10:1-11)
본문
오늘 본문 말씀은 문제 많은 고린도 교회의 파벌 싸움의 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 바울파, 아볼로파, 베드로파, 그리스도파로 나뉘어 고린도 교회가 분쟁을 일 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고전1:11-12) 사도 바울이 하나 될 것을 간곡히 호소하고 있다(고전3:1-9) 파벌 싸움을 하는 가운데 사도 바울의 인간적 약점을 문제 삼아 바울을 비난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그 비난하는 말들을 하나 하나 열거하며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고 그들을 향하여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스스로 교만하여 자기를 칭찬하지 말고 자랑하더라도 “주 안에서” 자랑하라는 권고의 말씀이다. 고린도 교회의 이러한 파벌 양상은 오늘의 우리 교회에도 심심찮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 성도들은 오늘 본문 말씀에 귀를 기우려야 한다. 모든 분쟁과 파벌의 시초는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겸손한 마음을 떠나(빌2:3) “자신을 남보다 낫게 여기는” 교만한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자기가 최고이고, 자기만이 진짜이고 자신만이 옳은 자들이 분쟁과 파벌의 앞잡이가 된다. 바울은 그들을 향해 정면으로 무시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하면서 강한 질책과 호소를 하고 있다.
1.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라 본문 4-5절에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라고 했다.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라 했다. 나보다 나은 사람이 없는 생각, 그래서 내가 최고요 자기만이 옳다는 교만한 생각을 주께 “복종케 하라”는 말씀이다. “복종케 한다”는 것은 좋아서 따르는 것도 포함하지만 하기 싫은 것도 억지로라도 하게 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복종에는 “내가” 없다. 내 생각도 내 의지도 내 방법도 내 취향도 있을 수 없다.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라고 했다. 그 모든 생각 속에는 인간의 온갖 마음이 다 들어 있다. 그 인간의 마음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라고 했다(렘17:9) 그 중에서 교만한 마음이 분쟁과 파당을 일 삼게 된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쌓게 되고 모든 이론 곧 세상의 지혜나 철학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을 동원하여 정당성을 주장하고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지고 높아지는 교만으로 가득차게 된다고 했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은 이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주께서 주신 권세로 파하고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여 하나로 세워 나가라고 하신다.
2.남을 인정하고 받아 들이라. 본문 7절에 “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 만일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 같이 우리도 그러한 줄을 자기 속으로 다시 생각할 것이라”고 했다. 파당과 분쟁의 가장 큰 불씨가 바로 남을 인정하고 받아 들이지 못하는데 있다. 이는 자신의 우월성이나 독선적인 사고방식 때문이다. 또한 이기주의적으로 부귀와 명예 권력을 구하는 욕심 때문이다. 고린도 교회의 파벌과 분쟁을 보세요. 바울을 반대하는 이들의 비난의 목소리가 인간적이요 너무나 육적이다. 신앙적이요 영적인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대하는 바울을 그들은 비굴하고 우유부단한 비겁한 자로 몰아붙이고 있다. 본문 10절에 “저희 말이 그 편지들은 중하고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고 했다. “말이 시원치 않다”는 것은 바울 자신도 인정하고 있다(고후11:6) 여기에 시원치 않다는 말은 전문적 지식이 없다는 뜻이다. “전공자” “전문가”가 아니다는 말이다. 바울이 결코 말을 잘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가 고침을 받았을 때 루스드라 사람들이 바울을 가리켜 “허메”라 하였다. 이는 대변자 웅변의 신이다(행14:12)바울은 그의 복음 전파에서 세상적인 지혜를 철저히 배제했다. 그의 남다른 지식도 좋은 여건도 배설물로 여겼다(빌3:8) 그것은 세상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고전1:21) 그들이 크게 보고 선망하는 지혜자, 선비, 변사를 바울은 귀히 보지 않았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다고 했다(고전1:25) 바울은 그의 복음 전파에서 “말의 지혜”로 하지 않으려 했다. 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요 (고전1:17) 또한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 했다(고전2:4-5) 사도 바울이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에 헌신하는 삶이(행20:24)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됨을 가슴아파 하고 있다. 고후11:7 절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 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고 했다.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춘 것이,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긴 것이 비난받아야 하고 죄가 되는 것이냐고 울부짖고 있다.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대하는 것이 비굴하고 우유부단하게 보이더냐 나의 헬라 철학이 좀 모자라고 변사처럼 헬라어를 못하는 것이 나를 반대해야 할 이유가 되느냐 너희는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구나. 너희 스스로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은 믿을진대사람의 외모를 가지고 왈가왈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 그들이 스스로 자신들이 속해 있다고 고백하는 그 주님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기 때문이다(마22:16. 신10:17)
3.교회에 덕을 세우라 본문 8절에 “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파하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니 내가 이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아니하리라”고 했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주 예수께 사명을 받은 자요, 주 예수의 보내심을 받은 자는 주께서 주신 권세와 권능이 있다. 누가 9:1-2절에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라고 했다. 행1:8절에 “오직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했다. 이러한 주께서 주신 권세와 권능이 성령님의 은사로 우리가 가진 무기이다. 사탄의 세력을 몰아내고 물리치는 강한 힘이요 능력이다.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는 참으로 강한 힘이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이 성령님의 은사를 잘못 사용하였다. 서
로 자기의 은사를 자랑하고 자기의 것이 더 크고 자신의 것이 진짜라며 상대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러한 신앙적인 독선이 분쟁을 일으키고 파벌 싸움으로 번져 고린도 교회가 분열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교회의 덕을 세우라고 했다. 주의 몸된 고린도 교회를 세우라고 했다. 주께서 주신 권세인데 어찌하여 주의 몸된 교회를 파할 수 있느냐고 했다. 분쟁과 파벌을 일 삼을 수 있느냐고 했다. 아무리 받은 은혜가 크고 놀랍다 할지라도 교회에 덕을 세우지 못한다면 그것은 강한 힘이요 능력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망치고 남을 해치는 파멸의 불씨일 뿐이다.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워 나가야 한다. 몸된 교회에 덕을 세워야 한다. 신앙적인 교만과 독선을 버려야 한다. 빌립보 4:8-9절에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고 했다. 평강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교회, 평강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가정, 평강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내가 되어야 한다. 평강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이 되어야 한다.
1.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라 본문 4-5절에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라고 했다.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라 했다. 나보다 나은 사람이 없는 생각, 그래서 내가 최고요 자기만이 옳다는 교만한 생각을 주께 “복종케 하라”는 말씀이다. “복종케 한다”는 것은 좋아서 따르는 것도 포함하지만 하기 싫은 것도 억지로라도 하게 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복종에는 “내가” 없다. 내 생각도 내 의지도 내 방법도 내 취향도 있을 수 없다.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라고 했다. 그 모든 생각 속에는 인간의 온갖 마음이 다 들어 있다. 그 인간의 마음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라고 했다(렘17:9) 그 중에서 교만한 마음이 분쟁과 파당을 일 삼게 된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쌓게 되고 모든 이론 곧 세상의 지혜나 철학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을 동원하여 정당성을 주장하고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지고 높아지는 교만으로 가득차게 된다고 했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은 이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주께서 주신 권세로 파하고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여 하나로 세워 나가라고 하신다.
2.남을 인정하고 받아 들이라. 본문 7절에 “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 만일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 같이 우리도 그러한 줄을 자기 속으로 다시 생각할 것이라”고 했다. 파당과 분쟁의 가장 큰 불씨가 바로 남을 인정하고 받아 들이지 못하는데 있다. 이는 자신의 우월성이나 독선적인 사고방식 때문이다. 또한 이기주의적으로 부귀와 명예 권력을 구하는 욕심 때문이다. 고린도 교회의 파벌과 분쟁을 보세요. 바울을 반대하는 이들의 비난의 목소리가 인간적이요 너무나 육적이다. 신앙적이요 영적인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대하는 바울을 그들은 비굴하고 우유부단한 비겁한 자로 몰아붙이고 있다. 본문 10절에 “저희 말이 그 편지들은 중하고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고 했다. “말이 시원치 않다”는 것은 바울 자신도 인정하고 있다(고후11:6) 여기에 시원치 않다는 말은 전문적 지식이 없다는 뜻이다. “전공자” “전문가”가 아니다는 말이다. 바울이 결코 말을 잘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가 고침을 받았을 때 루스드라 사람들이 바울을 가리켜 “허메”라 하였다. 이는 대변자 웅변의 신이다(행14:12)바울은 그의 복음 전파에서 세상적인 지혜를 철저히 배제했다. 그의 남다른 지식도 좋은 여건도 배설물로 여겼다(빌3:8) 그것은 세상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고전1:21) 그들이 크게 보고 선망하는 지혜자, 선비, 변사를 바울은 귀히 보지 않았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다고 했다(고전1:25) 바울은 그의 복음 전파에서 “말의 지혜”로 하지 않으려 했다. 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요 (고전1:17) 또한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 했다(고전2:4-5) 사도 바울이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에 헌신하는 삶이(행20:24)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됨을 가슴아파 하고 있다. 고후11:7 절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 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고 했다.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춘 것이,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긴 것이 비난받아야 하고 죄가 되는 것이냐고 울부짖고 있다.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대하는 것이 비굴하고 우유부단하게 보이더냐 나의 헬라 철학이 좀 모자라고 변사처럼 헬라어를 못하는 것이 나를 반대해야 할 이유가 되느냐 너희는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구나. 너희 스스로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은 믿을진대사람의 외모를 가지고 왈가왈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 그들이 스스로 자신들이 속해 있다고 고백하는 그 주님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기 때문이다(마22:16. 신10:17)
3.교회에 덕을 세우라 본문 8절에 “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파하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니 내가 이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아니하리라”고 했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주 예수께 사명을 받은 자요, 주 예수의 보내심을 받은 자는 주께서 주신 권세와 권능이 있다. 누가 9:1-2절에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라고 했다. 행1:8절에 “오직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했다. 이러한 주께서 주신 권세와 권능이 성령님의 은사로 우리가 가진 무기이다. 사탄의 세력을 몰아내고 물리치는 강한 힘이요 능력이다.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는 참으로 강한 힘이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이 성령님의 은사를 잘못 사용하였다. 서
로 자기의 은사를 자랑하고 자기의 것이 더 크고 자신의 것이 진짜라며 상대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러한 신앙적인 독선이 분쟁을 일으키고 파벌 싸움으로 번져 고린도 교회가 분열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교회의 덕을 세우라고 했다. 주의 몸된 고린도 교회를 세우라고 했다. 주께서 주신 권세인데 어찌하여 주의 몸된 교회를 파할 수 있느냐고 했다. 분쟁과 파벌을 일 삼을 수 있느냐고 했다. 아무리 받은 은혜가 크고 놀랍다 할지라도 교회에 덕을 세우지 못한다면 그것은 강한 힘이요 능력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망치고 남을 해치는 파멸의 불씨일 뿐이다.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워 나가야 한다. 몸된 교회에 덕을 세워야 한다. 신앙적인 교만과 독선을 버려야 한다. 빌립보 4:8-9절에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고 했다. 평강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교회, 평강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가정, 평강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내가 되어야 한다. 평강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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