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평생 꿈을 쫓아 살아간 요셉 (창37:5-11)
본문
꿈! 하면 우리 성도들은 요셉을 생각한다. 또 다니엘을 생각한다. 이 두 사람은 우리가 어린 주일 학교 시절 꿈쟁이로 배웠던 사람들이다. 이 중에 진짜 꿈쟁이는 요셉이다. 다니엘은 남의 꿈을 해석하는데서 출발하지만, 요셉은 17세에 꿈을 꾸고, 그 꿈을 쫓아 한 평생을 살아간다. 요셉은 자신이 꾼 꿈이 보통 꿈(Dream)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담긴 꿈(Vision)임을 알았다.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시는 계시이요, 소망임을 알았다. 그래서 요셉은 그 꿈을 가슴에 간직하고, 그 꿈을 쫓아 살아가기로 결심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 꿈은 하나님이 주신 꿈이요, 반드시 이루어질 꿈이기 때문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그 꿈이 이루어지기까지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이요,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모든 일에 형통하리라는 믿음을 가진 것이다. 바로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믿은 것이다. 요셉은 꾼 꿈을 생각하며 흐뭇한 마음에 빙그레 웃음도 지었겠지만, 그 꿈으로 인하여 숱한 시련도 겪게 된다. 그리고 꿈이 이루어짐으로 큰 축복도 누리게 된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꿈을 쫓아 한 평생 살아간 요셉의 모습을 살펴보며, 새 하늘과 새 땅을 꿈꾸며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의 삶의 길을 다짐해 보고져 한다.
1.자신의 꿈 본문 37:6절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컨대 나의 꾼 꿈을 들으시오”라고 했다. 요셉의 나이 17세 때의 일이다.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다. 어린 아이의 개꿈이라고 웃어 넘길 수 없는 꿈 자랑이다. 더욱이 아버지 야곱의 편애를 받으며 채색옷을 입고 으시대는 요셉이고 보니 형들의 미움은 더했다.
⑴.꿈의 내용
1.곡식단 꿈 본문 37:7절에 “우리가 밭에서 곡식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 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라고 했다.
2.해와 달과 별의 꿈 본문37:9절에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고 했다. 밭에서 자기의 단이 일어서고 형들의 단이 둘러서서 절하는 꿈이나, 하늘의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요셉을 향 하여 절하는 꿈은 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다. 요셉이 형제들의 우위에 오르고 존경과 섬김을 받는다는 것이다.
⑵.꿈으로 인한 시련 꿈을 가진 자는 꿈을 가지지 못한 자에게 시샘과 미움을 받게 된다. 그로인해 고난, 환난, 핍박이 따라 오기도 한다. 우리 성도가 천국을 꿈꾸고, 바라고, 소망하며 살아가기에 그 꿈을 가지지 못한 불신자들…. 특별히 가족들에 의해 당하는 시련이 큰 것이다.
1.형제의 미움을 사게 됨 본문 37:5절에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고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고 했다. 우리가 가진 꿈은 그 꿈이 이루어지기까지 계속 다짐을 해야 한다. 스스로에게도 다짐을 하고, 남에게도 알리면서 꿈을 쫓아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다져 나가야 한다. 우리의 보통 꿈도 다짐에 다짐을 하게 되지만 하나님이 주신 꿈은 더더욱 남들에게 알리며 다짐을 해야 한다. 그 꿈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담긴 꿈이기 때문이다. 우리 성도들이 가진 천국의 꿈은 나 자신의 꿈이기도 하지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가져야 할 꿈이기도 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성도가 남들에게 알리고 또 알리며 스스로의 꿈을 다지고, 나아가서 남에게도 알려서 그들의 가슴에 꿈을 심어 주기를 원하신다. 본문 37:8절에 “그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 꿈과 그 말을 인하여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라고 했다. 요셉도 꿈 이야기를 형제들에게 하면 할수록 더욱 형제들의 미움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꿈을 쫓아 살아가는 요셉 자신을 향한 다짐도 되지만, 하나님이 주신 계시가 담긴 꿈이기에 남들에게 알려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 성도들이 믿지 않는 부모나 형제, 일가친척들에게 미움을 살 줄 알면서도 복음을 전하며, 예수 믿기를 권하고, 천국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도 바로 우리의 가진바 천국의 꿈이 하나님의 계시가 담긴 꿈이기 때문이다. 어디 형제의 미움과 시기뿐인가 요셉의 꿈 이야기는 아버지 야곱의 꾸짖음을 초래하였고, 형제들의 더 큰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 이처럼 꿈을 가진 자의 꿈 이야기는 꿈을 가지지 못한 자들의 미움과 분노를 사게 된다.
2.애굽으로 팔려 감 창세기 37:25-29절에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본즉 한 떼 이스마엘 족속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그 약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지라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은익한들 무엇이 유익할까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에게 팔고 우리 손을 그에게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골육이니라 하매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 때에 미디안 사람 상고들이 지나는지라 그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이십개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고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고 했다. 꿈을 가진 요셉은 그 꿈 때문에 치루어야 하는 시련과 고난이 남달랐다. 형제들의 손에 의하여 큰 구덩이 속으로 던져지는 절망도 맛보아야 했고(37:24), 친형제들의 손에 의하여 이스마엘 사람 장사꾼에 팔려졌다. 생각하면 참으로 기막힐 노릇이다. 얼마나 미움과 분노로 가득 찼으면 자신들의 친동생을 노예로 팔아 버릴까 요셉이 이렇게 노예로 팔려 감은 순전히 꿈 때문이었다. 창세기 37:19-20절에 “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고 했다. 형들이 서로 의논하는 것도 결국은 꿈이다.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고 한다. 죽여 없애려고 결정했다가 맏형 르우벤의 요구로 물 없는 웅덩이에 던졌다가 유다의 제안으로 은전 20개에 노예로 팔아 버린 것이다. 부모, 형제 위에 우뚝 서서 존경과 섬김을 받으리라던 그 꿈 노예로 팔아 버리면 어떻게 될까 노예로 팔려 가서도 꿈쟁이의 꿈타령은 계속될 수 있을까 형들의 비아냥거림 속에 요셉은 노예로 팔려 갔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노예 곧 종들이 “자유인”이 되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극히 드물게 한 두 사람 “자유인”이 되는 행운을 누리는 이도 있었으나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더욱이 요셉은 낯설고, 산 설고, 물 설은 애굽으로 팔려 갔으니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그 형들은 요셉이 가진 “꿈”의 오묘함을 몰랐다. 그 꿈은 하나님의 계시가 담긴 꿈이요, 그 꿈의 주인은 요셉이 아닌 하나님이신 것을 몰랐다. 하나님이 주셨기에 그 꿈이 이루어지기까지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친히 그 요셉의 꿈을 이루어가시는 줄을 몰랐다. 더욱이 그들은 그 꿈이 애굽에서 이루어질 꿈이라는 사실은 정말 그들은 “꿈에도” 몰랐다. 그 꿈을 망치기 위해서 머나먼 애굽으로 가는 장사꾼에게 노예로 팔아 버렸으나, 자신들의 그 일이 요셉의 꿈을 이루는 일에 일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것이다. 창세기 39:2-3절에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고 했다.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꿈이기에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여호와 그가 이루시리라.
그러므로 그가 나와 함께 하시리라. 이러한 요셉의 믿음대로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은 애굽에서도 요셉과 함께 해 주셨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요셉 자신만이 느끼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그의 범사가 형통함을 남들도 보고 알았다. 곧 그 꿈은 살아 있고 이루어져 감을 말해 준다.
3.옥고를 치루고 창세기 39:20-21절에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넣으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라고 했다.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형통의 생활을 하는 요셉 그러나 그 형통 속에도 꿈을 막으려는 손길은 있었다. 보디발의 아내의 끈질긴 유혹이다. 하나님의 계시가 담긴 꿈을 가진 자는 세상을 사랑할 수 없다. 세상의 즐거움을 쫓아갈 수 없다. 육신의 향락에 빠질 수 없다. 오직 그 꿈을 바라보고, 그 꿈을 쫓아가야 한다. 오직 꿈을 향하여 똑바로 서서, 똑바로 보고, 똑바로 걸어가야 한다. 곁눈질하게 되면 넘어지게 되고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하나님이 주신 꿈이기에 하나님 앞에서 꿈을 향해 달려야 한다. 창세기 39:9절에 “이 집에는 나보다 큰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라고 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바로 요셉의 삶을 말해 준다. 자신에게 꿈을 주신 하나님, 그 꿈을 이루어 주실 하나님, 그래서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 앞에서 요셉은 살고 있다. “주인에게 득죄하리이까”가 아니다. 꿈을 가진 요셉은 그의 주인 보다도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주인은 어찌 속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속일 수 없는 법이다. 주인에게는 버림을 받을 수 있어도 하나님께는 버림받을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요셉은 꿈을 쫓아가기 위해 보디발의 아내의 간청을 거절한다. 그로인하여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을 입어 옥에 갇히는 옥고를 치루게 된다. 꿈으로 인한 시련을 겪는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하나님이 주신 요셉의 꿈이 이루어지는 한 단계이다. 요셉의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옥고를 치루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시련과 고통 속에서 더욱 여호와를 의지하게 하였고, 바로 왕의 관원들을 만나게 하여 바로 왕 앞으로 인도해 가신다. 꿈을 가진 요셉은 옥중에 있었으나 여호와 하나님은 그곳에도 계셨고, 함께 하여 주셨고, 형통의 길을 주셨다. 전옥에게 사랑을 입게 하셨고, 죄수들을 다스리고 처리하는 으뜸의 자리를 주셨다.
2.남의 꿈 요셉은 자신이 꾼 꿈을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꿈(Vision)으로 간직하고 한 평생 꿈을 쫓아 살아갔지만 남의 꾼 꿈도 귀중히 여기고, 자신의 꿈을 이루는 일에 적절히 사용하였다.
⑴.두 관원장의 꿈
1.술 맡은 관원장 창세기 40:9-11절에 “내가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고 내 손에 바로의 잔이 있기로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노라”고 했다. 요셉이 그 꿈을 해석하니 3일 안에 복직된다는 꿈이다. 당신이 득의하면 나를 생각하고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간청을 한다.
2.떡 맡은 관원장 창세기 40:16-17절에 “나도 꿈에 보니 흰 떡 세 광주리가 내 머리에 있고 그 윗광주리에 바로를 위하여 만든 각종 구운 식물이 있는데 새 들이 내 머리의 광주리에서 그것을 먹더라”고 했다. 요셉이 그 꿈을 해석하니 3일 안에 당신이 처형되어 공중의 새가 당신의 고기를 먹으리라는 꿈이다. 이 두 관원장들은 요셉의 꿈 해석과 같이 제3일 곧 바로의 생일에 술 맡은 관원장은 복직이 되었고, 떡 맡은 관원장은 처형되어 매여 달렸다.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지 않고 잊었으나 잊혀질 수 없음은 이 일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요셉의 꿈을 이루는 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⑵.바로의 꿈 요셉이 두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준 일이 있은지 만 2년이 지났다.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잊었으나 기억할 수밖에 없는 일이 일어났다. 바로 왕의 꿈 소동이다.
1.첫 번째 꿈 본문 41:2-4절에 “보니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그 뒤에 또 흉악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 그 소와 함께 하숫가에 섰더니 그 흉악하고 파리한 소가 그 아름답고 살진 일곱 소를 먹은 지라”고 했다.
2.두 번째 꿈 본문 41:5-7절에 “꿈을 꾸니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그 후에 또 세약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그 세약한 일곱 이삭이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킨지라”고 했다. 바로 왕의 꿈은 분명 보통 꿈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계시가 담긴 꿈이었다. 바로 왕도 이 꿈이 보통 꿈이 아니라 무슨 깊은 의미가 있는 꿈임을 알았다. 그러나 그 해석을 몰라 번민하다가 애굽의 술객과 박사들을 불렀으나 능히 해석하는 가자 없었다. 만 2년 동안 까마득히 요셉을 잊었던 술 맡은 관원장은 바로 왕의 꿈 소동으로 요셉을 기억하게 되고, 요셉은 마침내 바로 왕 앞에 서게 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요셉의 꿈을 이루어가시는 방법이다. 하나님의 계시가 담긴 꿈이었기에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풀 수가 없었다. 애굽 천지에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은 오직 요셉 뿐이었기에, 그 요셉은 바로 왕 앞에 불려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창세기 41:16절에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라고 했다. 바로 왕이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더라는 말에, 나 요셉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아다”라고 한다. 하나님의 계시가 담긴 꿈이기에 인간은 능히 풀 수 없다는 말이다. 창세기 41:25절에 “요셉이 바로에게 고하되 바로의 꿈은 하나이라 하나님이 그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라고 했다. 바로 왕의 꿈이 보통 꿈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하실 일”을 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담긴 꿈이라고 했다. “그 하실 일” 곧 장차 될 일을 바로 왕에게 알게 하신 것이라고 했다. 두 꿈은 실상은 하나인데, 앞으로 7년 풍년에 7년 흉년이 온다는 것이다. 7년 흉년이 너무도 극심하여 7년의 풍년이 기억되지 않고, 이 애굽 땅이 기근으로 멸망하게 된다는 꿈이다. 창세기 41:32-33절에 “바로께서 꿈을 두 번 겹쳐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속히 행하시리니 이제 바로께서는 명철하고 지혜있는 사람을 택하여 애굽 땅을 치리하게 하시고”라 했다. 바로 왕의 꿈 해석뿐만 아니라 기근으로 멸망당할 애굽 땅을 구할 길도 일러주었다.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택하여 애굽을 다스리게 하고 7년 풍년 때에 다가올 7년 흉년을 대비하여 곡식을 저장해 두면 기근으로 멸망치 않으리라는 해결책이다.
3.애굽의 총리로 창세기 41:39-40절에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있는 자가 없도다 너는 내 집을 치리하라 내 백성이 다 네 명을 복종하리니 나는 너보다 높음이 보좌뿐이니라”고 했다. 하나님의 계시가 담긴 꿈이었고, 하나님의 신에 감동을 받은 요셉이(창41:38) 해석하고 일러준 대책이다. 그 요셉 외에 누가 더 적당한 사람이 있겠는가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는 내 집을 치리하라”고 바로 왕은 요셉을 애굽 전국 총리로 임명한다. 바로 왕이 자신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목에 걸고 자기의 버금 수레에 태웠다. 애굽 온 땅에서 너의 허락 없이 수족을 놀릴 자가 없으리라는 엄청난 권력을 요셉에게 주었다. 이처럼 요셉의 꿈은 바로 왕의 꿈이라는 또다른 꿈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우리 성도들의 꿈도, 우리 교회의 꿈도, 자신들의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바로 왕의 꿈과 같은 또다른 사람의 꿈이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의 계시가 담긴 꿈과 꿈이 서로 합하여질 때, 그 꿈은 더 큰 힘을 가진 꿈이 되고, 성취되고야 마는 살아 있는 꿈이 된다.
3.죽어서도 이루려는 꿈 본문 50:24-25절에 “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고 했다. 꿈을 쫓아 한 평생 살아간 요셉 그는 이제 인생의 마지막 길인 죽음 앞에 서게 된다. 형제들을 불러 놓고 남기는 유언이 역시 꿈타령이다. 나는 죽으나 하나님은 살아 계셔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정녕 이 민족을 인도해 가신다는 꿈(Vision)을 남긴다. 그 꿈이 나 요셉의 꿈만이 아니라 너희들의 꿈이라고 일러주면서, 그 꿈이 이루어지는 날이 오면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묻어 달라고 한다. 이 꿈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주기 위해 자신의 시신을 이 땅 애굽에 묻지 말라고 다짐을 한다. 죽어서 해골이 되어서라도 꿈을 이루겠다는 꿈쟁이 다운 결단이다. 그 꿈이 자신만의 꿈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히브리 민족의 꿈이기에 형제들의 가슴에, 후손들의 가슴에 심어 주려 하는 것이다. 자신의 해골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묻히는 게 요셉이 못다 이룬 꿈이 아니다. 만약 그것이 그의 꿈이라면 당장에 이룰 수 있는 꿈이다. 아버지 야곱의 시신도 가나안에 장사지낸 요셉인데, 애굽 전국 총리의 소원을 풀 수 없는 요셉이 아니다. 꿈을 가졌던 요셉, 그 꿈을 쫓아 한 평생 살아온 요셉, 이제 죽음을 눈앞에 두고, 못 다 이룬 히브리 민족의 꿈을 죽어서도 이루려 한다.
형제들에게, 후손들에게 꿈을 심어주기 위하여 자신의 시신을 애굽 땅에 남겨 둔다. 애굽 땅에 나를 묻지 말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라! 이는 꿈을 물려주고 가는 요셉의 유언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후손들의 가슴 속에 꿈을 심어주는 유언이다. 출애굽기 14:11절에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라고 했다. 홍해를 앞에 두고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하는 소리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보통 일반 사람은 죽으면 애굽 땅에 매장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요셉은 자신의 시신을 애굽 땅에 묻지 말고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라”는 유언으로 히브리 민족의 꿈을 남긴다. 요셉의 유언을 따라 형제들과 후손들은 요셉의 시신을 미라[Mirra(포)]로 만들어 보관했다. 히브리 민족의 꿈이 이루어질 때까지, 오고 오는 세대에 요셉은 죽어 해골이 되어서도 그 후손들에게 히브리 민족의 꿈을 심어주고 있다. “이것이 무엇인가” 후손들의 질문과 대답 속에서 “나는 죽으나 하나님은 살아 계셔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정녕 히브리 민족을 인도하신다”는 히브리 민족의 꿈은 전해지는 것이다. 결국 “요셉은 죽었으나 오히려 꿈으로 말하느니라”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성경에는 “이것이 무엇인가”를 통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의 계시가 전해져 오는 것들이 있다. 롯의 아내의 불신앙의 산물인 소금 기둥(창19:26), 만나(출16:33), 아론의 싹난 지팡이(민17:10), 길갈의 열 두 돌들(수4:20), 여호수아가 세운 증거의 돌(수24:27) 등이 있다. 한 평생 꿈을 쫓아 살아간 요셉은 자기만의 꿈을 이루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 “이것이 무엇인가”가 됨으로 후손들에게 꿈을 심어 주기를 원했고, 요셉은 죽었으나 오히려 꿈으로 말하기를 원했고, 죽어서도 그 꿈을 이루기를 원했다. 이처럼 내가 이룰 수 있는 꿈이라도 후손을 위하여 남겨 주는 요셉, 후손을 통하여 더 큰 꿈을 이루려 하는 요셉, 하나님의 계시가 담긴 꿈이기에 “나는 죽으나 하나님은 살아 계시니, 그가 정녕 이루시리라”의 확신을 가진 요셉, 나의 확신을 죽어서도 후손에게 일깨우려는 요셉이다. 한 평생 꿈을 쫓아 살아간 요셉 그는 참으로 “꿈쟁이”이다. 자신이 그 꿈을 먹고 살았으며, 그 꿈으로 부모, 형제, 온 가족을 먹여 살렸으며, 또한 그 꿈을 후손에게 물려주고 떠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내 한 평생 쫓아 살아갈 꿈이 있는가 내 후손에게 물려 줄 꿈이 있는가 “나는 죽으나 하나님은 살아 계시니 그가 정녕 이루시리라”는 확실한 꿈이 있는가 우리 성도들은 그 꿈을 찾아야 하고, 그 꿈을 가져야 한다. 그 꿈을 먹고 살아야 하고, 그 꿈을 후손들에게도 물려주어야 한다. 그 꿈은 나만의 꿈이 아니다. 요셉의 꿈을 이루기 위해 바로 왕에게 꿈을 주신 것 같이, 나의 꿈을 위해 또다른 사람의 꿈이 있음을 잊지말자. 꿈과 꿈이 합하여 하나의 크고 완전한 꿈을 이루게 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가진 꿈이 하나님의 계시가 담긴 꿈일진대, 우리 각자의 꿈을 한데 모아 하나의 크고 완전한 꿈으로 일구어 내자. “여호와 하나님, 그가 정녕 이루시라” 우리의 믿음이 하나가 될 때 태산을 들어 바다에 빠뜨리는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왜냐하면 그 꿈은 하나님이 주신 꿈이요, 반드시 이루어질 꿈이기 때문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그 꿈이 이루어지기까지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이요,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모든 일에 형통하리라는 믿음을 가진 것이다. 바로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믿은 것이다. 요셉은 꾼 꿈을 생각하며 흐뭇한 마음에 빙그레 웃음도 지었겠지만, 그 꿈으로 인하여 숱한 시련도 겪게 된다. 그리고 꿈이 이루어짐으로 큰 축복도 누리게 된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꿈을 쫓아 한 평생 살아간 요셉의 모습을 살펴보며, 새 하늘과 새 땅을 꿈꾸며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의 삶의 길을 다짐해 보고져 한다.
1.자신의 꿈 본문 37:6절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컨대 나의 꾼 꿈을 들으시오”라고 했다. 요셉의 나이 17세 때의 일이다.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다. 어린 아이의 개꿈이라고 웃어 넘길 수 없는 꿈 자랑이다. 더욱이 아버지 야곱의 편애를 받으며 채색옷을 입고 으시대는 요셉이고 보니 형들의 미움은 더했다.
⑴.꿈의 내용
1.곡식단 꿈 본문 37:7절에 “우리가 밭에서 곡식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 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라고 했다.
2.해와 달과 별의 꿈 본문37:9절에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고 했다. 밭에서 자기의 단이 일어서고 형들의 단이 둘러서서 절하는 꿈이나, 하늘의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요셉을 향 하여 절하는 꿈은 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다. 요셉이 형제들의 우위에 오르고 존경과 섬김을 받는다는 것이다.
⑵.꿈으로 인한 시련 꿈을 가진 자는 꿈을 가지지 못한 자에게 시샘과 미움을 받게 된다. 그로인해 고난, 환난, 핍박이 따라 오기도 한다. 우리 성도가 천국을 꿈꾸고, 바라고, 소망하며 살아가기에 그 꿈을 가지지 못한 불신자들…. 특별히 가족들에 의해 당하는 시련이 큰 것이다.
1.형제의 미움을 사게 됨 본문 37:5절에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고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고 했다. 우리가 가진 꿈은 그 꿈이 이루어지기까지 계속 다짐을 해야 한다. 스스로에게도 다짐을 하고, 남에게도 알리면서 꿈을 쫓아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다져 나가야 한다. 우리의 보통 꿈도 다짐에 다짐을 하게 되지만 하나님이 주신 꿈은 더더욱 남들에게 알리며 다짐을 해야 한다. 그 꿈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담긴 꿈이기 때문이다. 우리 성도들이 가진 천국의 꿈은 나 자신의 꿈이기도 하지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가져야 할 꿈이기도 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성도가 남들에게 알리고 또 알리며 스스로의 꿈을 다지고, 나아가서 남에게도 알려서 그들의 가슴에 꿈을 심어 주기를 원하신다. 본문 37:8절에 “그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 꿈과 그 말을 인하여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라고 했다. 요셉도 꿈 이야기를 형제들에게 하면 할수록 더욱 형제들의 미움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꿈을 쫓아 살아가는 요셉 자신을 향한 다짐도 되지만, 하나님이 주신 계시가 담긴 꿈이기에 남들에게 알려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 성도들이 믿지 않는 부모나 형제, 일가친척들에게 미움을 살 줄 알면서도 복음을 전하며, 예수 믿기를 권하고, 천국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도 바로 우리의 가진바 천국의 꿈이 하나님의 계시가 담긴 꿈이기 때문이다. 어디 형제의 미움과 시기뿐인가 요셉의 꿈 이야기는 아버지 야곱의 꾸짖음을 초래하였고, 형제들의 더 큰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 이처럼 꿈을 가진 자의 꿈 이야기는 꿈을 가지지 못한 자들의 미움과 분노를 사게 된다.
2.애굽으로 팔려 감 창세기 37:25-29절에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본즉 한 떼 이스마엘 족속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그 약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지라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은익한들 무엇이 유익할까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에게 팔고 우리 손을 그에게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골육이니라 하매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 때에 미디안 사람 상고들이 지나는지라 그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이십개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고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고 했다. 꿈을 가진 요셉은 그 꿈 때문에 치루어야 하는 시련과 고난이 남달랐다. 형제들의 손에 의하여 큰 구덩이 속으로 던져지는 절망도 맛보아야 했고(37:24), 친형제들의 손에 의하여 이스마엘 사람 장사꾼에 팔려졌다. 생각하면 참으로 기막힐 노릇이다. 얼마나 미움과 분노로 가득 찼으면 자신들의 친동생을 노예로 팔아 버릴까 요셉이 이렇게 노예로 팔려 감은 순전히 꿈 때문이었다. 창세기 37:19-20절에 “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고 했다. 형들이 서로 의논하는 것도 결국은 꿈이다.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고 한다. 죽여 없애려고 결정했다가 맏형 르우벤의 요구로 물 없는 웅덩이에 던졌다가 유다의 제안으로 은전 20개에 노예로 팔아 버린 것이다. 부모, 형제 위에 우뚝 서서 존경과 섬김을 받으리라던 그 꿈 노예로 팔아 버리면 어떻게 될까 노예로 팔려 가서도 꿈쟁이의 꿈타령은 계속될 수 있을까 형들의 비아냥거림 속에 요셉은 노예로 팔려 갔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노예 곧 종들이 “자유인”이 되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극히 드물게 한 두 사람 “자유인”이 되는 행운을 누리는 이도 있었으나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더욱이 요셉은 낯설고, 산 설고, 물 설은 애굽으로 팔려 갔으니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그 형들은 요셉이 가진 “꿈”의 오묘함을 몰랐다. 그 꿈은 하나님의 계시가 담긴 꿈이요, 그 꿈의 주인은 요셉이 아닌 하나님이신 것을 몰랐다. 하나님이 주셨기에 그 꿈이 이루어지기까지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친히 그 요셉의 꿈을 이루어가시는 줄을 몰랐다. 더욱이 그들은 그 꿈이 애굽에서 이루어질 꿈이라는 사실은 정말 그들은 “꿈에도” 몰랐다. 그 꿈을 망치기 위해서 머나먼 애굽으로 가는 장사꾼에게 노예로 팔아 버렸으나, 자신들의 그 일이 요셉의 꿈을 이루는 일에 일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것이다. 창세기 39:2-3절에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고 했다.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꿈이기에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여호와 그가 이루시리라.
그러므로 그가 나와 함께 하시리라. 이러한 요셉의 믿음대로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은 애굽에서도 요셉과 함께 해 주셨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요셉 자신만이 느끼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그의 범사가 형통함을 남들도 보고 알았다. 곧 그 꿈은 살아 있고 이루어져 감을 말해 준다.
3.옥고를 치루고 창세기 39:20-21절에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넣으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라고 했다.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형통의 생활을 하는 요셉 그러나 그 형통 속에도 꿈을 막으려는 손길은 있었다. 보디발의 아내의 끈질긴 유혹이다. 하나님의 계시가 담긴 꿈을 가진 자는 세상을 사랑할 수 없다. 세상의 즐거움을 쫓아갈 수 없다. 육신의 향락에 빠질 수 없다. 오직 그 꿈을 바라보고, 그 꿈을 쫓아가야 한다. 오직 꿈을 향하여 똑바로 서서, 똑바로 보고, 똑바로 걸어가야 한다. 곁눈질하게 되면 넘어지게 되고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하나님이 주신 꿈이기에 하나님 앞에서 꿈을 향해 달려야 한다. 창세기 39:9절에 “이 집에는 나보다 큰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라고 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바로 요셉의 삶을 말해 준다. 자신에게 꿈을 주신 하나님, 그 꿈을 이루어 주실 하나님, 그래서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 앞에서 요셉은 살고 있다. “주인에게 득죄하리이까”가 아니다. 꿈을 가진 요셉은 그의 주인 보다도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주인은 어찌 속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속일 수 없는 법이다. 주인에게는 버림을 받을 수 있어도 하나님께는 버림받을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요셉은 꿈을 쫓아가기 위해 보디발의 아내의 간청을 거절한다. 그로인하여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을 입어 옥에 갇히는 옥고를 치루게 된다. 꿈으로 인한 시련을 겪는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하나님이 주신 요셉의 꿈이 이루어지는 한 단계이다. 요셉의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옥고를 치루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시련과 고통 속에서 더욱 여호와를 의지하게 하였고, 바로 왕의 관원들을 만나게 하여 바로 왕 앞으로 인도해 가신다. 꿈을 가진 요셉은 옥중에 있었으나 여호와 하나님은 그곳에도 계셨고, 함께 하여 주셨고, 형통의 길을 주셨다. 전옥에게 사랑을 입게 하셨고, 죄수들을 다스리고 처리하는 으뜸의 자리를 주셨다.
2.남의 꿈 요셉은 자신이 꾼 꿈을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꿈(Vision)으로 간직하고 한 평생 꿈을 쫓아 살아갔지만 남의 꾼 꿈도 귀중히 여기고, 자신의 꿈을 이루는 일에 적절히 사용하였다.
⑴.두 관원장의 꿈
1.술 맡은 관원장 창세기 40:9-11절에 “내가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고 내 손에 바로의 잔이 있기로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노라”고 했다. 요셉이 그 꿈을 해석하니 3일 안에 복직된다는 꿈이다. 당신이 득의하면 나를 생각하고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간청을 한다.
2.떡 맡은 관원장 창세기 40:16-17절에 “나도 꿈에 보니 흰 떡 세 광주리가 내 머리에 있고 그 윗광주리에 바로를 위하여 만든 각종 구운 식물이 있는데 새 들이 내 머리의 광주리에서 그것을 먹더라”고 했다. 요셉이 그 꿈을 해석하니 3일 안에 당신이 처형되어 공중의 새가 당신의 고기를 먹으리라는 꿈이다. 이 두 관원장들은 요셉의 꿈 해석과 같이 제3일 곧 바로의 생일에 술 맡은 관원장은 복직이 되었고, 떡 맡은 관원장은 처형되어 매여 달렸다.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지 않고 잊었으나 잊혀질 수 없음은 이 일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요셉의 꿈을 이루는 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⑵.바로의 꿈 요셉이 두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준 일이 있은지 만 2년이 지났다.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잊었으나 기억할 수밖에 없는 일이 일어났다. 바로 왕의 꿈 소동이다.
1.첫 번째 꿈 본문 41:2-4절에 “보니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그 뒤에 또 흉악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 그 소와 함께 하숫가에 섰더니 그 흉악하고 파리한 소가 그 아름답고 살진 일곱 소를 먹은 지라”고 했다.
2.두 번째 꿈 본문 41:5-7절에 “꿈을 꾸니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그 후에 또 세약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그 세약한 일곱 이삭이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킨지라”고 했다. 바로 왕의 꿈은 분명 보통 꿈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계시가 담긴 꿈이었다. 바로 왕도 이 꿈이 보통 꿈이 아니라 무슨 깊은 의미가 있는 꿈임을 알았다. 그러나 그 해석을 몰라 번민하다가 애굽의 술객과 박사들을 불렀으나 능히 해석하는 가자 없었다. 만 2년 동안 까마득히 요셉을 잊었던 술 맡은 관원장은 바로 왕의 꿈 소동으로 요셉을 기억하게 되고, 요셉은 마침내 바로 왕 앞에 서게 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요셉의 꿈을 이루어가시는 방법이다. 하나님의 계시가 담긴 꿈이었기에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풀 수가 없었다. 애굽 천지에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은 오직 요셉 뿐이었기에, 그 요셉은 바로 왕 앞에 불려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창세기 41:16절에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라고 했다. 바로 왕이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더라는 말에, 나 요셉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아다”라고 한다. 하나님의 계시가 담긴 꿈이기에 인간은 능히 풀 수 없다는 말이다. 창세기 41:25절에 “요셉이 바로에게 고하되 바로의 꿈은 하나이라 하나님이 그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라고 했다. 바로 왕의 꿈이 보통 꿈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하실 일”을 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담긴 꿈이라고 했다. “그 하실 일” 곧 장차 될 일을 바로 왕에게 알게 하신 것이라고 했다. 두 꿈은 실상은 하나인데, 앞으로 7년 풍년에 7년 흉년이 온다는 것이다. 7년 흉년이 너무도 극심하여 7년의 풍년이 기억되지 않고, 이 애굽 땅이 기근으로 멸망하게 된다는 꿈이다. 창세기 41:32-33절에 “바로께서 꿈을 두 번 겹쳐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속히 행하시리니 이제 바로께서는 명철하고 지혜있는 사람을 택하여 애굽 땅을 치리하게 하시고”라 했다. 바로 왕의 꿈 해석뿐만 아니라 기근으로 멸망당할 애굽 땅을 구할 길도 일러주었다.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택하여 애굽을 다스리게 하고 7년 풍년 때에 다가올 7년 흉년을 대비하여 곡식을 저장해 두면 기근으로 멸망치 않으리라는 해결책이다.
3.애굽의 총리로 창세기 41:39-40절에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있는 자가 없도다 너는 내 집을 치리하라 내 백성이 다 네 명을 복종하리니 나는 너보다 높음이 보좌뿐이니라”고 했다. 하나님의 계시가 담긴 꿈이었고, 하나님의 신에 감동을 받은 요셉이(창41:38) 해석하고 일러준 대책이다. 그 요셉 외에 누가 더 적당한 사람이 있겠는가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는 내 집을 치리하라”고 바로 왕은 요셉을 애굽 전국 총리로 임명한다. 바로 왕이 자신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목에 걸고 자기의 버금 수레에 태웠다. 애굽 온 땅에서 너의 허락 없이 수족을 놀릴 자가 없으리라는 엄청난 권력을 요셉에게 주었다. 이처럼 요셉의 꿈은 바로 왕의 꿈이라는 또다른 꿈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우리 성도들의 꿈도, 우리 교회의 꿈도, 자신들의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바로 왕의 꿈과 같은 또다른 사람의 꿈이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의 계시가 담긴 꿈과 꿈이 서로 합하여질 때, 그 꿈은 더 큰 힘을 가진 꿈이 되고, 성취되고야 마는 살아 있는 꿈이 된다.
3.죽어서도 이루려는 꿈 본문 50:24-25절에 “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고 했다. 꿈을 쫓아 한 평생 살아간 요셉 그는 이제 인생의 마지막 길인 죽음 앞에 서게 된다. 형제들을 불러 놓고 남기는 유언이 역시 꿈타령이다. 나는 죽으나 하나님은 살아 계셔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정녕 이 민족을 인도해 가신다는 꿈(Vision)을 남긴다. 그 꿈이 나 요셉의 꿈만이 아니라 너희들의 꿈이라고 일러주면서, 그 꿈이 이루어지는 날이 오면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묻어 달라고 한다. 이 꿈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주기 위해 자신의 시신을 이 땅 애굽에 묻지 말라고 다짐을 한다. 죽어서 해골이 되어서라도 꿈을 이루겠다는 꿈쟁이 다운 결단이다. 그 꿈이 자신만의 꿈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히브리 민족의 꿈이기에 형제들의 가슴에, 후손들의 가슴에 심어 주려 하는 것이다. 자신의 해골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묻히는 게 요셉이 못다 이룬 꿈이 아니다. 만약 그것이 그의 꿈이라면 당장에 이룰 수 있는 꿈이다. 아버지 야곱의 시신도 가나안에 장사지낸 요셉인데, 애굽 전국 총리의 소원을 풀 수 없는 요셉이 아니다. 꿈을 가졌던 요셉, 그 꿈을 쫓아 한 평생 살아온 요셉, 이제 죽음을 눈앞에 두고, 못 다 이룬 히브리 민족의 꿈을 죽어서도 이루려 한다.
형제들에게, 후손들에게 꿈을 심어주기 위하여 자신의 시신을 애굽 땅에 남겨 둔다. 애굽 땅에 나를 묻지 말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라! 이는 꿈을 물려주고 가는 요셉의 유언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후손들의 가슴 속에 꿈을 심어주는 유언이다. 출애굽기 14:11절에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라고 했다. 홍해를 앞에 두고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하는 소리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보통 일반 사람은 죽으면 애굽 땅에 매장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요셉은 자신의 시신을 애굽 땅에 묻지 말고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라”는 유언으로 히브리 민족의 꿈을 남긴다. 요셉의 유언을 따라 형제들과 후손들은 요셉의 시신을 미라[Mirra(포)]로 만들어 보관했다. 히브리 민족의 꿈이 이루어질 때까지, 오고 오는 세대에 요셉은 죽어 해골이 되어서도 그 후손들에게 히브리 민족의 꿈을 심어주고 있다. “이것이 무엇인가” 후손들의 질문과 대답 속에서 “나는 죽으나 하나님은 살아 계셔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정녕 히브리 민족을 인도하신다”는 히브리 민족의 꿈은 전해지는 것이다. 결국 “요셉은 죽었으나 오히려 꿈으로 말하느니라”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성경에는 “이것이 무엇인가”를 통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의 계시가 전해져 오는 것들이 있다. 롯의 아내의 불신앙의 산물인 소금 기둥(창19:26), 만나(출16:33), 아론의 싹난 지팡이(민17:10), 길갈의 열 두 돌들(수4:20), 여호수아가 세운 증거의 돌(수24:27) 등이 있다. 한 평생 꿈을 쫓아 살아간 요셉은 자기만의 꿈을 이루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 “이것이 무엇인가”가 됨으로 후손들에게 꿈을 심어 주기를 원했고, 요셉은 죽었으나 오히려 꿈으로 말하기를 원했고, 죽어서도 그 꿈을 이루기를 원했다. 이처럼 내가 이룰 수 있는 꿈이라도 후손을 위하여 남겨 주는 요셉, 후손을 통하여 더 큰 꿈을 이루려 하는 요셉, 하나님의 계시가 담긴 꿈이기에 “나는 죽으나 하나님은 살아 계시니, 그가 정녕 이루시리라”의 확신을 가진 요셉, 나의 확신을 죽어서도 후손에게 일깨우려는 요셉이다. 한 평생 꿈을 쫓아 살아간 요셉 그는 참으로 “꿈쟁이”이다. 자신이 그 꿈을 먹고 살았으며, 그 꿈으로 부모, 형제, 온 가족을 먹여 살렸으며, 또한 그 꿈을 후손에게 물려주고 떠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내 한 평생 쫓아 살아갈 꿈이 있는가 내 후손에게 물려 줄 꿈이 있는가 “나는 죽으나 하나님은 살아 계시니 그가 정녕 이루시리라”는 확실한 꿈이 있는가 우리 성도들은 그 꿈을 찾아야 하고, 그 꿈을 가져야 한다. 그 꿈을 먹고 살아야 하고, 그 꿈을 후손들에게도 물려주어야 한다. 그 꿈은 나만의 꿈이 아니다. 요셉의 꿈을 이루기 위해 바로 왕에게 꿈을 주신 것 같이, 나의 꿈을 위해 또다른 사람의 꿈이 있음을 잊지말자. 꿈과 꿈이 합하여 하나의 크고 완전한 꿈을 이루게 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가진 꿈이 하나님의 계시가 담긴 꿈일진대, 우리 각자의 꿈을 한데 모아 하나의 크고 완전한 꿈으로 일구어 내자. “여호와 하나님, 그가 정녕 이루시라” 우리의 믿음이 하나가 될 때 태산을 들어 바다에 빠뜨리는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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