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주를 떠나 살면서 (요21:1-14)
본문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세 번째 나타나신 일을 말씀해 주고 있다. 바로 디베랴 바다에서 고기 잡는 베드로를 비롯한 7명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일이다. 여기서 말하는 디베랴 바다는 갈릴리 바다를 말한다(요6:1).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나타나신 사건은 사도 요한이 기록한 말씀에서는 첫 번째가 요한복음 20:19절, 두 번째는 요한복음 20:26절로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을 때였다. 누가복음 24:33절/ 곧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 한 사도와 및 그와 함께한 자들이 모여 있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제자들은, 전체 제자들 “모두다”이다. 곧 한 사람도 부활의 주님을 뵙지 못한 제자가 없다. 첫 번째에 도마가 빠졌다. 그래서 “열 한 사도”가 된다. 두 번째에는 도마가 함께 했고, 그 못자국 난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며 “네 손으로 만져 보라”고 하셨다. 이렇게 부활의 주님을 자기 두 눈으로 확실히 보았고, 대화를 나눈 제자들인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보이는 주님이 함께 하시지 않을 때, 그들은 자신의 주님을 잊어 버렸다. 눈에 보이는 세상을 쫓아가며 구주를 떠나 살면서가 되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구주를 떠나 살면서 그 때, 그 제자들만의 이야기일까.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나 자신의 모습은 아닐까 우리 이 시간 디베랴 바다의 일곱 제자들을 바라보며 우리 자신을 한 번 돌아보는 시간을 갖자.
1.세상 풍조를 쫓았네 본문 3절/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세상 풍조에는 항상 앞서 가는 자들이 있다. 바로 소위 유행을 창조하는 주역들이다. 이들에 의해 가치관도 달라지고, 삶의 방법도 달라지고, 심지어 윤리 도덕의 기준도 달라진다.
1.베드로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 중에 수제자(首弟子)라고 하는 베드로이다. 언제나 다른 제자들 보다 앞장서서 좋은 말은 혼자서 다하며, 수제자다움을 뽐내었다. 곧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서 앞서가는 자이었다. 마태복음 16:16절/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태복음 26:33절/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요한복음 18:10절/ 이에 시몬 베드로가 검을 가졌는데 이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가이사랴 빌립보에서도, 최후의 만찬장에서도, 주께서 잡히시던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베드로는 이렇게 항상 남들보다 한 걸음 앞장서서 간 자이었다. 세상적으로 본다면 이런 자들이 유행을 만드는 자로 앞서가는 자이다. 문제는 예수님과 함께 하였을 때에는. 베드로가 열 두 제자들 중에서 좋은 쪽으로 앞장서서 갔다. 그러나 주님이 곁에 안 계시니 갈 바를 몰라. 그만 나쁜 쪽에서 앞장을 서게 된 것이다.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2.다른 제자들 “우리도 함께 가겠다”. 바로 다른 제자들의 응답이다. 바로 이것이 세상 풍조의 특성이다. 남이 한다면, 나도 하려는 것이다. 우리 성도들의 입장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 성경적인가 교회의 덕이 되는가 본이 되는가 등등 좀 따져 보고 결정을 해야 한다. 세상 풍조를 쫓아가는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해보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옛말 그대로 남이 시장에 간다니, 재라도 지고 따라간다는 식이 되고 있다. “세상이 다 그런 걸.”로 덮어 버리는 사고방식이 되어 가고 있다. 건덕상 옳지 않은 일이면 아무개 장로, 아무개 집사가 아니라. 아무개 목사가 그러해도, 나는 그러치 않아야 한다. 이것이 “나의 신앙”이다. 하나님 앞에서 나의 삶이다. 로마서 12:2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바로 이 말씀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말씀이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하신다. 남을 따라서 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이 세상의 풍조를 쫓아 살아가지 말라는 말씀이다.
3.고기 잡으러 가노라 베드로가 고기잡이 하러 간다는 말은 옛날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주님을 따르기 위해 버렸던 배를. 이제는 주님을 버리고 고기잡이 배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구주를 떠나 살면서 주를 버리고 배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디베랴 바다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곧 갈릴리 바다 고기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사람 낚는 어부에서 지난날의 고기잡이하는 어부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거기에 배가 있고, 갈릴리 바다가 있고, 어부의 생활이 있고, 고기가 있고, 돈이 있고, 지난날의 아득한 추억이 있고, 지난날의 친구가 있고, 또 남들에게 뒤지고 싶지 않은 기술이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의 예수님을 직접 만나 뵈온 놀라운 은혜 체험이 있는 제자들입니다. 특별히 뽑아 세운 열 두 제자들입니다. 3년간 함께 먹고 마시며 함께 생활한 제자들입니다.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은혜 체험을 한 제자들입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들고, 바다 위를 걷고, 5병2어의 기적을 보았고, 죽은 자를 살리셨고, 자신이 죽어 부활한 놀라운 사건을 목도한 제자들입니다. 이러한 놀랍고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고서도 주님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구주를 떠나 살면서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더욱 복되다고 하셨습니다(요20:29)
2.얻은 것이 없었네 본문 3절/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본문 5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디베랴 바다의 일곱 제자들 그들의 고백은 구주를 떠나 살면서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네. 였다. 그렇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리 성도는 머리 되시는 주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산다” 한들. 그것은 삶이 아니다. 바로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은 가지의 삶이다. 곧 죽음이다. “산다” 한들 그 삶의 결과는 불타 없어질 것뿐이다.
1.디베랴 바다 본문 1절/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이 이러하니라/ 요한복음 6:1절/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디베랴 바다는 다른 이름으로 게네사렛 호수(눅5:1), 긴네렛 바다(수13:27), 갈릴리 바다로 불리우는 바다이다. 이 갈릴리 바다에서 베드로는 주님께 부르심을 받았다. 안드레, 야고보, 요한도 이 바다에서 부르심을 받았다. 이 갈릴리 바다에서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심을 입은 제자들은.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큰 물결을 잔잔케 하시는 주님의 신기한 능력을 맛보았고, 바다 위를 걸으시는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고, 해변을 둘러싼 수많은 무리들과 함께 이 갈릴리 바다 위에서 들려주시는 마태13장의 비유의 말씀을 들었다. 이토록 주님과 뗄 레야 뗄 수 없는 갈릴리 바다에서 베드로를 비롯한 일곱 제자들이 고기잡이를 하고 있다. 주님의 부르심을 입기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다. 베드로는 이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잡이하며 잔뼈가 자랐다. 갈릴리 바다의 구석, 구석을 환히 알 것만은, 주님 앞에서 이렇게 고백했었다(눅5:5).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으나 얻은 것이 없나이다” 지금 베드로를 비롯한 일곱 제자들이 처한 형편이 바로 그날을 말해 주고 있건마는. 일곱 제자들은 깨닫지 못한다.
2.밤이 맞도록 수고 본문 3절/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구주를 떠나 살면서 디베랴 바다를 누비던 지난날의 실력으로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으나 일곱 제자들의 고백은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었네”이었다. 그 주님 앞에서 지난날처럼.(본문5절) 요한복음 15:5-6절/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구주를 떠나 살면서 “산다” 한들 그게 어디 사는 것인가 포도나무를 떠난 가지의 삶이 그게 어디 산 것인가. 말라죽어져 가는 것이지. 불에 던져 사르질 것뿐이지 부활의 주님을 만나 뵙는 놀라운 은혜 체험을 했건마는 일곱 제자들은 이 말씀의 뜻을 아직도 모르고 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그러기에 일곱 제자들은. 구주를 떠나 살면서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으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네.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었네를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3.언제나 제자리 구주를 떠나 살면서 디베랴 바다에 고기잡이하러 온 베드로.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으나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나이다. 그는 주님의 부르심을 입었던 그 자리에 다시 와 있다. “언제나 제자리”이다. 그렇다. 우리 성도들이 구주를 떠나 살면. 소위 말하는 말짱 도루묵이요, 말짱 도로아미 타불이 되고 만다. 곧 “언제나 제자리”이다.
3.찾아오신 주를 몰라보았네 본문 4절/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신줄 알지 못하는지라/ 세상 풍조를 쫓아. 돈을 보고, 명예를 보고, 권력을 보고, 세상 영화를 보고, 세상 향락을 보고. 달려가는 자들은 주님을 알아볼 수가 없다. 세상 부귀 영화와 즐겨 하던 모든 것이. 그 눈을 가리고 있다. 사도 바울의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듯(행9:18),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의 눈이 열려지듯(눅24:31) 눈을 가리고 있는 장애물이 걷히어 져야 한다. 그래야 주님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1.찾아오신 주님 구주를 떠나 살면서 고기잡이 하던 디베랴 바다를 찾고, 지난날의 즐거움을 추억하고(민11:18), 고기 잡으러 가노라 애굽으로 돌아가자를 외치며, 주를 떠나는 저들이지만 주님은 저들을 찾아오셨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선수적 사랑이다.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아! 사울아!” 불러 주시던 주님이시다(행9:4). “삭개오야! 내려오라” 부르시던 주님이시다(눅19:5).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우셨다시던(요15:16) 주님이,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으나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다는 일곱 제자들을 찾아오셨다.
2.주님을 몰라보는 제 구주를 떠나 살면서 디베랴 바다에서 고기잡이 하던 일곱 제자들. 그들의 눈은 고기만을 쫓을 뿐 지난날 제자로 부르실 때처럼 그 바다, 그날의 상황에 찾아오셨건만 주님을 알아보지 못한다.
3.그물을 배 오른 편에 본문 6절/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누가복음 5:4-6절/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리한즉 고 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오늘 본문의 말씀은(본문6절). 베드로가, 안드레, 야고보, 요한이 바로 그 갈릴리 바다에서 주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상황과 똑같다.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심을 입은 바로 그날을 회상시켜 주고 있다. 디베랴 바다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베드로 고기잡이 어부로 잔뼈가 굵은 베드로 그 베드로가 밤이 맞도록 수고하여도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는 기막힐 노릇 바로 그 날이나, 오늘이나 똑같이 허탕친 밤이었다. 그때 주님이 하신 말씀.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져라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었다. 바로 이 갈리리 바다에서 주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그렇다 구주를 떠나 살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었다. 그러나, 주를 만나, 그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그물을 들 수 없을 만큼 153마리의 고기가 잡혔다. 그때에야 요한이 주님이심을 알아보고 베드로에게 귀띔을 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성도들의 성공 여부는 나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느냐가 문제입니다. 베드로가 고기잡이 실력이 없어 실패했습니까 갈릴리 바다를 몰라서 밤이 맞도록 수고하여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베드로는 사람 낚는 어부이지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잡이 해야 할 어부가 아닙니다. 고기잡이 어부는 주의 제자로 부르심을 입는 날에 버린 것입니다. 배도 버려두고, 부모도 버려두고. 주님을 따른 자신들입니다. 디베랴 바다의 일곱 제자들. 이들의 고기잡이가 잘 된다면. 오히려 이상한 것입니다. 이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해도 얻은 것이 없었다는 것은. 아직도 주님의 사랑이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들의 고기잡이가 순풍에 돛단 듯 잘 되었다면 그들은 하나님이 내버려두신 자들이 되고 맙니다. 마음의 정욕대로(롬1:24), 부끄러운 욕심에(롬1:26), 상실한 마음대로(롬1:28)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잠언 24:1절/ 너는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기도 원하지 말지어다/ 악인의 형통은 부러워 할 대상이 아닙니다. 시편 73편에서 아삽은 악인은 고통도, 고난도, 재앙도 없이 건강하게 살고, 하는 일이 형통하고, 소득도 마음의 소원보다 더하고, 평안하고, 재물이 더해 간다는 것을 부러워하다가.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 저희들의 결국을 깨닫고 파멸에 던지실 그날 졸지에 전멸할 저희들의 모습을 깨닫고 우매무지(愚昧無知)하고 짐승 같으나 주께서 내 길 인도하시고 영접하시리니.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참된 복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편 73:28절/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 아삽의 신앙고백이 바로 나의 신앙고백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4.준비된 음식 본문 9절/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주님은 우리 성도들의 쓸 것을 아시고 계신다. 우리의 구하기 전에 모든 필요를 아시고 계신 하나님 아버지이시다(마6:8). 당신의 자녀를 위하여, 당신의 백성을 위하여, 당신의 제자를 위하여 그 필요를 준비해 놓고 계신다. 요한의 귀띔으로 부활의 주님이 찾아오신 것을 알고 제자들이 육지에 올라보니 떡도, 숯불도, 생선도 이미 다 준비되어 있었다. 자신들은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어도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었지만 주님은 이미 자신들의 필요한 것을 준비해 두셨던 것이다. 5.지금 잡은 것 좀 가져오라 본문 10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신대/ 주님이 준비해 놓으신 것에다 지금 잡은 것 좀 가져오면. 일곱 제자들의 필요는 채워진다. 지금 잡은 153마리 그 풍성한 어획이 다 필요한 것이 아니다. 주님이 친히 떡도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셨다. 주님이 함께 하시니 디베랴 바다에서 밤을 세워 수고할 필요가 없다. 수고해 보았자 얻은 것이 없나이다는 고백뿐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주를 떠나 살면서 디베랴 바다의 일곱 제자들처럼 나 자신은 세상 풍조를 쫓아 살아가지는 않는지.한 번 깊이 생각해 봅시다. 밤이 맞도록 수고하여도 얻은 것이 없네라는 고백을 하는 자가 아닌가요 나를 찾아오신 사랑의 주님을 갈릴리 바다의 일곱 제자들처럼 몰라보지는 않는지 깊이 생각해 봅시다. 153마리의 풍성한 고기. 우리의 노력의 결과가 아닙니다. 주님이 함께 하신 결과입니다. 나를 떠나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그래서 주님을 떠나지 않는 길이 바로 형통의 길이요, 성공의 길이요, 153마리의 만선의 노래가 있는 길입니다. 우리 주와 함께 이 길을 걷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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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상 풍조를 쫓았네 본문 3절/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세상 풍조에는 항상 앞서 가는 자들이 있다. 바로 소위 유행을 창조하는 주역들이다. 이들에 의해 가치관도 달라지고, 삶의 방법도 달라지고, 심지어 윤리 도덕의 기준도 달라진다.
1.베드로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 중에 수제자(首弟子)라고 하는 베드로이다. 언제나 다른 제자들 보다 앞장서서 좋은 말은 혼자서 다하며, 수제자다움을 뽐내었다. 곧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서 앞서가는 자이었다. 마태복음 16:16절/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태복음 26:33절/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요한복음 18:10절/ 이에 시몬 베드로가 검을 가졌는데 이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가이사랴 빌립보에서도, 최후의 만찬장에서도, 주께서 잡히시던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베드로는 이렇게 항상 남들보다 한 걸음 앞장서서 간 자이었다. 세상적으로 본다면 이런 자들이 유행을 만드는 자로 앞서가는 자이다. 문제는 예수님과 함께 하였을 때에는. 베드로가 열 두 제자들 중에서 좋은 쪽으로 앞장서서 갔다. 그러나 주님이 곁에 안 계시니 갈 바를 몰라. 그만 나쁜 쪽에서 앞장을 서게 된 것이다.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2.다른 제자들 “우리도 함께 가겠다”. 바로 다른 제자들의 응답이다. 바로 이것이 세상 풍조의 특성이다. 남이 한다면, 나도 하려는 것이다. 우리 성도들의 입장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 성경적인가 교회의 덕이 되는가 본이 되는가 등등 좀 따져 보고 결정을 해야 한다. 세상 풍조를 쫓아가는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해보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옛말 그대로 남이 시장에 간다니, 재라도 지고 따라간다는 식이 되고 있다. “세상이 다 그런 걸.”로 덮어 버리는 사고방식이 되어 가고 있다. 건덕상 옳지 않은 일이면 아무개 장로, 아무개 집사가 아니라. 아무개 목사가 그러해도, 나는 그러치 않아야 한다. 이것이 “나의 신앙”이다. 하나님 앞에서 나의 삶이다. 로마서 12:2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바로 이 말씀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말씀이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하신다. 남을 따라서 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이 세상의 풍조를 쫓아 살아가지 말라는 말씀이다.
3.고기 잡으러 가노라 베드로가 고기잡이 하러 간다는 말은 옛날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주님을 따르기 위해 버렸던 배를. 이제는 주님을 버리고 고기잡이 배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구주를 떠나 살면서 주를 버리고 배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디베랴 바다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곧 갈릴리 바다 고기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사람 낚는 어부에서 지난날의 고기잡이하는 어부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거기에 배가 있고, 갈릴리 바다가 있고, 어부의 생활이 있고, 고기가 있고, 돈이 있고, 지난날의 아득한 추억이 있고, 지난날의 친구가 있고, 또 남들에게 뒤지고 싶지 않은 기술이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의 예수님을 직접 만나 뵈온 놀라운 은혜 체험이 있는 제자들입니다. 특별히 뽑아 세운 열 두 제자들입니다. 3년간 함께 먹고 마시며 함께 생활한 제자들입니다.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은혜 체험을 한 제자들입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들고, 바다 위를 걷고, 5병2어의 기적을 보았고, 죽은 자를 살리셨고, 자신이 죽어 부활한 놀라운 사건을 목도한 제자들입니다. 이러한 놀랍고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고서도 주님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구주를 떠나 살면서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더욱 복되다고 하셨습니다(요20:29)
2.얻은 것이 없었네 본문 3절/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본문 5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디베랴 바다의 일곱 제자들 그들의 고백은 구주를 떠나 살면서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네. 였다. 그렇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리 성도는 머리 되시는 주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산다” 한들. 그것은 삶이 아니다. 바로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은 가지의 삶이다. 곧 죽음이다. “산다” 한들 그 삶의 결과는 불타 없어질 것뿐이다.
1.디베랴 바다 본문 1절/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이 이러하니라/ 요한복음 6:1절/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디베랴 바다는 다른 이름으로 게네사렛 호수(눅5:1), 긴네렛 바다(수13:27), 갈릴리 바다로 불리우는 바다이다. 이 갈릴리 바다에서 베드로는 주님께 부르심을 받았다. 안드레, 야고보, 요한도 이 바다에서 부르심을 받았다. 이 갈릴리 바다에서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심을 입은 제자들은.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큰 물결을 잔잔케 하시는 주님의 신기한 능력을 맛보았고, 바다 위를 걸으시는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고, 해변을 둘러싼 수많은 무리들과 함께 이 갈릴리 바다 위에서 들려주시는 마태13장의 비유의 말씀을 들었다. 이토록 주님과 뗄 레야 뗄 수 없는 갈릴리 바다에서 베드로를 비롯한 일곱 제자들이 고기잡이를 하고 있다. 주님의 부르심을 입기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다. 베드로는 이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잡이하며 잔뼈가 자랐다. 갈릴리 바다의 구석, 구석을 환히 알 것만은, 주님 앞에서 이렇게 고백했었다(눅5:5).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으나 얻은 것이 없나이다” 지금 베드로를 비롯한 일곱 제자들이 처한 형편이 바로 그날을 말해 주고 있건마는. 일곱 제자들은 깨닫지 못한다.
2.밤이 맞도록 수고 본문 3절/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구주를 떠나 살면서 디베랴 바다를 누비던 지난날의 실력으로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으나 일곱 제자들의 고백은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었네”이었다. 그 주님 앞에서 지난날처럼.(본문5절) 요한복음 15:5-6절/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구주를 떠나 살면서 “산다” 한들 그게 어디 사는 것인가 포도나무를 떠난 가지의 삶이 그게 어디 산 것인가. 말라죽어져 가는 것이지. 불에 던져 사르질 것뿐이지 부활의 주님을 만나 뵙는 놀라운 은혜 체험을 했건마는 일곱 제자들은 이 말씀의 뜻을 아직도 모르고 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그러기에 일곱 제자들은. 구주를 떠나 살면서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으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네.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었네를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3.언제나 제자리 구주를 떠나 살면서 디베랴 바다에 고기잡이하러 온 베드로.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으나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나이다. 그는 주님의 부르심을 입었던 그 자리에 다시 와 있다. “언제나 제자리”이다. 그렇다. 우리 성도들이 구주를 떠나 살면. 소위 말하는 말짱 도루묵이요, 말짱 도로아미 타불이 되고 만다. 곧 “언제나 제자리”이다.
3.찾아오신 주를 몰라보았네 본문 4절/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신줄 알지 못하는지라/ 세상 풍조를 쫓아. 돈을 보고, 명예를 보고, 권력을 보고, 세상 영화를 보고, 세상 향락을 보고. 달려가는 자들은 주님을 알아볼 수가 없다. 세상 부귀 영화와 즐겨 하던 모든 것이. 그 눈을 가리고 있다. 사도 바울의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듯(행9:18),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의 눈이 열려지듯(눅24:31) 눈을 가리고 있는 장애물이 걷히어 져야 한다. 그래야 주님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1.찾아오신 주님 구주를 떠나 살면서 고기잡이 하던 디베랴 바다를 찾고, 지난날의 즐거움을 추억하고(민11:18), 고기 잡으러 가노라 애굽으로 돌아가자를 외치며, 주를 떠나는 저들이지만 주님은 저들을 찾아오셨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선수적 사랑이다.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아! 사울아!” 불러 주시던 주님이시다(행9:4). “삭개오야! 내려오라” 부르시던 주님이시다(눅19:5).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우셨다시던(요15:16) 주님이,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으나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다는 일곱 제자들을 찾아오셨다.
2.주님을 몰라보는 제 구주를 떠나 살면서 디베랴 바다에서 고기잡이 하던 일곱 제자들. 그들의 눈은 고기만을 쫓을 뿐 지난날 제자로 부르실 때처럼 그 바다, 그날의 상황에 찾아오셨건만 주님을 알아보지 못한다.
3.그물을 배 오른 편에 본문 6절/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누가복음 5:4-6절/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리한즉 고 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오늘 본문의 말씀은(본문6절). 베드로가, 안드레, 야고보, 요한이 바로 그 갈릴리 바다에서 주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상황과 똑같다.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심을 입은 바로 그날을 회상시켜 주고 있다. 디베랴 바다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베드로 고기잡이 어부로 잔뼈가 굵은 베드로 그 베드로가 밤이 맞도록 수고하여도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는 기막힐 노릇 바로 그 날이나, 오늘이나 똑같이 허탕친 밤이었다. 그때 주님이 하신 말씀.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져라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었다. 바로 이 갈리리 바다에서 주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그렇다 구주를 떠나 살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었다. 그러나, 주를 만나, 그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그물을 들 수 없을 만큼 153마리의 고기가 잡혔다. 그때에야 요한이 주님이심을 알아보고 베드로에게 귀띔을 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성도들의 성공 여부는 나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느냐가 문제입니다. 베드로가 고기잡이 실력이 없어 실패했습니까 갈릴리 바다를 몰라서 밤이 맞도록 수고하여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베드로는 사람 낚는 어부이지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잡이 해야 할 어부가 아닙니다. 고기잡이 어부는 주의 제자로 부르심을 입는 날에 버린 것입니다. 배도 버려두고, 부모도 버려두고. 주님을 따른 자신들입니다. 디베랴 바다의 일곱 제자들. 이들의 고기잡이가 잘 된다면. 오히려 이상한 것입니다. 이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해도 얻은 것이 없었다는 것은. 아직도 주님의 사랑이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들의 고기잡이가 순풍에 돛단 듯 잘 되었다면 그들은 하나님이 내버려두신 자들이 되고 맙니다. 마음의 정욕대로(롬1:24), 부끄러운 욕심에(롬1:26), 상실한 마음대로(롬1:28)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잠언 24:1절/ 너는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기도 원하지 말지어다/ 악인의 형통은 부러워 할 대상이 아닙니다. 시편 73편에서 아삽은 악인은 고통도, 고난도, 재앙도 없이 건강하게 살고, 하는 일이 형통하고, 소득도 마음의 소원보다 더하고, 평안하고, 재물이 더해 간다는 것을 부러워하다가.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 저희들의 결국을 깨닫고 파멸에 던지실 그날 졸지에 전멸할 저희들의 모습을 깨닫고 우매무지(愚昧無知)하고 짐승 같으나 주께서 내 길 인도하시고 영접하시리니.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참된 복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편 73:28절/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 아삽의 신앙고백이 바로 나의 신앙고백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4.준비된 음식 본문 9절/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주님은 우리 성도들의 쓸 것을 아시고 계신다. 우리의 구하기 전에 모든 필요를 아시고 계신 하나님 아버지이시다(마6:8). 당신의 자녀를 위하여, 당신의 백성을 위하여, 당신의 제자를 위하여 그 필요를 준비해 놓고 계신다. 요한의 귀띔으로 부활의 주님이 찾아오신 것을 알고 제자들이 육지에 올라보니 떡도, 숯불도, 생선도 이미 다 준비되어 있었다. 자신들은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어도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었지만 주님은 이미 자신들의 필요한 것을 준비해 두셨던 것이다. 5.지금 잡은 것 좀 가져오라 본문 10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신대/ 주님이 준비해 놓으신 것에다 지금 잡은 것 좀 가져오면. 일곱 제자들의 필요는 채워진다. 지금 잡은 153마리 그 풍성한 어획이 다 필요한 것이 아니다. 주님이 친히 떡도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셨다. 주님이 함께 하시니 디베랴 바다에서 밤을 세워 수고할 필요가 없다. 수고해 보았자 얻은 것이 없나이다는 고백뿐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주를 떠나 살면서 디베랴 바다의 일곱 제자들처럼 나 자신은 세상 풍조를 쫓아 살아가지는 않는지.한 번 깊이 생각해 봅시다. 밤이 맞도록 수고하여도 얻은 것이 없네라는 고백을 하는 자가 아닌가요 나를 찾아오신 사랑의 주님을 갈릴리 바다의 일곱 제자들처럼 몰라보지는 않는지 깊이 생각해 봅시다. 153마리의 풍성한 고기. 우리의 노력의 결과가 아닙니다. 주님이 함께 하신 결과입니다. 나를 떠나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그래서 주님을 떠나지 않는 길이 바로 형통의 길이요, 성공의 길이요, 153마리의 만선의 노래가 있는 길입니다. 우리 주와 함께 이 길을 걷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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