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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버지 (마6:9-13)

본문

오늘은 어버이 주일이다. 가정의 달을 맞아 두 번째 가지게 되는 교회의 행사이다. 일반 사회에서는 5월 8일을 “어버이날”로 정하여 부모님 공경과 효도를 일깨우고 있다.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에도 제5 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부모 공경” 곧 신앙인이 말하는 “부모 공경”은 일반인이 말하는 “부모 공경”과는 차이가 있다. 그 차이를 쉽게 말하면 일반인의 “효도”는 “인륜지 도덕(人倫之 道德)”이요, 신앙인이 말하는 “효”는 “천륜지 도덕(天倫之 道德)”이다. 사람과 하늘, 곧 하늘과 땅 차이이다. 우리 신앙인들이 갖는 “부모 공경”의 마음은 “하나님의 명령”에서 출발을 하고 있다. 우리 성도가 부모 공경을 못하면 부모에 대한 “불효”의 차원을 넘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다. 믿지 않는 불신자들이 “예수쟁이는 부모도 모르는 상놈”이라고 욕을 하지만, 알고 보면 우리 성도들에게는 더 큰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 성도들이 제사 문제로 욕을 먹고 있고, 더러는 이 문제로 환란과 핍박을 당하고 있기도 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실상은 부모가 살아계실 때 잘 해드려야 한다. 그것이 효의 근본 정신이다. “죽은 효자는 집집마다 다 있다”고들 한다. 살아 계실 때는 제대로 모시지 않던 사람도 죽은 부모 제사는 챙긴다는 말이다. 성경이 말하는 것은 효는 인격체에 대해 있는 것이지 비인격체에게 효를 하는 게 아니다. 사람은 생명이 있을 동안은 인격체이지만 죽고 나면 인격체가 아니다. 아무리 자기 부모라도 생명이 떠나는 순간 부모가 아니라, 사람이 아니라 시신(屍身) 곧 시체라 한다.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아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버지에 대해 살펴 보고져 한다. 본문 말씀은 물론 “주기도문”으로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이다. 우리의 기도(소원, 요구)를 들어주시는 아버지, 그 기도 속에 나타난 아버지에 관해서 살펴 보고져 한다.
1.우리 아버지 본문 9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했다. 아버지! 참으로 우리의 모든 것 되시는 분이다. 우리의 소원도, 우리의 요구도, 우리의 강짜도 들어주시는 분이다. 그분의 말씀 속에 우리의 기쁨이 있고, 우리의 행복이 있고, 우리의 희망이 담겨져 있다.
그런데 우리 신앙인에게는 이런 아버지가 두 분이나 계신다.
(1).하늘에 계신 아버지 본문 9절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했다. 우리 성도들에게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있다. 이 아버지는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요(창1:1),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다스리시는 분이시요(시103:22, 단4:25), 역사의 주인으로 섭리하시는 분이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우리의 육신이 아닌 영의 아버지이다. 그래서 유대인은 “아버지는 한분 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고 했다(요8:42) 그러나 예수님은 이를 인정치 않으시고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고 했다(요8:44)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영의 아버지로 내 생명의 참 주인이시다. 우리 육신의 생명은 실상 알고 보면 육신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영혼이 육신과 함께 함으로 주어진 것이다. 그 영혼이 이 육신을 떠나가면 생명도 또한 떠나가는 것이다(마27:50)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의와 공평으로 다스리시며, 빛과 진리로 인도하시며, 진노와 채찍으로 징벌하시며, 인애와 긍휼로 사랑 베푸시는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이시다.
(2).땅에 계신 아버지 곧 우리 육신의 아버지이시다. 우리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분이다.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쫓아 나를 낳아 주신 분이다. 나를 길러 주신 분이다. 나의 오늘이 있게 해 주신 분이다. 무엇보다도 이 땅에서 “하나님” 대신으로 주신 분이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고,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하고,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어떻게 하나님을 따를까-를 가르쳐 주시기 위해 주신 분이다.
2.이름 거룩히 여김 받으소서 본문 9절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는 것은 영광을 받는다는 말이다. 다른 말로 하면 존경을 받는다는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경외한다. 공경한다”는 것이다(레19:32)(1).경외 시편 34:9절에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라고 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그분을 향한 우리의 마음 가짐은 경외이다. 이는 공경하며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분 앞에 선다는 말이다. 창세기 3:10절에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했다. 부끄러움과 수치 때문에, 지은 죄로 피하고 숨는 아담과 하와의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다. “하나님 경외”는 어떻게 하면 “더 잘 공경할까”를 염려하고 주의하는 마음이다. 우리 성도들은 한번쯤 깊이 생각해 보자. 참으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앞에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 있는가…. 우리는 가끔 무례함을 지나 망령된 모습으로 그분을 대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래서 그분도 탄식하고 계신다. “하늘이여 들어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라고 했다(사1:2-3) 저 패역한 이스라엘의 모습이 나의 모습은 아닌가고 살펴 보자.
(2).공경 출애굽기 20:12절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했다. 땅에 계신 아버지께는 “공경”하라고 했다. 그리하면 장수의 축복을 주신다는 것이다. 건강하게 오래 살고져 한다면 조깅이나, 건강 식품으로 건강관리를 할 게 아니라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곧 장수의 비결이다. 사람이 연구 개발해서 얻은 비결이 아니라 하나님이 알려주신 비결이다. 여기의 “공경”이라는 말은 우리 장기 중의 “간처럼 여기라”는 뜻이다. 사람의 몸을 장기별로 나누면 “간”이 제일 무겁다고 한다. 우리는 가끔 “만사가 다 귀찮다”고 한다. 그렇다고 제일 무거운 장기라 떼 버릴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부모를 간처럼 여기라”는 말이 되는데, 그만큼 “중(重)히 여기라”는 것이요, “귀(貴)히 여기라”는 것이다. 간은 우리 몸에서 없어서는 안될 소중하고, 중요한 장기이다. 그 간처럼 부모님을 생각하는 게 곧 공경이다. “한양 천릿길, 눈썹도 빼 버리고 간다”고 한다. 길이 멀고 험해 힘들기에 조금이나마 몸을 가볍게 하자는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제일 무거운 장기라 해서 간을 떼어놓고 한양 천릿길을 가겠다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오늘을 사는 우리 곁에는 멀고 험한 인생길이 아닌데도, 먹고 마시고 즐기기에 거추장스러운 존재라며 버리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 해마다 이맘때면 방송을 통해 양로원에 버려진 할머니 할아버지를 한 두 사람쯤 보게 된다. 그래도 자식 사랑은 변함없어 연락처를 모른다고 끝내 입을 다물고 계시는 모습을 보며 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버지 참 좋으신 우리 아버지의 다함이 없는 사랑을 바라보게 된다. 참으로 “간처럼 여기라”는 부모 공경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제주도에 버려지는 현대판 고려장, 철저히 소외당하고 외면 당해 함께 살 수 없는 늙은이들 결코 그들은 어른도, 우리의 부모도 아닌 늙은이에 불과하다. 늙고 병들어 일할 수 없고, 수중에 돈(경제권)이 없어 당하는 외면이다. 그래서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제산을 손에 꼭쥐고 있는 부모를 보게 된다.
3.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아버지 본문 11절에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 했다. 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버지 참 좋으신 우리 아버지는 나의 모든 것이 되신다. 나의 필요를 다 아시고 채워 주신다. 나의 요구를, 나의 강짜를 들어주신다. 나의 소원도, 나의 기도도 들어주신다.
(1).영혼의 양식 요한복음 17:17절에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고 했다. 우리 성도들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주시는 영혼의 양식을 먹고, 자라 감의 목표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엡4:13) 이르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내 영혼 곧 속사람의 거룩은 하나님의 말씀 즉 진리로 이룩되어진다. 거룩은 우리의 심령 속의 속된 것이 씻겨져 나감으로 이룩되어진다.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다(엡5:26) 우리 육신이 살아가기 위해 날마다 육의 양식을 취하듯, 내 영혼이 살아 약동치며 자라나기 위해서는 영혼의 양식을 날마다 취해야 한다. 그러나 실상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한번 자신을 돌아보자. 내 영혼의 양식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말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따라 마음껏 취할 수 있도록 넘치게 주셨으나, 우리의 게으르고 나태함이 넘치게 주신 영혼의 양식도, 축복도 받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육의 양식 본문 11절에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 했다. “일용할 양식”이란 “하루 쓸 양식”이다. 이는 필요한 만큼의 양식이다. 욕심 부릴 이유가 없다. 출애굽 여정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라! 내일 필요한 것은 내일 또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일용할 양식”은 “날마다의 양식”이다. 날마다의 양식은 “날마다 일한 대가”이다.
그러므로 놀거나 일하지 않는 것은 엄청난 잘못이다. 결코 하나님의 은혜나 축복이 아니다. “일용할 양식” 속에는 “음식에만” 소용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필요한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 그 모든 필요를 달라고 하라신다. 그러면 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버지 그분이 들어주신다. 채워 주신다. 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버지 참 좋으신 우리 아버지, 우리의 필요를 따라, 우리의 소원을 따라 다 들어주시는 아버지, 그분의 가슴은 넓고 능력은 대단하여라. 영혼의 양식과는 달리 육의 양식은 자연 자원을 이용해 응답하신다. 곡식도, 채소도, 과일도 하나님의 자연 법칙을 통해 응답으로 다 주신다. 땅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응답된 자원을 이용해 또한 응답을 주신다.
4.악에서 지켜 주시는 아버지 본문 13절에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했다. 이 세상은 하나님과 등을 돌리고 있고, 원수 된 관계에 있다. 죄악이 관영하는 시대요, 그래서 불사르기 위해 간수되어지고 있다(벧후3:7) 이렇듯 죄악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성도가 바르게 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악에서 구해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셨다.
(1).사탄은 우는 사자 같이 베드로전서 5:8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했다. 사탄은 이제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삼킬 자를 찾고 있다. 심지어 하나님의 아들들이 하나님을 뵈옵는 자리에까지 나타났다(욥1:6) 결국 당대의 의인 욥을 상대로 포악성을 들어낸다. 그러나 승리는 욥의 것, 최후의 한 순간은 하나님이 관여하시는 것, 결코 생명은 해치지 못한다는 하나님의 엄명이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했다(고전 10:13) 피할 길도 주시고, 능히 감당하게 하신다. 욥의 인내와 같은 인내를 배워야 한다. 오늘을 사는 우리 인간은 참고 기다릴 줄 모른다. 뭐든 빨리 빨리이다. 식당에서도, 고속도로 위에서도, 심지어 설교 시간도 빨리 빨리이다. 이런 사탄의 강한 도전에 우리 성도들은 맞서 싸울 힘도 능력도 없다. 다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기도할 뿐이다. 능하신 아버지, 그분이 우리를 지켜 주시기에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
(2).울타리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우리 영혼의 울타리인 것처럼, 땅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육신의 울타리이다. 우리에게 거처도 주고, 대적의 칼날에서도 지켜 준다. 미혹자의 유혹에서도 지켜 준다. 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버지를 노래 부르며 자란 사람은 소년 소녀 가장들의 아픔을 잘 알 수 없다. 그들이 비록 친구일지라도 그 아픔을 잘 일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이 당하는 아픔의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다. 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버지를 부를 수 없는 사람들은 참으로 불행이다. 비바람 눈보라는 몰아쳐 오는데 방패막이가 없기 때문이다. 세상이 악하기에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악한 것일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악하기에 세상이 악해져 가는 것일까 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버지가 없기에 울타리도 없고 방패막이도 없다. 소원도, 요구도, 강짜도 부릴 수 없다. 그래서 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버지와 함께 하는 기쁨도, 즐거움도, 행보도 모르고 살아간다. 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버지는 또한 “아바 아버지”라고 했다(롬8:15) 이는 혈통으로 태어난 이스라엘이 아닌 성령님으로 인도함을 받아 아들이 된 자들이 부르는 호칭이요, 노래이다. 오 아버지여 내 손 잡아 주소서 저 검은 파도 너무 높아요 저 검은 밤이 너무 깊어요 이렇게 불러 기도를, 소원을, 요구를, 강짜를 부릴 수 있는 아버지가 있는 이는 행복하여라. 저 검은 파도가, 저 검은 밤이 나를 엄습해 와도 내 손 잡아 줄 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버지가 있으니 겁나지 않네, 두려움 없네. 나에게는 이런 아버지가 계시는데 내 부모, 내 형제, 내 친척에게는 없다면 “오! 아버지여 내 손 잡아 주소서!”를 부르짖을 수 있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소개해 드리자. 이것이 가장 큰 효도요 선물이다. 우리 모든 성도가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참으로 진정한 효도를 하자. 안되면 “오! 아버지여 내 손 잡아 주소서!” 기도하자. 결코 낙심하고 뒤로 물러 서지 말라. 이 길이 진정한 효도의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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