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욘1:1-16)
본문
오늘 본문의 말씀은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다.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가다가 큰 폭풍이 몰아쳐…. 누구의 죄 때문인지 제비를 뽑아 요나가 바다에 던져지고 큰 물고기의 뱃속에서 3일간을 지냈다는 이야기. 우리들이 주일학교 시절부터 잘 알고 있는 말씀이다. “요나”라는 이름은 “비둘기”란 뜻이다. 요나는 가드헤벨 사람으로 아밋대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선지자라고 했다. 요나서 외에서도 여로보암
Ⅱ.세가 북방 수리아를 정복하여 잃어버렸던 이스라엘의 땅을 회복할 것을 예언한 기록이 있다(왕하14:25). 선지자의 사명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을 온전히 선포하는 일이다. 더욱이 선지자의 삶은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져버리고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선지자 요나는 이러한 선지자적 사명을 져버리고 니느웨로 가서 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자신의 생각을 좇아 오히려 다시스로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도망을 쳤다. 그 악독이 하나님 앞에 상달된 큰 성읍 니느웨. 저들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지 아니하면. 40일이 지나 무너질 성읍 니느웨이다. 그 니느웨는 바로 앗수르의 수도이다(왕하19:36). 그 앗수르는. 세계 최초의 대제국이라 불리우며, 세상의 처음 영걸이라 불리운 니므롯에 의해 세워진 나라로(창10:8-12). 디글랏 빌레셀과(왕하15:29) 살만에셀(왕하18:9) 등이 대제국으로 국토를 넓혔다. 이 앗수르 나라가.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괴롭혔고, 끝내는 북쪽 이스라엘 왕국이 이 앗수르에 의해 나라가 멸망을 당하고 만다. 이스라엘을 삼킨 후에 남쪽 유다 왕국도 침략을 하여 히스기야 왕 때에 큰 고통을 주었다. 이 앗수르 나라는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고통을 주는 나라였다.
선지자 요나는 이런 이방 나라가 하루 속히 망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아니하면. 40일 후에는 저 큰 성읍 니느웨, 바로 앗수르가 멸망할 것이기에. 니느웨로 가지 아니하고 오히려 다시스로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도망을 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온 세계 만민의 하나님이시다.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되. 또한 이방 백성도 사랑하신다. 그래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다 같이 골고루 주시며, 햇빛의 비취임도 구별하지 않으신다(마5:4
5).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누구의 죄 때문인지를 가리기 위한 제비뽑기에 뽑힌 요나에게. 그 배에 함께 한 사람들의 질문이다. 무리들이 요나에게 이 무서운 재앙을 불러일으킨 그 죄를 “고하라”고. 하고 있다.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배에 함께 탄 무리들도. 이 재앙이 심상치 않은 재앙임을 느끼고 있다. 네 생업이 무엇이며 어디서 왔으며 고국이 어디며 어느 민족에 속하였느냐 무리들이 다그치고 있다(본문8절). 본문 9-10절/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 자기가 여호와의 낯을 피함인줄을 그들에게 고 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행하 였느냐 하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무리들의 다그침에 요나는 대답합니다. 나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히브리 사람인데. 여호와의 낯을 피해 도망하고 있기에.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재앙을 내리신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는 것이. 바다를 지으신 하나님이 이 재앙을 내리시는 이유라는 것입니다.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오늘 우리에게 임하는 여러 가지 재앙들도 다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재앙의 고통은 어떤 것이 있는지를 생각해 보며. 그 재앙의 이유는 무엇인지.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도망한 일은 없는지. 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요나의 모습을 살펴보며 각자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1.재앙이란 무엇인가 본문 8절/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청컨대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고하 라 네 생업이 무엇이며 어디서 왔으며 고국이 어디며 어느 민족에 속하였느냐/ 이 ‘재앙’이란 말은. 산산조각으로 깨뜨림으로 쓸모 없게 되어 버린 상태에서 온 말로. 해침, 재난, 역경, 비참을 뜻한다. 곧 천재지변으로 인해 심한 피해를 입는 것으로,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것이다. 우리가 쉽게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애굽에 내렸던 10재앙이다. 비, 눈, 우박, 폭풍, 큰 파도, 가뭄, 기근, 지진 등. 자연계의 현상을 이용해서 하나님이 징벌을 하시는 수단이다. 성경상에 기록된 이런 재앙들이 있는가 하면, 앞으로 일어날 재앙들이기도 하다. 계시록의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의 재앙은 마지막 날에 일어날 재앙들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이런 천재지변으로 인한 재앙도 문제이지만. 우리 성도들에게는 신앙생활을 힘들게 하는 재앙들이 있다고 봅니다. 시련이나, 고난이나, 환란이라기 보다 더한 재앙. 내 스스로의 힘으로는 감당할 생각조차 못 할. 그런 재앙들이 때로는 올 수도 있습니다. 불치의 병이 그러합니다. 불의의 사고가 그러합니다.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이런 재앙은 피하려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 재앙 속에 자신을 던질 수 있어야 합니다.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본문12절). 요나의 이런 삶이 바로 자기 앞에 닥쳐온 재앙을 해결하는 길입니다. 피하려 하지 마세요. 이기려 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고. 오히려 그 재앙 속에 자신을 던질 수 있어야 합니다.
2.재앙이 찾아온 이유는 무엇인가 본문 4절/ 여호와께서 대풍을 바다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 폭풍이 대작하여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된지라/ “여호와께서 대풍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요나 일행이 바다에서 재앙을 만난 이유를 오늘 본문 말씀은 한마디로 하나님이 대풍을 바다 위에 내리셨기 때문이라고 했다. 욥바 항구를 출발하여 다시스로 가던 배는. 폭풍이 대작하여 큰 파도 물결이 휘몰아치는 바다를 항해한 것이 아니다. 항해 도중에 폭풍우 휘몰아치는 큰 재앙을 만난 것이다. 본문 2-3절/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 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선가를 주고 배에 올랐더라/ 그 배에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는 도망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도망자 요나 선지자는. 니느웨 성으로 가서 주신 말씀을 외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다.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도망했다. 니느웨로 가는 게 아니라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도망을 친 것이다. “여호와께서 대풍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그래서, 하나님은. 대풍을 바다 위로 동원하시고, 큰 물고기를 바다 속에 동원하셔서. 도망자 요나를 현장에서 체포하신 것이다. 이 하나님의 현장 체포 과정이. 요나에게도, 배를 함께 탄 무리들에게도. 재앙으로 나타나진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것이 재앙이 아닌데. 요나를 사랑하심이요, 요나를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시려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하신 뜻은. 사람에 의해서 달라지는 게 없다.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도망을 쳤지만. 요나의 뜻대로 40일 후에 니느웨가, 앗수르가 멸망을 당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현장에서 체포되어 결국은 니느웨에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외쳤다(욘3: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하나님은 결코 당신의 뜻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도망자를 현장에서 체포해서라도. 당신의 계획하신 뜻을 이루고야 마십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도망칠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하늘에 올라 별 사이에 깃들일지라도(옵1:4), 음부에 자리를 펼지라도,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거할지라도(시139:8-10). 거기서도 찾아내십니다.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사람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을 곳도 없고, 숨는다고 하여 하나님의 뜻을 막을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에게 재앙만 가져올 뿐입니다.
3.재앙의 해결책이 무엇인가 본문 12절/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 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잔잔하리라”. 이 재앙은 요나의 연고로 왔다.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는 도망자를 현장에서 체포하시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요나가 자신을 그 재앙 속으로 던져야 하는 것이다.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같은 배에 함께 동승했던 무리들은 차마 그렇게 하지 못했다. 산 사람을 바다에 던지는 일은 살인 행위이요, 함께 한 이웃에게 차마 하지 못할 매정한 일이기 때문이다. 본문 5절/ 사공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그래서, 저들은 자신들의 소유인 물건을 바다에 던졌다. 자신들의 신의 이름을 부르며 구원의 손길을 베풀어 달라고 부르짖었다. 그러나, 바다는 점점 더 흉용하여 졌다. 본문 13절/ 그러나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에 돌리고자 하다가 바다가 그들 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하므로 능히 못한지라/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그 사람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다. 그러나, 바다는 그들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하므로 저들은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요나를 살리려다 결국 그들 모두가 죽어야 할 형편이 된 것이다. 본문 15절/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의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그렇다. 이 재앙의 해결책은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는 도망자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는 것이다. 무리가 여호와께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부르짖지만. 실상은 요나를 현장에서 체포하도록 내어 주는 것이다.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흉용한 바다의 뛰노는 것이 곧 그쳤다고 했다.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는 것이 해결책이었고,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는 요나 때문에 이 재앙이 그들에게 임하였음을 확증하는 순간이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이 재앙의 해결책은 도망자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인정 때문에, 인간의 도리 때문에. 자신들의 물건을 들어 바다에 던진다고 재앙이 물러가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이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는 도망자를 현장에서 체포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힘써 노를 저어서 이 재앙을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의 신의 이름을 부르짖는다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막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이 재앙에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이 재앙이 그칠 수 없는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우리 각자가 나름대로의 재앙을 만났을 때. 그 재앙이 무슨 연고로 나에게 임하였는지를. 깨달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재앙 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뜻을 먼저 알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재앙이 그치게 됩니다. 그렇게 흉용하게 뛰놀던 바다가 “잔잔하게” 됩니다.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인간의 방법과 노력으로 해결될 재앙이 아닙니다. 자신들의 물건을 버려도, 자신들의 신의 이름을 부르짖어도, 힘써 노를 저어도. 이 재앙을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인정에 끌려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지 못하면. 이 재앙을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도리를 내세우며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지 못하면. 결국 모두가 함께 죽고 말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그렇습니다. 이 재앙의 해결책은 인정을 뛰어넘고, 인간의 도리를 뛰어넘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 앞에 닥치는 이런 재앙도. 피하려 하지 마세요. 막으려 하지 마세요. 힘써 해쳐 나가려 하지도 마세요. 그 재앙 속에 나를 던져야 합니다. 거기에 살길이 있고, 해결책이 있습니다. 하필이면 왜 나입니까. 우리는 숱한 간증을 통하여. 하나님을 원망하며 자신들에게 임한 재앙을 피하려 하고, 막으려 하고, 해쳐 나가려 하다. 결국은 지치고 쓰러져 그 재앙 속에 자신을 던져 버린 숱한 사람들. 그 재앙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주님을 만나고. 그 재앙의 뜻을 깨달아 알고 오히려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는 수많은 성도들의 간증을. 아니 우리들 각자의 체험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 재앙 속에 자신을 던지는 것이 해결책입니다. 그 바다 속에 하나님이 준비해 두신 큰 물고기가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낯을 피한 그 어느 곳에서도. 평안과 안식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투항할 때. 거기에 안식이 있습니다. 감사가 있습니다. 찬양이 있습니다.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이 재앙 속에 담겨져 있는 하나님의 뜻을 읽을 수 있다면. 이 재앙은 재앙이 아니라 오히려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나에게 닥친 재앙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피하려 하지 마세요. 막으려 하지 마세요. 힘써 해쳐 나가려 하지도 마세요. 그 재앙 속에 나를 던져야 합니다. 거기에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이 있고, 평안과 안식이 있습니다. 내게 닥친 재앙을 통하여. 주님을 만나는 축복의 기회를 맞이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Ⅱ.세가 북방 수리아를 정복하여 잃어버렸던 이스라엘의 땅을 회복할 것을 예언한 기록이 있다(왕하14:25). 선지자의 사명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을 온전히 선포하는 일이다. 더욱이 선지자의 삶은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져버리고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선지자 요나는 이러한 선지자적 사명을 져버리고 니느웨로 가서 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자신의 생각을 좇아 오히려 다시스로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도망을 쳤다. 그 악독이 하나님 앞에 상달된 큰 성읍 니느웨. 저들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지 아니하면. 40일이 지나 무너질 성읍 니느웨이다. 그 니느웨는 바로 앗수르의 수도이다(왕하19:36). 그 앗수르는. 세계 최초의 대제국이라 불리우며, 세상의 처음 영걸이라 불리운 니므롯에 의해 세워진 나라로(창10:8-12). 디글랏 빌레셀과(왕하15:29) 살만에셀(왕하18:9) 등이 대제국으로 국토를 넓혔다. 이 앗수르 나라가.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괴롭혔고, 끝내는 북쪽 이스라엘 왕국이 이 앗수르에 의해 나라가 멸망을 당하고 만다. 이스라엘을 삼킨 후에 남쪽 유다 왕국도 침략을 하여 히스기야 왕 때에 큰 고통을 주었다. 이 앗수르 나라는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고통을 주는 나라였다.
선지자 요나는 이런 이방 나라가 하루 속히 망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아니하면. 40일 후에는 저 큰 성읍 니느웨, 바로 앗수르가 멸망할 것이기에. 니느웨로 가지 아니하고 오히려 다시스로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도망을 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온 세계 만민의 하나님이시다.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되. 또한 이방 백성도 사랑하신다. 그래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다 같이 골고루 주시며, 햇빛의 비취임도 구별하지 않으신다(마5:4
5).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누구의 죄 때문인지를 가리기 위한 제비뽑기에 뽑힌 요나에게. 그 배에 함께 한 사람들의 질문이다. 무리들이 요나에게 이 무서운 재앙을 불러일으킨 그 죄를 “고하라”고. 하고 있다.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배에 함께 탄 무리들도. 이 재앙이 심상치 않은 재앙임을 느끼고 있다. 네 생업이 무엇이며 어디서 왔으며 고국이 어디며 어느 민족에 속하였느냐 무리들이 다그치고 있다(본문8절). 본문 9-10절/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 자기가 여호와의 낯을 피함인줄을 그들에게 고 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행하 였느냐 하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무리들의 다그침에 요나는 대답합니다. 나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히브리 사람인데. 여호와의 낯을 피해 도망하고 있기에.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재앙을 내리신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는 것이. 바다를 지으신 하나님이 이 재앙을 내리시는 이유라는 것입니다.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오늘 우리에게 임하는 여러 가지 재앙들도 다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재앙의 고통은 어떤 것이 있는지를 생각해 보며. 그 재앙의 이유는 무엇인지.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도망한 일은 없는지. 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요나의 모습을 살펴보며 각자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1.재앙이란 무엇인가 본문 8절/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청컨대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고하 라 네 생업이 무엇이며 어디서 왔으며 고국이 어디며 어느 민족에 속하였느냐/ 이 ‘재앙’이란 말은. 산산조각으로 깨뜨림으로 쓸모 없게 되어 버린 상태에서 온 말로. 해침, 재난, 역경, 비참을 뜻한다. 곧 천재지변으로 인해 심한 피해를 입는 것으로,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것이다. 우리가 쉽게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애굽에 내렸던 10재앙이다. 비, 눈, 우박, 폭풍, 큰 파도, 가뭄, 기근, 지진 등. 자연계의 현상을 이용해서 하나님이 징벌을 하시는 수단이다. 성경상에 기록된 이런 재앙들이 있는가 하면, 앞으로 일어날 재앙들이기도 하다. 계시록의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의 재앙은 마지막 날에 일어날 재앙들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이런 천재지변으로 인한 재앙도 문제이지만. 우리 성도들에게는 신앙생활을 힘들게 하는 재앙들이 있다고 봅니다. 시련이나, 고난이나, 환란이라기 보다 더한 재앙. 내 스스로의 힘으로는 감당할 생각조차 못 할. 그런 재앙들이 때로는 올 수도 있습니다. 불치의 병이 그러합니다. 불의의 사고가 그러합니다.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이런 재앙은 피하려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 재앙 속에 자신을 던질 수 있어야 합니다.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본문12절). 요나의 이런 삶이 바로 자기 앞에 닥쳐온 재앙을 해결하는 길입니다. 피하려 하지 마세요. 이기려 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고. 오히려 그 재앙 속에 자신을 던질 수 있어야 합니다.
2.재앙이 찾아온 이유는 무엇인가 본문 4절/ 여호와께서 대풍을 바다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 폭풍이 대작하여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된지라/ “여호와께서 대풍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요나 일행이 바다에서 재앙을 만난 이유를 오늘 본문 말씀은 한마디로 하나님이 대풍을 바다 위에 내리셨기 때문이라고 했다. 욥바 항구를 출발하여 다시스로 가던 배는. 폭풍이 대작하여 큰 파도 물결이 휘몰아치는 바다를 항해한 것이 아니다. 항해 도중에 폭풍우 휘몰아치는 큰 재앙을 만난 것이다. 본문 2-3절/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 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선가를 주고 배에 올랐더라/ 그 배에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는 도망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도망자 요나 선지자는. 니느웨 성으로 가서 주신 말씀을 외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다.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도망했다. 니느웨로 가는 게 아니라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도망을 친 것이다. “여호와께서 대풍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그래서, 하나님은. 대풍을 바다 위로 동원하시고, 큰 물고기를 바다 속에 동원하셔서. 도망자 요나를 현장에서 체포하신 것이다. 이 하나님의 현장 체포 과정이. 요나에게도, 배를 함께 탄 무리들에게도. 재앙으로 나타나진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것이 재앙이 아닌데. 요나를 사랑하심이요, 요나를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시려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하신 뜻은. 사람에 의해서 달라지는 게 없다.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도망을 쳤지만. 요나의 뜻대로 40일 후에 니느웨가, 앗수르가 멸망을 당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현장에서 체포되어 결국은 니느웨에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외쳤다(욘3: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하나님은 결코 당신의 뜻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도망자를 현장에서 체포해서라도. 당신의 계획하신 뜻을 이루고야 마십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도망칠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하늘에 올라 별 사이에 깃들일지라도(옵1:4), 음부에 자리를 펼지라도,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거할지라도(시139:8-10). 거기서도 찾아내십니다.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사람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을 곳도 없고, 숨는다고 하여 하나님의 뜻을 막을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에게 재앙만 가져올 뿐입니다.
3.재앙의 해결책이 무엇인가 본문 12절/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 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잔잔하리라”. 이 재앙은 요나의 연고로 왔다.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는 도망자를 현장에서 체포하시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요나가 자신을 그 재앙 속으로 던져야 하는 것이다.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같은 배에 함께 동승했던 무리들은 차마 그렇게 하지 못했다. 산 사람을 바다에 던지는 일은 살인 행위이요, 함께 한 이웃에게 차마 하지 못할 매정한 일이기 때문이다. 본문 5절/ 사공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그래서, 저들은 자신들의 소유인 물건을 바다에 던졌다. 자신들의 신의 이름을 부르며 구원의 손길을 베풀어 달라고 부르짖었다. 그러나, 바다는 점점 더 흉용하여 졌다. 본문 13절/ 그러나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에 돌리고자 하다가 바다가 그들 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하므로 능히 못한지라/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그 사람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다. 그러나, 바다는 그들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하므로 저들은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요나를 살리려다 결국 그들 모두가 죽어야 할 형편이 된 것이다. 본문 15절/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의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그렇다. 이 재앙의 해결책은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는 도망자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는 것이다. 무리가 여호와께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부르짖지만. 실상은 요나를 현장에서 체포하도록 내어 주는 것이다.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흉용한 바다의 뛰노는 것이 곧 그쳤다고 했다.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는 것이 해결책이었고,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는 요나 때문에 이 재앙이 그들에게 임하였음을 확증하는 순간이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이 재앙의 해결책은 도망자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인정 때문에, 인간의 도리 때문에. 자신들의 물건을 들어 바다에 던진다고 재앙이 물러가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이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는 도망자를 현장에서 체포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힘써 노를 저어서 이 재앙을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의 신의 이름을 부르짖는다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막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이 재앙에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이 재앙이 그칠 수 없는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우리 각자가 나름대로의 재앙을 만났을 때. 그 재앙이 무슨 연고로 나에게 임하였는지를. 깨달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재앙 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뜻을 먼저 알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재앙이 그치게 됩니다. 그렇게 흉용하게 뛰놀던 바다가 “잔잔하게” 됩니다.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인간의 방법과 노력으로 해결될 재앙이 아닙니다. 자신들의 물건을 버려도, 자신들의 신의 이름을 부르짖어도, 힘써 노를 저어도. 이 재앙을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인정에 끌려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지 못하면. 이 재앙을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도리를 내세우며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지 못하면. 결국 모두가 함께 죽고 말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그렇습니다. 이 재앙의 해결책은 인정을 뛰어넘고, 인간의 도리를 뛰어넘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 앞에 닥치는 이런 재앙도. 피하려 하지 마세요. 막으려 하지 마세요. 힘써 해쳐 나가려 하지도 마세요. 그 재앙 속에 나를 던져야 합니다. 거기에 살길이 있고, 해결책이 있습니다. 하필이면 왜 나입니까. 우리는 숱한 간증을 통하여. 하나님을 원망하며 자신들에게 임한 재앙을 피하려 하고, 막으려 하고, 해쳐 나가려 하다. 결국은 지치고 쓰러져 그 재앙 속에 자신을 던져 버린 숱한 사람들. 그 재앙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주님을 만나고. 그 재앙의 뜻을 깨달아 알고 오히려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는 수많은 성도들의 간증을. 아니 우리들 각자의 체험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 재앙 속에 자신을 던지는 것이 해결책입니다. 그 바다 속에 하나님이 준비해 두신 큰 물고기가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낯을 피한 그 어느 곳에서도. 평안과 안식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투항할 때. 거기에 안식이 있습니다. 감사가 있습니다. 찬양이 있습니다.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이 재앙 속에 담겨져 있는 하나님의 뜻을 읽을 수 있다면. 이 재앙은 재앙이 아니라 오히려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나에게 닥친 재앙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피하려 하지 마세요. 막으려 하지 마세요. 힘써 해쳐 나가려 하지도 마세요. 그 재앙 속에 나를 던져야 합니다. 거기에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이 있고, 평안과 안식이 있습니다. 내게 닥친 재앙을 통하여. 주님을 만나는 축복의 기회를 맞이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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