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막4:35-41)
본문
오늘 본문의 말씀은 갈릴리 바다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 위에 떠 있는 배에 앉으시고, 큰 무리들은 바다 곁 육지에서 예수님의 가르치시는 교훈을 받았다. 날이 저물었을 때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다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하셨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모시고 노를 저어 갈릴리 바다를 향해 나아갔다. 바로 바다 건너편 거라사 지방으로 향하신 것이다(막5:1). 처음 출발할 때의 잔잔했던 바다와는 달리…. 큰 광풍이 일어났다. 노도광풍이란 말과 같이. 거센 바람이 몰아치고, 물결이 덮쳐 왔다. 그래서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었다고 했다.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그때에 제자들은 두려움과 공포에 떨게 되었고,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우며 제자들이 부르짖는 소리이다.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날이 저물 때에 출발을 하였으니. 이 때는 밤이었다고 보여진다. 제자들에게 어두움의 밤이 찾아온 것이요, 고통의 밤이 찾아온 것이요, 두려움의 밤이 찾아온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이런 칠흑 같은 어두운 밤은 우리에게도 찾아옵니다. 참으로 살길이 막막해 보이는. 영 죽게 된 지경도 우리에게는 찾아옵니다. 한숨과 탄식과 고통 속에서 헤매이는 실망과 좌절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제자들의 모습을 살펴보며. 우리에게 닥쳐오는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고져 합니다.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주무시는 주님을 찾아 깨우면서 제자들이 이렇게 소리쳐 부르짖어야 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1.광풍이 몰아쳐 오기에. 본문 37절/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갈릴 바다 배 위에서 육지의 무리들에게 가르치시기를 마치신 주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라고 제자들에게 명하셨고(본문35절), 제자들은 예수님을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노를 저어 건너편 거라사 지방으로 향했다(막5:1절). 출발할 당시의 고요하고 잔잔했던 바다에 “광풍”이 몰아쳐 왔다. 갈릴리 바다는 갈릴리 동편에 있는 호수로 구약에서는 긴네렛(수13:27), 신약에서는 게네사렛(눅5:1), 디베랴 바다로(요6:1) 불려지는 곳으로 지중해 보다 200m 정도 낮은 호수이다. 갈릴리 바다는 해수면보다 200m 정도 낮은 곳이요, 주위에는 산들이 에워싸고 있어서 기후의 변화가 심한 곳이라 한다. 그래서, 본문에 나타난 “광풍”과 같은 바람이 갑자기 몰아치기도 하고, 진정되기도 한다. 큰 광풍이 일어나며. 이는 고요하고 잔잔했던 바다에 갑자기 거센 바람이 몰아쳐 왔다는 말이다. 주님을 모시고 출발할 때에는 예상할 수 없었던 바람이다. 갑자기 몰아닥친 바람이다. 큰 광풍. 갑자기 불어닥친 그 바람은 쉽게 말해서 미친 바람이라는 말이다. 그만큼 거세고, 감당할 수도 없고, 그 바람의 진로 등을 예상할 수도 없는 바람이라는 말씀이다. 갑자기 몰아치는 거센 풍랑. 그 광풍은 미친 듯이 날뛰었고, 밀려오는 높은 파도에 바닷물이 배에 들어와 가득하게 되었다. 제들이 배에 차 오르는 바닷물을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본문38절/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 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우며 부르짖는 소리이다. 우리의 죽게 된 것을 안 돌아보시나이까. 저들의 외침이요, 호소이다. 갑자기 몰아치는 거센 풍랑. 예고 없이 찾아온 광풍이요, 갑자기 몰아쳐 온 광풍이요, 어떻게 될지 예상할 수 없는 광풍이요, 자신들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광풍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광풍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휘몰아쳐 옵니다. 지금 우리 나라가 국가적으로 당하고 있는 경제위기 시대의 경제적 어려움도 우리에게 휘몰아쳐 온 광풍입니다.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그래서, 이 경제위기의 광풍을 헤쳐 나가지 못하고 스스로 죽음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게 됩니다. 사업장이 망하고, 가정이 부셔지고,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있는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살길을 찾아서. 부모가 어린 자식을 버려야 하고, 자식이 나이 많은 부모를 버려야 하는 안타까운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러한 경제적 어려운 사태가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밀어닥친 광풍입니다. 갑자기 휘몰아쳐 온 광풍. 천재지변이나 각종 사고로 인명의 피해를 입고, 재물의 피해를 입고. 울부짖어야 하는 고통이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몰려온 광풍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의 하는 일에 형통이 없고 시련이 많습니까 질병으로 건강을 잃고 절망 속에 빠져 있나요 뜻하지 않은 사고로 낭패를 당하고 있나요 나의 잘못도 아닌데. 억울한 남의 책임을 떠 안고 있나요 이런 모든 것이 우리에게 밀려온 광풍입니다. 이 광풍으로 바닷물은 점점 더 배에 가득 차 오르고. 나의 힘과 노력으로는 어찌 해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은 배가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말 것입니다.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저 제자들처럼 주님께 호소해야 합니다. 부르짖어야 합니다. 주무시는 주님을 깨우는 기도를 하는 것뿐입니다. 본문 39절/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 지더라/ 잠잠하라. 고요하라. 그렇습니다. 주님의 그 한마디면. 이 “광풍”은 잠잠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의 해결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아닌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길 때. 바로 해결이 있습니다.
2.우리가 노저어 가려니. 본문 36절/ 저희가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갈릴리 바다 배 위에 앉으셔서 바닷가에 있는 무리들을 가르치시기를 마치신 주님이 제자들에게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명하셨다. 그래서 제자들은 바닷가의 무리들을 떠나 예수님이 계신 배에 올라왔고, 그대로 모시고 바다 건너편으로 노를 저어갔다. 예수님이 주무시고 계시는 그 배를 바다 건너편 거라사 지방으로 노저어 가는 것은 제자들의 몫이었다. 그래서 아마도 저들은 힘을 합하여 힘껏 노저어 갔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날이 저물어 출발했을 때. 고요하고 잔잔하였던 바다와는 달리. 갑자기 큰 광풍이 몰려온 것이다. 날은 이미 밤이 되었고, 칠흑 같은 어두움이 내려 깔린 바다 가운데에서 밀어닥치는 노도광풍에 어찌할 바를 몰라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이다. 본문 37절/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제자들이 아무리 힘을 모아 노를 젓고, 배 속에 차 오르는 바닷물을 퍼내어도. 거센 물결로 배를 덮쳐 오는 바닷물이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고 했다. 다시 말해서 제자들의 힘으로는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한 번 파도의 덮침으로 배에 가득하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제자들은 배에 차 오른 바닷물을 퍼내기에 필사적인 노력을 했을 것이다. 그 필사적인 사투의 결과로도 감당할 수 없었고, 차오르기 시작한 바닷물은 배에 가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자들의 노젓기 운동, 바닷물 퍼내기 운동. 그 제자들의 운동은 광풍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力不足)이었습니다. 함께 힘을 모으고 노력하면 노력하는 만큼. 오히려 실망과 절망이 다가올 뿐이었습니다.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결국은 저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깨닫게 되었고, 자신들의 힘과 노력과 방법으로는 살길이 없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그래서, 주무시는 주님을 깨우는 것입니다. 그 분께 살길이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살려 달라 매달리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6:48절/ 바람이 거스리므로 제자들의 괴로이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 즈음에 바다 위로 걸어서 저희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마가복음 6:51절/ 배에 올라 저희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위의 말씀은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신 후. 예수님이 무리들을 돌려보내는 동안 제자들에게 먼저 배를 타고 바다 건너편 벳세다로 가게 하시고, 주님은 기도하시러 가신 그날 밤 사경 즈음에 되어진 일입니다. 주님 없는 배에서. 제자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바다 건너편 벳세다를 향하여 노를 저어 갔습니다. 이 밤에도 처음 출발 때와는 달리 밤이 깊어 사경 즈음에 바람이 거세게 불어와서 사투를 벌리고 있었습니다. 그 고통과 두려움의 현장에 주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괴로이 노를 저으며 사투를 벌리고 있던 제자들을 찾아 주시고, 주님이 그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그쳤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우리의 당하는 고난의 현장에 주님이 찾아오신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안 계시는 고난의 현장이 되고 나면. 정말 죽게 되고 맙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어찌할 수가 없으니. 스스로 한다는 게 죽음의 길을 스스로 가고 마는 것입니다.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사람들은 이런 광풍을 대비하여. 저축도 하고, 보험도 들고, 헬스클럽을 찾아 운동도 하고, 생수를 떠다 마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힘과 노력과 방법으로 하는 이런 대비책은. 나에게 닥쳐올 광풍을 이겨내기에는 역부족(力不足)이 됩니다. 지난번 홍수나 태풍의 피해자들을 보면. 사람도, 집도, 농장도, 농토도.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의 하는 일이 실패가 되고, 나의 건강이 갑자기 잃어지고, 나의 잘못도 아닌데. 그 책임을 내가 지게 되고. 내가 넘지 못할 산이 있나요 주님께 맡기세요. 내가 당하는 고난의 현장을 외면하시는 주님이 아니십니다. 찾아보세요. 반드시 주님은 우리의 고난의 현장을 찾아 주십니다. 함께 해 주십니다.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주무시는 주님을 깨워야 합니다(본문38절). 지나가시려는 주님을(막6:48절) 고난의 현장으로 모셔들여야 합니다. 우리의 죽게 된 것을 안 돌아보시나이까. 매달려 호소해야 합니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주님의 그 한마디면. 광풍은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 집니다(본문39절). 우리가 당하는 고난의 현장을 해결할 해결책은. 바로 주님의 그 한마디입니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3.믿음이 없어서. 본문 40절/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제자들을 향하신 책망입니다. 광풍을 향하여 잠잠하라, 고요하라. 명하여 잔잔케 하신 주님의 책망입니다.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주님의 이 책망 속에는. 믿음이 있는 자는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염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마6:25). 근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요14:1). 이런 것들은 이방인들이 하는 것이다(마6:32).라고 했다.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같은 내용을 말씀하는 마태복음 8:26절에서는 “믿음이 적은 자들아”.하셨고, 누가복음 8:25절에서는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고 하셨다. 아무리 좋게 보아도. 믿음이 적다는 말이요, 믿음이 없다는 책망이시다. 비록 주무시고 계시지만 자신들과 함께 하고 계신 주님이 능력의 주님이심을 제자들은 잊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제자들이 당하고 있는 고난의 현장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깊은 시름에 잠기게 됩니다.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주무시는 주님을 깨우며 부르짖고 있는 자들이 바로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하신 말씀에 순종하여 갈릴리 바다를 노저어 건너가고 있던 제자들입니다.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제자들이 지금 당하고 있는 고난의 현장은. 주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 생긴 일입니다. 주님이 시키신 일을 할 때에 일어난 일입니다. 저들이 배를 타지 않았고, 노를 저어 바다 건너편으로 향하지 않았다면. 겪지 않아도 될 고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의 현장이 나의 잘못으로 인하여 오는 것이 아닐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연단을 위하여 주님이 갈릴리 바다 한 가운데로 몰아가실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벧전4:12),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약1:12).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여호와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벧전1:7).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오늘 우리가 고난의 현장에서 괴로이 노를 젖고 있다 해도 낙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내가 젖던 노를 놓고서. 주님께 맡깁시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갈릴리 바다의 노한 광풍을 잠재우시던 그 주님은. 오늘 내가 당하는 고난의 현장에도 찾아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그 주님을 찾읍시다. 그 주님을 깨웁시다. 그 주님께 믿고 맡깁시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우리의 고난의 현장이 해결되는. 주님의 그 한마디를 들을 수 있는 믿음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이런 칠흑 같은 어두운 밤은 우리에게도 찾아옵니다. 참으로 살길이 막막해 보이는. 영 죽게 된 지경도 우리에게는 찾아옵니다. 한숨과 탄식과 고통 속에서 헤매이는 실망과 좌절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제자들의 모습을 살펴보며. 우리에게 닥쳐오는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고져 합니다.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주무시는 주님을 찾아 깨우면서 제자들이 이렇게 소리쳐 부르짖어야 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1.광풍이 몰아쳐 오기에. 본문 37절/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갈릴 바다 배 위에서 육지의 무리들에게 가르치시기를 마치신 주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라고 제자들에게 명하셨고(본문35절), 제자들은 예수님을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노를 저어 건너편 거라사 지방으로 향했다(막5:1절). 출발할 당시의 고요하고 잔잔했던 바다에 “광풍”이 몰아쳐 왔다. 갈릴리 바다는 갈릴리 동편에 있는 호수로 구약에서는 긴네렛(수13:27), 신약에서는 게네사렛(눅5:1), 디베랴 바다로(요6:1) 불려지는 곳으로 지중해 보다 200m 정도 낮은 호수이다. 갈릴리 바다는 해수면보다 200m 정도 낮은 곳이요, 주위에는 산들이 에워싸고 있어서 기후의 변화가 심한 곳이라 한다. 그래서, 본문에 나타난 “광풍”과 같은 바람이 갑자기 몰아치기도 하고, 진정되기도 한다. 큰 광풍이 일어나며. 이는 고요하고 잔잔했던 바다에 갑자기 거센 바람이 몰아쳐 왔다는 말이다. 주님을 모시고 출발할 때에는 예상할 수 없었던 바람이다. 갑자기 몰아닥친 바람이다. 큰 광풍. 갑자기 불어닥친 그 바람은 쉽게 말해서 미친 바람이라는 말이다. 그만큼 거세고, 감당할 수도 없고, 그 바람의 진로 등을 예상할 수도 없는 바람이라는 말씀이다. 갑자기 몰아치는 거센 풍랑. 그 광풍은 미친 듯이 날뛰었고, 밀려오는 높은 파도에 바닷물이 배에 들어와 가득하게 되었다. 제들이 배에 차 오르는 바닷물을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본문38절/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 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우며 부르짖는 소리이다. 우리의 죽게 된 것을 안 돌아보시나이까. 저들의 외침이요, 호소이다. 갑자기 몰아치는 거센 풍랑. 예고 없이 찾아온 광풍이요, 갑자기 몰아쳐 온 광풍이요, 어떻게 될지 예상할 수 없는 광풍이요, 자신들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광풍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광풍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휘몰아쳐 옵니다. 지금 우리 나라가 국가적으로 당하고 있는 경제위기 시대의 경제적 어려움도 우리에게 휘몰아쳐 온 광풍입니다.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그래서, 이 경제위기의 광풍을 헤쳐 나가지 못하고 스스로 죽음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게 됩니다. 사업장이 망하고, 가정이 부셔지고,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있는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살길을 찾아서. 부모가 어린 자식을 버려야 하고, 자식이 나이 많은 부모를 버려야 하는 안타까운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러한 경제적 어려운 사태가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밀어닥친 광풍입니다. 갑자기 휘몰아쳐 온 광풍. 천재지변이나 각종 사고로 인명의 피해를 입고, 재물의 피해를 입고. 울부짖어야 하는 고통이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몰려온 광풍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의 하는 일에 형통이 없고 시련이 많습니까 질병으로 건강을 잃고 절망 속에 빠져 있나요 뜻하지 않은 사고로 낭패를 당하고 있나요 나의 잘못도 아닌데. 억울한 남의 책임을 떠 안고 있나요 이런 모든 것이 우리에게 밀려온 광풍입니다. 이 광풍으로 바닷물은 점점 더 배에 가득 차 오르고. 나의 힘과 노력으로는 어찌 해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은 배가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말 것입니다.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저 제자들처럼 주님께 호소해야 합니다. 부르짖어야 합니다. 주무시는 주님을 깨우는 기도를 하는 것뿐입니다. 본문 39절/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 지더라/ 잠잠하라. 고요하라. 그렇습니다. 주님의 그 한마디면. 이 “광풍”은 잠잠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의 해결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아닌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길 때. 바로 해결이 있습니다.
2.우리가 노저어 가려니. 본문 36절/ 저희가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갈릴리 바다 배 위에 앉으셔서 바닷가에 있는 무리들을 가르치시기를 마치신 주님이 제자들에게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명하셨다. 그래서 제자들은 바닷가의 무리들을 떠나 예수님이 계신 배에 올라왔고, 그대로 모시고 바다 건너편으로 노를 저어갔다. 예수님이 주무시고 계시는 그 배를 바다 건너편 거라사 지방으로 노저어 가는 것은 제자들의 몫이었다. 그래서 아마도 저들은 힘을 합하여 힘껏 노저어 갔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날이 저물어 출발했을 때. 고요하고 잔잔하였던 바다와는 달리. 갑자기 큰 광풍이 몰려온 것이다. 날은 이미 밤이 되었고, 칠흑 같은 어두움이 내려 깔린 바다 가운데에서 밀어닥치는 노도광풍에 어찌할 바를 몰라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이다. 본문 37절/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제자들이 아무리 힘을 모아 노를 젓고, 배 속에 차 오르는 바닷물을 퍼내어도. 거센 물결로 배를 덮쳐 오는 바닷물이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고 했다. 다시 말해서 제자들의 힘으로는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한 번 파도의 덮침으로 배에 가득하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제자들은 배에 차 오른 바닷물을 퍼내기에 필사적인 노력을 했을 것이다. 그 필사적인 사투의 결과로도 감당할 수 없었고, 차오르기 시작한 바닷물은 배에 가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자들의 노젓기 운동, 바닷물 퍼내기 운동. 그 제자들의 운동은 광풍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力不足)이었습니다. 함께 힘을 모으고 노력하면 노력하는 만큼. 오히려 실망과 절망이 다가올 뿐이었습니다.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결국은 저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깨닫게 되었고, 자신들의 힘과 노력과 방법으로는 살길이 없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그래서, 주무시는 주님을 깨우는 것입니다. 그 분께 살길이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살려 달라 매달리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6:48절/ 바람이 거스리므로 제자들의 괴로이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 즈음에 바다 위로 걸어서 저희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마가복음 6:51절/ 배에 올라 저희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위의 말씀은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신 후. 예수님이 무리들을 돌려보내는 동안 제자들에게 먼저 배를 타고 바다 건너편 벳세다로 가게 하시고, 주님은 기도하시러 가신 그날 밤 사경 즈음에 되어진 일입니다. 주님 없는 배에서. 제자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바다 건너편 벳세다를 향하여 노를 저어 갔습니다. 이 밤에도 처음 출발 때와는 달리 밤이 깊어 사경 즈음에 바람이 거세게 불어와서 사투를 벌리고 있었습니다. 그 고통과 두려움의 현장에 주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괴로이 노를 저으며 사투를 벌리고 있던 제자들을 찾아 주시고, 주님이 그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그쳤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우리의 당하는 고난의 현장에 주님이 찾아오신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안 계시는 고난의 현장이 되고 나면. 정말 죽게 되고 맙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어찌할 수가 없으니. 스스로 한다는 게 죽음의 길을 스스로 가고 마는 것입니다.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사람들은 이런 광풍을 대비하여. 저축도 하고, 보험도 들고, 헬스클럽을 찾아 운동도 하고, 생수를 떠다 마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힘과 노력과 방법으로 하는 이런 대비책은. 나에게 닥쳐올 광풍을 이겨내기에는 역부족(力不足)이 됩니다. 지난번 홍수나 태풍의 피해자들을 보면. 사람도, 집도, 농장도, 농토도.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의 하는 일이 실패가 되고, 나의 건강이 갑자기 잃어지고, 나의 잘못도 아닌데. 그 책임을 내가 지게 되고. 내가 넘지 못할 산이 있나요 주님께 맡기세요. 내가 당하는 고난의 현장을 외면하시는 주님이 아니십니다. 찾아보세요. 반드시 주님은 우리의 고난의 현장을 찾아 주십니다. 함께 해 주십니다.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주무시는 주님을 깨워야 합니다(본문38절). 지나가시려는 주님을(막6:48절) 고난의 현장으로 모셔들여야 합니다. 우리의 죽게 된 것을 안 돌아보시나이까. 매달려 호소해야 합니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주님의 그 한마디면. 광풍은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 집니다(본문39절). 우리가 당하는 고난의 현장을 해결할 해결책은. 바로 주님의 그 한마디입니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3.믿음이 없어서. 본문 40절/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제자들을 향하신 책망입니다. 광풍을 향하여 잠잠하라, 고요하라. 명하여 잔잔케 하신 주님의 책망입니다.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주님의 이 책망 속에는. 믿음이 있는 자는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염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마6:25). 근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요14:1). 이런 것들은 이방인들이 하는 것이다(마6:32).라고 했다.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같은 내용을 말씀하는 마태복음 8:26절에서는 “믿음이 적은 자들아”.하셨고, 누가복음 8:25절에서는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고 하셨다. 아무리 좋게 보아도. 믿음이 적다는 말이요, 믿음이 없다는 책망이시다. 비록 주무시고 계시지만 자신들과 함께 하고 계신 주님이 능력의 주님이심을 제자들은 잊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제자들이 당하고 있는 고난의 현장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깊은 시름에 잠기게 됩니다.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주무시는 주님을 깨우며 부르짖고 있는 자들이 바로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하신 말씀에 순종하여 갈릴리 바다를 노저어 건너가고 있던 제자들입니다.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제자들이 지금 당하고 있는 고난의 현장은. 주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 생긴 일입니다. 주님이 시키신 일을 할 때에 일어난 일입니다. 저들이 배를 타지 않았고, 노를 저어 바다 건너편으로 향하지 않았다면. 겪지 않아도 될 고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의 현장이 나의 잘못으로 인하여 오는 것이 아닐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연단을 위하여 주님이 갈릴리 바다 한 가운데로 몰아가실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벧전4:12),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약1:12).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여호와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벧전1:7).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오늘 우리가 고난의 현장에서 괴로이 노를 젖고 있다 해도 낙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내가 젖던 노를 놓고서. 주님께 맡깁시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갈릴리 바다의 노한 광풍을 잠재우시던 그 주님은. 오늘 내가 당하는 고난의 현장에도 찾아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그 주님을 찾읍시다. 그 주님을 깨웁시다. 그 주님께 믿고 맡깁시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우리의 고난의 현장이 해결되는. 주님의 그 한마디를 들을 수 있는 믿음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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