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일 (창22:1-19)
본문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사건으로…. 우리 성도들이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이다. 100세에 얻은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여.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제단 위에 올려 놓음으로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은 이야기이다. 하나님의 시험은. 아브라함의 자격을 저울질 해 보는 시험(test)이었다. 아브라함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유혹(temptation)이 아니다. 이렇게 범죄하도록 하려는 유혹은 사탄이 하는 것이요(마4:1), 하나님이 하시는 게 아니다(약1:13).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일 바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하는 일이다. 난이도(難易度)가 높아서 정답을 알아내기가 힘든 시험이 아니다. 정답은 이미 나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일 바로 정답이다. 100세에 얻은 아들, 그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일이다. 곧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일이다. 여기의 “준행한다”는 말은. 솨마 라는 단어로. 듣다, 경청하다, 순종하다, 복종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순종과 복종이 필요한 것이다. 말로서 대답하는 것도 아니요, 글로 답지에 쓰는 것도 아니다.
100세에 얻은 아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죽여서 번제로 드려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일을 실제로 해야 하는 것이다. 차라리 내 몸으로 대신할 수 있다면. 오히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일을. 좀 쉽게 여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부모의 마음이요, 자식 사랑이다. 창세기 21:16절/ 가로되 자식의 죽는 것을 참아 보지 못하겠다 하고 살 한 바탕쯤 가서 마주 앉아 바라보며 방성대곡하니/ 하갈과 이스마엘이 브엘세바 들에서 방황하다. 가죽 부대에 물이 다하여 갈증을 해소하지 못하고, 지쳐 쓰러진 이스마엘을 떨기나무 아래 눕혀 두고. 자식의 죽어가는 모습을 참아 보지 못하겠노라고. 방성대곡하는 하갈의 모습이다. 삼하 18:33절/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루로 올라가서 우니라 저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자신을 향하여 칼을 휘두르는 아들이다. 자신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려는 압살롬이다. 이제는 아들이 아니라 바로 역적이다. 그러나,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이것이 바로 부모된 다윗 왕의 마음이다. 다윗 왕의 자식 사랑이다.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라면,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소리치며 통곡하는 것. 바로 부모의 마음이요, 자식 사랑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일 100세에 얻은 아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려야 하는 일입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얻은 아들이기에. 하갈 보다도, 다윗보다도. 더욱 사랑하는 아들입니다. 그 아들 이삭을. 나무를 준비하여, 3일 길을 걸어가서, 모리아 산에 올라, 제단을 쌓고. 자신의 손으로 그 아들 이삭을 죽여 번제를 드리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일 피할 수 없는 일이요, 참으로 힘든 일이요, 가슴을 도려내는 아픈 일이요, 자신의 몸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일 100세에 얻은 아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아브라함이 순종하고 복종해야 할 일입니다. 피할 수도, 자신의 몸으로 대신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일 아브라함의 마음을 살펴보며. 우리 각자가 자신의 마음을 한 번 살펴봅시다. 나도 저 아브라함처럼, 저럴 수 있을까.
1.하나님을 어느 누구보다 더 사랑할 때 가능하다. 요한복음 21:15절/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부활의 주님이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잡이 하는 베드로를 찾아 주시고, 밤이 새도록 고기 한 마리 못 잡은 베드로에게 한 번 던진 그물에 153마리의 고기를 잡게 해 주셨고, 준비한 조반(朝飯)도 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그 아침 식사를 마친 후에 베드로에게 질문하신 것이다. 주님은 그 베드로를 갈릴리 바다에서 불러내어서. 사람 낚는 어부로 삼으셨고, 당신의 제자들 중에 수제자(首弟子)로 삼으셨다. 무엇보다도 그 베드로의 대속의 제물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다시금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고 있는 베드로를 찾아오신 것이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도 좋지마는. 내가 원하는 것은,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것이다. 바로 주님의 요구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일 하나님을 사랑할 때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을 어느 누구보다도 더 사랑할 때 가능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을 100세에 얻은 아들, 사랑하는 독자 이삭보다 더 사랑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창세기 12:1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이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려면. 본토, 친척, 아비 집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본문 2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하나님이 보신.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이삭은. 네 아들이요, 네 사랑하는 아들이요,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이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다 알고 계신다. 그래서, 그 이삭으로 시험을 하시는 것이다. 100세에 얻은 아들이요, 사랑하는 독자 이삭이다. 이 아들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일을 감당할 수가 없다.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서. 그 아들 이삭을 죽여 번제로 드리는 일은. 정말로 감당하기 힘든 일이다. 마태복음10:37절/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비나 어미,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다”. 바로 주님이 우리 성도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다. 나 자신은 주님을 사랑하노라 고백을 하면서. 어떻게 주님을 사랑하고 있는지, 주님을 향해 등을 보이지는 않는지,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일을 살펴보면서. 우리 각자의 “하나님 사랑”을 점검해 봅시다. 나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에 잠기면. 너무도 작아지는 내 모습이 됩니다. 너무도 부족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오 주여! 내게 능력 더하소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었노라는(빌4:13). 이런 간증 거리를 내게도 주소서. 주님 앞에 무릎꿇고 손 모아 기도해야 할 것뿐인 자신임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2.믿음이 약해지지 아니할 때 가능하다 로마서 4:19절/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이 말은. 믿음이 약하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했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일 어렵고 힘든 일이기에. 믿음이 약하여질 수 있다. 우리 성도들 각자가 삶의 현장에서 실제로 부딪히는 일이다. 심한 마음의 갈등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타락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일 그 힘들고 어려운 길을 “믿음이 연약하여지지 아니하고”. 꿋꿋하게 걸어간 아브라함. 그에게도 믿음이 연약해질 수 있는 힘든 고개가 있었다. 잠시 살펴보면.
1.나무를 쪼개며. 본문 3절/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 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지금 아브라함이 준비하고 있는 이 나무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기쁨으로 준비하는 나무가 아니다. 그 나무로 식사를 준비한다면, 그 나무로 방을 데운다면. 그 일이 힘들겠는가, 믿음이 연약해지겠는가.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그 나무는 번제의 단을 쌓을 나무이요, 이삭을 올려놓아야 할 나무이요, 그 나무에 불을 지펴. 이삭을 불살라 번제로 드려야 할 나무이다. 그 나무를 준비하며. 아브라함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그 나무를 자르며. 아브라함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그 나무를 쪼개며. 아브라함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아브라함의 믿음이 연약해질 수 있는. 넘어야 할 힘든 고개이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2.3일 길을 가며. 본문 4절/ 제 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제 삼일에”.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모리아 산을 향하여. 3일 길을 걸었다. 차리리 곧 바로 올라갈 수 있는 가까운 곳이라면 좋았을 것을. 3일 길을 걸었다. 오랫동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기에. 믿음이 연약해질 수 있는 힘든 고개이었다.
3.이삭의 질문을 들으며 본문 7절/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참으로 가슴을 도려내는 아들의 질문이다. 그 아들이 불은 아버지가, 나무는 내가 지고 간다고 한다(본문6절). 그러나 양은 없다. 그래서,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하고 묻는 것이다. 그 “번제할 어린 양”이 자기 자신인 줄은 전혀 모르는. 사랑하는 아들 이삭의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하는 질문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연약해지는. 넘기 힘든 고개이다.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바로 “여호와 이레”의 신앙이다. 우리 각자는 “여호와 이레”를 알고 있다. 그러나, “여호와 이레”의 신앙으로 살지 못할 때가 많다.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그러나, 아브라함은. 일찍이 믿음의 선진들을 통하여(히11:2) 그 어느 누구에게서도 들어보지 못한 “여호와 이레”이다. “여호와 이레”라고 밖에 대답할 수 없었던 아브라함의 마음. 참으로 넘기 힘든 고개이다.
4.이삭을 결박하며. 본문 9절/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이레”란 대답을 이삭에게 하였지만. 그 아들 이삭을 결박했다. 이삭이 나무를 지고 모리아 산을 오른 것을 보면(본문6절). 이삭은 상당히 자란 청년의 상태이다. 이스마엘이 쫓겨난 17세 정도로 보는 견해가 많다(창21:8).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 갈 때의 나이이기도 하다(창37:2). 17세의 아들 이삭. 그 아들 이삭이 뿌리쳤다면. 노령의 아브라함이 이삭을 결박할 수 있었겠는가. 불가능한 일이다. “여호와 이레”라고 대답했던 그 아들 이삭에게. 자신을 번제로 드려야 한다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설명하고, 설득을 시켰을까. 참으로 넘기 힘든 고개이다. 5.칼을 내리치려 하며. 본문 10절/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일의 가장 넘기 힘든 마지막 고개이다. 칼을 내리치고난 후에는. 100세에 얻은 아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죽음의 길을 가게 된다. 이 얼마나 기막힐 노릇인가. 하나님이 주신 아들이다. 그것도 100세에 주신 아들이다. 하늘의 별 같이, 바다의 모레 같이. 수많은 자손을 주시려던. “열국의 아비”에게 주신 “씨”이다(창21:12). 그 “씨”를 말려 버리는. 참으로 기막힐 노릇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일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믿음이 연약해질 수 있는. 군데군데의 넘어야 할 고개들이 기다리고 있는 길입니다. 나무를 쪼개며, 모리아 산을 향하여 3일 길을 행하며,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에 있느냐는 아들 이삭의 물음에 대답을 하며, 그 아들을 결박하며, 그 아들 이삭을 향해 칼을 내리치며. 아브라함이 “믿음이 연약해질 수 있는”. 넘기 힘든 여러 고개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건너기 힘든 여러 구비 구비의 물결이 몰려 왔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믿음이 연약하여지지 아니하고”.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는 합격의 선언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일을 감당했습니다.
3.확신이 넘칠 때 가능하다. 로마서 4:20-21절/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 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확신에 찬 아브라함의 믿음을 말해주는 말씀이다. 바로 믿음이 연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약속을 의심치 않고. 오히려 믿음에 더욱 견고하여지는 믿음이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믿음이다.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 약속은.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이니라는 하나님의 말씀이다(창21:12).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다”. 하나님이 약속하셨으니. 이삭을 번제로 드린다 할지라도. 나의 하나님은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 11:18-19절/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 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바로 아브라함이 확신하는 하나님은.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한 하나님”이다. 죽은 자 가운데서. “능히 다시 살리실 하나님”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일 하나님을 어느 누구보다도 더 사랑할 때 가능한 일입니다. 믿음이 연약하여지지 아니할 때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확신이 넘칠 때에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더 사랑했기에.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100세에 얻은 아들이요, 사랑하는 독자인 이삭을 번제로 바칠 수 있었습니다. 나무를 쪼개며, 3일 길을 걸으며, 번제할 양은 어디 있느냐는 아들의 물음에 답하며, 그 아들을 결박하며, 그 아들을 향해 칼로 내리치며. 믿음이 연약하여지지 아니하고, 확신에 넘쳐. 그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일을 감당했습니다.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습니다. 그 아브라함의 확신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 확신입니다. 마침내.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는 합격 선언을 받았습니다.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 확신”. 오늘의 우리 성도들은 “부활의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다릅니다. 믿음의 선진들을 통하여. “부활의 증거”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에녹이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한 증거”를 가졌습니다. 믿음의 선진들도. 모두다 몇 세를 향수(享壽)하고 죽었더라는 기록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죽은 자를 다시 살리셨다는. “부활의 증거”는 아브라함에게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믿음은. “여호와 이레”의 믿음이요, 믿음이 연약해져서 의심치 않고 오히려 더 견고하여진 믿음이요, 죽은 자를 살려서라도 약속하신 그것을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복종하는 모습을 살펴보며. 우리 각자의 신앙생활을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손에 있는 부귀보다 주를 더 사랑하는가 이슬 같은 생명보다, 부모나 자식보다, 아내나 남편보다. 주를 더 사랑하는가 넘어야 할 힘든 고개마다 믿음이 연약하여지지 않고, 오히려 확신에 찬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일 하나님을 더 사랑하지 않고는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 주를 더 사랑하지 아니하고는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 믿음이 연약하여지지 아니하고,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확신에 차 있지 않고는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아브라함 같은 하나님 사랑으로. 아브라함 같은 확신을 가지고 믿음으로. 주님 오시는 그날. 합격 선언을 받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순종과 복종이 필요한 것이다. 말로서 대답하는 것도 아니요, 글로 답지에 쓰는 것도 아니다.
100세에 얻은 아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죽여서 번제로 드려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일을 실제로 해야 하는 것이다. 차라리 내 몸으로 대신할 수 있다면. 오히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일을. 좀 쉽게 여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부모의 마음이요, 자식 사랑이다. 창세기 21:16절/ 가로되 자식의 죽는 것을 참아 보지 못하겠다 하고 살 한 바탕쯤 가서 마주 앉아 바라보며 방성대곡하니/ 하갈과 이스마엘이 브엘세바 들에서 방황하다. 가죽 부대에 물이 다하여 갈증을 해소하지 못하고, 지쳐 쓰러진 이스마엘을 떨기나무 아래 눕혀 두고. 자식의 죽어가는 모습을 참아 보지 못하겠노라고. 방성대곡하는 하갈의 모습이다. 삼하 18:33절/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루로 올라가서 우니라 저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자신을 향하여 칼을 휘두르는 아들이다. 자신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려는 압살롬이다. 이제는 아들이 아니라 바로 역적이다. 그러나,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이것이 바로 부모된 다윗 왕의 마음이다. 다윗 왕의 자식 사랑이다.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라면,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소리치며 통곡하는 것. 바로 부모의 마음이요, 자식 사랑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일 100세에 얻은 아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려야 하는 일입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얻은 아들이기에. 하갈 보다도, 다윗보다도. 더욱 사랑하는 아들입니다. 그 아들 이삭을. 나무를 준비하여, 3일 길을 걸어가서, 모리아 산에 올라, 제단을 쌓고. 자신의 손으로 그 아들 이삭을 죽여 번제를 드리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일 피할 수 없는 일이요, 참으로 힘든 일이요, 가슴을 도려내는 아픈 일이요, 자신의 몸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일 100세에 얻은 아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아브라함이 순종하고 복종해야 할 일입니다. 피할 수도, 자신의 몸으로 대신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일 아브라함의 마음을 살펴보며. 우리 각자가 자신의 마음을 한 번 살펴봅시다. 나도 저 아브라함처럼, 저럴 수 있을까.
1.하나님을 어느 누구보다 더 사랑할 때 가능하다. 요한복음 21:15절/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부활의 주님이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잡이 하는 베드로를 찾아 주시고, 밤이 새도록 고기 한 마리 못 잡은 베드로에게 한 번 던진 그물에 153마리의 고기를 잡게 해 주셨고, 준비한 조반(朝飯)도 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그 아침 식사를 마친 후에 베드로에게 질문하신 것이다. 주님은 그 베드로를 갈릴리 바다에서 불러내어서. 사람 낚는 어부로 삼으셨고, 당신의 제자들 중에 수제자(首弟子)로 삼으셨다. 무엇보다도 그 베드로의 대속의 제물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다시금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고 있는 베드로를 찾아오신 것이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도 좋지마는. 내가 원하는 것은,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것이다. 바로 주님의 요구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일 하나님을 사랑할 때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을 어느 누구보다도 더 사랑할 때 가능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을 100세에 얻은 아들, 사랑하는 독자 이삭보다 더 사랑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창세기 12:1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이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려면. 본토, 친척, 아비 집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본문 2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하나님이 보신.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이삭은. 네 아들이요, 네 사랑하는 아들이요,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이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다 알고 계신다. 그래서, 그 이삭으로 시험을 하시는 것이다. 100세에 얻은 아들이요, 사랑하는 독자 이삭이다. 이 아들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일을 감당할 수가 없다.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서. 그 아들 이삭을 죽여 번제로 드리는 일은. 정말로 감당하기 힘든 일이다. 마태복음10:37절/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비나 어미,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다”. 바로 주님이 우리 성도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다. 나 자신은 주님을 사랑하노라 고백을 하면서. 어떻게 주님을 사랑하고 있는지, 주님을 향해 등을 보이지는 않는지,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일을 살펴보면서. 우리 각자의 “하나님 사랑”을 점검해 봅시다. 나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에 잠기면. 너무도 작아지는 내 모습이 됩니다. 너무도 부족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오 주여! 내게 능력 더하소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었노라는(빌4:13). 이런 간증 거리를 내게도 주소서. 주님 앞에 무릎꿇고 손 모아 기도해야 할 것뿐인 자신임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2.믿음이 약해지지 아니할 때 가능하다 로마서 4:19절/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이 말은. 믿음이 약하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했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일 어렵고 힘든 일이기에. 믿음이 약하여질 수 있다. 우리 성도들 각자가 삶의 현장에서 실제로 부딪히는 일이다. 심한 마음의 갈등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타락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일 그 힘들고 어려운 길을 “믿음이 연약하여지지 아니하고”. 꿋꿋하게 걸어간 아브라함. 그에게도 믿음이 연약해질 수 있는 힘든 고개가 있었다. 잠시 살펴보면.
1.나무를 쪼개며. 본문 3절/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 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지금 아브라함이 준비하고 있는 이 나무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기쁨으로 준비하는 나무가 아니다. 그 나무로 식사를 준비한다면, 그 나무로 방을 데운다면. 그 일이 힘들겠는가, 믿음이 연약해지겠는가.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그 나무는 번제의 단을 쌓을 나무이요, 이삭을 올려놓아야 할 나무이요, 그 나무에 불을 지펴. 이삭을 불살라 번제로 드려야 할 나무이다. 그 나무를 준비하며. 아브라함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그 나무를 자르며. 아브라함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그 나무를 쪼개며. 아브라함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아브라함의 믿음이 연약해질 수 있는. 넘어야 할 힘든 고개이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2.3일 길을 가며. 본문 4절/ 제 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제 삼일에”.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모리아 산을 향하여. 3일 길을 걸었다. 차리리 곧 바로 올라갈 수 있는 가까운 곳이라면 좋았을 것을. 3일 길을 걸었다. 오랫동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기에. 믿음이 연약해질 수 있는 힘든 고개이었다.
3.이삭의 질문을 들으며 본문 7절/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참으로 가슴을 도려내는 아들의 질문이다. 그 아들이 불은 아버지가, 나무는 내가 지고 간다고 한다(본문6절). 그러나 양은 없다. 그래서,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하고 묻는 것이다. 그 “번제할 어린 양”이 자기 자신인 줄은 전혀 모르는. 사랑하는 아들 이삭의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하는 질문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연약해지는. 넘기 힘든 고개이다.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바로 “여호와 이레”의 신앙이다. 우리 각자는 “여호와 이레”를 알고 있다. 그러나, “여호와 이레”의 신앙으로 살지 못할 때가 많다.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그러나, 아브라함은. 일찍이 믿음의 선진들을 통하여(히11:2) 그 어느 누구에게서도 들어보지 못한 “여호와 이레”이다. “여호와 이레”라고 밖에 대답할 수 없었던 아브라함의 마음. 참으로 넘기 힘든 고개이다.
4.이삭을 결박하며. 본문 9절/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이레”란 대답을 이삭에게 하였지만. 그 아들 이삭을 결박했다. 이삭이 나무를 지고 모리아 산을 오른 것을 보면(본문6절). 이삭은 상당히 자란 청년의 상태이다. 이스마엘이 쫓겨난 17세 정도로 보는 견해가 많다(창21:8).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 갈 때의 나이이기도 하다(창37:2). 17세의 아들 이삭. 그 아들 이삭이 뿌리쳤다면. 노령의 아브라함이 이삭을 결박할 수 있었겠는가. 불가능한 일이다. “여호와 이레”라고 대답했던 그 아들 이삭에게. 자신을 번제로 드려야 한다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설명하고, 설득을 시켰을까. 참으로 넘기 힘든 고개이다. 5.칼을 내리치려 하며. 본문 10절/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일의 가장 넘기 힘든 마지막 고개이다. 칼을 내리치고난 후에는. 100세에 얻은 아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죽음의 길을 가게 된다. 이 얼마나 기막힐 노릇인가. 하나님이 주신 아들이다. 그것도 100세에 주신 아들이다. 하늘의 별 같이, 바다의 모레 같이. 수많은 자손을 주시려던. “열국의 아비”에게 주신 “씨”이다(창21:12). 그 “씨”를 말려 버리는. 참으로 기막힐 노릇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일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믿음이 연약해질 수 있는. 군데군데의 넘어야 할 고개들이 기다리고 있는 길입니다. 나무를 쪼개며, 모리아 산을 향하여 3일 길을 행하며,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에 있느냐는 아들 이삭의 물음에 대답을 하며, 그 아들을 결박하며, 그 아들 이삭을 향해 칼을 내리치며. 아브라함이 “믿음이 연약해질 수 있는”. 넘기 힘든 여러 고개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건너기 힘든 여러 구비 구비의 물결이 몰려 왔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믿음이 연약하여지지 아니하고”.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는 합격의 선언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일을 감당했습니다.
3.확신이 넘칠 때 가능하다. 로마서 4:20-21절/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 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확신에 찬 아브라함의 믿음을 말해주는 말씀이다. 바로 믿음이 연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약속을 의심치 않고. 오히려 믿음에 더욱 견고하여지는 믿음이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믿음이다.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 약속은.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이니라는 하나님의 말씀이다(창21:12).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다”. 하나님이 약속하셨으니. 이삭을 번제로 드린다 할지라도. 나의 하나님은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 11:18-19절/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 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바로 아브라함이 확신하는 하나님은.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한 하나님”이다. 죽은 자 가운데서. “능히 다시 살리실 하나님”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일 하나님을 어느 누구보다도 더 사랑할 때 가능한 일입니다. 믿음이 연약하여지지 아니할 때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확신이 넘칠 때에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더 사랑했기에.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100세에 얻은 아들이요, 사랑하는 독자인 이삭을 번제로 바칠 수 있었습니다. 나무를 쪼개며, 3일 길을 걸으며, 번제할 양은 어디 있느냐는 아들의 물음에 답하며, 그 아들을 결박하며, 그 아들을 향해 칼로 내리치며. 믿음이 연약하여지지 아니하고, 확신에 넘쳐. 그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일을 감당했습니다.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습니다. 그 아브라함의 확신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 확신입니다. 마침내.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는 합격 선언을 받았습니다.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 확신”. 오늘의 우리 성도들은 “부활의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다릅니다. 믿음의 선진들을 통하여. “부활의 증거”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에녹이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한 증거”를 가졌습니다. 믿음의 선진들도. 모두다 몇 세를 향수(享壽)하고 죽었더라는 기록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죽은 자를 다시 살리셨다는. “부활의 증거”는 아브라함에게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믿음은. “여호와 이레”의 믿음이요, 믿음이 연약해져서 의심치 않고 오히려 더 견고하여진 믿음이요, 죽은 자를 살려서라도 약속하신 그것을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복종하는 모습을 살펴보며. 우리 각자의 신앙생활을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손에 있는 부귀보다 주를 더 사랑하는가 이슬 같은 생명보다, 부모나 자식보다, 아내나 남편보다. 주를 더 사랑하는가 넘어야 할 힘든 고개마다 믿음이 연약하여지지 않고, 오히려 확신에 찬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일 하나님을 더 사랑하지 않고는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 주를 더 사랑하지 아니하고는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 믿음이 연약하여지지 아니하고,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확신에 차 있지 않고는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아브라함 같은 하나님 사랑으로. 아브라함 같은 확신을 가지고 믿음으로. 주님 오시는 그날. 합격 선언을 받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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