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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이 걸어간 사명자의 길 (행20:17-38)

본문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 바울이 오순절 전에 예루살 렘에 도착하기 위해 길을 재촉하며 아시아에 들르지 않고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초청하여 나누는 말씀이다. 바울 자신이 저들 앞에서 복음을 위해 어떻게 살아온 것과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를 치도록 감독자의 사명을 주셨으니 사명을 다하라는 권고의 말씀이다. 주께 받은 사명을 위해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이 있을지…. 내 얼굴을 다시보지 못할 줄 아노라며 눈물로 기도하며 해어지는 장면이다. 이처럼 사명자의 길에는 눈물이 있고, 이별이 있고, 결단이 필요하고, 중단할 수 없는 달려가야 할 길이 있다. 오늘 우리는 사도 바울의 위대한 결단이 돋보이는 사명자로서의 바울의 고백에 귀를 기울이며 그의 걸어간 사명자의 길을 살펴보고자 한다.
1.심령에 매임을 받아 간 길이다. 본문 22절에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고 했다. 사명자는 그 가는 길을 자기의 생각대로 뜻대로 갈 수 없다. 사명을 주신 분의 뜻과 말씀에 따라 그 길을 가야 한다. 사명자는 그가 사명자로 부르심을 입는 순간부터, 사명자로 헌신하는 순간부터 자기 자신은 없어지는 것이다. 말 그대로 헌신하여 바쳐버린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도, 자신의 권리도, 자신의 명예도, 자신의 삶도 없는 것이다. 사명자는 자신이 받은 사명이 그의 뜻이요, 그의 삶이요, 그의 행복이요, 그의 모든 것이다. 그래서 사명에 따라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의 사도 바울도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간다 고 했다. 사도 바울의 심령이 성령님의 낚시 바늘에 꿰여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끌려 간다는 말이다. 사도 바울이 복음전파 사역지를 선택함에 있어서도 자신의 생각과 소망대로가 아니었다.
행16:6-10절에 보면 성령님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심으로 바울이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나 성령님이 허락지 않으셨다고 했다. 성령님이 환상을 통해 바울을 마게도냐로 인도해 가신다. 바울의 생각과 소원 대로라면 비두니아로 갔을 것이나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사도 바울은 주신 사명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살아가는 사명자의 길을 가야 하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의 이러한 사명자의 길이 지금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있다. 심령에 매임을 받아 가는 그 길에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고 했다. 본문 23절에 “오직 성령님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고 했다. 다만 각 성에서 성령님이 다른 사람의 입을 의탁하여 “결박과 환난”이 바울을 기다린다는 소식이다. 그 “결박과 환난”이 무엇을 말하든지 비록 죽음을 의미해도 가야 한다는 결의에찬 발걸음을 계속하고 있다. 행21:7-14절에 보면 바울이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에 가이사랴에 들려 빌립 집사댁에 머물게 된다. 아가보라 하는 선지자가 찾아와 바울의 띠를 가져 자기의 수족을 묶으며 예루살렘에서 이 띠 임자가 이렇게 묶여지고 이방인의 손에 넘겨진다고 성령님이 일러 주셨다고 했다. 바울과 함께 하던 일행과 그곳에 모인 믿음의 형제들이 눈물로 간곡히 만류했다. 예루살렘으로 향한 이 길을 중단하도록 말이다. 그러나 심령에 매임 받은 바울의 마음은 흔들림이 없었다.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고 했다(행21:13)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 사명자의 가는 길은 중단할 수 없는 길이며, 기회를 다시보자 뒤로 미룰 수도 없는 길이다. 그때부터 이미 심령의 매임을 받은 사명자의 길을 버린 것이다. 그때부터 바로 자신의 생각대로, 자신의 소원대로,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살아가는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참으로 크다란 반석과 같이도 흔들림이 없이 걸어가는 사도 바울의 사명자의 길을 지켜보며 우리 자신의 삶의 길을 점검해 보아야 하겠다. 내게 주어진 사명을 위해 내 생각을 버리고 사명자의 길을 걷고 있는가
2.달려갈 길을 마치기까지 간 길이다. 본문 24절에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했다.
1.최선을 다한다. 사도 바울은 심령에 매임을 받아 사명자의 길을 걸으며 달려간다 고 했다. 걸어간다고 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한다는 뜻이다. 이는 받은 사명이 쉬엄쉬엄 쉬었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달려야 한다. 받은 사명 곧 복음이 너무도 크고 놀라운 소식이다. 또한 사명을 가지고 가야 할 길이 너무도 멀다. 행1:8절에 “오직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했다. 땅끝까지 가야 하는데 걸어서야 어디 되겠는가 날아가도 시원찮은데 날 수는 없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곧 달려간다는 것이다.
2.중도에 안주하지 않음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려 한다 고 했다. 끝까지 간다는 말이다. 중도에 그만두거나 주저앉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명자가 그 달려가는 길을 마침은 가야 할 곳까지 다 갔거나 죽음을 의미한다. 땅끝까지 이르러 주의 증인으로 살 수 없는 인간의 현실적인 제약성을 놓고 본다면 죽음으로서 달려갈 길을 마친다고 할 수 있다. 딤후4:6-8절에서“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고 했다. 사도 바울에게도 중도에 안주할 수 있는 기회나 좋은 여건도 많았다. 오늘 본문의 에베소는 아시아의 관문이요 수도로서 살기 좋은 곳이요 에베소 교회는 바울의 3차 전도여행 때 개척한 교회로 바울이 3년간 활동하며 골로새, 라오디게아 교회 등을 개척하고 성장시켰다.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그 길을 뒤로하고 눈물로 만류하는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의 권고를 받아들여 좋은 여건 하에서 자신의 안일을 도모하며 복음전파 사업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사명자의 길을 걷는 바울은 중도에 안주하지 않고 달려갈 길을 마치려 중단하지 않았다.
3.받은 사명을 다하기 위해 간 길이다. 본문 24절에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했다. 사명자는 그의 받은 사명을 다해야 그에게 주어진 일이 끝난다. 그의 사명자로서의 삶이 끝나고 그 자신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하기 위해 끝까지 달려갔다. 그 길에 결박과 환난이 기다려도, 시련과 고통이 기다려도, 아니 죽음이 기다린대도 끝까지 달린다고 했다. 사명완수를 위해서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고 했다. 이처럼 사명자는 자신이 받은 사명의 중대성과 그 가치를 알아야 한다. 사도 바울이 주께 받은 사명은 하나 밖에 없는 자신의 생명과도 바꿀 수 없는 참으로 소중한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주께 받은 사명이다. 사명자로 부르심을 입고 사명을 위해 헌신한 그 순간 나는 내가 아니다. 사명자로 새로 태어난 것이다. 사명자에게는 자신의 삶이 없고 오직 사명만이 있을 뿐이다. 사명 그 자체가 바로 그의 삶이다. 그래서 사명을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만큼 받은 사명 또한 값지고 소중해야 한다. 내 목숨을 걸 만한 값어치가 있어야 한다. 주 예수께 받은 사명! 이미 나의 죄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 위에서 바치신 분이시다. 내 생명은 죄로 인해 멸망 받을 자연인의 생명으로 하나님의 심판 곧 죽음의 선고를 받은 생명이지만 주님의 생명은 하나님의 독생자의 생명이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생명을 바친대도 그 주님께 갚음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이 내리신 진노의 심판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생명을 다 내어놓아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이를 주님의 생명으로 대신했다. 주님의 생명의 값어치를 상상해 보세요. 그 주님이 주시는 사명이라면 내 생명을 걸어도 아까울 게 없다.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은 사도 바울에게만 주신 사명이 아니다. 예수의 생명으로 대속함을 받고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 얻은 우리 모두에게 주신 사명이다.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을 위해 달려가는 최선을 다하자. 심령이 매인바 된 사명의식에 사로잡힌 삶의 길을 달려가자. 달려갈 길을 마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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