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살후2:13-17)
본문
바울은 본문 13절에서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마땅히”라는 것은 문법상 “반드시”라는 뜻을 갖습니다.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것이 아니라 반드시, 절대로, 기필코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감사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인들은 감사를“야다”라고 했습니다. “야다”라는 말의 뜻은 “경배하다”, “예배하다”, “찬양하다”라는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을 경배하며 찬양해야 합니다. 이유는 피조물의 의무이며 본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는 경배이며 예배이며 찬양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본문 속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감사의 이유와 조건이 열거되고 있습니다만 모두가 신령한 이유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육체적 조건이나 물질적 조건 때문에 감사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시 116:17)라고 했으며,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시 50:14)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본문에서 마땅히 감사하는 것은 영적인 것이며 차원 높은 것입니다.
1. 우리들을 선택하여 주신 일입니다. 본문 13절을 보면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라고 했습니다. 처음부터 택하셨다는 것은 태초부터 그리고 영원전 부터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엡 1:4)라고 했고, 또한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시 139:13)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갈 1:15)라고 했습니다. 성경 전편에 면면히 흐르는 사상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셨고 우리 각 사람을 개별적으로 선택하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선택은 중요하고 신중한 사건이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아무나 아무렇게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민족 지도자나, 왕, 제사장, 선지자를 선택하셨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감사의 조건은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더욱 감사한 것은 선택될 만한 아무런 이유나 조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선택되었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이것을 “무조건적인 선택”이라고 했습니다. 만일 신체조건, 환경조건, 건강조건, 경제조건 등을 낱낱이 따져서 선택의 우선순위를 정했다면 저같은 사람은 그 축에 끼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조건없이 선택하신 그 은혜로 나 같은 죄인이 선택되고 주의 종되고 죽지 않고 살아서 오늘도 말씀을 선포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감사가 절로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른 이유 다 제쳐놓더라도 나 같은 사람도 선택받아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리에 섰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일평생 감사해야 합니다.
2. 성령님으로 거룩하게 하신 일입니다. 본문 13절을 보면 “성령님의 거룩하게 하심과”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3장 이전의 인간은 거룩하고 깨끗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타락사건 이후의 인간은 날이 가고, 해가 더해 갈수록 더욱더 간악하고, 무자비하고, 누추해졌습니다. 범죄의 성향만 하더라도 그렇고 도덕적 타락상도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고 그런 사람들을 선택해서 불러내 본댔자 마치 시궁창에서 건져낸 것과 같아서 더럽고 냄새나고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택하신 하나님은 그냥 내평개쳐두지 않습니다. 거룩하게 만드십니다. 이유는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려면 거룩해야 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추한 인간은 그대로 만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입는 옷도 때와 장소를 따라 다릅니다. 작업시에는 작업복을 입고 파티에는 야회복을 입고 결혼식 때는 면사포를 씁니다. 대통령의 초청으로 청와대를 방문하는 사람이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반팔 티셔츠를 입고 갈 수 있겠습니까 물론 정장이라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서려면 거룩해져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나는 내 힘으로 나를 거룩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더러운 죄는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내 추한 행실과 더러운 삶은 성령님의 능력으로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날마다 나를 거룩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때묻을 수 있습니다. 양심과 신앙이 구겨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능력으로 다시 거룩하고 깨끗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거룩하게 하심과 깨끗케 하시는 능력을 외면하거나 거절하면 그 사람은 버림을 받게 됩니다.
3. 믿음으로 구원 얻게 하신 일입니다. 본문 13절 끝을 보면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본문에 구원의 조건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진리를 믿음으로”인 것입니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 14: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만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주님을 경배하고 찬양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서 속죄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우리를 구원하신 사랑의 상징인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피묻은 복음을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복음의 골자는 간단합니다. 그리고 명료합니다. 믿으면 살고 안 믿으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 한 가지만으로 죄사함 받고 구원받은 그 은총을 무엇으로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어린 아이가 열 살이 되면 대략 6천개의 낱말을 알게 된다고 합니다. 그중 부모를 가장 기쁘게 할 수 있는 말은 “감사합니다”라는 말입니다. 성인이 되면 평균 2만 5천 단어를 알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단어도 역시 “감사합니다”인 것입니다. 주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인간의 용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 감사합니다”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감사하는 마음과 생활은 성령님이 주시는 은총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이나 거룩하게 하심이나 구원하신 그 은총을 감사합시다. 마음과 정성을 바쳐 감사를 드립시다. 감사는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의무입니다. 이 생명 끝나는 날까지 감사합시다.
1. 우리들을 선택하여 주신 일입니다. 본문 13절을 보면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라고 했습니다. 처음부터 택하셨다는 것은 태초부터 그리고 영원전 부터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엡 1:4)라고 했고, 또한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시 139:13)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갈 1:15)라고 했습니다. 성경 전편에 면면히 흐르는 사상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셨고 우리 각 사람을 개별적으로 선택하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선택은 중요하고 신중한 사건이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아무나 아무렇게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민족 지도자나, 왕, 제사장, 선지자를 선택하셨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감사의 조건은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더욱 감사한 것은 선택될 만한 아무런 이유나 조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선택되었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이것을 “무조건적인 선택”이라고 했습니다. 만일 신체조건, 환경조건, 건강조건, 경제조건 등을 낱낱이 따져서 선택의 우선순위를 정했다면 저같은 사람은 그 축에 끼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조건없이 선택하신 그 은혜로 나 같은 죄인이 선택되고 주의 종되고 죽지 않고 살아서 오늘도 말씀을 선포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감사가 절로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른 이유 다 제쳐놓더라도 나 같은 사람도 선택받아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리에 섰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일평생 감사해야 합니다.
2. 성령님으로 거룩하게 하신 일입니다. 본문 13절을 보면 “성령님의 거룩하게 하심과”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3장 이전의 인간은 거룩하고 깨끗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타락사건 이후의 인간은 날이 가고, 해가 더해 갈수록 더욱더 간악하고, 무자비하고, 누추해졌습니다. 범죄의 성향만 하더라도 그렇고 도덕적 타락상도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고 그런 사람들을 선택해서 불러내 본댔자 마치 시궁창에서 건져낸 것과 같아서 더럽고 냄새나고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택하신 하나님은 그냥 내평개쳐두지 않습니다. 거룩하게 만드십니다. 이유는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려면 거룩해야 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추한 인간은 그대로 만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입는 옷도 때와 장소를 따라 다릅니다. 작업시에는 작업복을 입고 파티에는 야회복을 입고 결혼식 때는 면사포를 씁니다. 대통령의 초청으로 청와대를 방문하는 사람이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반팔 티셔츠를 입고 갈 수 있겠습니까 물론 정장이라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서려면 거룩해져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나는 내 힘으로 나를 거룩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더러운 죄는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내 추한 행실과 더러운 삶은 성령님의 능력으로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날마다 나를 거룩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때묻을 수 있습니다. 양심과 신앙이 구겨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능력으로 다시 거룩하고 깨끗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거룩하게 하심과 깨끗케 하시는 능력을 외면하거나 거절하면 그 사람은 버림을 받게 됩니다.
3. 믿음으로 구원 얻게 하신 일입니다. 본문 13절 끝을 보면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본문에 구원의 조건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진리를 믿음으로”인 것입니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 14: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만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주님을 경배하고 찬양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서 속죄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우리를 구원하신 사랑의 상징인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피묻은 복음을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복음의 골자는 간단합니다. 그리고 명료합니다. 믿으면 살고 안 믿으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 한 가지만으로 죄사함 받고 구원받은 그 은총을 무엇으로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어린 아이가 열 살이 되면 대략 6천개의 낱말을 알게 된다고 합니다. 그중 부모를 가장 기쁘게 할 수 있는 말은 “감사합니다”라는 말입니다. 성인이 되면 평균 2만 5천 단어를 알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단어도 역시 “감사합니다”인 것입니다. 주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인간의 용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 감사합니다”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감사하는 마음과 생활은 성령님이 주시는 은총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이나 거룩하게 하심이나 구원하신 그 은총을 감사합시다. 마음과 정성을 바쳐 감사를 드립시다. 감사는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의무입니다. 이 생명 끝나는 날까지 감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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