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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신하의 믿음 (요4:46-54)

본문

사람은 언제 어디서 어떤 종류의 불행을 만날는지 아무도 알지를 못합니다. 불행과 비극이 우리에게 좋은 경험이 되기도 하겠지만 싫든 좋든 억지로 피할 수는 없습니다. 욥은 “재앙은 티끌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요 고난은 흙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사람은 두 종류입니다. 하나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믿음의 삶을 살아서 하나님을 기쁘게 한 자들입니다. 또 하나는 불신의 사람들입니다. 도무지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학벌 좋은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돈 많은 사람을 찾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원하십니다. 성경에 보니 갈릴리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한 일을 기록하고 오늘 본문에 왕의 신하와 그 온 집이 예수님을 믿게 된 일을 기록했습니다. (요20:31)성경을 기록한 목적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사람들로 믿게 하고 믿어서 생명을 얻게 하려는데 있다”고 했습니다. 확실히 성경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하는 책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들의 역사를 기록했습니다. 또한 저들을 거울삼아 후세 사람들이 예수님을 잘 믿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누구든지 성경을 믿음으로 읽으면 하나님의 귀한 역사를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가버나움에 살던 왕의 신하의 믿음을 기록한 것입니다. 이름도 밝히지 않았지만 이 사람이 예수님의 인격과 능력과 말씀을 믿어 큰 은혜를 받았고 마침내 그 온 집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은 내용입니다. 이 믿음을 통해서 예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린 믿음의 사건입니다.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 오는 동기는 사람의 형편에 따라 여러 가지 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처럼 우연히 물 길러 나왔다가 예수님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전도자의 말을 듣고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올바로만 만나면 다 구원의 복과 은혜를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1. 우리는 예수님께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왕의 신하는 그 아들이 병들어 죽게 되어서 아들의 병을 고쳐 달라고 부탁하러 예수님께 나아 온 것입니다. 아들에 대한 사랑이 그로 하여금 예수님께 나오도록 한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한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가리지 않습니다. 물도 불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부모가 자식에 대하여 가지는 사랑입니다. 가버나움의 왕의 신하도 자식 사랑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예수님을 믿은 것입니다. 사실 우리 주변에 보면 자식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어린이를 불러다 가 잘 가르치면 어른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주일 학생 부모-오늘 교회에서 배운 것 해봐) 교회 학교는 어린이들을 믿음으로 잘 가르치는 중요함과 더불어 그들로 하여금 부모들까지도 전도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참으로 중요합니다. 왕의 신하는 예수님의 소문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가나에서 예수님이 물로 포도주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계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 아들의 병을 고치려면 예수님께로 나아가면 되겠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나아 온 것입니다. 사람은 어떤 문제든지 만날 수 있습니다. 그때마다 문제를 안고 시름하거나 고민하지 말고 예수님께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 가지고 나와야 해결됩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온 갈릴리에 퍼졌습니다. 이 소문을 듣고 예수님앞에 나아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문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귀한 일들을 선전해야 합니다. 이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 올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왕의 신하는 열심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가버나움에서 가나까지의 거리가 34km나 되는 먼 거리인데도 찾아갔기 때문입니다. 오늘처럼 교통이 편리하지 못한 시대에 이만한 거리를 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는 예수님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은 아처럼 예수님을 찾아 만나는데 열심을 내야 합니다. 은혜를 주시는 것은 주님이 하실 일이지만 은혜를 주시는 자리까지 나아가는 일은 내가 할 일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미 거기까지 갈 수 있는 두 다리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2. 왕의 신하는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왕의 신하는 예수님께 나아가서 시급한 자신의 문제를 아뢰었습니다. “주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라고 간구 했습니다. 이 말은 “지금 가버나움으로 좀 가십시다. 내 아들에게 안수좀 해주세요” 하는 간구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보시기에는 그 아들의 육신의 병보다는 왕의 신하의 영혼의 병을 고치는 것이 더 시급했던 것입니다. 사실상 모든 사람은 예수를 만나자마자 그 영혼의 병부터 먼저 고침을 받아야 합니다. 영혼의 병을 고치려면 불신을 제거해야 합니다. 여러분 병든 사람은 어떻습니까 밥맛이 없습니다. 왠지 기운이 없고 즐겁지 않습니다. 짜증이 납니다. 피곤합니다. 이처럼 영적으로 병든 사람은 말씀의 맛을 모릅니다. 다윗이 “주의 말씀의 맛이 어찌 그리 단지요 송이 꿀보다 더하니이다”라고 고백했는데 병든 자는 이런 감격을 모릅니다.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사실 요즈음엔 심각한 병들이 많이 생겨 갑작스런 일로 고민들이 많습니다. 저는 어제 기도를 부탁하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형님은 간암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고, 아들은 30개월 되었는데 세포 암이라는 무서운 병에 걸려 고생하며 어제 수술을 했는데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심각한 병들이 우리를 괴롭힙니다. 예수님의 능력으로 육신의 병들도 이기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런 육신의 병보다도 영혼의 병입니다. 말씀이 막히고 답답하고 신앙생활에 활기도 없다면 얼른 말씀의 칼로 수술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치료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영혼이 삽니다. 영혼이 병들면 찬송이 막힙니다.
성령님 충만한 사람들의 찬송을 보십시오. 찬송 부르는 모습만 보아도 은혜를 받게 됩니다. 또한 기도가 막힙니다. 예수님께서는 왕의 신하에게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표적과 기사가 없이도 믿는 자가 바른 믿음의 소유자라는 것입니다. 비록 아이가 낫지 않는다 할지라도 나를 믿을 수 있겠느냐는 뜻의 말씀입니다. 당시의 사람들의 마음이 굳어져서 표적과 기사가 없이는 믿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왕의 신하의 아들에게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왕의 신하가 이 말씀을 듣고 그대로 믿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즉시 아멘 한 것입니다. 처음 간구할 때는 49절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라고 간구했는데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고 했을 때에 그대로 믿고 갔던 것입니다. 믿음이 있었습니다. 믿음대로 되어졌습니다. 보아야 믿는 시대에 말씀만 듣고서도 믿어 순종했으니 그 믿음은 순수한 믿음이요 귀한 믿음입니다. 주님이 하신 말씀이라면 내 생각하고 달라도 그대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말씀대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고쳐집니다. 달라집니다. 변화를 맛볼 수 있습니다. 별다른 증거가 없어도 말씀으로만 믿는 믿음이 귀한 믿음입니다. 말씀이 곧 사실이라고 믿는 믿음이 귀한 믿음입니다. 자기 아들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산 줄로 알고서 가는 믿음이기에 귀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도마라는 사람은 증거가 없이는 예수님을 도무지 믿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보아야 믿겠다는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은 부활의 몸을 도마에게 보이시면서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고 넣어 보라고 했습니다. 그때 도마는 손을 넣어 확인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이때 주님께서는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도마의 믿음은 표적과 증거를 보고서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 왕의 신하의 믿음은 보지 못하고서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이 믿음이 큰 것입니다.
3. 믿음으로 신하와 온 집이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왕의 신하가 집으로 가는 도중에 집에서 자기를 찾으러 오는 종들과 마주쳤습니다. 종들이 먼저 아이의 상태를 보고합니다. “주인이시여 아이가 살았습니다.” 주인이 “언제부터 낫기 시작하였느냐”하고 물었습니다. “어제 제 7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라고 종들이 대답을 합니다. 그 시간이라면 왕의 신하가 예수님으로부터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로 하신 말씀을 들은 시간입니다. 과연 주님이 말씀하신 때부터 열기가 떨어졌으니 주님께서 나의 소원을 들으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시었구나! 하고 왕의 신하는 감격했습니다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능력의 주님을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온 가족이 감사했습니다. 또한 온 식구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구원의 가정이 되었습니다. 믿음이 사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믿음이 자라는 것도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아멘 해야 합니다. 이런 신앙의 사람들이 복이 있는 것입니다. 사실 왕의 신하도 처음에는 예수님을 희미하게 믿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을 때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듣고서는 그대로 되는 줄 알고 믿고 순종하여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랬더니 과연 예수님의 말씀대로 되었습니다. 아이가 살아난 것입니다. 아이가 살아난 시간을 알아보고서는 더욱 믿음이 분명해졌습니다. 주님의 놀라운 사랑과 능력과 은혜를 깊이 깨닫게 된 것입니다. 마음에 큰 기쁨이 넘쳤습니다. 믿음이 확고해졌습니다. 신앙은 체험을 통해서 확고해집니다. 그는 이제 증거 자가 되었습니다. 자기 집안 사람들에게 말하고 예수님을 전파하는 즐거움을 가진 것입니다. 왕의 신하는 작은 믿음에서 큰 믿음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왕의 신하에게 있었던 작은 믿음에서 큰 믿음이 되는 역사는 오늘도 계속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도 지금의 믿음 상태에 계속 머물러 있지 말고 점점더 발전되어지고 나아지기를 바랍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이 되기 위하여는 어떻게 해야하겠습니까
1 문제가 있을 때마다 예수님을 찾아갑시다. 열심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간절히 사모합시다.
2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아멘 하여 순종합시다.
3 예수님을 말로만 듣지 말고 신앙으로 체험합시다. 그리고 증거 하는 자들이 됩시다. 이런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마음에 새기고 결단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1 사람은 누구나 언제 어느 때에 불행을 만날지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2 예수님은 기쁜 자에게도 슬픈 자에게도 주님이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근심과 기쁨의 대답이 되십니다.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주님이 계셔야 합니다. 왕의 신하는 자기의 슬픈 걱정의 문제를 주님께 아뢰고 해결 받았습니다.
3 더욱 큰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립시다. 큰 믿음은 보지 않고도 믿는 믿음입니다. 주님 말씀이라면 아멘 하고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이 이 귀한 믿음을 가지고 주님 앞에 구하여 승리와 영광스러운 삶을 사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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