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교회 (롬10:8-15)
본문
우리가 기도하며 교회를 시작한지 어언 일 년이 지났다. 꼭 일년 전에 나는 같은 제목으로 말씀을 증거하였다. 그때 아름다운 교회는 외모보다 믿음에 있다고 했다. 겉 모양의 아름다움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밖으로 솟아나오는 참된 아름다움을 말한 것이다. 나무 에 감을 쫒고 꽃을 붙여 잠간 낸 모양이 아니라, 끊임 없이 그리고 영 원히 넘쳐나는 아름다움 그것이 우리에게 추구하던 것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말했다. "영국 사람이나 독일 사람이 없더라도 인류는 계속 생존한다. 러시아 사람이 없어도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않는다. 과학이 없어도 문제가 없고 먹을 것이 없어도 괜찮다. 하지만 아름다움이 없다면 인간은 살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이 세상에서 아무 할 일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모든 비밀이 여기 있다. 모든 역사가 여 기 있다. 아름다움이 없으면 아무 것도 존재할 수 없다." 그처럼 우리도 일생을 통해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살아온 것이다. 참된 아름다움, 그 뿌리는 영원하고 그 힘은 참으로 진실된 것, 그 아름다움은 사실상 인간에게 없다. 그러한 아름다움은 오로지 아름 다움을 만드신 하나님에게만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모르고 아름다 움을 말한다는 것은 정말로 그림자 놀이요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결 국 도스토예프스키가 추구한 아름다움은 하나님에게서만 발견된다.
이 아름다움 속에는 천지의 오묘한 질서가 있다. 그 속에는 하늘 의 수수꺼끼가 있고 땅의 비밀이 있다. 그로부터 백합과 장미의 아름 다움이 나오고 그로부터 석양에 빛나는 붉은 파도가 나온다. 그러나 아직도 하나님 자체에 비하면 이 아름다움은 껍대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름다움은 차라리 설명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택한 자녀를 통해서 하나님처럼 숭엄하게 표현된다. 아름다움은 예쁜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름다움에는 반드시 생명이 있고 힘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랑과 지혜가 물론 포함되어 야 한다. 병든 것이 아름다운가 무지하고 악한 것이 아름다운가 진리와 함께 표현되어야 참된 아름다움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아름다움 은 바로 이런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아름다운 것이다. 이 아름다 움은 모든 인류가 추구하는 참되고 영원한 아름다움이다.
그렇다면 아름다운 교회는 무엇인가 왜 아름다운 교회인가 하나님으로부터 수여되는 아름다움에 교회의 의미가 더해진 것이다. 물론 교회 자체도 아름답다. 아니 아름다워야만 한다. 외형도 내면도 교회는 아름다워야 한다.
교회는 교회다울 때 아름답다는 말이다. 아름다 운 교회란 교회다운 교회를 말한다. 이 세대에 정말로 교회다운 교회는 어떤 것인가 과연 우리가 그러한 교회가 되었는가 교회가 있는 목적은 단 하나. 모든 사람들을 예수처럼 만드는 것이다. 즉 아름다운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예수처럼 죄에 대해 순진 하고 예수처럼 의롭다. 너무도 온유하고 겸손하지만 또한 너무도 지혜 롭고 강하다. 폭풍우가 멈추고 귀신이 떤다. 죽은 이가 일어난다. 그 의 권능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그는 아름답게 사랑하였다. 이 사랑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그 아름다움도 영원한 것이었다. 예수는 그처럼 아름답게 살았다. 본래 세상은 아름다웠다. 거기에 그의 탄생은 더욱 아름다워 천사도 노래했다. 그가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병을 고쳐줄 때 아름다웠다. 그의 고통 속에 죽는 것까지도 아름다웠다. 그의 부활과 승천은 눈이 부셨다.
그렇다. 예수가 바로 아름다움의 근원이요 그의 삶이 바로 아름다운 삶 그 자체였다. 이러 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모임이 바로 아름다운 교회이다. 그러려면 교인 각자가 예수처럼 되어야 한다. 먼저 아름다움 자체 이신 예수를 받아들인다. 그럼으로 자신이 아름다움을 소유했음을 믿는다. 이 믿음으로 그의 눈은 빛나기 시작한다. 그럴수록 그는 예수처 럼 변해가며 예수의 모든 복을 자기 것으로 누리기 시작한다. 예수의 힘으로 살기 때문에 삶의 모든 순간이 아름답게 변해간다. 자신도 삶 이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하며 이 아름다움을 감격 속에 감상한다. 많은 신자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과거의 기억에 집착한다. 그리고 감각만을 믿는다. 과거에 경험했고 지금 보는 내가 참된 나라고 생각 한다. 실패가 많은 나, 억울함 많고 우울한 나를 믿는다. 과거에는 기 뻤지만 지금은 별 볼일없는 나, 그것이 나라고 그래서 습관 속에서 나 를 보고 쉽게 말해 버린다. "나는 부족하다. 나는 약하다. 나는 우울 하다. 나는 별 의욕이 없다. 나는 자신이 없다." 그리고 같은 눈으로 이웃을 본다. 어제부터 늘 보아와서 지금도 동일하게 보는 당신이 참된 당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변화가 왔어도 인정해 주지 않는다.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한다.
참으로 경험 의 눈은 비판적이다. 경험의 눈은 비관하기도 잘하고 낙담하기도 잘한다. 경험의 눈으로 이웃을 보라. 교인들을 보라. 그리고 비판해 보라. 비판의 말을 나누라. 그리고 서로 실망해 보라. 신자들은 반드시 믿음의 눈으로 모든 것을 보아야 한다. 그러면 소망과 사랑이 따라 나온다. 믿음의 눈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창조의 수준으로 본다. 아직 없어도 아직 부족해도 소망하고 사랑한다. 그리고는 반드시 믿는 것을 만들어 내고야 만다. 믿음의 눈은 경험에서 생 겨 나오지 않는다. 믿음의 눈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하나님과 함께 만물을 본다. 아름다운 교인들은 믿음의 눈으로 모든 것을 본다. 있는 그대로를 감사하며 받아들인다.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감사 하며 누린다. 나의 가족, 나의 직업, 나의 교회, 나의 이웃 아니 나 의 삶 전체를 사랑한다. 이들 모두 아름답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나는 내게 주어진 것을 감사함으로 누린다. 믿음의 눈은 거기서 빛나는 하나님의 손길을 본다. 하나님의 미소를 보며 하나님의 말씀을 본다. 하나님은 감사하고 맛보는 사람의 삶에 아름다움을 부으신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 없어도 아직 좀 부족해도 소망하고 사랑한다. 믿음은 시궁창에서도 아름다움을 본다. 하물며 이처럼 아름다운 교회 당에서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아름다움을 볼 수 없겠는가 우리는 믿음으로 현재의 아름다움을 즐긴다. 그러나 더욱 우리는 미래의 아름 다운 교회를 생각하며 더욱 감사하며 소망하고 사랑한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일하시며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 되신다. 믿음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든다. 하나님의 창조의 손길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믿음을 가진 사람 은 믿음으로 그 믿음으로만 산다. 그는 믿음의 생각을 한다. 믿음 속 에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을 보며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를 가진다. 그래서 믿음의 말을 한다. 그의 말은 긍정적이다. 살아서 힘이 있다. 그의 말은 참으로 아름답다.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믿음의 사람은 아름다운 삶을 산다. 그의 안에 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 이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속에서 그리스도가 그를 통해서 산다. 그는 죄에 대해서 죽고 의에 대해 살기 로 결심한 사람이다. 그는 낙심하지 않고 우울해 하지 않고 그는 언제 나 소망하고 언제나 사랑하기로 결심한 사람이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속에서 뒷받침하고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는 그리스도처럼 산다. 그는 죄에 대해 무지하다. 그러나 의 자 체를 가졌다. 그는 언제나 온유하고 겸손하다. 그러나 세상의 그 무엇 이 감당할 수 없는 강한 존재이다. 그는 자기 마음을 지배한다. 그리고 자신의 운명을 지배한다. 그는 폭풍우를 잠잠하게 하고 귀신을 추 방한다. 그는 이 땅에서 그리스도처럼 살며 그리스도처럼 사랑한다. 그는 이 땅에 있는 그리스도로 그리스도처럼 아름답다. 그는 그리스도처럼 이웃을 사랑하고 그들과 나눈다. 이웃을 위해 서 기도하고 그들의 눈물을 씻어준다. 그는 이웃에게 자기 속에 있는 것을 나눈다. 그는 그리스도처럼 자신을 이웃에게 준다. 그는 무엇보 다도 이웃의 영혼에 더욱 관심을 가진다. 그래서 기도하고 이웃을 그리스도에게 이끈다. 그리하여 그들도 함께 아름다운 사람들이 되게 한다. 이것이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아름다운 교회는 더욱 확실하게 아름다운 교회로 성 장해 간다. 우리의 아름다움은 현재에도 있지만 미래에 더욱 나타날 것을 우리는 믿음으로 본다. 참된 아름다움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마치 그리스도처럼 보여진다. 그러나 장차 우리가 이 룩할 아름다운 교회에 비하면 현재는 아무 것도 아니다. 우리는 기쁨 속에 우리의 아름다운 모습을 소망으로 바라본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모르고 아름다 움을 말한다는 것은 정말로 그림자 놀이요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결 국 도스토예프스키가 추구한 아름다움은 하나님에게서만 발견된다.
이 아름다움 속에는 천지의 오묘한 질서가 있다. 그 속에는 하늘 의 수수꺼끼가 있고 땅의 비밀이 있다. 그로부터 백합과 장미의 아름 다움이 나오고 그로부터 석양에 빛나는 붉은 파도가 나온다. 그러나 아직도 하나님 자체에 비하면 이 아름다움은 껍대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름다움은 차라리 설명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택한 자녀를 통해서 하나님처럼 숭엄하게 표현된다. 아름다움은 예쁜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름다움에는 반드시 생명이 있고 힘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랑과 지혜가 물론 포함되어 야 한다. 병든 것이 아름다운가 무지하고 악한 것이 아름다운가 진리와 함께 표현되어야 참된 아름다움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아름다움 은 바로 이런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아름다운 것이다. 이 아름다 움은 모든 인류가 추구하는 참되고 영원한 아름다움이다.
그렇다면 아름다운 교회는 무엇인가 왜 아름다운 교회인가 하나님으로부터 수여되는 아름다움에 교회의 의미가 더해진 것이다. 물론 교회 자체도 아름답다. 아니 아름다워야만 한다. 외형도 내면도 교회는 아름다워야 한다.
교회는 교회다울 때 아름답다는 말이다. 아름다 운 교회란 교회다운 교회를 말한다. 이 세대에 정말로 교회다운 교회는 어떤 것인가 과연 우리가 그러한 교회가 되었는가 교회가 있는 목적은 단 하나. 모든 사람들을 예수처럼 만드는 것이다. 즉 아름다운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예수처럼 죄에 대해 순진 하고 예수처럼 의롭다. 너무도 온유하고 겸손하지만 또한 너무도 지혜 롭고 강하다. 폭풍우가 멈추고 귀신이 떤다. 죽은 이가 일어난다. 그 의 권능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그는 아름답게 사랑하였다. 이 사랑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그 아름다움도 영원한 것이었다. 예수는 그처럼 아름답게 살았다. 본래 세상은 아름다웠다. 거기에 그의 탄생은 더욱 아름다워 천사도 노래했다. 그가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병을 고쳐줄 때 아름다웠다. 그의 고통 속에 죽는 것까지도 아름다웠다. 그의 부활과 승천은 눈이 부셨다.
그렇다. 예수가 바로 아름다움의 근원이요 그의 삶이 바로 아름다운 삶 그 자체였다. 이러 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모임이 바로 아름다운 교회이다. 그러려면 교인 각자가 예수처럼 되어야 한다. 먼저 아름다움 자체 이신 예수를 받아들인다. 그럼으로 자신이 아름다움을 소유했음을 믿는다. 이 믿음으로 그의 눈은 빛나기 시작한다. 그럴수록 그는 예수처 럼 변해가며 예수의 모든 복을 자기 것으로 누리기 시작한다. 예수의 힘으로 살기 때문에 삶의 모든 순간이 아름답게 변해간다. 자신도 삶 이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하며 이 아름다움을 감격 속에 감상한다. 많은 신자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과거의 기억에 집착한다. 그리고 감각만을 믿는다. 과거에 경험했고 지금 보는 내가 참된 나라고 생각 한다. 실패가 많은 나, 억울함 많고 우울한 나를 믿는다. 과거에는 기 뻤지만 지금은 별 볼일없는 나, 그것이 나라고 그래서 습관 속에서 나 를 보고 쉽게 말해 버린다. "나는 부족하다. 나는 약하다. 나는 우울 하다. 나는 별 의욕이 없다. 나는 자신이 없다." 그리고 같은 눈으로 이웃을 본다. 어제부터 늘 보아와서 지금도 동일하게 보는 당신이 참된 당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변화가 왔어도 인정해 주지 않는다.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한다.
참으로 경험 의 눈은 비판적이다. 경험의 눈은 비관하기도 잘하고 낙담하기도 잘한다. 경험의 눈으로 이웃을 보라. 교인들을 보라. 그리고 비판해 보라. 비판의 말을 나누라. 그리고 서로 실망해 보라. 신자들은 반드시 믿음의 눈으로 모든 것을 보아야 한다. 그러면 소망과 사랑이 따라 나온다. 믿음의 눈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창조의 수준으로 본다. 아직 없어도 아직 부족해도 소망하고 사랑한다. 그리고는 반드시 믿는 것을 만들어 내고야 만다. 믿음의 눈은 경험에서 생 겨 나오지 않는다. 믿음의 눈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하나님과 함께 만물을 본다. 아름다운 교인들은 믿음의 눈으로 모든 것을 본다. 있는 그대로를 감사하며 받아들인다.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감사 하며 누린다. 나의 가족, 나의 직업, 나의 교회, 나의 이웃 아니 나 의 삶 전체를 사랑한다. 이들 모두 아름답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나는 내게 주어진 것을 감사함으로 누린다. 믿음의 눈은 거기서 빛나는 하나님의 손길을 본다. 하나님의 미소를 보며 하나님의 말씀을 본다. 하나님은 감사하고 맛보는 사람의 삶에 아름다움을 부으신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 없어도 아직 좀 부족해도 소망하고 사랑한다. 믿음은 시궁창에서도 아름다움을 본다. 하물며 이처럼 아름다운 교회 당에서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아름다움을 볼 수 없겠는가 우리는 믿음으로 현재의 아름다움을 즐긴다. 그러나 더욱 우리는 미래의 아름 다운 교회를 생각하며 더욱 감사하며 소망하고 사랑한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일하시며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 되신다. 믿음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든다. 하나님의 창조의 손길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믿음을 가진 사람 은 믿음으로 그 믿음으로만 산다. 그는 믿음의 생각을 한다. 믿음 속 에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을 보며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를 가진다. 그래서 믿음의 말을 한다. 그의 말은 긍정적이다. 살아서 힘이 있다. 그의 말은 참으로 아름답다.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믿음의 사람은 아름다운 삶을 산다. 그의 안에 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 이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속에서 그리스도가 그를 통해서 산다. 그는 죄에 대해서 죽고 의에 대해 살기 로 결심한 사람이다. 그는 낙심하지 않고 우울해 하지 않고 그는 언제 나 소망하고 언제나 사랑하기로 결심한 사람이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속에서 뒷받침하고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는 그리스도처럼 산다. 그는 죄에 대해 무지하다. 그러나 의 자 체를 가졌다. 그는 언제나 온유하고 겸손하다. 그러나 세상의 그 무엇 이 감당할 수 없는 강한 존재이다. 그는 자기 마음을 지배한다. 그리고 자신의 운명을 지배한다. 그는 폭풍우를 잠잠하게 하고 귀신을 추 방한다. 그는 이 땅에서 그리스도처럼 살며 그리스도처럼 사랑한다. 그는 이 땅에 있는 그리스도로 그리스도처럼 아름답다. 그는 그리스도처럼 이웃을 사랑하고 그들과 나눈다. 이웃을 위해 서 기도하고 그들의 눈물을 씻어준다. 그는 이웃에게 자기 속에 있는 것을 나눈다. 그는 그리스도처럼 자신을 이웃에게 준다. 그는 무엇보 다도 이웃의 영혼에 더욱 관심을 가진다. 그래서 기도하고 이웃을 그리스도에게 이끈다. 그리하여 그들도 함께 아름다운 사람들이 되게 한다. 이것이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아름다운 교회는 더욱 확실하게 아름다운 교회로 성 장해 간다. 우리의 아름다움은 현재에도 있지만 미래에 더욱 나타날 것을 우리는 믿음으로 본다. 참된 아름다움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마치 그리스도처럼 보여진다. 그러나 장차 우리가 이 룩할 아름다운 교회에 비하면 현재는 아무 것도 아니다. 우리는 기쁨 속에 우리의 아름다운 모습을 소망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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