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좋은 교회, 잘 되는 교회 (살전1:2-10)

본문

사람은 누구나 좋은 것을 원합니다. 모든 일이 잘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샘물교회는 99년 표어를 ‘좋은 교회! 잘 되는 교회!’라 하였습니다. 믿음을 품고 나가면 목표대로 될 것입니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좋은 것으로 만족하게 채우리라”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오늘 새해 첫 주일을 맞이하여 주님과 함께 좋은 출발을 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쓰라리고, 고통스러웠던 지난날의 모든 과거는 다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이제 주님의 은혜의 밝은 빛 아래서 새롭고 복된 역사가 크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지난 98년은 유난히도 다사다난(多事多難)했습니다. 경제위기체제 속에서 1년을 보냈습니다. 경제적으로 많이 위축되었고, 많은 사람들의 어깨에 더욱 무거운 짐만 가득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총풍, 세풍, 신 북풍이니 하며 계속 시끄러웠고, 여기 저기에서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로 고통스러워하던 한해였습니다. 그러던 1998년이 가고, 새로운 역사의 장이 열리는 1999년이 왔습니다. 이제부터는 우리의 목표대로 ‘좋은 일! 잘 되는 일!’로 가득 채워지기를 바랍니다. 교회도, 가정도, 나라도, 직장도, 사업도 좋은 일로, 잘 되는 일로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잘 되고 좋은 일의 약속은 하나님 안에서 실현되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철저하게 주안에 서야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해야 합니다.
오늘 1999년 새해 첫 주일을 맞이하여 새 마음, 새 결단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립시다. ‘좋은 교회! 잘 되는 교회!’의 꿈을 안고 힘차게 달려나갑시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 우리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모습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교회는 본이 되는 교회요, 좋은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도 바울이 2차 선교 여행 중에 디모데와 실라와 함께 세웠습니다. 그 교회의 교인은 대부분 이방인이었고 약간의 유대인도 있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3주간 동안 성경을 가르치고 그들의 신앙을 지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곳에 있던 유대인들이 폭도들을 선동하고 핍박을 가했습니다. 바울의 사역을 방해하였습니다. 바울은 할 수 없이 밤중에 베뢰아로 피신하고, 아덴을 거쳐 나중에는 고린도까지 옮겨갔습니다. 교회를 세우기는 했지만, 많은 시간 동안 말씀을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그들을 지도할 충분한 시간도 없었고, 그렇다고 그들을 가르칠 수 있는 신앙 지도자도 세우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니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생각하면 늘 걱정이 되었습니다. 더욱 아직도 핍박과 큰 환란이 심하니 데살로니가 교회와 교인들의 신앙이 무너질까봐 마음이 편치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바울은 디모데를 통해 교회의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소식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바울의 전도를 받고 철저한 신앙으로 무장하였다는 것입니다. 환란과 핍박이 계속되었지만 이에 전혀 굴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풍성했고, 교회는 부흥하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또 이런 데살로니가 교회의 핍박과 환란을 이겨낸 신앙의 소식이 마게도냐와 아가야 등 여러 지방에 소문이 자자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바울은 너무 기뻤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데살로니가 교회를 격려하고 칭찬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 안의 신앙적인 문제들에 대한 권면을 편지로 보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의 내용입니다. 참으로 데살로니가 교회는 본이 되는 교회였습니다. 한마디로 좋은 교회요, 모범이 되는 교회였습니다. 우리 샘물교회도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많은 사람들에게 본이 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또 너희가 많은 환란 가운데서 성령님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라는 말씀처럼 우리 샘물교회도 주님께 인정받고, 칭찬 듣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좋은 교회! 잘 되는 교회!’를 이루어 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럼 데살로니가 교회가 무엇 때문에 본이 되는 교회요, 좋은 교회라는 칭찬을 받았습니까
1. 역사 하는 믿음을 가진 교회였습니다. 본문 5절에 “너희의 믿음의 역사”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그 시험과 환난이 있었지만 변치 않는 믿음을 지켰습니다. 바울의 칭찬은 그 교회가 ‘믿음이 역사’했다는 것입니다. 역사(役事)란 한 마디로 일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역사 하는 믿음이란 일하고 실천하는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역사 하는 믿음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에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 할 것이 없으리라”(마17:20) 또 히브리서 11:1에는 “믿음은 바라본 것들의 신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라고 하셨고, 약 2:26에는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 즉 역사가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입니다. 죽은 나무에서는 푸른 잎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더더욱 열매를 바라볼 수 없습니다. 무성한 푸른 잎과 좋은 열매는 살아있는 나무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도 이와 같습니다. 죽은 믿음은 어떤 사람에게도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자신에게도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믿음은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 힘과 소망을 주고 삶의 활력을 얻게 합니다. 또한 자신도 성장하고 열매 맺기까지 놀라운 생명력을 가지는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에 비늘 없는 고기를 먹지 말라고 한 말씀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비늘 없는 고기는 세차게 흐르는 물을 거슬러 올라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비늘 있는 고기는 세찬 물결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처럼 살아있는 믿음, 역사 하는 믿음은 환란과 핍박, 곤고나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어떤 유혹이나 거센 파도에도 굴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넘어지지 않고 신앙을 지켜나갑니다. 그래서 믿음이 성장하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역사 하는 믿음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바로 이 역사 하는 믿음, 살아 있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우리 샘물교회도 살아 역사 하는 믿음을 가진 교회가 되어 ‘좋은 교회! 잘 되는 교회!’를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 살아있는 믿음, 역사 하는 믿음을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습니까 그것은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성경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했습니다.(롬10:17) 그렇습니다. 믿음을 성장시키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거룩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말씀은 일하게 하는 확신을 줍니다. 말씀은 우리 성도들에게 능력이 됩니다. 말씀을 사모하며 사는 사람이 믿음도 성장합니다. 그래서 산을 옮길 수 있는 능력의 믿음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 안요한 목사는 맹인입니다. 그는 삶을 매우 절망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들려주시던 말씀을 통해서 다시 용기를 얻었습니다. 굳센 믿음을 얻은 것입니다. 그것은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사41:1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99년에는 더욱 말씀을 가까이 합시다. 말씀이 ‘하라고 하는 것’에 ‘아멘’하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이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하지 맙시다. 약속의 말씀 붙잡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역사 하는 믿음을 지닌 데살로니가 교인들처럼 날마다 말씀을 가까이 합시다. 그러면 할 수 있는 믿음, 살아있는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모든 교회에 본이 되는 좋은 믿음을 지녀 ‘좋은 교회! 잘 되는 교회!’를 이루어 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사랑이 있는 교회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충만한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매사 모든 일에 사랑으로 풍성한 교회가 잘 되는 교회입니다. 예수님은 사랑 그 자체이십니다. 예수님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값없이 사랑을 주셨습니다. 그 사랑은 희생과 봉사의 사랑이었습니다. 또한 그 몸까지 아끼지 않으신 거룩한 희생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수고가 깃든 사랑, 자기 희생을 감수한 사랑이 정말 빛을 발할 수가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사랑에는 수고가 따릅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은 아내를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또한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는 남편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는 자식들을 위한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입니다. 수고하는 사랑, 이것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이것이 본이 되고, 좋은 교회를 이룰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입으로만 하는 사랑, 말로만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에는 자기 희생과 수고가 따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랑의 본을 보여주었습니다. 요 13:18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라고 말씀합니다. 사랑은 어둠을 밝히는 빛입니다. 사랑은 미움을 녹이는 힘입니다. 사랑의 사람이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주님을 기쁘게 합니다. 희생적인 사랑은 깊이가 있고, 계속 자라게 됩니다. 희생이 없는 사랑은 의심으로 변질되기 쉽습니다. 아내에 대한 잘못된 사랑이 의처증이란 병적 증세가 나타납니다.
참 사랑만이 모든 아픔을 치유합니다. 희생이 깊을수록 사랑도 깊어집니다. 초는 녹아 없어지지만 그 가운데서 빛이 납니다. 마찬가지로 사랑의 광채는 희생하는 수고에서 나는 것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결점도, 약점도 장점으로 채워집니다. 사실 데살로니가 교회도 완전한 교회는 아니었습니다. 그 교회도 주님의 재림을 너무 사모한 나머지 게으른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결점보다는 장점이 더 큰 교회였기에 좋은 교회입니다. 우리 샘물교회도 결점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점보다는 주님께 칭찬 받을 만한 일이 많아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교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좋은 교회, 정말 건강한 교회는 얼마나 됩니까 교회가 사명을 다하지 못하면 올바른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샘물교회는 주님이 좋아하시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행복합니까 내가 다니는 교회는 정말 좋은 교회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속한 샘물교회는 좋은 교회입니까 잘 되는 교회입니까 아멘. 그러면 여러분은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성도들이 좋은 교회를 섬긴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한번 에 없는 인생을 살면서 왜 교회문제로 고민하고, 피곤하고, 늘 짜증내며 살아야 합니까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먼저, 주님이 기뻐하시는 좋은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교회 잘 되는 교회를 이룰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99년 한해 동안 좋은 교회! 잘 되는 교회를 꿈꾸십시오. 늘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기도한대로 됩니다. 교회가 잘 되어야 각 심령이 잘 됩니다. 좋지 못한 교회를 만나 고통 당하며, 신앙이 뿌리 채 흔들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우리 교회가 그러한 교회가 되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좋은 교회! 잘 되는 교회!’는 수고하는 사랑이 넘치는 교회입니다. 생활에 본이 되는 교회입니다. 사랑으로 빛을 발하는 교회입니다. 우리 샘물교회는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수고하는 사랑으로 ‘좋은 교회! 잘 되는 교회!’를 이루는 99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소망을 가진 교회입니다. 성도에게는 꿈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꿈을 먹고 사는 사람입니다. 비전과 꿈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젊어도 늙은 사람입니다. 소망이 없는 나라는 강해 보여도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시며’라고 찬송 부르는 것입니다. 기독교에는 절망이 없습니다. 소망의 주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모든 꿈과 소망이 되시는 예수님 안에서는 절망하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소망의 성취를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인내가 없으면 소망은 가치를 잃게 됩니다. 본문에 보면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가 ‘소망을 이루는 인내를 가진 것’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나이 많은 노인에게 ‘이 다음에 무엇을 하시겠습니까’라고 물으면 대부분이 ‘하기는 무얼 해요 죽어야지’ 라고 절망의 말을 합니다. 소망이 없는 대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을 모신 사람은 꿈과 소망을 갖고 삽니다. 그래서 근심도, 걱정도 이기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현실은 자꾸만 소망을 갖지 못하도록 유혹하고 있습니다. 눈앞에 놓여 있는 수많은 현실이 자꾸 우리를 절망으로 이끌어 갑니다. 죽음에 이르도록 유혹하고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참 소망의 주님을 모셔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만 바라보며, 소망을 기다리며 살아야 합니다. 어제 뿌린 씨를 오늘 거둘 수는 없습니다. 하루 이틀 잘한다고 열매를 얻는 것이 아닙니다. 땀과 눈물을 흘리며 씨뿌리고 잘 가꾸어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 나라의 소망도, 우리가 가진 비전들도 기도하자마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참고 견디는 인내가 있어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이 놀라운 역사 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즉 생동감 있게 일하는 교회였습니다. 사랑을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수고하는 교회였습니다. 소망을 이루기 위해 끝까지 인내하며 기다릴 줄 아는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칭찬을 받았습니다. 본이 되는 교회, 좋은 교회가 된 것입니다. 우리 샘물교회도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이 있어서 ‘좋은 교회! 잘 되는 교회!’를 이루는 99년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919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