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데 교회 (계3:1-6)
본문
사데교회는 교통의 요새지요, 5대 교통망이 여러도시와 연결된 입지적 조건을 가진 상업의 중심지요, 부와 사치로 부도덕하고, 타락한 죄악의 도시로 유명한 사데라는 지역 이름을 따서 설립된 교회입니다. 기독교는 계시의 말씀과 영감을 두 기둥 삼아 신앙이 건설되므로 어느 것 하나에라도 경중이나, 선후를 두면 결국은 치우침으로 올바른 신앙이 못됩니다. 영감역사를 경히 여기면 계시 말씀이 믿어지지 않아 신신학으로 기울어지고, 또 계시 말씀을 경히 여기면 불건전한 신비주의로 기울어지게 됩니다. 사데교회는 사도바울을 통하여 복음을 받아 교리와 신조는 올바로 가졌으며, 외부적으로나 의식적으로 발전 향상되어 나가는 상태의 보수적인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바리새교인 들이 열심도, 의식도, 성경지식도, 정통 노선에는 섰으나, 영감역사가 없어, 오신 주님을 정죄하고, 박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도록 타락한 것처럼, 사데교회도 알맹이는 없고, 껍데기만 붙들고 믿는 내적으로 영감역사가 핍절한 아주 형편 없는 그런 타락한 무능한 교회입니다. 그러나 사데교회가 아무리 허무해도, 성령님과 주님께서 붙들고 쓰시는 일꾼만 있으면, 얼마든지 완전 회복을 해 가지고 하나님을 만족하게 해 드리는 교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주님”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나타난 주님의 모습 ‘하나님의 일곱 영’이란 성령님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신 성령님이라고(행5:22) 하심같이 주님께서 완전하신 성령님을 통하여 감화,감동시켜, 완전한 능력으로 회개와 순종케하여 실행을 시키시고, 실행하는 자에게 영능을 부가하여 주십니다. ‘일곱 별’은 교회의 사자 교회를 인도하는 사람, 하나님께 쓰여지는 일꾼으로, 일곱 별은 주님이 장중에 잡고 있고 놓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잘 났든지, 못 났든지, 지혜롭든지, 무지하든지 간에 주님이 붙들고 쓰셔서 주님의 일을 할 때에는 주님의 것이 되어가지고 일하는 것입니다. 주님에게 붙들려 주님의 원하시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은 못나도 잘난 사람이 되고, 어리석어도 지혜 있는 사람이 되고, 무능해도 능력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 자신이 그런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일이기 때문에 주님의 일을 하는 그런 자를 주님이 만들어 가지고 일하시기 때문에 누구든지 주님 기뻐하시는 일만 하면 자기는 존귀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광은 주님에게 돌리고, 자기는 혹 주님에게 거리끼는가 하는 그것을 찾는 것이 슬기로운 일인 것입니다. 사데교회가 받은 바 말씀의 은혜는 지식에 머물고, 성령님의 감화, 감동(영감)을 받아 실천하는 데에 나아가지 아니하므로 실상은 죽은 교회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허무하고 제일 무능한 교회라 할지라도 살리고 영광스럽게 존귀케 승리케 하는 데는 성령님과 주님이 붙들고 쓰시는 일꾼 들만 있으면, 이런 교회라도 완전 회복해 가지고, 하나님을 만족케 해 드릴 수 있는 교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영감의 은혜와 말씀의 은혜를 교역자를 통하여 주시는 것은, 교인들이 성령님의 은사와 권위 있는 교역자로 하나님께서 붙들고 쓰시도록 갈망과 기도에 따라 그 능력의 부여가 차이가 있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기에 좋은 교역자 밑에 좋은 교인이나고 좋은 교인 있는 곳에 좋은 교역자가 자랍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1절 하반절)
사데교회는 현실에서 육체로 따라 살고, 인간 생각대로 살아서 행함이 없는 외식 교회인데, 행함이 없는 ‘네 행위를 아노니’라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행함이 없는 것을 아시고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주님의 완전 대속을 받아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나, 곧 하나님의 공심판은 대속의 공로로 완전 통과를 할 수 있으나, “죽은 자로다” 하나님의 사심판에서 네가 산 행위대로 심판을 받을 때, 사데 교회는 행함이 없으므로 심신의 기능을 살릴 기회에 살리지 못하고 둘째 사망의 해를 당했으니 죽은 자로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구원을 이룬 교회로 나타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택함을 입은 자들은 주님의 사활의 대속의 피 공로로 완전 대속을 입어서, 영과 육은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법적으로 산 자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육이 자기에게 닥친 현실을 만났을 때에 그 현실에서 대속의 구원을 입은 자로 살면 영생이 되는데 현실에서 입혀 주신 그 대속을 벗어버리고, 배척해 버렸기 때문에 배척하여 벗고 산 그 때의 쓰여진 심신의 기능은 살아날 기회를 놓치고 살아나지 못합니다. 곧 둘째 사망의 해를 당하여 법적으로 공심판에서는 산 자로 이름만 가졌지, 현실에서 산 자로 살지 못한 그 행위는 죽은, 행함이 없는,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구원을 이룬 외식적 교회요, 타락한 교회입니다. 사데교회는 앞서 다른 교회처럼, 황제숭배로 인한 박해나, 발람과 니골라당의 교훈이나, 이세벨의 간계나 ,유대인들의 악의에 찬 중상 모략도 없고, 교회 내부 외부의 문제가 없는 평안한 교회 좋은 교회 같으나, 실상은 허무한 교회요, 타락한 교회요, 무능한 교회입니다.
주님의 권면 너는 일깨워 그 남은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2절) ‘너는 일깨워’란 잠에서 깨라는 말씀인데, 성도는 진리와 피와 영감으로 중생된 자이기 때문에, ‘깨라’는 말은 피와 진리와 영감대로 사는 것이 깬 것입니다. 성도는 피와 진리와 영감으로 살아라 하는 말씀입니다. “그 남은 바” 아직까지 살 날이 하루인지, 열흘인지, 몇 십년인지 모르나, 남아 있는 것, 곧 ‘죽게된 것을 굳게 하라’ 현실에서 육체로 따라 살아서 인간 생각대로 산 것은 죽게된 것입니다. ‘굳게 하라’ 영감과 진리의 은혜를 받아 이대로 살지를 못하고 영감의 경험 정도, 말씀의 지식 정도에 머물지 말고, 기회가 지나가기 전에, 현실에서 주님의 요구와 기대에 만족이 되도록 진리와 영감대로의 생활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신앙이 죽고 사는 것은 과거와 미래에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있습니다. ‘내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지성과 지공의 심판 앞에란 말씀입니다.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행위 구원의 표준은 온전한 행위라야 합니다. 제 마음에 됐다 싶으면 다른 사람들이 그 행위가 괜찮다 한다고 해서 행위 구원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 다하고, 힘 다하고, 성품 다하고, 목숨 다하여, 온전이 되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온전만 쓸모 있고, 온전치 못한 것은 쓸모가 없기 때문에, 온전한 행위를 할라고 애쓰는 것을 찾지 못하였다 하는 말씀입니다. 사데교회는 이것이 없기 때문에 주님께서 안타깝게 여기시고, 온전에 도달하도록 전심전력을 다하라고 권면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
그러므로’ 살았다 하는 이름만 가졌지, 실은 죽은 자요, 하나님의 요구에 온전을 찾지 못하였으므로 ‘어떻게 받았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때에 생겨지는 깨달음은 자기 스스로 깨달은 것이 아니요, 그때에 이렇게 살아야 되겠다고 각오하고 결심한 것은 자기 스스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신 성령님께서 깨닫고 결심케 한 것입니다. ‘어떻게 들었든지’ 네가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들을 때, 성경 기록은 성경기자가 기록한 것이나, 하나님이 친히 자기에게 그 시간에 직접 하시는 말씀이요, 설교는 목사, 장로, 집사가 말씀을 증거해도, 하나님이 그 사람들을 붙들고 친히 너에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니 불끈 붙잡고, 놓치 말고, 이대로 지켜나가고, 잘못된 것은 고쳐서 회개를 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너에게 들려주셔서 받은 것이기 때문에 이대로 꼭 지켜 행하고 잘못된 것은 고쳐서 회개를 하라는 말씀입니다.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만일에 회개치 아니하면, 심히 불행스럽고 중대한 위험을 표시한 것입니다.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언제 어떻게 임할런지 예고 없이 뜻밖에 신변, 활동, 소유, 기능, 자유, 경영 등 원하든지, 원치 아니하든지 다 빼앗기고 절단나고 도적맞게 됩니다. 그러기에 “정함이 없고, 확고함이 없고, 견고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모든 것을 후히 주어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했습니다. 도적맞을 것을 소유권을 이전하여 완전한 자기 소유로 만드는 것은 연보입니다. 연보는 하나님이 가져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뜻대로 쓰는 것입니다.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죽는 그 시간에 대한 생각을 가지지 못하고, 내내 이렇게 네 것인줄 알고, 땅에 그것만 생각하고, 등기가 되어 있으니, 통장에 보관되고, 창고에 보관하고 있으니, 네 것인 줄 알고 있다가 주님 재림 하시거나, 하나님이 갑자가 불러서 떠나면 다 도적맞고 맙니다. 다 빼앗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칭찬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4절)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는 예수님의 대속을 벗지 않고, 사활의 대속 속에 산 사람입니다. ‘몇 명이’ 많지를 못하고, 몇 명은 적은 무리를 말씀합니다. 신앙의 정조를 지키고 믿음으로 성결을 이루어 나가는 자(벧전1:22, 행15:9)가 그리 많지 못하고, 적은 무리일지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큰 영광과 존귀를 주십니다. “적은 무리여 두려워 말라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눅12:32)고 말씀하셨습니다. ‘흰옷을 입고’: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입고 사활의 대속의 공로를 벗지 않고 입고 살면 ‘나와 함께 다니리니’ 주님과 동행하는 것 주님과 밀접한 교제의 복된 생활을 세상에서 시작하여 주님과 동행하여 축복받는 신앙노선을 영원히 계속하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주님께 합당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사데교인중 적은 소수 몇 명은 하나님께 합당한 자로 대속의 공로를 입고 벗지 않고, 주님과 동행하는 신앙노선을 걷는데 대하여 주님께서 칭찬하셨습니다.
주님의 약속 5절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이기는 자’는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는 자입니다. ‘흰옷을 입을 것이요’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자주 입고 입어서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 속에 사는 생애가 되게 해 주십니다.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그 이름’은 영, 몸, 마음의 이름이 아니라 행위 이름입니다. 행위에는 두가지 요소가 들어 있는데 정력과 기능입니다.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한다’는 말씀은 우리의 몸의 기능이 정력이 잘못 쓰여져서 멸망을 받을 수 있고, 흐릴 수 있는데 뭉개버리고 지울 수 있지만, 바로 쓰여져서 구원도 받을 수도 있으니 반드시 멸망받지 않고, 심신의 기능이 구원을 잘 얻게 하심을 말씀합니다.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만왕의 왕, 만주의 주시요, 심판장 되신 하나님 아버지 앞과 천사들 앞에서 주님께서 모든 것이 이리이리 해도 내가 안다, 내가 책임을 졌다. 공심판에 걸리지 않고 통과시켜 주실 것을 가리켜서 ‘시인하리라’ 하신 것이요, 얼마나 영광스럽게 되겠습니까
나타난 주님의 모습 ‘하나님의 일곱 영’이란 성령님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신 성령님이라고(행5:22) 하심같이 주님께서 완전하신 성령님을 통하여 감화,감동시켜, 완전한 능력으로 회개와 순종케하여 실행을 시키시고, 실행하는 자에게 영능을 부가하여 주십니다. ‘일곱 별’은 교회의 사자 교회를 인도하는 사람, 하나님께 쓰여지는 일꾼으로, 일곱 별은 주님이 장중에 잡고 있고 놓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잘 났든지, 못 났든지, 지혜롭든지, 무지하든지 간에 주님이 붙들고 쓰셔서 주님의 일을 할 때에는 주님의 것이 되어가지고 일하는 것입니다. 주님에게 붙들려 주님의 원하시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은 못나도 잘난 사람이 되고, 어리석어도 지혜 있는 사람이 되고, 무능해도 능력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 자신이 그런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일이기 때문에 주님의 일을 하는 그런 자를 주님이 만들어 가지고 일하시기 때문에 누구든지 주님 기뻐하시는 일만 하면 자기는 존귀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광은 주님에게 돌리고, 자기는 혹 주님에게 거리끼는가 하는 그것을 찾는 것이 슬기로운 일인 것입니다. 사데교회가 받은 바 말씀의 은혜는 지식에 머물고, 성령님의 감화, 감동(영감)을 받아 실천하는 데에 나아가지 아니하므로 실상은 죽은 교회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허무하고 제일 무능한 교회라 할지라도 살리고 영광스럽게 존귀케 승리케 하는 데는 성령님과 주님이 붙들고 쓰시는 일꾼 들만 있으면, 이런 교회라도 완전 회복해 가지고, 하나님을 만족케 해 드릴 수 있는 교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영감의 은혜와 말씀의 은혜를 교역자를 통하여 주시는 것은, 교인들이 성령님의 은사와 권위 있는 교역자로 하나님께서 붙들고 쓰시도록 갈망과 기도에 따라 그 능력의 부여가 차이가 있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기에 좋은 교역자 밑에 좋은 교인이나고 좋은 교인 있는 곳에 좋은 교역자가 자랍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1절 하반절)
사데교회는 현실에서 육체로 따라 살고, 인간 생각대로 살아서 행함이 없는 외식 교회인데, 행함이 없는 ‘네 행위를 아노니’라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행함이 없는 것을 아시고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주님의 완전 대속을 받아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나, 곧 하나님의 공심판은 대속의 공로로 완전 통과를 할 수 있으나, “죽은 자로다” 하나님의 사심판에서 네가 산 행위대로 심판을 받을 때, 사데 교회는 행함이 없으므로 심신의 기능을 살릴 기회에 살리지 못하고 둘째 사망의 해를 당했으니 죽은 자로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구원을 이룬 교회로 나타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택함을 입은 자들은 주님의 사활의 대속의 피 공로로 완전 대속을 입어서, 영과 육은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법적으로 산 자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육이 자기에게 닥친 현실을 만났을 때에 그 현실에서 대속의 구원을 입은 자로 살면 영생이 되는데 현실에서 입혀 주신 그 대속을 벗어버리고, 배척해 버렸기 때문에 배척하여 벗고 산 그 때의 쓰여진 심신의 기능은 살아날 기회를 놓치고 살아나지 못합니다. 곧 둘째 사망의 해를 당하여 법적으로 공심판에서는 산 자로 이름만 가졌지, 현실에서 산 자로 살지 못한 그 행위는 죽은, 행함이 없는,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구원을 이룬 외식적 교회요, 타락한 교회입니다. 사데교회는 앞서 다른 교회처럼, 황제숭배로 인한 박해나, 발람과 니골라당의 교훈이나, 이세벨의 간계나 ,유대인들의 악의에 찬 중상 모략도 없고, 교회 내부 외부의 문제가 없는 평안한 교회 좋은 교회 같으나, 실상은 허무한 교회요, 타락한 교회요, 무능한 교회입니다.
주님의 권면 너는 일깨워 그 남은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2절) ‘너는 일깨워’란 잠에서 깨라는 말씀인데, 성도는 진리와 피와 영감으로 중생된 자이기 때문에, ‘깨라’는 말은 피와 진리와 영감대로 사는 것이 깬 것입니다. 성도는 피와 진리와 영감으로 살아라 하는 말씀입니다. “그 남은 바” 아직까지 살 날이 하루인지, 열흘인지, 몇 십년인지 모르나, 남아 있는 것, 곧 ‘죽게된 것을 굳게 하라’ 현실에서 육체로 따라 살아서 인간 생각대로 산 것은 죽게된 것입니다. ‘굳게 하라’ 영감과 진리의 은혜를 받아 이대로 살지를 못하고 영감의 경험 정도, 말씀의 지식 정도에 머물지 말고, 기회가 지나가기 전에, 현실에서 주님의 요구와 기대에 만족이 되도록 진리와 영감대로의 생활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신앙이 죽고 사는 것은 과거와 미래에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있습니다. ‘내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지성과 지공의 심판 앞에란 말씀입니다.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행위 구원의 표준은 온전한 행위라야 합니다. 제 마음에 됐다 싶으면 다른 사람들이 그 행위가 괜찮다 한다고 해서 행위 구원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 다하고, 힘 다하고, 성품 다하고, 목숨 다하여, 온전이 되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온전만 쓸모 있고, 온전치 못한 것은 쓸모가 없기 때문에, 온전한 행위를 할라고 애쓰는 것을 찾지 못하였다 하는 말씀입니다. 사데교회는 이것이 없기 때문에 주님께서 안타깝게 여기시고, 온전에 도달하도록 전심전력을 다하라고 권면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
그러므로’ 살았다 하는 이름만 가졌지, 실은 죽은 자요, 하나님의 요구에 온전을 찾지 못하였으므로 ‘어떻게 받았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때에 생겨지는 깨달음은 자기 스스로 깨달은 것이 아니요, 그때에 이렇게 살아야 되겠다고 각오하고 결심한 것은 자기 스스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신 성령님께서 깨닫고 결심케 한 것입니다. ‘어떻게 들었든지’ 네가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들을 때, 성경 기록은 성경기자가 기록한 것이나, 하나님이 친히 자기에게 그 시간에 직접 하시는 말씀이요, 설교는 목사, 장로, 집사가 말씀을 증거해도, 하나님이 그 사람들을 붙들고 친히 너에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니 불끈 붙잡고, 놓치 말고, 이대로 지켜나가고, 잘못된 것은 고쳐서 회개를 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너에게 들려주셔서 받은 것이기 때문에 이대로 꼭 지켜 행하고 잘못된 것은 고쳐서 회개를 하라는 말씀입니다.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만일에 회개치 아니하면, 심히 불행스럽고 중대한 위험을 표시한 것입니다.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언제 어떻게 임할런지 예고 없이 뜻밖에 신변, 활동, 소유, 기능, 자유, 경영 등 원하든지, 원치 아니하든지 다 빼앗기고 절단나고 도적맞게 됩니다. 그러기에 “정함이 없고, 확고함이 없고, 견고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모든 것을 후히 주어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했습니다. 도적맞을 것을 소유권을 이전하여 완전한 자기 소유로 만드는 것은 연보입니다. 연보는 하나님이 가져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뜻대로 쓰는 것입니다.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죽는 그 시간에 대한 생각을 가지지 못하고, 내내 이렇게 네 것인줄 알고, 땅에 그것만 생각하고, 등기가 되어 있으니, 통장에 보관되고, 창고에 보관하고 있으니, 네 것인 줄 알고 있다가 주님 재림 하시거나, 하나님이 갑자가 불러서 떠나면 다 도적맞고 맙니다. 다 빼앗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칭찬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4절)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는 예수님의 대속을 벗지 않고, 사활의 대속 속에 산 사람입니다. ‘몇 명이’ 많지를 못하고, 몇 명은 적은 무리를 말씀합니다. 신앙의 정조를 지키고 믿음으로 성결을 이루어 나가는 자(벧전1:22, 행15:9)가 그리 많지 못하고, 적은 무리일지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큰 영광과 존귀를 주십니다. “적은 무리여 두려워 말라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눅12:32)고 말씀하셨습니다. ‘흰옷을 입고’: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입고 사활의 대속의 공로를 벗지 않고 입고 살면 ‘나와 함께 다니리니’ 주님과 동행하는 것 주님과 밀접한 교제의 복된 생활을 세상에서 시작하여 주님과 동행하여 축복받는 신앙노선을 영원히 계속하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주님께 합당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사데교인중 적은 소수 몇 명은 하나님께 합당한 자로 대속의 공로를 입고 벗지 않고, 주님과 동행하는 신앙노선을 걷는데 대하여 주님께서 칭찬하셨습니다.
주님의 약속 5절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이기는 자’는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는 자입니다. ‘흰옷을 입을 것이요’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자주 입고 입어서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 속에 사는 생애가 되게 해 주십니다.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그 이름’은 영, 몸, 마음의 이름이 아니라 행위 이름입니다. 행위에는 두가지 요소가 들어 있는데 정력과 기능입니다.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한다’는 말씀은 우리의 몸의 기능이 정력이 잘못 쓰여져서 멸망을 받을 수 있고, 흐릴 수 있는데 뭉개버리고 지울 수 있지만, 바로 쓰여져서 구원도 받을 수도 있으니 반드시 멸망받지 않고, 심신의 기능이 구원을 잘 얻게 하심을 말씀합니다.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만왕의 왕, 만주의 주시요, 심판장 되신 하나님 아버지 앞과 천사들 앞에서 주님께서 모든 것이 이리이리 해도 내가 안다, 내가 책임을 졌다. 공심판에 걸리지 않고 통과시켜 주실 것을 가리켜서 ‘시인하리라’ 하신 것이요, 얼마나 영광스럽게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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