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찬송의 은혜! (시150:1-6)

본문

우리 기독교의 예배를 살펴보면, 찬송으로 시작해서 찬송으로 끝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 배를 드릴 때 마다 찬송이 빠지는 예는 없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찬양의 종교요, 찬양은 기독교의 시작이요 끝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마치 '잔치집 같은 종교'라서 늘 기쁘고 즐거운 찬송을 부릅니다. 심지어 장례식 에서도 찬송을 부르는 종교가 기독교인 것입니다. 시인은 시로서, 문인은 글로서, 음악가는 노래로서, 그리고 화가는 그림으로서. 각기 자신 의 고귀한 감정의 결정을 표현 하지만, 우리 신앙의 사람들은 바로 찬송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요한 웨슬레는 "만입이 내게 있으면, 그 입 다 가지고 내 구주 주신 은총을 늘 찬송하겠 네!"(23장) 하면서 자기가 지은 찬송가를 항상 불렀습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을 내조한 것은 요한 발터(Johann Walther)의 힘있는 찬송이 있었던 것입니다. 무디(D.L. Moody)의 대부흥이 일어난 그 이면에는 센키(I.R. A.D. Sankey)의 신앙깊은 찬송 이 있었고, 유명한 빌리 산데이(Billy Sunday)의 배후에는 호머 로데예어리(Homer Rhodejearer)의 아름다운 음악이 있었던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토리(R.
A.Torry) 목사님의 뒤에는 언제나 알렉산더(Alexander)가 따라 다녔고, 밥 피억스의 부흥회에도 역시 수명의 저명한 근대 음악가가 따라 다닌 것입니다. 이처럼, 신앙의 찬송이 들릴 때마다 뭇 심령들이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옥중에서 힘차게 힘차게 목이 터져라 찬송을 하였습니다.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상처를 어루 만지며. 슬픔의 가락으로도 찬송을 불렀을 것입니다. 이것은 간절한 기도요,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고백이였습니다. 그때 홀연히 옥문이 요동 하며 지진이 일어나더니 땅이 갈라지며 옥문이 열렸습니다. 아덴에 가서 철학자들과 변론을 벌이며 전도를 할 때에는 별로 열매를 거두지 못했지만, 빌립보에서 이와같이 찬송으로 같이 한 전도에는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찬송을 해야 합니다. 찬송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우리 인간이 마땅히 할 바 입니다. 사43:21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지으신 목적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데, 그것은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인간이 마땅히 해야 될 본분이요,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찬송을 해야 할 인간이 찬송을 하지 아니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 께서 우리 인간을 만들어 놓으신 목적에 위배되는 엄청난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찬송의 삶을 살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엄청 난 형벌을 내리시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137편에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죄를 지은 까닭에 바벨론으로 붙잡혀 가서 온갖 굴욕과 고난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바벨론 사람들이 강제로 노래를 시키는 바람에, 하기 싫은 노래를 억지로 억지로 해야만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무슨 뜻인가 하면,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찬양을 돌리던 그 노래 를 억압자들을 위하여 부르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신명나게 한 가락 읊으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시137편에 보면,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 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 중 하 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예루살렘아 내 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지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지 아니하거나 내가 너를 나의 제일 즐거워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 로다" 했습니다. 참으로 기가막힌 노릇입니다. 머나먼 타향 땅에 붙잡혀 와서 종살이를 하는 것만도 억울하 고 분통이 터질 일인데., 원수들의 흥을 돋구기 위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아무데서 나 부르라고 하니, 얼마나 기가막힙니까. 그래서 차라리 수금을 치는 내 오른손이, 악기를 다루는 것을 다 잊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고백합니다. 차라리 내 혀가 입천장에 말라 붙어 버려서, 시온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 노 래 소리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쩔 수 없는 형벌이었습니다. 그렇게 된데는 다 그들의 죄로 말미암은 까닭이였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만약 인간이 이러한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고, 엉뚱한 것을 인생의 제일로 삼고 찬양하게 되면, 엄청난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그것은 인간이 있어야 할 자리를 벗어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한 결과는 뻔한 일입니다. 애가서 1장 3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러나라에 흩 어져 살면서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고 했는데, 하나님을 찬양하지 아니하고 우상을 숭배 하며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 사는 사람들의 결과인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대단히 짧은 시(時) 임에도 불구하고, 찬양에 대한 가장 핵심적인 것을 잘 설 명하고 있습니다.
1찬양의 장소와
2찬양의 이유, 그리고
3찬양의 방법에 대해서 잘 말씀 하고 있습니다. 그럼 첫째로, 찬양의 장소에 대해서 살펴 보겠습니다.
1. 찬양의 장소 우리는 어디에서 찬양을 해야 합니까. 먼저, 본문은 "성소에서" 그리고 "궁창에서" 찬송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성소는 단순히 성 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역사하시는 모든 장소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권능의 궁창은 천국 뿐만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이 미치는 모든 곳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찬양의 장소는 하나님이 계시는 곳을 말하는데,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시는 분이 므로. 어떤 장소에서든지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찬양할 수 있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공간을 초월하여 찬양을 받으심이 마땅합니다.
그러므로, 시편 148편 1절은 "높은 데서 찬양하라"고 했고, 시편 148편 7절은 "땅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했습니다. 또 시편 149편 1절은 "성도의 회중에서 찬양할지어다"라고 했고, 시편 149편 5절은 "침상 에서 기쁨으로 노래"하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9장에 보면, "노아가 장막에서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했다"고 했으며, 창세기 49장에 보면, "야곱이 병상에서 찬송하였다"고 했습니다. 또한 출애굽기 14장은 "광야 바닷가에서" 이스라엘이 찬양했다고 했고, 모세는 "총회에서" 찬양을 했으며(신32장), 한나는 "여호와의 집에서"(삼상2장), 다윗은 "전쟁에서" 찬송을 했습니다. 바울은 "옥중에서" 찬양하였으며(행15:25), 우리 주님은 "죽음의 길에서"도 찬미하였습니다. 뿐만아니라 사6장과 계7장에 보면, 천사와 네 영물과 24장로들과. 그리고 앞서간 성도들은 "하늘에서" 찬미하였으며(사 6:2, 계7:11-12), "땅에서"는 성도들이 화답한다고 했습니다. 그 리고 "하늘 위에서" 와 "땅 위에서" 와 "땅 아래서" 그리고, "바다 위에서" 도 만물이 찬양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계5:13). 나아가 모든 피조물은 자연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며, 천지는 천지대로 "천지 간에 서" 찬양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어디에서나 여호와를 찬송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교회나 다른 예배장소에서는 몇 장의 찬송을 부르지만. 직장에서, 가정에서, 놀이터에서, 사회생활에서. 얼마나 찬송을 생활화하 고 있습니까 직장에서 명쾌하게 찬송하면서 일하는 이는 드문 것 같습니다. 가정에서 찬송하는 이도 적 은 것 같습니다. 안믿는 사람들과의 사회생활에서는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혹이, 대중가요는 메들리로 끊김없이 불러대지만, 찬송은 과연 얼마나 외우고 부르십니 까. 우리는 어디서든지., 즉 신자 속에서나 불신자 속에서나. 교회에서나 사회에서나. 예배 때나 그 외 다른 때나. 언제 어디서나 찬송을 생활화해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생각하고저 하는 것은 무엇으로 찬송할 것인가 하는 방편의 문제입니다.
2. 찬송할 방편 (기구) (3-5절). 본문
3,4,5절은 찬송할 때 여러가지 악기로 찬양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 양할 때의 방편은 크게 둘로 나누어서 성악과 기악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성악이나 기악, 이 모두 쉬운 것이 아닙니다. 소리를 발하는 성악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음성이 있어야 하고, 또한 피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또한 기악도 마찬가지로 누구나가 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악기나 기술의 제한을 받게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능력이 미 치는 데까지 여러가지 악기로 찬양하는 길을 닦아야 합니다. '신이 내린 목소리' 라고 평하는 소프라노 조수미는 말하기를, "저는 어떤 무대에서도 떨지 않습니다. 무대에서 조마 조마하는 것은 연습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고 백했습니다. 그는 대학교 2학년때, 이탈리아로 떠난 이후 2년이 채 되기도 전에 매년마다 세계적인 콩 쿨대회를 석권하였습니다. 그의 영롱한 음성은 고음과 저음에 이르기까지 고루 소화하며 강 한 호소력을 지녔는데, 이 모든 것은 그의 피나는 연습의 결과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능력이 미치는 데까지 여러가지 방면으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찬양할 것인가를 연구하며 그 방법을 찾고 연습을 해야 합니다. 성경에 기술된 악기는 거문고, 피리, 나팔, 북,. 등이 있어 이런 것이 예배에 사용되었습니다. 이러한 악기는 오늘날의 모든 악기를 대표하는데, 거문고는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 베이스, 하프, 만도린, 피아노,. 등 현악기(String)를 말합니다. 또한, 피리는 픽코로, 파고트, 잉그릿 쉬호른. 등의 많은 목관악기(Wood Wind)로 발전 해 왔습니다. 뿐만아니라, 나팔은 트럼펫, 코넷, 호른, 트람본, 튜바, 섹소폰. 등 수많은 금관악기(Iron Wind)로, 또한, 북은 팀파니, 심벌즈, 트리이앵글, 탬버린. 등의 타악기를 말합니다.
그리고 이런 악기들에서 나온 유건 악기중에는 오늘날 교회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리도 올 갠, 양금, 파이프 올갠 등이 있습니다. 이중에 파이프 올갠만 보아도. 수 천 내지 수만개의 파이프가 있는 것이 있습니다. 스톱만 해도 수백개나 됩니다. 건반은 이단 내지 오단, 육단에다. 발로 치는 건반까지 붙어 있어서, 매우 다양한 소리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전자, 전기 올갠에. 오디오 시스템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게다가 레코드, 녹음기, 라디오, 오디오,. 등 음향의 기술이 고도로 발전되면서, 이런 것이 신령한 예배의 품위를 한 층 더 높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혹 어떤 분이 생각하기를, "뭐 저렇게 엄청나게 비싼 것을 굳이사야 되는가 그냥 마음으 로 진실되게 부르면 되지."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인간이 하나님께 드리는데 있 어서는 최선을 다하고 최고의 것을 드려도 아까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낭비가 아닙니다. 우리는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고, 최선을 다해서, 최고의 것으로 주님을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누가 찬송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3. 찬송할 사람(6절). 본문 6절에서는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호흡이 있는 자"란 꼭 사람만이 아닐 것입니다. 시편 148편 1-2절은 "하늘의 천사"도 찬양하라고 했고, 이성이 없는 것도 찬양하라고 했습니다(시 148:3-10). 시148:7-13절 말씀에 "너희 용들과 바다여 땅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라 불과 우박과 눈과 안 개와 그 말씀을 좇는 광풍이며 산들과 모든 작은 산과 과목과 모든 백향목이며 짐승과 모든 가축과 기는 것과 나는 새며 세상의 왕들과 모든 백성과 방백과 땅의 모든 사사며 청년 남 자와 처녀와 노인과 아이들아 다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지어다 그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 그 영광이 천지에 뛰어나심이로다" 했습니다. 누가복음 19장 40절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말할 수 없는 무생물, 무이성물을 통해서도 진리를 밝히시고야 말겠다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무생물이나, 무이성물이 다 찬양하라고 하는 것은. 찬송하지 않는 우리를 향한 경고의 말씀인 것입니다. 짖지 못하는 벙어리 개가 있다면, 어느 주인이 좋다고 하겠습니까. 나팔은 소리를 내야하고, 자동차는 달려야 하듯이. 사람의 본문은 주님을 찬송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 찬송은 아무나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찬송'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삼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특별한 은혜인 것입니다. 그래서 보통 노래가 아니라, '새 노래'라고 했습니다. 시 33:3절 말씀에 "새 노래로 그를 노래하며 즐거운 소리로 공교히 연주할지어다" 했습니다. 시 40:3절 에서도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라고 했고, 시 96:1절 말씀엣도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지어다" 했습니다. 계14:3절 말씀에도 보면,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했습니다. 이 세 노래는 구속함을 받은 성도들이 부르는 노래가 바로 새 노래입니다.
그러므로, "새 노래로 찬양할 지어다!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 지어다!" 하고 말씀하는 것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헌신을 다집하시는 성가대 여러분! 우리주 예수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았습니까 그 감격과 기쁨으로 고백되어지는 '새 노래' 가. 여러분의 가슴에 있으십니까. 그 '새 노래'로 주를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여. 마음과 정성 을 모두어. 최고의 것으로 최선의 방법으로. 우리의 모든 삶으로 주를 영화롭게 하며 찬양 하시는 복된 성도들과, 성가대원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92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