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라 (시29:1-2)
본문
정신 위생을 연구하는 데이빗 핀크(David Fink)박사는 '안정을 위한 4박자 균형'이라는 내용을 발표를 하였습니다. 인간이 정신적 안정과 평화를 갖기 위하여는 다음과 같은 네개의 요소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일(work), 놀이(play), 사랑(love), 예배(worship)입니다. 그 첫자를 따서 흔히 WPLW라고 합니다. 목사도 아닌 의학자가 4대 균형 요소에 예배를 넣은 것은 주목할만합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생각하고 나를 신께 맡긴다는 사실이 정신적 안정과 균형을 잡는데 불가결의 요소가 되었다는 핀크박사의 연구는 많은 사례를 통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일 속에는 직업적 활동, 놀이속에는 휴식, 사랑 속에는 대인 관계의 정신적 자세. 예배 속에서는 절대자에 의지하는 신앙적 정신자세가 들어있습니다. 이 네가지의 요소가 골고루 균형이 잡혀야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기독교 실천 생활의
첫째 요소는 바로 '예배'입니다. 누구나 예수를 믿기로 작정하면 가장 먼저 예배를 드리고, 예배를 드리므로서 자신이 기독교인임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무교회주의자들도 예배는 드립니다. 성도의 예배드리는 것을 보면 일년을 시작하고 마치면서 송구영신예배를 드립니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새벽예배를 드립니다. 주일에는 아침과 저녁으로 두 번의 예배를 드리고, 주의 중간에 수요예배와 속회예배, 철야예배를 드립니다. 쉽게 생각하면 하루 한 번 혹은 이틀에 한 번 꼴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98년 매월 1일 첫새벽에 감사예배를 드립니다. 매월 첫째주간 새벽에 여리고 새벽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드리지 않는 사람은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은 믿는데 교회에 안나간다고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하나님이 있다고 지식적으로 아는 것 뿐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배의 당위성과 예배의 자세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1. 누가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하는가 오늘 1절은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권능있는 자들은 히브리어로 ‘베네 엘림’의로 직역하면 ‘신들의 아들들’이라는 말로 ‘천사들’ 혹은 ‘이방인들’ 그리고 ‘통치자들’로 해석이 되어집니다. 이런 해석을 종합해보면 권능있는 자들이란 보통 말하는 인간들 중에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 존재들을 말합니다. 천사는 인간보다 더 뛰어난 존재입니다. 이방인들은 스스로 자신을 위대하다고 말하는 자들입니다. 통치자들은 지배자들을 말합니다. 즉 평범한 인생들뿐만 아니라 권세있는 자들까지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그가 누구이든 무엇을 하는 사람이라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를 예배해야 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모두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예화) 채필근 목사님이 비교종교론 강의를 강의하셨는데, 그 분은 유모어가 풍부하시고 한학과 동양학은 물론 해박한 신학과 철학을 겸비하신 학자였습니다. 본래 채목사님은 철저한 유교가정에서 자라며 유교경전에 심취했습니다.
그런데 14살 되던 해(1898년) 아버지가 복음을 받고 기독교로 개종을 했습니다. 그때 소년 채필근의 심정은 아버지를 이단에게 빼앗긴 것같은 슬픔이 가득했습니다. 기독교로 개종한 아버지는 유명한 한학자로 600여권의 책을 쌓아 놓고 공부하던 분이었습니다. 채필근은 공자에게 하소연을 했습니다. "공자님, 제 아버지는 그리스도교를 좀 알아가지고 그 종교를 공박하고 유교를 옹호하는 글을 쓰시겠다고 하면서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을 보시더니 그만 불행하게도 이단에 빠졌습니다. 성인님께서 이단을 공부하고 연구하면 해롭다고 하심이 이것을 가리키심인듯 합니다. 그러나 저는 결코 성인의 도를 저버리지 않기로 맹세합니다"라며 하소연을 했습니다. 그로부터 1년 후 어느날 아버지가 채필근을 부르더니 내일은 주일이니 예배당에 함께 가자고 했습니다. 변명도 피할 길도 없었습니다. 눈물을 머금고 이단자를따라 난생 처음 예배당엘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날 집으로 돌아와 공자님께 다시 호소했습니다. "공부자님 참말로 죄송합니다. 성인님의 가르침 중에 아버지가 잘못하면 간하고 간하여도 듣지 않으면 울면서 좇으라고 하셨지요. 그리고 세상을 떠나시면 3년까지 고치지 말라 하셨지요. 저도 아버지 세상 떠나시면 3년상 치르고 틀림없이 성인님에게로 돌아오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채필근이 끝내 공자한테 안돌아가고 유명한 목사님이 되셨습니다. 훗날 채목사님은 “공자님께”라는 글속에서 "내가 꼭 다시 성인님에게로 돌아오겠다던 맹세를 지키지 못해 미안합니다. 그러나 나는 오늘날 공자님이 계시다면 그리스도교에 귀의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공자나 소크라테스나 석가모니같은 성인들과 철인들도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신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고 믿는 것이 기독교인의 신앙이기 때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지식이 있는 자도, 힘이 있는 자도, 부자도, 권세가 있는 자도, 지식이 없는 자도, 힘이 없는 자도, 가난한 자도, 권세가 없는 자도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실 분이십니다.
2. 돌리고 돌릴지어다-예배는 계속해서 드려야 합니다. 1절을 보면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찌어다”라고 했습니다. ‘돌리고 돌릴찌어다’라는 말은 계속해서 드리라는 것입니다. 정월 초 하룻날 1년분의 음식을 다 먹을 수는 없습니다. 사흘 휴가 기간동안 1년 밀린 잠을 다 잘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1년에 한번이나 한달에 한번 그리고 일주일에 한번 정도의 예배로는 부족합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이며 교제의 시간입니다. 친한 사람일수록 가까운 사람일수록 만나는 횟수가 많아집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매일 만나고, 만나고 금방 헤어져도 집에가면 전화해서 보고싶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정말 친해지면 한 집에서 함께 사는 것입니다. 예배를 멀리하는 것은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지 못하는 것은 곧 불행입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면 되는 일이 없습니다.
예화) 에디오피아 사도행전 8:26이하를 보면 에디오피아의 국고를 맡은 장관이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빌립을 만나 세례받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국사에 바쁘고 교통조건이 열악했던 때였습니다만, 예배를 드리기 위해 남의 나라를 방문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자기 나라로 돌아가 에디오피아를 기독교 국가로 만드는데 큰 몫을 감당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의 에디오피아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살기 힘든 나라에 들어갑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잘 살던 저들이었습니다만 하나님 신앙을 버리고 예배를 소홀히 하면서부터 하나님의 축복이 에디오피아를 떠난 것입니다.
예화) 미국 195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은 주말이면 모든 상가가 철시를 하고 주일이면 가족들이 정장한 모습으로 교회나가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당시 미국의 국력이나 경제적 영향력이나 정치적 힘은 세계에 제일이 었습니다. 그러나 60가대 민주당이 집권하면서 그리고 세속문화의 거센 도전에 정신문화가 무릎을 꿇기 시작하면서부터 미국사람들은 주말이면 저마다 문을 닫고 바닷가로 산으로 술집으로 들로 빠져나갔습니다. 교회는 텅텅비기 시작했고 문을 닫거나 교회건물을 파는 교회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미국은 날개를 달고 추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세계도처에서 위신이 추락했고 경제가 흔들리고 도덕이 땅에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미국사람들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예배를 포기하자 하나님은 저들을 포기하신 것입니다. 본래 영국을 떠났던 청교도들은 미국 신대륙에 상륙하여 첫 해 지은 농사로 맨 먼저 하나님을 예배하는 교회를 건축했습니다. 청교도 정신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정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맨땅에서 놀라운 축복을 이룰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예화) 한국 한국에 왜 이런 위기가 왔습니까 벌써 오래전부터 한국의 예배의 위기에 대해서 많은 지적이 있었습니다. 1주일 한 번 예배가 공식화 되었고, 새벽예배 인원이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천명이 모이는 교회의 저녁예배 인원이 줄기 시작했습니다. 많아야 백명정도 모이는 것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새벽예배는 몇몇 노인들만이 참석하게 되었고, 대규모 연합예배는 더 이상 모이지 않는 것이 예배의 현실입니다. 이 경제위기의 위기 속에서 우리는 먼저 날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삶을 회복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새벽예배, 주일예배, 저녁예배, 수요예배, 속회예배, 가정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드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 그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릴지어다 예배는 하나님의 이름에 걸맞는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예) 요즈음 TV와 방송에는 김영삼 대통령의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습니다. 온통 김대중 차기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 뿐입니다. 대통령이라는 이름이 붙으니까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대통령이라는 이름에 맞게 경호원도 따르고, 수행원도 따르고, 정부의 모든 일이 보고가 됩니다. 아버지라는 이름을 부를 때에는 거기에 맞게 대접을 해야 합니다.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그 말에 순종하지 않고, 공경하지 않고, 대접하지 않는다면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선생, 스승이라고 부르면서 그 말에 따르지 않고, 가르침에 순종하지 않으면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입니다.
예) 하나님이 금송아지 출애굽기 32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론에게 ‘우리를 인도한 신을 우리를 위해 만들라’고 요청을 합니다. 아론은 백성들에게 금붙이를 가져오라고 명하여 한 형상을 만들었습니다. 출 32: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그 고리를 받아 부어서 각도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하는지라” 이에 대하여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출 32:7-1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숭배하며 그것에게 희생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곧은 백성이로다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하나님은 당신의 모습을 송아지 형상으로 만들고, 이것이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한 신이라고 하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시고 그들을 진멸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자 하나님, 인도자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에게 금송아지 형상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그 이름에 함당한 영광을 돌리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진노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주님은 요한복음 4:24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고 하셨고 바울은 로마서 12:1에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사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 대상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예배를 드려야 하는것입니다. “살아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 근심 전혀없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고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여러 가지 이름으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고백을 드립니다. 그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려야 참된 예배입니다. 구체적으로 바른 예배를 어떻게 드릴 것인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성경 ,찬송, 옷차림, 헌금, 마음가짐 등 미리미리 준비하고 당일에 서둘거나 조급히 굴면 안됩니다.
둘째, 모든 예배시간을 지켜야 합니다. 평양 산정현교회 목사였던 주기철 목사님이 어느 주일날 예배인도를 하고 있는데 그 교회 장로였던 고당 조만식 선생님이 헐레벌떡 교회에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급한 일로 늦었던 것입니다. "조장로님 거기 서 계십시오. 장로님이 늦으면 교인이 본받을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 한마디에 조만식 장로님은 그날 선 채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예배후 목사님을 찾아와 앞으론 어떤 일이 있더라도 늦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다고 합니다. 누구든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시간을 지켜야 합니다. 물론 교통사정, 개인 사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하나님 뵙는 시간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셋째 바른 자세로 드려야 합니다. 태도도 바르게 마음고 바르게 찬송도 기도도 바르게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예배 이외의 다른 사건이나 소음이 예배장소를 어지럽히면 안됩니다. 예를 들어 예배 도중에 핸드폰이 울린다든지 그리고 유유하게 통화를 하고 있다든지 무선호출기의 삐삐움이 들린다든지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은 안됩니다. 그리고 유아가 쿵쾅거리고 활보를 한다든지 울음소리가 남의 예배를 방해해선 안됩니다. 또 조는 것도 죄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혹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이스라엘 백성처럼 고백하면서 금송아지를 만드는 어리석은 성도가 아닙니까 돌덩어리에게 비는 것처럼 잘못된 믿음과 자세를 자긴 것이 아닌지요 살아계신 하나님. 그 이름에 합당하게 영광을 돌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4. 거룩한 옷을 입고 경배하라 옷은 장소에 맞게 입어야 합니다. 수영장에서는 수영복을 입고, 머리에 뒤집어 써야 합니다. 그렇게하지 않으면 수영장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최고급 레스토랑에 들어가려면 양복을 입고, 구두를 신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렇게하지 않으면 쫓겨나다고 합니다. 성막을 공부하는데 가면 실제 크기의 성막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는데 그때에는 꼭 양복을 입고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 예배하는 자들도 입어야 할 옷이 있다고 합니다. ‘거룩한 옷’을 입어라. 예배하는 자들은 거룩한 옷을 입어야 합니다. 구약시대에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들은 세마포 옷을 입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신약세대에 롬13: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주 예수로 옷입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피묻은 옷을 말합니다. 예수의 보혈로 씻어진 것이 거룩한 옷입니다. 죄악을 내어놓고 하나님께 예배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예배하는 자들은 먼저 예수 그리스도 앞에 자신의 죄악을 모두 내어 놓고 회개하므로 정결히 씻긴 상태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합니다. 죄악을 가지고 그냥 예배하는 자는 복은커녕, 저주와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배자는 거룩한 옷을 입고, 먼저 나와 우리의 죄악을 회개하고 예배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여, 보혈의 능력을 힘입어서 예배드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바른 행함이 있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에는 설교,기도,찬송,헌금의 시간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세상 안에서의 믿음, 소망, 사랑, 봉사의 행동도 포함되는 것입니다. 영어로 예배를 "Service'나 "Worship"이라고 합니다. 이 두 단어는 다 같은 뜻으로 사용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위탁하신 일을 행동하여 세상을 향해 섬기는 일은 일종의 예배가 되기 때문이다. 성찬의식을 뜻하는 '미사'(Mass)라고 하는 말은 예배의 제일 마지막에 하는 말, "
Ite Misa est"에서 온 말입니다. 이것을 해석하면 "여기에서 예배는 이것으로 마친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세상을 향해 나가서 행하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렘 14:10-12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그들이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그 발을 금하지 아니하므로 나 여호와가 그들을 받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를 기억하고 그 죄를 벌하리라 하시고/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라/ 그들이 금식할지라도 내가 그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하겠고 번제와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그들을 멸하리라” 삶이 바르지 않으면 하나님이 아무리 예배를 드려도 받지 않으신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바른 행동을 통하여 거룩한 옷을 입어야 합니다. 이 땅에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예배의 삶은 매일 삶속에서 계속되야 합니다. 그 이름에 합당하게 예배하며 거룩한 옷을 입고 예배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첫째 요소는 바로 '예배'입니다. 누구나 예수를 믿기로 작정하면 가장 먼저 예배를 드리고, 예배를 드리므로서 자신이 기독교인임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무교회주의자들도 예배는 드립니다. 성도의 예배드리는 것을 보면 일년을 시작하고 마치면서 송구영신예배를 드립니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새벽예배를 드립니다. 주일에는 아침과 저녁으로 두 번의 예배를 드리고, 주의 중간에 수요예배와 속회예배, 철야예배를 드립니다. 쉽게 생각하면 하루 한 번 혹은 이틀에 한 번 꼴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98년 매월 1일 첫새벽에 감사예배를 드립니다. 매월 첫째주간 새벽에 여리고 새벽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드리지 않는 사람은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은 믿는데 교회에 안나간다고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하나님이 있다고 지식적으로 아는 것 뿐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배의 당위성과 예배의 자세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1. 누가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하는가 오늘 1절은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권능있는 자들은 히브리어로 ‘베네 엘림’의로 직역하면 ‘신들의 아들들’이라는 말로 ‘천사들’ 혹은 ‘이방인들’ 그리고 ‘통치자들’로 해석이 되어집니다. 이런 해석을 종합해보면 권능있는 자들이란 보통 말하는 인간들 중에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 존재들을 말합니다. 천사는 인간보다 더 뛰어난 존재입니다. 이방인들은 스스로 자신을 위대하다고 말하는 자들입니다. 통치자들은 지배자들을 말합니다. 즉 평범한 인생들뿐만 아니라 권세있는 자들까지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그가 누구이든 무엇을 하는 사람이라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를 예배해야 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모두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예화) 채필근 목사님이 비교종교론 강의를 강의하셨는데, 그 분은 유모어가 풍부하시고 한학과 동양학은 물론 해박한 신학과 철학을 겸비하신 학자였습니다. 본래 채목사님은 철저한 유교가정에서 자라며 유교경전에 심취했습니다.
그런데 14살 되던 해(1898년) 아버지가 복음을 받고 기독교로 개종을 했습니다. 그때 소년 채필근의 심정은 아버지를 이단에게 빼앗긴 것같은 슬픔이 가득했습니다. 기독교로 개종한 아버지는 유명한 한학자로 600여권의 책을 쌓아 놓고 공부하던 분이었습니다. 채필근은 공자에게 하소연을 했습니다. "공자님, 제 아버지는 그리스도교를 좀 알아가지고 그 종교를 공박하고 유교를 옹호하는 글을 쓰시겠다고 하면서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을 보시더니 그만 불행하게도 이단에 빠졌습니다. 성인님께서 이단을 공부하고 연구하면 해롭다고 하심이 이것을 가리키심인듯 합니다. 그러나 저는 결코 성인의 도를 저버리지 않기로 맹세합니다"라며 하소연을 했습니다. 그로부터 1년 후 어느날 아버지가 채필근을 부르더니 내일은 주일이니 예배당에 함께 가자고 했습니다. 변명도 피할 길도 없었습니다. 눈물을 머금고 이단자를따라 난생 처음 예배당엘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날 집으로 돌아와 공자님께 다시 호소했습니다. "공부자님 참말로 죄송합니다. 성인님의 가르침 중에 아버지가 잘못하면 간하고 간하여도 듣지 않으면 울면서 좇으라고 하셨지요. 그리고 세상을 떠나시면 3년까지 고치지 말라 하셨지요. 저도 아버지 세상 떠나시면 3년상 치르고 틀림없이 성인님에게로 돌아오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채필근이 끝내 공자한테 안돌아가고 유명한 목사님이 되셨습니다. 훗날 채목사님은 “공자님께”라는 글속에서 "내가 꼭 다시 성인님에게로 돌아오겠다던 맹세를 지키지 못해 미안합니다. 그러나 나는 오늘날 공자님이 계시다면 그리스도교에 귀의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공자나 소크라테스나 석가모니같은 성인들과 철인들도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신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고 믿는 것이 기독교인의 신앙이기 때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지식이 있는 자도, 힘이 있는 자도, 부자도, 권세가 있는 자도, 지식이 없는 자도, 힘이 없는 자도, 가난한 자도, 권세가 없는 자도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실 분이십니다.
2. 돌리고 돌릴지어다-예배는 계속해서 드려야 합니다. 1절을 보면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찌어다”라고 했습니다. ‘돌리고 돌릴찌어다’라는 말은 계속해서 드리라는 것입니다. 정월 초 하룻날 1년분의 음식을 다 먹을 수는 없습니다. 사흘 휴가 기간동안 1년 밀린 잠을 다 잘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1년에 한번이나 한달에 한번 그리고 일주일에 한번 정도의 예배로는 부족합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이며 교제의 시간입니다. 친한 사람일수록 가까운 사람일수록 만나는 횟수가 많아집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매일 만나고, 만나고 금방 헤어져도 집에가면 전화해서 보고싶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정말 친해지면 한 집에서 함께 사는 것입니다. 예배를 멀리하는 것은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지 못하는 것은 곧 불행입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면 되는 일이 없습니다.
예화) 에디오피아 사도행전 8:26이하를 보면 에디오피아의 국고를 맡은 장관이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빌립을 만나 세례받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국사에 바쁘고 교통조건이 열악했던 때였습니다만, 예배를 드리기 위해 남의 나라를 방문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자기 나라로 돌아가 에디오피아를 기독교 국가로 만드는데 큰 몫을 감당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의 에디오피아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살기 힘든 나라에 들어갑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잘 살던 저들이었습니다만 하나님 신앙을 버리고 예배를 소홀히 하면서부터 하나님의 축복이 에디오피아를 떠난 것입니다.
예화) 미국 195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은 주말이면 모든 상가가 철시를 하고 주일이면 가족들이 정장한 모습으로 교회나가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당시 미국의 국력이나 경제적 영향력이나 정치적 힘은 세계에 제일이 었습니다. 그러나 60가대 민주당이 집권하면서 그리고 세속문화의 거센 도전에 정신문화가 무릎을 꿇기 시작하면서부터 미국사람들은 주말이면 저마다 문을 닫고 바닷가로 산으로 술집으로 들로 빠져나갔습니다. 교회는 텅텅비기 시작했고 문을 닫거나 교회건물을 파는 교회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미국은 날개를 달고 추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세계도처에서 위신이 추락했고 경제가 흔들리고 도덕이 땅에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미국사람들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예배를 포기하자 하나님은 저들을 포기하신 것입니다. 본래 영국을 떠났던 청교도들은 미국 신대륙에 상륙하여 첫 해 지은 농사로 맨 먼저 하나님을 예배하는 교회를 건축했습니다. 청교도 정신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정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맨땅에서 놀라운 축복을 이룰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예화) 한국 한국에 왜 이런 위기가 왔습니까 벌써 오래전부터 한국의 예배의 위기에 대해서 많은 지적이 있었습니다. 1주일 한 번 예배가 공식화 되었고, 새벽예배 인원이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천명이 모이는 교회의 저녁예배 인원이 줄기 시작했습니다. 많아야 백명정도 모이는 것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새벽예배는 몇몇 노인들만이 참석하게 되었고, 대규모 연합예배는 더 이상 모이지 않는 것이 예배의 현실입니다. 이 경제위기의 위기 속에서 우리는 먼저 날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삶을 회복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새벽예배, 주일예배, 저녁예배, 수요예배, 속회예배, 가정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드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 그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릴지어다 예배는 하나님의 이름에 걸맞는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예) 요즈음 TV와 방송에는 김영삼 대통령의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습니다. 온통 김대중 차기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 뿐입니다. 대통령이라는 이름이 붙으니까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대통령이라는 이름에 맞게 경호원도 따르고, 수행원도 따르고, 정부의 모든 일이 보고가 됩니다. 아버지라는 이름을 부를 때에는 거기에 맞게 대접을 해야 합니다.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그 말에 순종하지 않고, 공경하지 않고, 대접하지 않는다면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선생, 스승이라고 부르면서 그 말에 따르지 않고, 가르침에 순종하지 않으면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입니다.
예) 하나님이 금송아지 출애굽기 32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론에게 ‘우리를 인도한 신을 우리를 위해 만들라’고 요청을 합니다. 아론은 백성들에게 금붙이를 가져오라고 명하여 한 형상을 만들었습니다. 출 32: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그 고리를 받아 부어서 각도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하는지라” 이에 대하여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출 32:7-1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숭배하며 그것에게 희생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곧은 백성이로다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하나님은 당신의 모습을 송아지 형상으로 만들고, 이것이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한 신이라고 하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시고 그들을 진멸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자 하나님, 인도자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에게 금송아지 형상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그 이름에 함당한 영광을 돌리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진노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주님은 요한복음 4:24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고 하셨고 바울은 로마서 12:1에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사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 대상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예배를 드려야 하는것입니다. “살아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 근심 전혀없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고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여러 가지 이름으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고백을 드립니다. 그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려야 참된 예배입니다. 구체적으로 바른 예배를 어떻게 드릴 것인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성경 ,찬송, 옷차림, 헌금, 마음가짐 등 미리미리 준비하고 당일에 서둘거나 조급히 굴면 안됩니다.
둘째, 모든 예배시간을 지켜야 합니다. 평양 산정현교회 목사였던 주기철 목사님이 어느 주일날 예배인도를 하고 있는데 그 교회 장로였던 고당 조만식 선생님이 헐레벌떡 교회에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급한 일로 늦었던 것입니다. "조장로님 거기 서 계십시오. 장로님이 늦으면 교인이 본받을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 한마디에 조만식 장로님은 그날 선 채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예배후 목사님을 찾아와 앞으론 어떤 일이 있더라도 늦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다고 합니다. 누구든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시간을 지켜야 합니다. 물론 교통사정, 개인 사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하나님 뵙는 시간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셋째 바른 자세로 드려야 합니다. 태도도 바르게 마음고 바르게 찬송도 기도도 바르게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예배 이외의 다른 사건이나 소음이 예배장소를 어지럽히면 안됩니다. 예를 들어 예배 도중에 핸드폰이 울린다든지 그리고 유유하게 통화를 하고 있다든지 무선호출기의 삐삐움이 들린다든지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은 안됩니다. 그리고 유아가 쿵쾅거리고 활보를 한다든지 울음소리가 남의 예배를 방해해선 안됩니다. 또 조는 것도 죄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혹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이스라엘 백성처럼 고백하면서 금송아지를 만드는 어리석은 성도가 아닙니까 돌덩어리에게 비는 것처럼 잘못된 믿음과 자세를 자긴 것이 아닌지요 살아계신 하나님. 그 이름에 합당하게 영광을 돌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4. 거룩한 옷을 입고 경배하라 옷은 장소에 맞게 입어야 합니다. 수영장에서는 수영복을 입고, 머리에 뒤집어 써야 합니다. 그렇게하지 않으면 수영장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최고급 레스토랑에 들어가려면 양복을 입고, 구두를 신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렇게하지 않으면 쫓겨나다고 합니다. 성막을 공부하는데 가면 실제 크기의 성막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는데 그때에는 꼭 양복을 입고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 예배하는 자들도 입어야 할 옷이 있다고 합니다. ‘거룩한 옷’을 입어라. 예배하는 자들은 거룩한 옷을 입어야 합니다. 구약시대에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들은 세마포 옷을 입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신약세대에 롬13: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주 예수로 옷입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피묻은 옷을 말합니다. 예수의 보혈로 씻어진 것이 거룩한 옷입니다. 죄악을 내어놓고 하나님께 예배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예배하는 자들은 먼저 예수 그리스도 앞에 자신의 죄악을 모두 내어 놓고 회개하므로 정결히 씻긴 상태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합니다. 죄악을 가지고 그냥 예배하는 자는 복은커녕, 저주와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배자는 거룩한 옷을 입고, 먼저 나와 우리의 죄악을 회개하고 예배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여, 보혈의 능력을 힘입어서 예배드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바른 행함이 있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에는 설교,기도,찬송,헌금의 시간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세상 안에서의 믿음, 소망, 사랑, 봉사의 행동도 포함되는 것입니다. 영어로 예배를 "Service'나 "Worship"이라고 합니다. 이 두 단어는 다 같은 뜻으로 사용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위탁하신 일을 행동하여 세상을 향해 섬기는 일은 일종의 예배가 되기 때문이다. 성찬의식을 뜻하는 '미사'(Mass)라고 하는 말은 예배의 제일 마지막에 하는 말, "
Ite Misa est"에서 온 말입니다. 이것을 해석하면 "여기에서 예배는 이것으로 마친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세상을 향해 나가서 행하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렘 14:10-12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그들이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그 발을 금하지 아니하므로 나 여호와가 그들을 받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를 기억하고 그 죄를 벌하리라 하시고/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라/ 그들이 금식할지라도 내가 그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하겠고 번제와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그들을 멸하리라” 삶이 바르지 않으면 하나님이 아무리 예배를 드려도 받지 않으신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바른 행동을 통하여 거룩한 옷을 입어야 합니다. 이 땅에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예배의 삶은 매일 삶속에서 계속되야 합니다. 그 이름에 합당하게 예배하며 거룩한 옷을 입고 예배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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