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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 감사하라 (시107:1-9)

본문

본 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어 고국에 돌아올 때 하나님을 찬송해야 할 것을 권고한 시입니다. 모든 시대에 구속된 자에게 적응하는 심령적 교훈으로 차 있는 시입니다. 시 전편을 살펴보면 광야 같은 세상을 여행하는 중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받는 영혼은 하나님의 은혜로써 풍족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죄의 멍에와 사탄의 포로에서 해방되며 병고침을 받으며 인생의 항해, 신앙의 항로에서 고난, 시련, 역풍의 파도가 닥쳐와도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시며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까지 인도해 주시는 자이시니 찬양하라는 시입니다. 아담 클락(Adam Clarke)박사는 시편 107편의 가치를 평가 하기를 “만일 이러한 시가 데오 크리투스(Theo critus)나 버질(Virgil)의 시에 나타났거나 희랍의 비주에서 발견되었다면 하늘에 오를만큼 찬양을 받았을 것이며 걸작으로 평가받았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본문을 읽다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해주셨듯이 우리교회를 인도해 주신 것을 체험하면서 감사하지 아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들을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왜 감사해야 할까요
1. 고통 중에서 건져주셨기 때문입니다. 본문 6절에 보면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라고 했습니다. 그 근심과 고통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저희가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할 성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름으로 그 영혼이 속에서 피곤하였도다.”(4-5절)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광야 사막 길은 애굽에서 해방된 이후 40년의 광야유랑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에서 해방 받아 홍해를 건너는 순간부터 고통이나 절망이나 좌절 따위는 멀리 도망치고 평탄한 길과 행복에로 치닫는 길만 열릴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었습니다. 홍해가 가로놓여 있었고 바로의 기병대가 추격해 왔고 뜨거운 황야가 있었고 원수들과의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한 인간이 모태와 복중생활을 끝내고 고고성과 함께 햇빛 찬란한 세상에 태어납니다. 생각해보면 빛도 없고 소리도 없고 통풍도 되지 않고 그리고 재미난 구경거리도 없는 복중으로 탈출한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고는 거듭되고 계속됩니다. 춥고 덥고 아프고 시끄럽고 짜증스럽고 배고프고 배부르고 하는 따위의 일상적 삶과 고통이 되풀이 됩니다. 시인은 “내가 그 근심 중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 고통에서 건져주셨다.”고 노래합니다. 죽은 신, 응답 못하는 신은 섬길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르짖으면 응답하시는 신이십니다. 우리는 고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 영혼의 아버지이십니다. 주님은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 14:18)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온갖 고통에서 건져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2. 바른 곳으로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본문 7절에 보면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할 성에 이르게 하셨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바른 길로 인도하시고 결국 가나안 땅에 인도해 주셨던 것처럼 우리 역시 험한 세상에서 바른 길로 인도하시고 결국 영원한 가나안 땅에 이르게 해 주십니다. 처음으로 해외 여행을 떠나게 되면 여행 가이드의 책임이 큽니다. 정직하고 친절한 가이드를 만나면 여행이 즐겁고 편안하지만 그 반대의 사람을 만나면 불쾌하고 짜증스럽게 됩니다. 우린 지금 누구의 인도로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가는 그 길이 안전한 곳입니까 그 길로 가도 괜찮은 곳입니까 누가 바른 길입니까 어디로 가야 바른 길이 있습니까 길은 하나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천년만년 생각해 보아도 길은 하나, 인도자도 한 분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시인은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할 성에 이르게 하셨다.”고 노래합니다.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경배와 찬양을 드립시다. 시편 23편 3절에서 시인은 “주께서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고 바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지난 2년동안 하나님께서 많은 환난과 고통 중에서도 바른 길로 인도하사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셨습니다(롬 8:28). 이제 제1기 개척시기를 마감하고, 제 2기 성장시기를 맞이하여 수지중앙 성전을 주시어 감사합니다. 유대인은 성전을 잃어 버렸고 빼앗겼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충성합시다.
3. 좋은 것으로 채워주셨기 때문입니다. 본문 9절을 보면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심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많이 소유했느냐 하는 것이 행복의 조건은 아닙니다. 얼마나 만족하느냐 얼마나 자족하느냐 하는 것이 행복의 조건이 됩니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사는 사람이고, 두 번째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을 구경만 하는 사람이며, 세 번째는 어떤 일을 일으키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은 어떤 일을 일으키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하여, 기도하며 복음을 위하여 물질을 드리며 자신의 삶을 바치는 헌신의 기쁨을 경험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때에 보면 그 대열에 수많은 헌신의 열정을 불태우는 사람들로 가득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오직 승리의 대열에 참여하는 그 기쁨으로 나귀를 기꺼이 바친 사람, 겉옷을 벗어 길에 펴는 사람들, 나뭇가지를 베어서 길에 펴는 사람들, 열심히 환호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 속에는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리면서도 기뻐하는 불타는 열정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우리 앞에 나타나는 영광스런 삶의 결과는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수고한 누군가의 수고와 헌신의 열정 때문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만약 온 교회가 힘을 합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도 못한 채 있다고 하면, 어떻게 그 영광에 합류할 수 있겠습니까 결코 무관심하지 말고 그날의 영광의 반열에 서는 데 소외되지 않도록 감사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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