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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맞이하는 사람 (눅2:13-20)

본문

우리의 삶 속에서는 실상과 허상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이 실상과 허상이라는 것을 인하여 사람들은 이 실상과 허상 사이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안경의 오목하게 들어간 유리로서 제가 쓰고 있는 안경이 오목렌즈고 글씨를 크게 보기 위하여 사용하는 돋보기가 볼록렌즈인데 이 두 렌즈를 통하여 실험을 해 보면 (무게를 가지고 보면)실제로 있는 사물이 있고 가짜로 하나더 보이는 것이 바로 허상이라는 것입니다. 실상은 실제로 있는 것이고 허상은 보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없는 것입니다. 명예 권세 사랑 미움 시기 질투 이러한 것들은 아무리 보고자 해도 보이지 않는 것들로 허상이 아니고 실제로 있는 것들입니다. 우리의 희망과 소망 바라는 것들도 실상은 머리 속에 있는 것들이지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보이지 않으나 실제로 있는 실상이죠 그리고 돈 나무 물 새 물고기 짐승 집 땅 형제들 이것들은 보이는 것으로 실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 중에 어느 것이 진짜고 어느 것이 가짜인가 하는 것이.
(1)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이 영원 한 것입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말을 가만히 생각 해보면 사람은 잠시 살다가 죽으나 그의 업적은 영원히 남게 되는 것입니다. 새종대왕은 죽었으나 그의 이름이 지금도 우리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가 가지고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던 모든 것은 다 다른 사람으로 넘어 가든지 이미 살아지고 없어졌습니다. 성경에는 우리의 인생을 향하여 여러 각도로 말을 하고 있는데 고후4:17-18절에 보면"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성경을 통하여 알 수 있듯이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때가 흐르면 자연히 살아져 없어질 것입니다. 고후5장1절에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오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 게 있는 줄 아나니" 라고 말하고 있으며 히브리서11장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말한 장막집 이란 인간의 몸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보고 있는 몸이나 건물이나 산들까지도 사람들이 파헤쳐 버리니까 산도 살아 지더군요 돈이나 명예나 사람들이 귀하게 보는 모든것 들은 마지막날에는 다 살아질 것입니다. 명예를 얻으면 이 명예는 후대에도 이어 집니다. 세종 대왕의 한글을 만들어 그 이름이 지금도 들리나 그의 가졌던 모든 것은 다 살아지고 없습니다. 야고보서4장 14절에는 "내일일 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시102:3대저 나날이 연기같이 소멸하며 내뼈가 냉과리 같이 탔나이다. 욥기7:7절에"내 생명이 한 호흡 같음을 생각하옵소서 나의 눈이 다시 복된 것을 보지 못 하리이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는 세월이 얼마나 빠른지 날아간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2)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현실이요 우리의 삶의 기초가 됩니다. 진정한 현실은 우리가 보고 있는 세상이 아니고 이 세상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현실이요 사실입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이 사실이듯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주님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 것이 '또한 현실이요 사실입니다.이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인생의 중요한 기초석이 돼야 합니다. 삶의 기초가 돼야 합니다 이것이 없으면 모든것은 잘못되어 있는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실상을 바로 알고 바로 실상인 주님의 나라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1)
그런데 사람들은 허상을 보고 전부 인양 잡으려고 합니다. 높은 장관이나 사장이 돼서 호강해 보고 행복하리라 돈을 많이 벌고 출세를 하여 온 가족이 행복하게 살리라 부모도 잘 모시리라 라고 말하지만 이것도 뜬구름 잡으려는 것에 불과 한 것입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무지개를 잡으려고 달려가는 것과 똑 같은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산에 있는 단풍 나무숲을 보고 아름답다라고 하지만 실상은 그 숲에 가서 땅을 조금만 파 보면 그 속은 벌레가 우글거리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있는 것은 멀리서 바라볼 때 아름다운 것이지 가까이 가면 갈수록 꿈은 살아지고 마는 것입니다 .
2)
그러므로 현실을 바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현실이란 우리가 현실과 나 사이에 주님이 있어서 조금 떨어져 있을 때 바로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연인들끼리는 무엇이 좋고 나쁜지 알 수 없고 사건 속에 푹 빠져 있으면 주님이 보이지 않고 사건만 보이듯이 사건에서 떨어지려면 사건과 나와의 관계에서 주님이 계심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라는 현실을 바로 직시하고 바라볼 때에 한해서 세사의 꿈이라는 것도 아름다운 것이 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
그러므로 주님을 믿는 것은 모든 것의 시작이요 출발점입니다. 주님을 모른다면 모든 것이 실상으로 보인다고 해도 실 사은 꿈에 불과하고 허상인 없는 것입니다 4)주님은 온 우주에 충만하십니다. 시편 139:7-12절에 보면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 내가 하늘에 울라 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나를 붙드 시리이다.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정녕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취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일반이니이다."라고 말하고 있고 예레미야 23:24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기를 은밀 한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라고 말씀하고 있어 주님의 영광과 기운이 온 땅에 충만한 것을 봅니다.
(3)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믿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태어나셨다고 말을 전하는 유대 사람은 주님이 태어낮는대도 기이히 여기고 돌아가고 맙니다. 그로 인하여 이들은 주님을 바로 알지 못하여 주님을 사단의 왕(바알세불) 의 힘을 입고 능력을 행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1)주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의 음성은 주님을 사모하는 자가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을 사모하심으로 주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ㄱ. 우리의 삶 에서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삶을 영위하면서 주님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무리 기도를 하고 주님을 만나려고 한다고 해도 주님을 만나거나 주님의 음성을 들을수가 없는 것입니다.
ㄴ. 말씀을 통해서 주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들려 오기도 합니다.
ㄷ.기도할때 주님의 음성이 여러 모양으로 들려 옵니다.
2)말씀을 따지거나 앞뒤 판단하고 믿는 것이 안입니다. 말씀을 순수하게 믿는 것은 생활 형편이나 여건이나 문화적이라도 이것들을 가지고 판단하지를 말아야 합니다.
(3)빨리 행해야 주님을 맞이하게 됩니다. 기회란 항상 있는 것이 아니고 머물러 있는 것도 아닌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 16절에 목자들은 천사가 전하여 준 온 세상의 기쁜 소식을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야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고하니" 라고 고했다고 말하고 있다.
1)교회는 주일에만 봉사할 기회가 있기 때문에 한번 만나면 일주일이 그냥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2)사단이 시간을 빼앗아 갑니다. 사단은 사람들의 생활과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지고 사람들의 시간을 다 빼앗아 갑니다.
ㄱ. 건강 한시간을 기다리다가는 나이가 이미 흘러 늙은 후가 되고 맙니다.
ㄴ. 사회적으로 바빠서 사람들은 좋은 시간은 먹고사는데 다 사용하고 남은 강보 같은 시간만 사용하여 주님을 섬기는데 쓰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온전한 봉사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공부한다고 바쁘고 주부들은 살림한다고 바쁘고 나머지는 직장에 사업에 바쁘기 때문에 나머지 강보 같은 시간을 주님께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3)목자와 같은 사람이 주님을 맞이하다 됩니다. 목자는 무엇인가 부족한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5장에 팔복에보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 온유 한자는 복이 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다. 마음이 청결 한자는 복이 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다. 위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어 무엇인가 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주님을 만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1)수용적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남의 말이 맞는가 틀리는가 해보고 알아보고 잘못된 것을 말해야 합니다. 주님이 아니라는데 이스라엘의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버리지 않고 망했습니다.
2)목자들은 믿고 영광을 돌리고 찬양하며 돌아 같습니다. 진정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찬양은 듣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시킵니다. 그리고 주님의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게 됩니다. 찬양을 곡조 있는 기도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찬양으로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고 자 하는 기도를 주님께 찬양을 함으로 주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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