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의 배반 (막14:43-52)
본문
유다는 그의 마음에 다짐한대로 그대로 행함으로 예수를 잡기 위하여 많은 무리들을 이끌고 예수께서 기도하시는 그 동산으로 무리들을 이끌고 왔다. 그들은 이미 산헤드린 공의희의 체포명령을 받았고, 예수를 잡기 위하여 로마의 협조를 받아 완전 무장을 하고 나아왔다. 유다와 다른 제자의 배신
1. 유다의 배신(43-49)
1 사랑의 입맞춤이 배신의 신호였다. 유다는 예수를 잡기 위해서 많은 사람을 끌고와서 예수께 입맞출 때 그를 잡으라고 하였다. 입맞춤은 당시에 제자들이 스승에게 존경이나 애정을 표시할 때 일상적으로 하는 행위이다. 벧전 5:14 너희는 사랑의 입맞춤으로 피차 문안하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그러나 그 사랑의 행위를 배신하는 표식으로 쓰고 있다. 구약에도 이런 행위가 기록되어 있다. 삼하20:9 요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형은 평안하뇨 하며 오른손으로 아마사의 수염을 잡고 그 입을 맞추려는 체하매 삼하20:10 아마사가 요압의 손에 있는 칼은 주의치 아니한지라 요압이 칼로 그 배를 찌르매 그 창자가 땅에 흐르니다시 치지 아니하여도 죽으니라 유다는 사랑을 배반한 사람이고, 사랑의 행위를 이용하여 자기의 뜻을 이루려는 사람이었다. 그런 유다의 모습은 마리아의 헌신에 대한 태도에서도 볼 수 있다. (사람을 사랑하는척 하며 차라리 팔아 간나한 자에게 주면 더 나으리라고 하였다.) 사랑을 저버린 자가 바로 유다이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저버린 신앙인이 아닌지
2 그를 잡아 단단히 끌어가라. 마가에만 기록된 부분으로 유다의 배반이 얼마나 가증스럽고 비열하며 오나고한 지를 보여주는 본문이다. 한 때 자기의 스승이며, 자기가 따르던 그 예수, 자기를 아기고 사랑하여 돈주머니를 맡겼던 그 예수를 버리는 유다의 모습. 인간의 완악함을 보게 한다. 아마 유다의 마음 가운데는 어떤 두려움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예수의 능력에 대한 두려움, 제자들의 반항에 대한 두려움 그리하여 예수를 곽잡아가라고 한 것이다. 죄는 두려움을 낳는다. 그리하여 죄짓고 못산다.
3 검을 잡고 대항하는 제자를 항하여 검을 가진 자는 검으로 망한다. 의 나라는 검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의 나라는 의 통치는 무력과 폭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랑과 평화와 정의에 의한 것임을 다시 말씀하시고 있다. 이것은 앞으로 제자들이 이루어야 할 길이며, 가야할 길이다. 평화의 길.
2. 제자들의 반응(50-52)1 제자들이 다 도망갔다. 불과 몇시간 전에는 목숨을 걸고 맹세하였던 제자들인데 지금 다 도망가고 말았다. 왜 실패한 자들이 되었는가 자기를 신뢰하였기 때문이다. 인간의 자기 의지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이제 그들은 이 사건을 통하여 인간의 의지에 대한 자기 신뢰가 아니라 의 은총을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의 실패는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겟세마네에서 잠들어 있었다. 깨어 기도하지 않는 자는 그런 실패를 맛볼 수밖에 없다
2 베 홑이불을 버리고 도망. 한 청년은 자기의 베 홋이불를 버리고 알몸으로 도망하였다. 한 청년의 이런 모습을 통하여 도망치는 제자들의 비참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주님의 체포 앞에 체면과 모든 것을 버리고 나만 살겠다고 도망하는 어던 청년의 모습은 혹 나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그것을 버리고, 나만 편하겠다고, 나만 살겠다고 아우성 치는 인간들의 모습이 아닌가 아마 우리가 그 모습을 보았다면 온갖 손가락질과 조롱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오늘 그런 삶을 살고 잇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를 판 가롯유다와 예수를 버리고 도망한 제자들. 오늘 우리가 예수를 팔지 않았어도 예수를 버리고 도망한 자가 아닌가
1. 유다의 배신(43-49)
1 사랑의 입맞춤이 배신의 신호였다. 유다는 예수를 잡기 위해서 많은 사람을 끌고와서 예수께 입맞출 때 그를 잡으라고 하였다. 입맞춤은 당시에 제자들이 스승에게 존경이나 애정을 표시할 때 일상적으로 하는 행위이다. 벧전 5:14 너희는 사랑의 입맞춤으로 피차 문안하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그러나 그 사랑의 행위를 배신하는 표식으로 쓰고 있다. 구약에도 이런 행위가 기록되어 있다. 삼하20:9 요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형은 평안하뇨 하며 오른손으로 아마사의 수염을 잡고 그 입을 맞추려는 체하매 삼하20:10 아마사가 요압의 손에 있는 칼은 주의치 아니한지라 요압이 칼로 그 배를 찌르매 그 창자가 땅에 흐르니다시 치지 아니하여도 죽으니라 유다는 사랑을 배반한 사람이고, 사랑의 행위를 이용하여 자기의 뜻을 이루려는 사람이었다. 그런 유다의 모습은 마리아의 헌신에 대한 태도에서도 볼 수 있다. (사람을 사랑하는척 하며 차라리 팔아 간나한 자에게 주면 더 나으리라고 하였다.) 사랑을 저버린 자가 바로 유다이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저버린 신앙인이 아닌지
2 그를 잡아 단단히 끌어가라. 마가에만 기록된 부분으로 유다의 배반이 얼마나 가증스럽고 비열하며 오나고한 지를 보여주는 본문이다. 한 때 자기의 스승이며, 자기가 따르던 그 예수, 자기를 아기고 사랑하여 돈주머니를 맡겼던 그 예수를 버리는 유다의 모습. 인간의 완악함을 보게 한다. 아마 유다의 마음 가운데는 어떤 두려움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예수의 능력에 대한 두려움, 제자들의 반항에 대한 두려움 그리하여 예수를 곽잡아가라고 한 것이다. 죄는 두려움을 낳는다. 그리하여 죄짓고 못산다.
3 검을 잡고 대항하는 제자를 항하여 검을 가진 자는 검으로 망한다. 의 나라는 검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의 나라는 의 통치는 무력과 폭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랑과 평화와 정의에 의한 것임을 다시 말씀하시고 있다. 이것은 앞으로 제자들이 이루어야 할 길이며, 가야할 길이다. 평화의 길.
2. 제자들의 반응(50-52)1 제자들이 다 도망갔다. 불과 몇시간 전에는 목숨을 걸고 맹세하였던 제자들인데 지금 다 도망가고 말았다. 왜 실패한 자들이 되었는가 자기를 신뢰하였기 때문이다. 인간의 자기 의지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이제 그들은 이 사건을 통하여 인간의 의지에 대한 자기 신뢰가 아니라 의 은총을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의 실패는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겟세마네에서 잠들어 있었다. 깨어 기도하지 않는 자는 그런 실패를 맛볼 수밖에 없다
2 베 홑이불을 버리고 도망. 한 청년은 자기의 베 홋이불를 버리고 알몸으로 도망하였다. 한 청년의 이런 모습을 통하여 도망치는 제자들의 비참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주님의 체포 앞에 체면과 모든 것을 버리고 나만 살겠다고 도망하는 어던 청년의 모습은 혹 나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그것을 버리고, 나만 편하겠다고, 나만 살겠다고 아우성 치는 인간들의 모습이 아닌가 아마 우리가 그 모습을 보았다면 온갖 손가락질과 조롱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오늘 그런 삶을 살고 잇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를 판 가롯유다와 예수를 버리고 도망한 제자들. 오늘 우리가 예수를 팔지 않았어도 예수를 버리고 도망한 자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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