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같은 교회 (눅14:34-35)
본문
교회는 예배당 건물보다 성도들이 중요합니다. 주님의 지체가 된 성도들, 천국의 시민권을 가진 신자들이 모이는 교회여야 합니다. 교회의 정치는 신정정치로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야 만세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로서 가장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모일 때마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든지, 헌금을 바치든지, 찬양을 부르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교회는 성도들이 모일 때마다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은혜를 받으면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달아 감사하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달아 감사하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신자가 됩니다. 또한 교회는 성도들이 모일 때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나라를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수많은 형제들을 위해서, 그리고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기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지 않으면 악마를 이기지 못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악마의 종노릇을 하게 되고 교회에 유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쓴뿌리 노릇만 하게 됩니다. 신앙의 최고의 목표는 예수님이십니다.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주님의 모습을 닮게 됩니다. 주님의 생각이 내 생각이 되고 주님의 사랑이 내 사랑이 되고 주님의 계획이 내 계획이 됩니다. 이것이 제일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로 옷입고 그리스도를 보여주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누려야 할 제자의 삶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특별한 각오 없이 호기심을 가지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 다니는 수많은 무리에게 예수님은 제자가 될 것을 말씀하시면서 결론적으로 주님을 따르는 사람은 그 맛을 잃어버린 소금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26-27, 33절). 예수님을 따르다가 타락한 자들과 배교한 자들의 생태가 얼마나 비참한가를 설명하시면서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었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땅에도 거름에도 쓸데없어 내어 버리느니라.”(34-35)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 세상에 대해서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소금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1. 소금은 조미료 역할을 합니다. 욥기 6:6에 “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음식은 소금으로 맛을 냅니다. 음식은 각각 자기의 맛을 가지고 있지만 소금이 들어가기 전에는 제맛을 내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소금은 맛의 근본입니다. 맛 없는 음식을 맛있게 하는 것이 소금인 것 같이 맛 없는 세상을 맛있게 만드는 것이 우리 성도들의 책임인 것입니다.
2. 소금은 방부제 역할을 합니다. 썩기 쉬운 생선 같은데다가 소금을 뿌려 놓으면 썩는 것을 막아 주어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듯이 우리 성도들은 죄악으로 타락해가는 세상에서 죄악으로 썩어 가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소금의 역할이 부패를 방지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 역시 그가 어느 곳에 있든지 그 곳에서 세상이 부패하지 않도록 방부제 역할을 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기독교인 때문에 사회의 부정 부패가 없어지고 우리 기독교인 때문에 사회의 불신풍조가 없어져야 합니다.
3. 소금은 해독제 역할을 합니다. 엘리사는 여리고성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물이 좋지 않아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졌으나 소금으로 그 물을 해독하여 토산의 열매를 맺게 했습니다(왕하 2:19-22). 어느 약품이건 소금이 사용되지 않는데가 없다고 합니다. 바닷가에서 손이나 팔, 발에 상처가 났을 때 바닷물에서는 소독이 되어 곧 낫습니다. 여하간 소금은 정결케하고 해독제의 역할을 합니다. 소금은 자신이 녹아지고 없어짐으로 맛을 내고 방부제가 되고 해독제가 되어 소금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모두 다 소금이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자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지 않으면 악마를 이기지 못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악마의 종노릇을 하게 되고 교회에 유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쓴뿌리 노릇만 하게 됩니다. 신앙의 최고의 목표는 예수님이십니다.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주님의 모습을 닮게 됩니다. 주님의 생각이 내 생각이 되고 주님의 사랑이 내 사랑이 되고 주님의 계획이 내 계획이 됩니다. 이것이 제일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로 옷입고 그리스도를 보여주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누려야 할 제자의 삶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특별한 각오 없이 호기심을 가지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 다니는 수많은 무리에게 예수님은 제자가 될 것을 말씀하시면서 결론적으로 주님을 따르는 사람은 그 맛을 잃어버린 소금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26-27, 33절). 예수님을 따르다가 타락한 자들과 배교한 자들의 생태가 얼마나 비참한가를 설명하시면서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었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땅에도 거름에도 쓸데없어 내어 버리느니라.”(34-35)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 세상에 대해서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소금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1. 소금은 조미료 역할을 합니다. 욥기 6:6에 “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음식은 소금으로 맛을 냅니다. 음식은 각각 자기의 맛을 가지고 있지만 소금이 들어가기 전에는 제맛을 내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소금은 맛의 근본입니다. 맛 없는 음식을 맛있게 하는 것이 소금인 것 같이 맛 없는 세상을 맛있게 만드는 것이 우리 성도들의 책임인 것입니다.
2. 소금은 방부제 역할을 합니다. 썩기 쉬운 생선 같은데다가 소금을 뿌려 놓으면 썩는 것을 막아 주어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듯이 우리 성도들은 죄악으로 타락해가는 세상에서 죄악으로 썩어 가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소금의 역할이 부패를 방지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 역시 그가 어느 곳에 있든지 그 곳에서 세상이 부패하지 않도록 방부제 역할을 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기독교인 때문에 사회의 부정 부패가 없어지고 우리 기독교인 때문에 사회의 불신풍조가 없어져야 합니다.
3. 소금은 해독제 역할을 합니다. 엘리사는 여리고성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물이 좋지 않아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졌으나 소금으로 그 물을 해독하여 토산의 열매를 맺게 했습니다(왕하 2:19-22). 어느 약품이건 소금이 사용되지 않는데가 없다고 합니다. 바닷가에서 손이나 팔, 발에 상처가 났을 때 바닷물에서는 소독이 되어 곧 낫습니다. 여하간 소금은 정결케하고 해독제의 역할을 합니다. 소금은 자신이 녹아지고 없어짐으로 맛을 내고 방부제가 되고 해독제가 되어 소금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모두 다 소금이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자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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