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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장애자가 되지말라 (막9:3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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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장애인의 날이며, 교회적으로는 장애인 선교주일로 지킵니다. 장애인은 크게 두가지로 분류를 합니다.
1 선천성 장애-나면서부터 장애를 가진 자를 말합니다. 행3:2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우리 주위에 이런 장애자들을 보게 됩니다. 소아마비,
2 후천성 장애-사고나 병에 의한 장애 정상적인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가다가 어느날 갑자기 사고에 의하여 생긴 장애 삼하 4:4에 보면 “사울의 아들 요나단에게 절뚝발이 아들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므비보셋이라 전에 사울과 요나단의 죽은 소식이 이스르엘에서 올 때에 그 나이 다섯살이었는데 그 유모가 안고 도망하더니 급히 도망하므로 아이가 떨어져 절게 되었더라”
예) 상이용사, 산업재해, 교통사고, 뜻하지 않은 질병으로 얻어진 장애 우리는 선천성 장애인이 아니기에 장애에 대하여 별다른 생각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사고는 누구에게나 예외가 없고, 장애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한 사람 모두가 “예비 장애인”이다.
예) 교회에 찾아오는 장애인들이 많다. 하나님께 감사. 예수님의 장애인에 대한 관심 눅 4:18-19에 예수님이 그의 고향인 나사렛에서 읽은 성경이 기록되어 있는데, 예수의 메시야선언이라고 한다. “주의 성령님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사61:1) “눈먼 자를 다시 보게하는 것”이 예수님의 메시야 사역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실제적인 장애자의 치유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공생애에 얼마나 많은 장애자를 치유하였는가 마12:22 눈멀고 벙어리 된자를 고치심. 마 9:27-31 두소경을 고치심 막7:31-35 귀먹고 어눌한 자 막8:22-26 베데스다의 소경 예수의 제자들도 예수의 사역을 뒤이어 장애자를 치유하였다. 성전 미문에 앉아있던 앉은뱅이를 일으킨 사건은 대표적인 장애인 치유사건이다. 예수의 십자가의 은혜와 그의 보혈은 장애자를 일으키는 능력이며 힘이다. 오늘 우리에게 그런 능력이 있어야 한다. 교회와 성도는 그런 일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들의 복지를 위해 신경써야 할뿐만 아니라 주의 능력으로 그들을 일으켜야 한다.
예수님은 눅14:15-24에서 큰 잔치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느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어 놓고 자기의 종들을 보내 많은 사람을 초청하였다.
그런데 사람들은 각각 밭을 샀으매 나가봐야 한다, 소를 샀으니 시험해 보아야 한다, 장가가서 못가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주인은 종들에게 길에 나가서 사람들을 데려오라고 하는데 “집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눅14:21) 예수님은 주님의 잔치자리에 정상인은 참여하지 못하고 장애인들만 참석했다고 말하고 있다. 장애인들의 영적 열심을 주님은 칭찬하고 있다. 비록 그들은 몸은 불편하지만 하나님나라를 향한 영적 열심이 더 크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헬렌켈러-귀머거리, 소경으로 온갖 장애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예수 안에서 새 생명을 얻고 장애를 이기며 이 땅에 소리는 듣지 못했지만 하늘의 음성을 듣고 심령을 울리는 많은 시를 썼다. 그는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신앙으로 쓴 그의 시를 통하여 많은 정상인들이 위로와 은혜를 받는다. 송명희-뇌성마비 시인 뇌성마비로 제대로 자기를 가누지도 못하지만 아름다운 믿음으로 주님을 찬양하고 있다. 그의 주옥같은 시들을 우리가 찬양으로 부르며 은혜를 받고 있다. “그 이름”-예수 그 이름 나는 말할 수없네 “너의 쓴잔”-너의 쓴잔을 내가 마시었고 “나”-나 가진 재물 없어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쓴 잔”-주님의 쓴잔을 맛보지 않으면 주님의 쓴잔을 모르리 주님의 괴로룸 당하지 않으면 주님의 고통을 모르리 주님의 십자가 져보지 않으면 주님의 죽으심 모르리 주님의 쓴잔은 내것이요 주님의 괴로움 내것이며 주님의 십자가 내보물이라 또한 그의 부활 내 영광이라 장애는 결코 부끄러움도 놀림거리도 아니다. 단지 불편할 뿐이다. 육적인 장애가 곧 영적인 장애가 아니다. 사6: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영적장애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1. 영적인 귀머거리가 되지말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우이독경-소귀에 경 읽기라는 말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임재와 하나님의 계명을 받았다. 또 하나님의 종들에 의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선지자들은 “여호와가 말씀하신다” 고 하며 계속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이스라엘에게 들려주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 이사야는 이스라엘의 영적 어리석음을 꾸짖고 있다. 영적 귀머거리임을 질책하고 있다.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 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기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 아니하니 ”(렘6:10) “청종하기를 싫어하며 등으로 향하며 듣지 아니하려고 귀를 막으며 ”(슥7:11) 예수님도 설교를 하신 후에 “들을 귀 있는 자들은 들을 지어다” 천국의 비유를 말씀하실 때에 그 마지막에 항상 “들을 귀 있는 자들은 들을지어다”고 하시며 “들을 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 영적인 귀머거리가 되는가 들으면서도 듣지 못하는가
1 무지하기 때문이다.-하나님의 음성을 알지 못하며,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무엘이 하나님을 처음 만날때에 “사무엘아!”“사무엘아!”하고 하나님이 불렀지만 그는 듣고도 대답하지 못하였다. 알지못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소리를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듣지 못한다. 바로 믿지 않는 자들을 말하는 것이다.
2 무신경하기 때문이다.-다른 곳에 신경을 쓰다보니, 어느 한 곳에 집중하다보니 소리를 듣지 못한다.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전화벨, 노크소리를 듣지 못한다. 아이들이 TV에 빠져들어가면 아무리 소리질러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이유는 다른 곳에 관심을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TV소리, 음악소리, 라디오, 이웃의 말. 많은 곳에 관심을 갖고 많은 소리를 듣다보니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 (딤후4:4)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 무지와 무신경이 들을 것을 듣지 못하게 하고 깨닫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영적 귀머거리된 우리의 귀가 열려져서 하나님의 음성을듣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2. 영적소경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한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받았다. 그들은 애굽에서 나오기 전에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 10가지를 보았다. 마지막 체험은 그들의 눈앞에서 애굽의 장자들이 죽고 애굽에 온통 애곡하는 모습이었다. 그들 앞을 가로막는 홍해가 갈라지는 것도 체험하였고, 그 홍해에 애굽의 군대가 수장되는 것도 보았다. 반석을 치니 물이 나오고,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서 얻는 역사도 보았다. 또 시내산에서 모세가 내려올 때 그의 얼굴에 나는 광채도 체험을 하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눈앞에서 놀라운 이적을 많이 베푸셨다. 그들은 놀라운 이적을 보았지만 그 뒤에 있는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를 깨닫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께 불평하며, 불만하는 백성들이었다. 하나님을 배반하는 백성들이었다.
2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가장 큰 행운아였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메시야를 직접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보기는 보되 나사렛의 목수만 보았지 메시야를 보지 못했다. 베들레헴의 여관 주인은 독생자 예수를 맞이할 수 있었지만 한 배부른 여인 마리아만 보았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보지 못하였다. 예수가 기적과 이적을 행할 때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 예수가 행하는 이적은 보았지만 메시야를 보지 못하였다. 그들은 결국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치는 무리들이 되었다. 영적인 소경된 유대인들은 자기 땅에 온 예수, 자기들이 그렇게 고대하고 기다리던 예수를 왔음에도 불구하고 맞이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성전에 있던 시므온은 아기 예수를 보고 그를 앉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나이다.” 영안이 뜨인 사람과 뜨이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엄청남을 우리는 보게된다. 영적 소경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한다. 된 요나는 니느웨의 12만명이 구원받는 놀라운 은혜를 보지 못하고 단지 이방인들에게 심판이 임하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였다. 영적 소경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깨닫지 못한다. 롯의 사위들은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에 대하여 그렇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땅의 악함이 얼마나 큰가를 보면서도 하나님의 심판을 깨닫지 못하였다. 롯의 처는 불과 유황의 심판을 보면서도 하나님의 심판을 보지못하고 뒤돌아봐 소금기둥이 되었다. 노아의 시대에 사람들은 노아가 만드는 큰 방주를 보면써도 하나님의 심판을 깨닫지 못하였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심판이 계속하여 나타나고 있다. 그것을 보는 영적인 눈이 뜨여져야 한다. 남편과 자녀가 교회에 나오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의 은혜를 보아야 하며, 남편과 자녀가 교회에 나오지 않을 때 하나님의 심판을 보아야 한다. 나에게 주신 건강과 자녀의 평안, 산업의 지속됨을 볼 때 하나님의 은혜를 봐야 한다. 내 안에 있는 실패, 좌절, 이웃에서 일어나는 온갖 사고, 자연의 재해를 보면서 하나님의 심판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영적인 눈을 뜬 사람만이 하나님을 볼 수 있고, 하나님을 맞이할 수 있다. 영적인 눈을 뜬 사람만이 지극히 작은자 가운데 있는 예수를 보고 영접하는 것이다. 영안이 뜨이지 않으면 소경된 인도자가 될 수 밖에 없다. 남의 눈에 티만 보고 자기 안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는 자가 된다. 영안이 뜨여서 예수를 보고, 하늘 나라를 보며, 자기의 영적인 상태를 볼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성경은 우리에게 장애자가 되라고 한다.(막9:38-50) 43-불구자로 영생 두손으로 지옥 45 절름발이로 영생 두발로 지옥 47 한눈으로 하나님나라 두누으로 지옥 하나님은 우리에게 온전한 육체를 가지고 범죄하느니 차라리 범죄한 것을 잘라 장애자가 되어서라도 천국에 들어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에게 유익이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장애자라서 눈으로 죄 안짖고, 손으로 죄 않짖고, 발로 죄 안져서 천국에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육체의 건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적인 건강이 중요합니다. 육체가 건강해서 매일 술퍼먹고, 음탕한 짓이나 하고, 싸움이나 하고, 노름이나 하며 죄를 짖느니 차라리 몸이 병들어 다 죽어가게 누워 있어도 말씀과 기도하면 사는 사람이 낫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모습으로 사람을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의 영적인 상태를 보시기 바랍니다. 요즈음 정치인들 얼굴은 번들번들하고, 살을 퉁퉁하며, 다들 생기기는 멀쩡하게 생겼지만 영적으로 다 죽어있는 얼마나 불쌍한 사람들입니까 영적인 장애를 이기시기 바랍니다. 영적 귀머거리, 소경이 되지말고 성령님충만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을 보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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