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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이 사람들을 먹게할까? (요6:1-15)

본문

예수님이 공생애의 시작을 위하여 40일을 금식하시고 주리셨을 때에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십니다. 마귀는 돌로 떡을 만들라고 유혹합니다. 그 때에 예수님의 대답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을 사는 것”이라고 응답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의 사람들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인양 그렇게 살아갑니다. 하루종일 그들의 삶은 떡을 위한 삶입니다. 그러나 인생은 육신만의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돈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돈으로 큰 집은 살 수 있어도 가정의 행복은 못사는 것입니다. 돈으로 좋은 침대는 살 수 있어도 편안한 잠은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좋은 음식은 사 먹을 수 있어도 참 만족은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좋은 옷은 사 입을 수 있어도 마음의 따스함은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쾌락은 살 수 있어도 진정한 사랑은 살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영혼이 있습니다. 정신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떡으로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예)헤밍웨이의 자살-“나는 필라멘트가 끓어진 전구처럼 소망없이 싸늘히 식어진 존재”라고 말하고 죽었습니다.
예)마이클 잭슨-그의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아이가 잭신일 것이다. 그는 공연이 끝난 후 늘 혼자 웁니다”
예)어거스틴-“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기 까지는 참 만족은 없습니다” 인간은 죄로 오엽된 존재였습니다. 그 죄를 위하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인간은 죄 때문에 가장 불행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바로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이 예수를 만나기 까지는 인간은 결콜 행복할 수도 그리고 영원한 생명도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돌아볼 것은
그렇다면 우리 기독교도 다른 종교처럼 육신의 삶은 도외시하고 영적인 것만을 추구하여야 하는가 하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하므로서 우리가 기도할 때에도 육신적인 문제나 생활적인 문제등으로는 기도하여서는 안되는 것처럼 여길 때가 종종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에게로 몰려오는 많은 사람들의 양식문제를 주님이 거론하십니다.
예)우리가 주의해야 할 신앙적인 문제-기복적인 신앙과 고행적인 신앙을 동시에 경계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온 것은 양으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영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시지만 또한 우리의 육신의 삶에도 관심을 가지시는 우리 아버지 이시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 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십니다.-오늘 주님에게 오천명이라는 사람이 몰려왔습니다. 이 사람들은 유월절 명절을 맞아서 예루살렘에 모여온 순례자들입니다. 이들을 먹이는 문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1.이 문제를 풀어가는 일에 있어서 세사람이 나옵니다.
1)빌립-처음부터 포기합니다. 이백데나리온이라는 돈을 계산합니다. 이 돈은 하루 노동자의 품삯입니다. 그러니 이 돈은 노동자가 전혀 쓰지않고 6개월간 벌어도 될까 말까한 돈입니다. 빌립처럼 계산에 빠른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은 믿음이 잘 심어지지 않습니다. 작은 문제는 잘 풀지 모르지만 큰 문제는 풀지 못합니다.
예)가룟유다-옥합 깨뜨리는 여인앞에서 계산합니다. 300데나리온이라고 합니다. 무슨 일을 하여도 계산하고 따지는 사람은 교회에나 본인에게 유익이 되지 않습니다.
2)안드레-한 아이의 한끼 식사를 들고 옵니다. (요6:9)“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보리떡은 나귀도 먹는 음식으로 가난한 사람이 먹는 음식입니다. 물고기는 “잌투스”라고 하는데 요한은 “옵사리온”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것은 신앙적인 삶은 도전하지만 마음은 불신앙으로 차있는 사람입니다. 문제가 있으면 믿는다고 하며 기도도합니다. 그러나 마음에는 여전히 불신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기도해도 소용없어. 하나님도 이것만은 어쩔 수 없어라는 마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의와로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나이아가라폭포에서의 줄타기-그러나 함께 타는 사람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기도하여도 믿음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약1:6-7)“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3)예수님-(요6:5)“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주님은 이 문제의 해답이 어디에서부터 나오는 지를 아시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문제 해답이 어디에서 비롯되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모든 해답이 그에게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인생의 해답이 그에게 있습니다. 죄의 문제, 영생의 문제, 죽음의 문제, 인간의 문제, 삶의 문제, 가정의 문제등 이 문제의 답이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문제를 하나님에게로 가지고 가십니다. 그럴때에 그 많은 무리를 먹일 수 있는 기적의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좀더 구체적으로 예수님의 기적은 어떻게 일어났나요
1.한 아이의 헌신을 통하여서 일어났습니다. 보잘것없는 것을 주님앞에 내려 놓았을 때에 주님은 그것으로 일하셨습니다. 주님의 역사는 그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병든 신앙은 바로 이런 생각입니다. 어떤 수고도 헌신도 믿음도 없이 그저 하늘에서 공짜로 축복을 주시고 무엇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예)우리 기독교의 복음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그냥 이런 복음이 전파되어 진 것이 아닙니다. 많은 믿음의 선배들의 수고와 헌신과 믿음으로 인한 순교의 피를 통하여 이 땅에 복음의 꽃이 피고 열매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예)헌신과 수고를 싫어하는 사람들-이혼할 때에 아이 안갖겠다고 하고, 고아원에 보냅답니다. 교회생활에도 이것이 현저히 나타납니다. 큰 교회를 선호하고 숨어서 예수 믿습니다. 심어야 거둘 수 있습니다. (고후9:6)“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우리의 것이 비록 보잘것없고 초라한 것이라도 주님의 손에 들려질 때에 주님의 역사와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2.감사의 삶입니다. 축사하셨습니다. 감사하셨다는 말입니다. 기가막힌 장면입니다. 이 감사는 미래적인 감사입니다. 감사는 신앙의 가장 차원 높은 수준인 것이 분명합니다.
예)김현양-1471번 수의를 달고 형집행을 받던 날. 그의 마지막 말이 무엇일까 “참회합니다. 저같은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이 신비를 온 천하에 전하고 싶습니다.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하늘나라에 갈 것을 확신합니다. 그곳에서 여러분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가 재소자에게 아핌 저녁으로 가정예배를 인도하였으며, 찬송을 매일 7곡이상씩 불렀으며 성경말씀을 10구절이상을 암송하였으며, 그가 전도한 사람은 무려 200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기적이고 자신만을 붙잡고 그리고 두 손에 욕심만 움켜쥐고 사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기적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감사를 모른 채 불평과 원망과 짜증을 부리며 자신의 삶을 불만으로 채우고 사는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작고 보잘것없은 우리의 삶을 주님의 손에 올려놓으시고, 어렵고 힘든 삶일지라도 항상 감사와 기쁨의 삶을 놓치지 마시고 주님안에서 도전하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에 뿐 아니라 인생의 가장 원초적인 삶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때론 인생에서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부딪치게 됩니다. 그 때에 모든 문제의 해결자이신 하나님에게 나아오십시오. 오병이어의 기적은 우리의 삶에서도 계속 일어날 수 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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