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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세가지 말씀 (요1:35-42)

본문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의 세가지 중요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무엇을 구하느냐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세례 받으신 다음 날 자신의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기를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합니다. 그 때에 그의 제자 둘이 그 예수님을 따릅니다. 따르는 두 사람을 보시면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무엇을 구하느냐”하십니다. “무엇을 구하느냐” 우리가 주님에게 나아가면서 이 질문을 진지하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예)사람에게는 기본적인 세가지 욕구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시험 중에 잘 나타나 있는데-떡을 만들라는 소유하는 욕구. 천하만국을 얻어 왕이 되려는 무엇인가 되려고 하는 욕구 뛰어내리라고 하는 무엇인가 보이려는 욕구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서 무엇인가 노력하고 애쓰고 있습니다. 교회를 나오고 예수를 믿는 것도 이러한 욕구를 이루기 위한 하나의 방편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욕구를위하여 교회를나오게 된다면 우리의 신앙은 위험할수가 있습니다.
예)이 욕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원망하고 신앙을 버립니다. 또한 이 욕구만 이루어지면 목적이 이루어짐으로 신앙의 열심도 없어지고, 아주 이기적인 신앙의 모습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예)솔로몬의 요구는 참으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는 백성을위하여 지혜를 구하였습니다.
예)가룟유다는 세상적인 명예와 물질을 구하였기에 그는 예수님을 배반하는 실패자가 되었습니다.
예)예수님께로 나아왔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은 세상적인 것만 구하였기에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을 예고 하시자 모두가 다 예수님 곁을 떠나갔습니다. (요6:26)“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성경은 너무나 슬프게 이렇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요6:66)“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우리가 무엇을 구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신앙의 목표가 달라지고 신앙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예)토마스 아퀴나스에게 하나님은 “너는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에 그 분은 “주님 나는 그리스도외에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고 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당신은 무엇을 구하십니까 주님이 물으신다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우리는 무엇보다 주님을 원하시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가득 차 있으면 내 마음에서 주님의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그리고 주님의 생명이 흘러넘쳐 능력이 되며, 주님의 사랑이 흘러넘칩니다. 또한 주님안에 있는 모든 은혜와 축복이 나의 생활에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마6:33)“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것은 주님의 약속입니다.
예)스펄젼목사님의 어느 날의 눈물-“오늘은 십자가를 묵상하여도 도대체 눈물이 나지 않아서 너무나 안타깝고 슬퍼서 웁니다” 우리는 먼저 주님을 원하십시다. 주님의 모든 것을 원하며 그것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주님으로부터 모든 풍성한 은혜와 복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2.와 보라. 두 제자는 무엇을 구하느냐는 예수님의 물음에 “랍비여 어디에 계십니까”고 묻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은 그들에게 “와 보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신앙은 우선 와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흔히 이렇쿵 저렇쿵 말은 많이 하는데 정작 교회에는 안나오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일단은 나와보아야 합니다. 나와서 몸으로 느껴보고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 제자들은 예수님과 하루를 보내면서 놀라운 발견을 합니다. 그것은 그가 메시야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교회에 와서 우리가 발견하여야 할 것은 바로 이 사실입니다. 교회의 흠이나, 잘못된 제도나, 잘못된 사람 등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예수님을 발견하여야 합니다. 예수님 그 분이 누구신지, 그 분이 인생을 위하여 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사실이 발견되어지고 나면 우리의 삶이 변합니다. 달라집니다. 새로워집니다. 교회를 나오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아직 이 사실을 발견하지 못하였기에 형식적이고 생명력없는 신앙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데 됩니다. “와보라” 일단 주님꼐로 오면 성령님이 그에게 역사하실 줄로 믿습니다.
예)베니 힌목사님의 간증-친구를 따라서 케더린 쿨만의 집회에 참석하였다가 성령님의 은혜를 입고 현재 미국에서 최고의 신유부흥사로 사용당하게 된 것입니다. 나아가서 우리가 이 말씀에서 깨닫게 되는 것은 우리 기독교는 설득이나 이해를 요구하고 그것을 가지고 믿도록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먼저 보고, 경험하고, 느끼고, 감동하고 그리고 저절로 믿어지는 역사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를 체험의 종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하여 논증도 없고, 사고도 없는 비철학적인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경험 바탕위에 진리를 배우고 합리적인 논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정진모과기처장관-가장 과학적인 사고와 생각에 있어 형식적이고 생명없는 신앙인었던 그가 수요일 예배시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너는 이 일로 나에게 한 번 감사해본적이 있느냐” 그리고 그는 눈물을 흘리고 회개하고는 새로워 졌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살며 전도하고 삽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생명력입니다. “와 보라” 우리는 모든 염려나 걱정이나 인간적인 생각을 내려놓고 일단 하나님에게 먼저 나아오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일단 하나님에게 나아와서 하나님에게 맡기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역사하실 것입니다.
3.장차 게바(베드로)라 하리라 안드레는 자기 형제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만난 예수를 전하고, 내가 만나 예수를 증거하는 삶이 우리의 신앙의 부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나아온 시몬에게 주님이 하시는 말씀이 “장차 시몬이라 하지않고 게바라 하리라”고 하십니다. “장차” 이 말이 중요합니다. 지금은 시몬, 초라한 어부,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인정안하는 보잘것없은 인생. 그러나 이제 앞으로 게바곧 베드로라는 놀라운 인생, 세계를 놀라게 하고 많은 사람을 주님께로 이끄는 휼륭한 지도자로서의 베드로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서 “보시고” 이 말이 참으로 소중한 말씀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현재를 보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외모를 보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미래를 보셨습니다.
예)죠지 뮬러는 전과 17범이었습니다. 그랬던 그를 하나님은 부르셔서 고아의 아버지로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동시에 나타냈던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의 제자로서 그를 따르며 가져야 할 소망과 비젼은 이것입니다. 지금의 내가 전부가 아닙니다. 지금의 나의 모습이 나의 미래가 아닙니다. 예수 안에서 우리는 변할 것입니다. 놀랍고 위대하고 휼륭한 사람으로 바뀔 것입니다.
예)“사람들은 사과나무에서 사과를 보지만 예수님은 사과나무에서 그 씨를 보신다”고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예)예수님은 일곱귀신들어 사람들의 버림을 받은 막달라에서 축복된 내일을 보십니다. 예수님은 열등감과 죄책감에 빠져 사람들의 미움을 받던 삭개오에게서 미래를 보십니다.
예)어느 정신병동에 ‘에니’라는 아이가 입원하였다. 모두는 그 아이를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고는 버리다시피하였다. 그 때에 한 늙은 간호원이 그를 극진히 간호하여 치료시켰다. 그 후 에니는 그 은혜를 보답하고자 그 병원에서 남아 자기와 같은 아이를 돌보기로 하였다. 바로 그 병동에 귀먹고, 말못하고, 듣지못하는 아이가 입원하였다. 모두가 그를 버렸지만 에니는 그를 돌보았다. 어느날 너무나 피곤하게 하고 말안듣는 아이의 손을 잡고 노 간호원은 눈물을 흘립니다. 그 눈물이 아이의 손 등을 적싷 때에 아이의 마음이 녹아지고 간호원의 말을 듣기 시작하며 배움을 받게 됩니다. 바로 늙은 간호원 에니는 에니 설리반 선생이며, 그 아이는 헬렌켈러였다. 헬렌 켈러는 하버드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미래를 보시고 계십니다. 그 미래를 아름답게 만드시기를 원하시며, 우리의 미래를 복되게 만드십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이 어떻든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주님을 의지하며 내일을 향하여 도전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내일은 더욱 아름답고 멋진 사람들로 만들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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