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예수님께 축복받는 어린이 (막19:13-16)

본문

미국의 초기 청교도 역사 속에서 가장 위대한 영향을 끼쳤던 사람 중 조나단 에드워드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에드워드는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신앙적인 여인과 결혼해서 신혼 초기부터 철저하게 기독교적 원리에 입각해서 그리스도인의 가정을 형성해 갔습니다. 같은 때에 뉴잉글랜드에서 그와 같이 자란 동네 친구였던 맥스 쥬크는 신앙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방탕했던 여인과 결합하여 나중에 자신도 신앙을 저버려 그의 사람됨이 점차 잘못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 두 사람의 가계를 추적했습니다. 그들의 후손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에드워드는 오늘날까지 617명의 후손을 두었는데 대학의 총장을 지냈던 사람이 12명. 교수가 75명. 의사가 60명. 성직자가 100명. 군대 장교가 75명. 저술가가 80명. 변호사가 100명. 판사가 30명. 공무원이 80명. 하원의원이 3명. 상원의원이 1명. 미국의 부통령을 1명 배출했습니다. 맥스 쥬크는 1292명의 후손을 두었는데 유아로 사망한 사람이 309명. 직업적인 거지가 310명. 불구자가 440명. 매춘부가 50명. 도둑이 60명. 살인자가 70명. 그저 그렇고 그런 사람이 53명이었습니다. 이것은 극단적인 예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가정안에서 우리의 자녀를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가정의 행, 불행이 있고, 나아가서 한 사회에 공헌하느냐 아니면 문제의 인물들이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런 대책없이 우리의 자녀들이 잘되기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자녀들이 휼륭한 사람이 되어지기를 바라기 보다는 돈 많이 벌고 잘 사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예)음악콩쿨에서의 일.
예)마치 성경의 여인 중에 살로메를 보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두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을 예수님에게 와서 간청하여 예수님의 좌우에 앉게 해 달라고 합니다. 문제는 그리스도인의 부모들 조차도 세상적인 것을 목표로하여 자녀를 양육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신앙과 도덕적인 기준은 달라지고 아이들에게 이원론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신앙의 힘을 전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청소년 교육선교회가 지난 94년 서울 소재 중고등부 3백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부모와 나누는 주된 대화는 “공부”에 관한 이야기이며 문제가 생겼을 때에는 친구나 혼자서 해결하지 부모와 해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에 다니는 부모에게 실망을 느낀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60%이상이 실망을 느낀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예)모교회 중고등부 수련회 참가한 한 중학생은 “예배후 지하철 죄석에 앉아 엄마와 집에 돌아가는 중 무거운 짐을 들고 타는 할머니를 보았다”며 자리를 양보하려고 하자 “멀리갈텐데 그냥 앉아있어”하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에 ‘방금전까지 듣고 끄덕이던 설교말씀이 어디갔나’의아했다고 하였습니다.
예)장영수씨는 한국일보 칼럼에 4가지 형태의 부모를 말했는데
1 밀모: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식을 팍팍 밀어주는 부모.
2 뛰모:자녀와 함께 예습하고, 과외 공부,학교에 따라 다니는 부모.
3 지모:공부하는 자녀 옆에서 뜨개질하면서 지켜주는 부모.
4 주모:자녀가 공부하든 말든 주무시는 부모. 우리의 자녀들은 우리의 부모들이 어떠냐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 분명합니다.
예)지난해 지존파사건은 우리 사회의 많은 병리현상과 한 가정의 불행이 한 사회에 얼마나 큰 부정적인 일을 만드는 가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결손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이었습니다. 김현양은 10여년전 아버지를 여의고 재혼한 어머니로부터 버림받고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녀야 했습니다. 그 증오심이 불타올랐고 그거 마지막으로 한 이야기는 “어머니를 내 손으로 못 죽인 것이 한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김기환이도 8세 때에 아버지를 여의고 중학 1학년떄에 등록금이 없어서 학교를 중퇴하고 깊은 피해의식이 있었습니다. 문상록도 편모슬하에서 자라 식당종업원으로 생활하며 사회에 대한 불신이 차있었습니다. 더구나 여기에서 누군가가 지적한 것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책망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요즈음 부모들에게서 하나 발견되는 것이 아이에게 책망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예)잡초아이로 키우지 말아야 합니다. 정원에 아름다운 화초로 키우고 유실수로 키우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아이를 관상수로 키우지 말아야 합니다. 유실수로 키워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아이들의 재롱과 이쁜 모습만 보지 말고 그 아이의 미래를 보면서 잘못을 지적하고 책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텍사스주 휴스턴경찰국에서는 “자녀들을 타락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10가지 조건”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1.아이가 갖고 싶어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주라. 그러면 아이는 세상의 모든 것이 자기 것이 될 수 있다고 오해하면서 자랄 것이다.
2.아이가 나쁜 말을 쓸 때면 그냥 웃어 넘겨라. 그러면 자기가 재치있는 줄 알고 더욱 나쁜 말과 나쁜 생각을 할 것이다.
3.그 어떠한 형태의 교훈적인 훈련과 교육도 시키지 말아라. 커 가는 과정 속에서 스스로 알아서 잘 할 것이라고 믿고 내버려 두라.
4.잘못된 품행은 책망하지 말며 그냥 두어라. 이 다음에 사회로부터 책망을 받게 될 것이다.
5.아이가 어질러 놓은 침대, 옷, 신발 등을 모두 정돈해 주어라. 자기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해 버리는 사람이 될 것이다.
6.텔레비전이나 비디오를 마음대로 볼 수 있게 해 주어라. 머지않아 그 아이의 마음은 쓰레기통이 될 것이다.
7.아이들 앞에서 부부나 가족들의 싸우는 모습읋 자주 보여주어라. 그러면 이 다음에 가정이 깨어져도 눈 하나 깜짝 안 할 것이다.
8.달라고 하는 대로 용돈을 얼마든지 주어라. 타락의 길길을 쉽게 터득할 것이다.
9.먹고 싶다는 것은 다 먹이고, 마시고 싶다는 것도 다 마시게 하고, 좋다는 것은 다 해주어리. 어떠한 거절이라도 한 번만 당하면 곧 낭패에 빠지는 사람이 될 것이다.
10.아이가 이웃과 대랍되는 자세나 마음을 가질 때에 언제나 아이편이 되어주어라. 건전한 사회가 모두 그 아이의 적이 될 것이다.
자녀에게는 격려와 용기와 힘을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꾸지람과 책망도 필요합니다. 격려는 사람을 성숙시키지만 책망은 사람을 온전케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책망”이란 잘라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계3:19)“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히12:6)“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하나님도 우리를 온전케 하시기 위하여서 그 사랑으로 우리를 징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우리 자녀를 온전케 하기 위하여서 사랑하는 자식이지만 징계하고 책망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잠13:24)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잠22:15)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잠29:15)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 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잠29:17)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 그러나 책망은 지혜롭게 하여야 합니다. 한 손으로 때리고 한손으로 안아주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은혜와 공의로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여기에서 한 가지 아주 중요한 것은 우리 아이들을 주님의 은혜와 복을 받는 아이가 되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아이들의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들을 예수님에게로 데리고와서 예수님의 만져주심을 바라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 때에 제자들은 그 아이들을 꾸짖고 엄마들을 나무랍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히려 그 제자들을 나무라시면서 그 아이들을 일일이 안으시고 축복해 주시고 계십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인지 모릅니다. 바로 이러한 일이 우리 가정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는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있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복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에게 우리 자녀들이 복을 받을 때에 우리의 자녀는 온전해 질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서 새상으로부터 보호와 지켜주심이 있어야 하며, 세상의 악으로부터 거룩한 삶을 살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부모들은 자녀를 예수님에게로 데리고 나와야 합니다.
예)주일학교 교육에는 등한히 하는 부모들-그리고 자녀를 위한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합니다.
예)빌리썬데이-“기도하는 부모의 자녀는 결코 마귀가 빼앗지 못한다.” 우리의 자녀들이 예수님에게 안겨서 축복받는 아이들이 되어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928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