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합을 깨뜨린 여인 (막14:3-9)
본문
오늘 아침 우리는 말할수 없는 고통과 상처를 치유받고 감격하여 그 크신 은혜를 감사하는 한 여인의 모습을 본문 말씀을 통하여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인이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서로 분을 내면서 “무슨 의사로 이 향유를 허비하였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하며 여인을 책망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가만 두어라 너희가 어찌하여 저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아니하리라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 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이 여인의 행한 일을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말하여 기념하라고 했을까요
1. 이 여인은 물질의 옥합을 깨뜨렸습니다. 본문 3절에 보면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라고 했습니다. 유대나라 여자들은 향유를 좋아해서 향유가 든 옥합을 목에 매달고 다녔다고 합니다. 이 여인이 부은 향유의 값은 가롯유다의 계산대로라면 삼백 데나리온어치가 되는 것이니까 그 당시로서는 장정 1년분의 임금이 되는 액수입니다. 한 데나리온은 당시 장정 한 사람의 하루 임금이었습니다. 벳세다 들판에서 5,천명의 무리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실 때 타산을 잘하는 빌립이 이백 데나리온이 필요하다는 계산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삼백 데나리온이라면 약 7천명을 먹일 수 있는 액수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삼백 데나리온이나 되는 향유의 옥합을 깨뜨렸습니다. 그것은 물질의 옥합을 깨뜨린 것입니다. 물질의 옥합을 깨뜨리지 않고서는 주님께 헌신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기회가 있을 때 성령님의 감동이 올 때 순종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어떤 성경학자는 이 향유는 그 여자가 시집 갈 밑천으로 조금씩 조금씩 모아 두었던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하나도 남김없이 몽땅 힘을 다하여 부었습니다. 우리교회의 양영자 선생은 직장생활하면서 시집 갈 밑천으로 조금씩 모은 것을 교회의 비품을 위해 300만원을 바쳤으며, 김숙영 선생은 앞으로 선교원에서 2년간 봉사하여 하나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하는 500만원을 교회의 비품구입을 위해 드리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이것이 자원하는 봉헌이요, 옥합을 깨뜨리는 행위입니다. 이런 행위는 틀림없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자신에게는 복이 되는 것입니다.
2. 이 여인은 마음의 옥합을 깨뜨렸습니다. 누가복음 7:38절에 보면 “예수의 뒤로 그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라고 했습니다. 마음의 옥합이 깨어질 때 눈물의 향유가 쏟아지는 것입니다. 이 시간도 주님은 우리의 마음이 깨어지기를 원하십니다. 눈물을 뿌리는 것은 마음이 깨어진 것이요, 마음이 깨어질 때 눈물이라는 값진 향유가 흘러나게 됩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의 발 곁에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옥합을 깨뜨려 부은 것입니다. 이 여인은 옥합속에 든 향유보다 더 값진 눈물을 쏟은 것입니다. 성경속에 흐르고 있는 생명의 역사는 눈물로 제단을 적시는 사건입니다. 눈물이 없는 신앙은 주님이 받으실 만한 향유를 드리지 못한 것입니다. 다윗이 성군이 된 것은 그의 마음에서 고귀한 눈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시 6:6)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의 눈물은 다윗을 거룩한 사람이 되어 만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구약의 위대한 인물이 되게 한 것입니다. 다윗은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시 56:8)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병에 담아진 눈물은 고귀한 것입니다. 성도가 베드로처럼 통회하는 눈물이 있어야(막 14:72)제자의 길을 바르게 갈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는 형제들을 향하여 불쌍히 여기는 바울의 눈물(빌 3:18)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를 위하여 눈물로 제단을 적시며 쉬지 않고 기도하며, 마음도, 물질도, 아낌없이 옥합을 깨뜨려 바치는 마리아처럼 충성을 다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3. 이 여인은 육체의 옥합을 깨뜨렸습니다. 요한복음 13:3절에 보면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고 했습니다. 이 여인의 헌신은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긴 것입니다. 이것은 전적인 헌신의 표시입니다. 향유를 바친 것은 물질을 바친 것이요, 그 발에 입맞춘 것은 몸을 바친 것입니다. 마리아는 마음도 몸도 물질도 다 바쳤습니다. 이 몸은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입니다. 머리털은 소중한 것입니다. 이것으로 걸레삼아 주님 발을 씻긴 것은 전 존재를 주님을 위하여 바치는 헌신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나는 작아지고 내 것은 없어지고 모든 것이 다 주의 것으로 드릴 것 밖에 없습니다. 은혜로 깨닫고 보면 일생이 빚진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았기에 자랑할 것도 없고 일생을 다 바쳐도 갚을 수 없는 죄인임을 고백하지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피흘려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기에 우리는 피흘려 순교의 제물로 주앞에 드려야 할 것입니다. ♪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갚을 줄 알아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몸 바칩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향유를 내 장사를 위하여 준비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이 여인이 옥합을 깨뜨린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가 만 인류를 위하여 십자가 상에서 몸의 옥합을 깨뜨려 고귀한 피의 향유가 흘러날 것을 예표한 것이기에 예수님은 크게 칭찬한 것입니다. 이 여인은 몸과 마음과 물질의 옥합을 깨뜨려 주님께 드리므로 칭찬받았으니 우리도 옥합이 깨뜨러지므로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이 여인의 행한 일을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말하여 기념하라고 했을까요
1. 이 여인은 물질의 옥합을 깨뜨렸습니다. 본문 3절에 보면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라고 했습니다. 유대나라 여자들은 향유를 좋아해서 향유가 든 옥합을 목에 매달고 다녔다고 합니다. 이 여인이 부은 향유의 값은 가롯유다의 계산대로라면 삼백 데나리온어치가 되는 것이니까 그 당시로서는 장정 1년분의 임금이 되는 액수입니다. 한 데나리온은 당시 장정 한 사람의 하루 임금이었습니다. 벳세다 들판에서 5,천명의 무리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실 때 타산을 잘하는 빌립이 이백 데나리온이 필요하다는 계산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삼백 데나리온이라면 약 7천명을 먹일 수 있는 액수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삼백 데나리온이나 되는 향유의 옥합을 깨뜨렸습니다. 그것은 물질의 옥합을 깨뜨린 것입니다. 물질의 옥합을 깨뜨리지 않고서는 주님께 헌신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기회가 있을 때 성령님의 감동이 올 때 순종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어떤 성경학자는 이 향유는 그 여자가 시집 갈 밑천으로 조금씩 조금씩 모아 두었던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하나도 남김없이 몽땅 힘을 다하여 부었습니다. 우리교회의 양영자 선생은 직장생활하면서 시집 갈 밑천으로 조금씩 모은 것을 교회의 비품을 위해 300만원을 바쳤으며, 김숙영 선생은 앞으로 선교원에서 2년간 봉사하여 하나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하는 500만원을 교회의 비품구입을 위해 드리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이것이 자원하는 봉헌이요, 옥합을 깨뜨리는 행위입니다. 이런 행위는 틀림없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자신에게는 복이 되는 것입니다.
2. 이 여인은 마음의 옥합을 깨뜨렸습니다. 누가복음 7:38절에 보면 “예수의 뒤로 그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라고 했습니다. 마음의 옥합이 깨어질 때 눈물의 향유가 쏟아지는 것입니다. 이 시간도 주님은 우리의 마음이 깨어지기를 원하십니다. 눈물을 뿌리는 것은 마음이 깨어진 것이요, 마음이 깨어질 때 눈물이라는 값진 향유가 흘러나게 됩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의 발 곁에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옥합을 깨뜨려 부은 것입니다. 이 여인은 옥합속에 든 향유보다 더 값진 눈물을 쏟은 것입니다. 성경속에 흐르고 있는 생명의 역사는 눈물로 제단을 적시는 사건입니다. 눈물이 없는 신앙은 주님이 받으실 만한 향유를 드리지 못한 것입니다. 다윗이 성군이 된 것은 그의 마음에서 고귀한 눈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시 6:6)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의 눈물은 다윗을 거룩한 사람이 되어 만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구약의 위대한 인물이 되게 한 것입니다. 다윗은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시 56:8)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병에 담아진 눈물은 고귀한 것입니다. 성도가 베드로처럼 통회하는 눈물이 있어야(막 14:72)제자의 길을 바르게 갈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는 형제들을 향하여 불쌍히 여기는 바울의 눈물(빌 3:18)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를 위하여 눈물로 제단을 적시며 쉬지 않고 기도하며, 마음도, 물질도, 아낌없이 옥합을 깨뜨려 바치는 마리아처럼 충성을 다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3. 이 여인은 육체의 옥합을 깨뜨렸습니다. 요한복음 13:3절에 보면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고 했습니다. 이 여인의 헌신은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긴 것입니다. 이것은 전적인 헌신의 표시입니다. 향유를 바친 것은 물질을 바친 것이요, 그 발에 입맞춘 것은 몸을 바친 것입니다. 마리아는 마음도 몸도 물질도 다 바쳤습니다. 이 몸은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입니다. 머리털은 소중한 것입니다. 이것으로 걸레삼아 주님 발을 씻긴 것은 전 존재를 주님을 위하여 바치는 헌신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나는 작아지고 내 것은 없어지고 모든 것이 다 주의 것으로 드릴 것 밖에 없습니다. 은혜로 깨닫고 보면 일생이 빚진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았기에 자랑할 것도 없고 일생을 다 바쳐도 갚을 수 없는 죄인임을 고백하지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피흘려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기에 우리는 피흘려 순교의 제물로 주앞에 드려야 할 것입니다. ♪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갚을 줄 알아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몸 바칩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향유를 내 장사를 위하여 준비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이 여인이 옥합을 깨뜨린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가 만 인류를 위하여 십자가 상에서 몸의 옥합을 깨뜨려 고귀한 피의 향유가 흘러날 것을 예표한 것이기에 예수님은 크게 칭찬한 것입니다. 이 여인은 몸과 마음과 물질의 옥합을 깨뜨려 주님께 드리므로 칭찬받았으니 우리도 옥합이 깨뜨러지므로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