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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감사! (마11:25-30)

본문

사람들은 흔히 감사할 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감사의 마음을 표현합니다. 그러나 우리 신 앙인들의 감사는 다릅니다. 기쁜 일에도 감사하지만 때로는 불행 앞에서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확실히 감사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옛날, 이북에서 월남한 사람은 남쪽에 와서 하나님앞에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자체만 해도 감사했고, 6.25때 많은 사람이 죽어간 중에서. 살아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감사의 조건이 되었던 것입니다. 60-70년대만 해도 대부분의 집들이 한 이불 속에 7-8명의 식구들이 올망졸망 들어가 서로 엉 기섥기 잠을 잤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침대에다가 각자 자기 방을 가지고 자기 이불을 덮고 잠을 잡니다. 물자가 흔하니 물건 귀한 줄 모르고, 먹을 것이 많으니 모든 것이 다 흥청망청인데. 정작 있 어야 할 사랑과 감사는 더욱 더 메마르고 있는 것입니다. 일년동안 우리의 건강과 생명을 지켜주신 것 만이라도 하나님 앞에 드릴 감사의 조건은 얼마 나 많습니까.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주의 자녀들이 감사를 생활화하는 모습입니다. 이시간을 통 하여 감사로제사를 드리며 영광을 돌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감사의 좋은 모범을 보여 주시는 장면입니다.
1. 예수님의 감사의 때 본문을 보면, 예수님이 감사한 그 때가 언제인지 알게 되는데, 25절에 보면,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라는 말씀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 때에." 라는 말씀은 본문 앞의 내용과 연결이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때는 예수님께서 마음이 심히 우울하고 착잡한 그때를 가르킵니다. 아마도 주님은 마음이 심히 괴롭고 착찹하고 우울하고 서운한 때 였습니다. 그 이유는 고라신이나, 가버나움이나, 벳세다와 같은 도시들이 회개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보시 고 예수님은 깊이 탄식하셨습니다. 고라신이나, 가버나움이나, 벳세다는 다른 도시들 보다 예수님께서 더 많은 이적과 기사를 행 하신 곳입니다. 고라신은 가버나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역으로 주님은 고라신이나 가버나움에서 많은 이적 을 행하셨습니다.
마8장에 보면 한 백부장의 하인이 병든 것을 말씀으로 명하여 고쳐주셨고, 마17장에 보면 세 금을 내는 문제 때문에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제일 먼저 올라오는 고기의 입을 열면 한 세 겔이 있는데 그것을 가져다가 내라고 하셔서 낚시를 던져 제일먼저 올라오는 고기의 입을 여 니 정말로 한 세겔이 고기의 입에 있어서 그것으로 세금을 내었습니다. 또한 막2장에 보면, 중 풍병자의 병을 고치기 위해 우정어린 친구들 4명이 지붕을 뜷고 와서 간구할 때 그들의 간절 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중병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그외에도 눅4장에서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 셨으며, 막5장에서는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고라신이나 가버나움에서도 많은 이적을 행하셨거니와 주님은 벳세다에서도 놀라운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벳세다는 베드로와 안드레와 빌립의 고향으로서 이곳에서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먹이시고 열두광주리가 남게 하시는 기적을 베푸셨는데, 이러한 기 적의 사건은 너무나도 유명하여 근처에 있는 다른 이방나라들 까지도 다 아는 사건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이러한 도시에서 행하셨던 이적을 소돔이나 시돈이나, 두로와 같은 이방 도 시에서 행하셨다면 그들은 벌써 회개하여 멸망을 피했을 것이라며 예수님은 탄식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11:21절에서 주님은 "화가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 으리라" 하셨습니다. 바로 그러한 때에. 예수님의 마음이 어떻했겠습니까 제일 열심히 능력을 행하셨던 곳이고 가장 관심이 있었던 곳이었는데. 사람들은 주님을 믿지 아니하고 멸망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그때의 심정은 우리들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장 기대를 걸었고, 가장 믿었던 사람이요,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실망을 느끼고 배신을 당한다면. 그 허탈감, 그 이로움, 그 고독감. 그 허탈감은 상당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토록 사랑하시고 멸망에서 구하고 싶었던 동족들이 회개하지 않고 복음을 받아 들이지 아니함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잇습니다. 이러한 우울한 상황 속에서 깊이 생각하신 후에 하신 말씀이 무엇이였는가 하면. '감사'였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을 때, 답답하고 착잡한 마음이 가득할 때에.
예수님께서는 원망하고 불평을 한 것이 아니라, 감사했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ex' 어떤 집사님의 남편이 매일 밤 늦도록 술을 마시고 들어와서는 술주정을 했답니다.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이혼도 생각해 보고, 가출할 것도 생각해 봤지만 자식들 때문에 망설이고 있 을 정도 였습니다. 하루는 술에 곯아 떨어져 자는 남편 옆에 앉아서 신세 타령을 하다가 문득 기쁨으로 기도해 야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설교가 생각이 나서 "하나님 아무리해도 감사할 것은 없지만 좌우지 간 감사하고 기쁩니다." 하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정말 성령님께서 뜨겁게 역사하시면서 구체적으로 감사할 마음이 떠오른 것입니다. "그래, 주정뱅이 남편이라도 과부보다는 낫지 뭘그래. 술이 취하니까 자연적으로 집도 봐주 고, 미안하니까 헌금도 주고. 이만하면 고맙지 뭘그래." 이런 생각이 나니까 정말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때, 남편이 목이 타서 눈을 떴습니다.
그런데 보통때 같으면 울고 있어야 할 부인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것입니다. 남편이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그 이유를 물으니까 부인은 고맙고 감사한 구체적인 이유를 얘 기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빙그레 웃으면서 "나도 내일부터 교회에 나가 줄께!" 하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원망이나 불평 할 수밖에 없는 상황속에서도 감사의 조건은 있는 줄 믿습니다. 우리 성광의 성도들은 무엇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쉽게 원망하고 불평하는. 초신자적이고 저차원적인 신앙이 아니라, 그 대신 감사할 줄 아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누구에게 감사했습니까 예수님은 본문 25절에서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시여." 하시면서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시며 감사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감사의 대상을 잘못 알고 있습니다. 비를 내리는 것이 하늘인줄 알고 하늘이 고마워 하늘을 섬깁니다. 곡식을 내는 땅이 고마워 땅을 신으로 섬깁니다. 조상의 정령 께 감사하고, 안방 건너방 사랑방 심지어는 뒷간을 섬깁니다. 햇빛을 주는 태양을 신으로 섬기기도 합니다. 밤하늘을 밝혀주는 달을 신으로 섬깁니다. 심지 어는 큰 고목이나 바위 앞에서절을 하며 소원을 비는 것입니다. 심히 어리석기 짜기 없습니다. 너무나 잘못된 것입니다. 감사의 대상을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ex' 어떤 청년이 신경통으로 아무런 일도 못하고 허송세월 하던 중 교회서 부흥회 하는데 참 석하였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치유를 받게 되었습니다. 본인은 물론 온 교인과 목사님이 너무 기뻐서 다음 주일 예배 시간에 참석할 것을 부탁하고, 주일 예배 시간에 참석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이 보이지 않았으므로 나중에 찾아가서 연유를 물으니까, 청년은 말하기를 '병 낳은 것이 너무 기뻐서 친구들과 같이 도봉산에 등산을 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먼저 감사를 해야 하겠는데, 성경에 열 문둥이 중에 9명과 같이 동리와 가정에 먼저 간 것과 같습니다.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 천지의 주권자가 되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것 입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그분은 천하 만물보다도 우리 를 더 사랑하시고 보호하시고 우리의 필요를 아시며 때를 따라 돕는 은혜로 공급하시고 복을 내려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흔히 감사할 때에. 감사를 베풀어준 그 사람에게 대해서는 크게 감사하지만 하나님께는 감사의 표현을 하지 않습니다. 병에 걸린 환자들은, 가지고 있는 것을 몽땅 다 주어서라도 의사에게 생명을 연장해 달라며 간곡히 부탁을 합니다. 그리고 달라는 대로 치료비를 바칩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우리의 생명을 연장해 주시고, 건강을 지켜 주시고, 장말로 도와주신 하나님 께는 감사하지 않고 살 때가 너무 많습니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병원 뿐만이 아니라, 죽은 시체를 장례하는 장의사 집에 왔을 때에도 부르는 것이 값이라고 할 만큼 인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달리 하나님께 감사할 때에는. 이것 저것을 따지면서, 손익을 계산하면서 감사한다 고 하면 어찌 그 믿음이 하늘의 문을 열 수 있는 천국의 열쇠가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성광의 권속들은 생명의 주가 되시고 천지의 주권자가 되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항 상 감사하며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그러면,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그 조건은 무엇이였습니까 본문 25절에 보면, ".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 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의 축복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과 같이 어리석고 부족하여 연약한 자들에게는 나타내 주심에 대하여 감사를 드렸습니다. 받을 수 있는 조건이 아무것도 없는 어리석은 이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주시고 하늘의 복을 주셨음을 감사하신 것입니다. 나같은 죄인을 구원하시고 심히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은혜와 복을 주심은.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이요, 거저 주시는 은혜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속한 것입니다. 참으로 이상합니다. 하나님께서 슬기를 주시고 지혜를 주셨는데. 그들은 복음을 받지 않고 오 히려 어리석은 자들이 복음을 쉽게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상한 일이 감사의 조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기적과 권능은 모두가 다 상식을 넘는 일들입니다. 당연히 받을 줄로 알았던 사람들은 예외가 되고 받지 못할 줄로 알았던 사람들이 은혜를 받는 일이 감사의 조건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역설적인 종교입니다.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은 화려한 경력이나 돈이 많았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강한 사람이 아니라 약한 사람들입니다. 건강한 사람들 보다 약한 사람들이많습니다. 지혜가 뛰어나고 잔꾀가 많은 사람들이 아니라, 무식하고 어수룩하고 미련한 사람들 입니다. 우리 모두는 바로 이런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은혜에 대해서 감사를 드리는 성도 가 되시기 바랍니다.
4. 감사의 이유 계속해서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감사한 그 이유를 알수 있습니다. 26절에 보면,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감사는 자신의 뜻이 이루어짐을 감사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감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좋은 사람이 믿고 훌륭한 사람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쓸모 없는 사람들이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요 하나님의 뜻인줄 알아. 그 사실을 인정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일에 대하여 감사한 것입니다. 자신의 뜻이 이루어진 것에 대한 감사가 아닙니다. 우리는 흔히 내가 원한 일이 이루어졌을 때만 감사합니다. 내게 유익이 되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은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유익이 없어도 하나님께 유익이 되고. 내게 손해가 되어도 하나님께 영광이 나타나는 일이라면, 감사할 줄 아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문제가 생기고, 다툼이 생기고, 혈기를 부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문제의 근원을 살펴보면, 대부분 우리의 뜻대로 되기를 바라는 곳에서 문제가 발생을 합니다. 그러나, 나의 뜻 보다는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일이 더 완전하고, 더 선하고, 더 아름다 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된 것을 찬송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의 이유를, 언제나 내 편에서 찾지 말고 하나님의 편에서 찾고 감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5. 예수님의 감사의 방법 계속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감사하신 그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감사라는 말은 '감격하여 하나님을 찬송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학자는 감사라는 말보다 '찬송'이라는 말로 번역하는 편이 더 옳다고 했습니다. 감사는 하나님 의 은혜에 대한 인간의 반응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모두 인정하고 선하신 일로 받아드릴 때. 감사와 찬송이 터져 나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진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데서 찬송이 나오고 감탄의 말이 나오는 법인 것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본문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은 입으로만 찬송하신 것이 아닙니다. 모든 권세를 주신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세상의 무거운 죄짐을 지고, 고통하는 자들을 초청하시며 그 들에게 안식을 주셨습니다. 본문 28절 말씀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햇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짐을 대신 지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그 참혹한 십자가의 길. 고난의 골고다 언덕을 오르신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 놓으심으로 구원의 큰 사업을 이루신 것입니다. 자신을 온전히 희생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에 대한 최상의 표현은 헌 신입니다. 우리는 감사를 입으로만 해도 족한 줄로 압니다. 입으로도 감사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 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물질로 감사하고, 또한 몸으로 다른 사람을 섬기고, 헌신하고, 봉사하므로 보답하는 삶 은. 보다 고차원 적인 믿음이요 이것이 진실한 감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을 살면서 감사를 마음에 품고 산다는 것은 아름답고 행복한 일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에 평화와 기쁨이 넘칩니다. 감사가 없이는 불안과 우울한 마음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감사를 할 줄 아는 자녀들은 부모님께도 순종합니다. 감사를 모르는 자녀들은 방탕한 삶을 살기 쉽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하는 일꾼은 피곤을 모르고 열심히 충성스럽게 일합니다. 감사를 모르는 회사원이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부부는 행복합니다. 아끼고 사랑하고 인내를 소중히 여기며 기쁨으로 봉사합니다. 그러나 감사가 결여된 가정은 목소리가 높아지고 다툼이 흔합니다. 감사하며 사는 사람은 남의 허물을 감싸 주고 용서할 줄을 압니다. 그러나 감사가 없는 사람 은 여유가 없고 냉정합니다. 남을 해치면서도 아무런 가책을 못 느낍니다. 감사는 인생을 풍요 롭게 하고 살 맛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가 없는 인생은 참으로 불행한 인생 인 것입니다. ex' 경북 영덕에서 청년 연합회 주최로 '찬미초청 찬양집회'가 열렸습니다. 모두들 뜨거운 가슴으로 손뼉을 치며 찬양하고 있는 그 시간에, 어떤 한 청년은 입으로는 열심 히 찬송을 하는데 한 손으로는 자기의 뺨을 계속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진행을 하던 사람들은 계속 그 청년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혹시 정신이 이상한 사람은 아닐까. 무슨 이유로 저렇게 자신을 학대해야 하는 것일까. 그 청년은 조용한 찬송을 부를때는 너무나 행복한 표정으로 눈을 지긋이 감고 노래를 부르다 가도 빠른 곡의 찬송을 부를 때는 영락없이 자신의 한쪽 뺨을 치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이날 집회는 큰 은혜와 감격속에 끝이 났습니다. 자기의 뺨을 치던 그 청년도 다른 이들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이 내내 마음에 걸려 그를 바라본 사람들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는 한쪽 손을 못쓰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처럼 손뼉을 칠 수 없어서 성한 한쪽 손으로 자기의 뺨을 치면서라도 주님을 찬양 하길 원했던 것입니다. 돌아오는 길에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의 두손을 내려다 보았습니다. 두 손을 가진 것이 차리리 부끄러웠고, 두손을 가졌으면서도 불평하고 게으르고 감사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 챙피했습니다. 부끄러움과 수치가 폭풍우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휘몰아쳐 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감사의 조건은 우리에게 얼마든지 있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친히 감사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감사를 배워 서. 우리 성광의 권속들은 범사에 감사함으로 행복하고 기쁨의 인생을 살아가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한해를 보내면서 지금까지 지켜주신 에벤에셀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다가올 명년에도 여호와 이레로 예비하시고 축복하실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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