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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부활하셨다! (마2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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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하노바시 공동묘지에는 굉장히 큰 화강암과 대리석을 덮개로 하여 시멘트에 튼튼한 쇠고리를 걸어 놓은 묘지 하나가 있답니다 그것은 믿지 않았던 한 여인의 무덤이랍니다. 이상하게도 그 여인은 유언에 남기기를 부활이 있더라도 무덤에서 일어날 수 없도록 해 달라고 했기 때문에 그녀의 묘를 견고히 만들었던 것이다. 비석에 새긴 글은 “이 무덤은 결코 열지 못하리라” 라고 쓰여 있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씨 한 알이 무덤의 돌 사이에 떨어져 자라기 시작했답니다. 이 씨는 서서히 땅 속에서 흙 사이로 돌을 밀고 나왔답니다. 줄기가 커지기 시작하지 그 큰 돌 바닥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여 결국은 쇠고리가 풀어져 버렸답니다. 하나의 보잘것없는 씨앗이 나무가 되어 큰돌을 밀어붙여 버렸던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부정하고 성도의 부활을 부정하여 무덤을 화강암으로 거대한 무덤을 만들어 다시는 못 열도록 만들었으나 이 작은 씨앗이 무덤을 열어 놓은 것입니다. 비록 작은 생명이고 마치 죽어 있는 듯한 씨 이지만 그 속에 생명이 있으니 씨가 자라 바위를 움직이고 이 작은 씨는 결국 거대한 바위를 열고 무덤을 활짝 열어 제쳐놓은 것입니다. 기독교의 생명은 이 부활에 있는 것입니다. 성도가 부활하는 것이 없고 다시 사는 것이 없다면 우리는 이 무의미한 종교를 믿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파스칼이란 사람은 말하기를 “만일 예수님의 제자들이 서로 의논하여 예수님의 부활을 거짓으로 만들어 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중에 한 사람이라도 본심에 돌아갔더라면 예수의 부활이란 전부 붕괴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저들은 순교를 해 가면서까지 입증한 제자들의 진실성을 믿지 않는다면 우리는 벌써 그런 사람과는 말할 필요조차 없다”라고 말하였답니다. 부활을 이와 같이 실제에 속한 사건이고 이 부활이야말로 부정할 수 없는 사건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부활을 말하고 서로가 기뻐하고 기쁨을 함께 나눕니다. 그러나 이 부활의 기쁨을 나누기 전에 주님의 십자가 죽으심이 먼저 선행되어져 있다는 이 당연하고 확실하며 변할 수 없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1'주님의 부활 전에 주님의 죽으심이 있었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시기 전에 이 땅에서 다 이루어 놓으신 주님의 행위가 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서 하신 말씀 중에 “다 이루었다” 라고 하는 이 말씀이 선행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야말로 이 땅에 오신 목적의 완성이고 구원 사역의 완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 감사히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요19:29)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우리의 죄를 사 하시고 사망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에서 엄청난 고통과 고난을 당하여 우리가 당해야 할 고통과 고난을 대신 당하시고 우리를 사망에서 구원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구원 사역이 완성된 것을 알고 믿으며 주님의 그 값진 보혈로 우리는 세상을 이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의 값진 보혈이 사탄을 이기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다 이루었다 하는 이 말씀은 성도에게 희망이 되며 성도에게 신앙 인의 삶을 살 진정한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부활의 기쁨을 나누기 전에 주님의 보혈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부활의 기쁨을 누려야 하는 것입니다.
(2)주님이 다 이뤄 놓으심은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일을 주님이 완성시켜 놓으셨으니 우리는 이것을 믿기만 하면 되고 이 사실이 주님의 부활하심에 의하여 이 구원이 확실하게 확인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을 노래하는 것이고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구원이라는 사실이 필요가 없게 됩니다. 주님이 고난과 고통과 수많은 어려움과 멸시와 천대가 주님의 부활이라는 사건을 통하여 아름답게 승화되어져 영광의 부활이 되어 주님은 이제 좀더 한 단계 높고 귀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주가 되시고 세상의 심판의 주가 되시는 것이고 우리의 왕이 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시면서 심판의 주가 되시고 주님의 백성의 왕이 되시는 신분이 더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죽으셔서 이제 무덤에 묻혀 있는데 다시 부활했다고 떠들어댄다면 전에 믿던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이 예수라는 분을 따르게 될 것이라는 것에 이들은 로마 군인에게 시켜 무덤을 굳게 지키기를 원하고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보면 유대인들은(마27:64) “그러므로 분부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적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유혹이 전보다 더 될까 하나이다 하니 (65)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에게 파숫군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하라 하거늘 (66) 저희가 파숫군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하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 부활은 성도의 의롭다 하심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모든 구원의 필요한 것을 다 이뤄 놓으셨습니다. 그 구원의 모든 것이 이제 겉으로 나타나야 하는데 이것이 곳 부활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이 바로 믿음이 있는 형제들에게 의인의 표로서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롬4: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롬4:23)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롬4: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롬4:25)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벧전3:21)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1)믿음 없이는 구원을 받아 들일 수 없고 구원이 부활 없이는 완성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믿음과 부활은 똑같이 붙어 있는 것입니다. 이 엄연한 실을 부인한다면 우리는 주님앞에 서는 날 변명의 여지가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에 거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의의 부활이 오고 믿음이 없는 사람은 심판의 부활이 있게 됩니다.
(2)부활은 믿는 자의 소망입니다. 성경에 보면(고전15: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고전15: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고전15: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고전15: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 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고전15: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고전15: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고전15: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고전15: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고전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전15:21)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 도다 주님이 부활하심은 우리 성도가 나중에 부활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부활이 우리 성도의 진정한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부활하심을 입은 성도들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3)성도는 그리스도와 연합해 있어야 합니다. 성도가 그리스도와 연합해 있어야 또한 주님의 다시 오시는 날 우리도 의의 부활을 하게 됩니다. 성경에 보면 우리가 어떻게 연합할 수 있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롬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 게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8: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롬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롬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의 피를 흘려주심으로 죄사함을 받은 주님께 빚진자 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활의 기쁨을 맞이하는 성도들이여 우리는 주님에 빚진 자 입니다.
1)우리는 먼져된 제자들에게 빚진 자 입니다. 우리의 선배들이 우리를 위하여 수많은 피를 흘리고 우리가 주님께 돌아오기를 위하여 죽어 준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웃에게 전해 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주님을 믿은 순간부터 이웃이 우리에게 전해 준 고마운 복음의 손길을 인하여 빚진 자들임으로 우리는 이웃에게 전해야만 합니다. 전하지 않으면 우리가 전해야 할 사람들의 영혼이 주님께 호소 할 것입니다. 주님의 복음을 듣지 못했노라고 말입니다.
2)우리는 행함을 통하여 주님께 믿음을 보여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보다는 오히려 범죄하고 주님을 떠나는 일을 일삼게 됩니다. (이사야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제는 좀더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제자들은 주님을 찾아 왔습니다. 비록 시체라 할지라도 주님의 장사 지내는 일을 계속 하려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무덤에 찾아와 무덤을 열기를 원하였습니다. (마28:1) “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마28:2)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마28:3) 그 형상이 번개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그런데 이들의 행위중에 주님은 분명히 부활 한다고 말씀했으나 이들은 아직도 주님의 살아날 것을 생각치도 못하고 있습니다.
(4)우리는 부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 여제자들이 주님을 찾아왔는데 이들은 주님이 다시 살아날 것을 말씀을 통하여 듣고 알아야 정상인데 이들은 몰랐고 그 제자들마저 알지 못하고 각기 자기 업을 찾아 떠나려 한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제자들은 물고기를 잡으러 가노라 하며 말하고 있습니다. (요21:3)“ 사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그 다음 이 본문에 여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모르고 썩지 않는 향품을 가져와 주님의 몸에 바르려 하고 있습니다. (막16:1)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그런데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살아 계시고 무덤 문은 열려 있고 주님은 무덤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들은 주님이 뵈지 않음을 인하여 근심하고 있습니다. (눅24:3)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뵈지 아니하더라(눅24:4) 이를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이와 같이 잘 모른다 해도 주님은 이들을 사랑하고 버리지 안으시고 주님은 이들에게 나타나 보여 주셨습니다. 이들에게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이들에게서 행함의 도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행함이 부족한 것을 봅니다.
우리는 주님께 믿음으로 행함의 보여야 합니다. 부활 신앙은 비록 복음에 관해 잘 모른다 해도 주님은 그 사람의 중심을 보고 인정하십니다.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은 바로 알지 못하고 몰라도 될 것은 자꾸만 알려고 하고 너무 많은 것을 알려고 하는 것이 탈입니다. 우리가 진정하게 알아야 할 것은 주님은 나를 위하여 죽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잘 모르는 그 사람과 너무 많이 알고 행함이 없는 그 사람에게도 주님은 위하여 죽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되심을 믿고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행함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잘 모른다 해도 우리는 우리를 주관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죽어주신이를 믿는 믿음이 우리에게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게 하고 성령님은 우리를 위하여 진리를 알고 께닭게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눅24:5)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라고 말씀하여 주님의 부활 사실을 가르처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한 상태에서 아는 것이 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 알고 있는 것이 진정코 나의 삶에 적용되어진 신앙으로 연결된 진리 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되어 있지 않으면 이런 사람은 그냥 지식으로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주님은 그 백성을 위하여 살아나셨습니다. 주님의 무덤은 빈 무덤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데로 살아나셨습니다.
그러므로 천사가 나타나 말하기를 (마28: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살아나신 것을 눈으로 직접 와서 확인하여 보라 합니다.
1)와서 보라 하는 것은 확신에 거하는 말입니다. 이제 주님의 백성은 죽음이 있으나 이 죽음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 합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증인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여인들에게 와서 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무덤을 본 자가 주님의 부활하신 사건을 확실히 증거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발라 줄려고 양품을 가지고 갖으나 주님은 부활하셨음으로 발라 주지 못함을 말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2)이제 이 부활의 증거가 우리 손으로 넘어 왔습니다. 우리는 부활의 증거 자로 있어야 합니다. 부할 의 증거 자는 주님의 부활하심을 확실히 아는자가 증거자 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확실하심을 믿고 우리는 이웃에게 자신의 신앙적 경험을 통하여 주님이 주님 되심과 주님이 우리의 심판주 이심과 그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어주신것과 이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부활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승천하여 주신 사실을 증거해야 합니다.
3)사람들은 주님이 계시고 부활하심을 영원히 부정하거나 완전히 부정하지 못합니다. 독일의 불신자 여인의 무덤이 엄청나게 큰 것은 그만큼 부활을 조금이라도 믿고 인정한 까닭에 이렇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부활이 마음에 한치의 의심이 없다면 무덤을 그렇게 엄청나게 크개 만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는 이러한 우를 범하지 않도록 이웃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부활을 증거 하는 진정한 증인이 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부활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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